60화. 골치 아프군
소오태산(小五台山).
팽가에서 서쪽으로 닷새 정도의 거리에 있는 산이다.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험준함을 가진 그저 중원에 흔히 있는 산이다.
그런 소오태산의 계곡 한 자락 은밀한 곳에 제법 크고 깊은 동굴이 있었다.
주변에 목책이 둘러져 있고, 동굴의 입구는 나무로 된 문까지 달려 있다.
누가 봐도 사람의 손을 탄 곳이다.
“크윽.”
이곳에서 팽군호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이런. 고작 이런 걸로 엄살을 피우시면, 어찌 대성을 이루시겠소. 대공자.”
차가운 목소리. 그 목소리보다 더 차가운 눈빛의 노인에 팽군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손경.
하오문의 대호법이었다.
그가 대해루에서 팽가의 호위무사를 죽이고 훌쩍 떠나는 팽군호의 뒤를 쫓아 이리로 잡아온 것이다.
팽군호는 갑자기 나타나 이곳으로 자신을 납치한 노인을 쓰러트리고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번번이 막혔다.
당연한 일이다.
공손경은 하오문에서 세 번째로 강한 자다. 그리고 가장 빠른 자.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는 고수다.
팽군호가 아무리 혼원류하를 익혔다 해도 아직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류의 수준에 오른 팽가의 무사 둘을 죽였다 하더라도, 그것도 상대가 방심한 틈을 이용한 것이다.
설마 세가의 대공자가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테니.
이곳에 잡혀온 지도 어느새 하루다.
저 빌어먹을 놈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려 하면 막는다. 그것도 우라지게 아프게 두들겨 팬다.
하지만 목책을 벗어나려 하지 않으면 가만히 두었다.
끼니도 챙겨주었다.
무공 수련을 해도 가만히 보고만 있는다.
대체 저 미친놈은 뭐란 말인가.
“으득. 반드시 죽여주마. 후회할 거다.”
팽군호는 공손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방금 탈출 시도가 실패했다.
이제는 상관없었다.
무공 수련은 가만히 두고 보니, 지금은 혼원류하에 집중할 때다. 반드시 대성을 이뤄 저놈부터 죽이고 이곳을 벗어난다.
어차피 혼원류하를 수련하기 적당한 곳을 찾으려 하지 않았던가.
이곳이 딱이었다.
***
“골치 아프군.”
하무백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소오태산.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산이다.
이곳 어딘가에 팽군호가 있다.
이호법은 전음으로 하오문의 대호법인 공손경이 이곳에 안배해둔 장소로 팽군호를 데려갔다고 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이호법도 몰랐다.
공손경이 단독으로 움직인 것이었으니, 그 정도로 은밀히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공손경인 것이 문제다.
하무백도 익히 아는 자였다.
도둑이자 살수 출신의 하오문도.
특이한 이였다.
도둑이나 살수는 하오문에 거의 없다. 그나마 도둑은 드물게나 있었으나, 살수는 아니다.
아예 없다.
그 전례를 깬 것이 공손경이다.
애초에 도둑이면서 살수인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이다.
그래서 문제였다.
빨랐다. 그리고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으며, 그나마 희미하게 남은 흔적을 지우며 이동하는 데 도가 텄다.
즉, 하무백은 놈의 종적을 놓쳤다는 것이다.
이호법에게 이곳을 듣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다.
대해루에 도착해서 빠르게 살폈을 때, 팽군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그리 압박한 것이다.
“어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했는데, 공손경 그자까지 와 있을 줄은…….”
하무백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틀을 전력으로 달려 도착했다. 그럼에도 공손경의 뒤를 잡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과 다른 경로로 왔을 수도 있다. 흔적을 읽을 수가 없었으니.
이미 철담개를 비롯한 개방과 팽가의 인물은 뒤쳐진 지 오래다.
같이 움직일 여유는 없었다.
“이곳을 뒤져야 한다라…….”
하무백이 난감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냥 장안으로 갈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철담개가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개방 거지들을 동원해서 이곳을 싹 훑다보면 시일이 걸리더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공손경이 하오문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수준이 절정이다.
철담개나 팽거율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일단 영감이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좀 찾아봐야겠군.”
하무백은 기감을 최대한 넓게 퍼트렸다. 이러고 산 곳곳을 누비다 보면 기감에 걸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우선 계곡 위주로.”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은밀히 안배한 장소라면, 제법 오랜 시간 머무를 생각일 터.
당연히 물을 구하기 쉬운 곳에 자리했을 테니, 계곡들을 먼저 훑어야 했다.
하무백이 훌쩍 몸을 날렸다.
***
이틀이 흘렀다.
철담개가 소오태산 인근으로 진입할 무렵이다.
그 혼자 달렸으면 하루는 더 빨리 도착했을 터지만, 팽도원과 팽거율과 함께 움직이느라 이제야 인근에 도착했다.
“에고. 삭신아. 그럼 어디쯤 있으려나.”
철담개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무백이 남겼을 표식을 찾아서다. 지난 전쟁에서 사용했던 표식이기에, 그걸로 두 사람은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먼저 가겠다는 하무백을 붙잡으니, 표식을 남겨두겠다고 하고 훌쩍 사라지지 않았던가.
“여기 있군.”
철담개는 금세 표식을 발견하고 걸음을 옮겼다. 일단 하무백이 짧게나마 정해놓은 거처로 향하는 길에 대한 표식이었다.
“아악!”
팽군호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오늘도 실패했기 때문.
무려 이틀이나 무공 수련에 집중했는데도 저 빌어먹을 놈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작 이틀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팽군호의 생각은 달랐다.
그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대해루에서 수신호위 둘의 목을 땄을 때의 경지가 사 성이었다.
그리고 이틀의 수련을 거친 후 어느새 육 성에 이르렀으니.
‘나는 무공의 천재다. 이 신공을 이리 빠른 속도로 익히다니. 지금까지 내가 나에게 맞지 않은 무공을 익혔기에 이런 성취를 보이지 못한 게야. 좀 더 빨리 이 신공을 익혀야 했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자신만만하게 공손경에게 덤벼들었건만.
일검에 나동그라졌다.
다만 그런 팽군호를 바라보는 공손경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내 일검을 피할 뻔했다.’
불과 이틀 사이에 이런 변화라니, 깜짝 놀랐으나 그의 냉막한 표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공손경의 검은 살수검이다.
살수검의 근본은 쾌(快).
인지의 속도를 넘어선 극한의 쾌검을 추구하기에, 공손경의 검 역시 쾌검이다.
비록 검집채 검법을 펼쳤다지만, 이틀 전에는 검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던 놈이, 지금은 거의 피할 뻔하다니.
‘과연 멸공이라는 건가…….’
지난 전쟁에서 몸서리치게 겪었던 멸공이다.
그 위력을 새삼 다시 느끼고 있었다.
팽군호는 실험체였다.
멸공을 익히면서 그 성취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물론 십성에 진입하는 순간 목을 따야 한다.
그보다 성취가 높아지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마물이 탄생하게 되니.
팽군호의 수준이라면, 그가 십성을 이루더라도 능히 공손경이 그 목을 벨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기에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네 놈. 지금 성취가 어찌 되지?”
“크흐흐흐. 이제야 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느냐?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네 놈을 묵사발을 내줄 테니. 아직은 불과 육 성이다만, 며칠 안에 대성을 이룰 테니.”
며칠 안에 대성을 이루겠다는 저 광오한 말이라니.
팽가의 가주조차 몇 년을 수련하고서야 십성에 이르렀거늘.
“이틀 전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사 성이었지.”
돌아온 대답에 공손경의 눈썹이 꿈틀했다.
불과 이틀 만에 저런 성취가 가능한 것인가? 그러고 보니 놈이 멸공을 익히기 시작한 지 불과 며칠이다.
그사이 이런 성취를 보이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팽가의 가주가 몇 년을 수련한 것을 이런 망나니가 고작 며칠 만에.
‘보고해야겠군.’
필사본을 분석하는데 참고사항이 될 것이다.
같은 무공에서 익히는 이에 따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차이가 생기는 원인을 밝혀야 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 말을 남기고 팽군호는 두 눈을 감고 풀썩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찾았다.”
이틀을 산 곳곳의 계곡을 누비던 하무백이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않고 산 곳곳을 누볐으니.
그런 그의 확장된 기감 끝자락에 멸공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쪽으로 조금 움직이니 이제는 명확했다.
위치는 확인했다.
이제 어찌할지 결정할 일만 남았다.
당장 쳐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철담개와 함께 움직일 것인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하무백.
“지금쯤이면 도착했겠군.”
때가 공교로웠다.
도착하기 전이라면 혼자서 들이쳤겠지만, 고생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영감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표식에 남겨둔 장소에 가보고, 도착해 있으면 함께, 그렇지 않으면 혼자 팽군호를 잡으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표식에 남긴 장소에 도착하니, 철담개와 다른 세 사람이 멀뚱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왔구먼. 그래 먼저 출발한 보람은 있는가? 자네 꼴도 말이 아닌데.”
철담개의 물음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소.”
그리고 몸을 돌렸다.
네 사람은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산길을 달려 어느 계곡에 접어들어 계속 움직이자, 멀리 목책이 보였다.
“응?”
공손경의 눈썹이 꿈틀했다.
살수의 기감에 이곳으로 다가오는 네 사람의 기척이 감지된 것이다.
‘어떻게?’
이곳은 그야말로 자신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밀히 마련한 거처다.
이 목책도, 저 문도 모두 홀로 손수 만든 것.
팽군호에게 작업을 치는 것이 결정되자마자 행한 일이건만.
무려 네 사람이나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니 불길했다.
느껴지는 기척이 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으니.
공손경의 기감 범위는 절정의 수준을 넘어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과 비슷했다.
살수와 도둑이라는 특성상 기감을 갈고 닦은 덕이다.
덕분에 아직 아주 잠깐의 여유가 있었다.
결정은 간단하고 신속했다.
“눈 떠라.”
팽군호에게 짧게 말했다. 혹시라도 운공 중이면 곤란했으니.
“뭐야?”
팽군호가 눈을 뜨는 순간, 잽싸게 그의 마혈과 아혈을 점하고는 들쳐멨다.
당장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는 순간.
“컥!”
공손경은 둔중한 통증과 함께 바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건만.
복부를 꿰뚫을 듯한 통증이라니.
“역시 튀려고 할 줄 알았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공손경을 부들부들 떨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다.
저놈이 어찌 여기에.
대해루에서 누군가가 소오태산에 대해 불었다 할지라도 이 장소는 누구도 모를 텐데.
작지 않은 이 산속에서 이리 빨리 찾아내다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제법 고생시켰어.”
하무백이 차갑게 말했다.
“네, 네놈은…….”
하무백의 얼굴을 확인한 팽군호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어떻게든 진정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팽군호의 몸에 하무백에 대한 공포가 각인되어있었다.
“이, 이럴 리가 없다. 난 신공을 익혔…….”
퍽.
하무백의 주먹이 팽군호의 턱주가리를 날렸다.
“닥치고 찌그러져. 네 놈 때문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이가 갈리니까. 물론 네 놈도.”
하무백이 공손경을 살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런 곳까지 만들고 저놈을 빼돌리다니 무슨 속셈이지?”
하무백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