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62화 (62/312)

62화. 허리 비었다

“음…….”

“흠…….”

“큼…….”

맹룡대 칠 조의 생도들은 은근히 눈치를 보며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럴 만큼 수련에 집중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원인은 하나.

교관인 하무백이다.

훌쩍 며칠간 사라졌다 나타나더니, 짐짓 심각한 분위기다.

교룡관주 역시 본가의 일로 자리를 비운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아, 교룡관 전체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팽가에 관해 흉흉한 소문도 들려오고.

“팽가주가 저주받은 멸공에 손을 댔다지?”

당진산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다네.”

백리평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멸공?”

단목운뢰가 의아한 듯 물었다.

당진산과 백리평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무림의 사정에는 어두웠으니.

슬쩍 하무백 쪽을 바라보는 당진산. 그는 여전히 딴생각 중인지, 이쪽으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게 말이지…….”

그러면서 속닥속닥 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잠룡대에 있는 당가의 다른 당가의 생도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팽가가 어떤 신비고수랑 척을 지는 바람에 크게 한 판 붙었는데…….”

“붙었는데?”

“신비고수에게 박살이 났다네. 가문의 전력 절반 이상이 날아갈 정도로.”

“한 명에게?”

단목운뢰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

다른 네 사람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당진산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 역시 처음 들었을 때 저런 반응이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팽가주가 멸공을 사용했다 하더라고. 그러고도 깨졌지만…….”

“허…….”

백리평은 헛웃음을 흘렸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 거짓말 정말인가? 또 어느 매담자가 기루에서 흘린 이야기 아냐?”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백리평이 말했다.

그 말에 당진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개방에서 나온 정보야.”

“개방…….”

그러면 맞는 말일 게다.

“그래서 그 신비고수가 누군데?”

“개방에서도 파악 중이라네.”

개방에서 의도적으로 강호에 흘린 소문이다.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서.

하무백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방주의 배려였다.

아니, 백도회에서도 하무백의 존재가 감춰지길 원했다.

오대세가의 일원이 고작 한 명에게 그 꼴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았으니.

“아무튼 그 덕에 우리 교관님 운이 좋았지.”

당진산이 힐끔 하무백 쪽을 쳐다본 후 말했다.

“교관님이?”

낙우진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머리를 갸웃거렸다.

“팽군호.”

당진산이 짤막하게 말했다.

“아…….”

나머지 네 사람이 일제히 탄성을 흘렸다.

“하긴 팽가의 장손을 그 꼴을 만들어 놨으니.”

“솔직히 난 관주님이 거기에 대해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게 더 신기했어.”

관주인 팽도율 역시 팽가의 인물 아니던가. 더군다가 팽군호는 그의 조카였으니.

백리평과 단목운뢰가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행이네.”

짤막하게 끼어든 연하민의 말. 다른 네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으나 그녀는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듯한 모습이다.

“근데 솔직히 다행이긴 하지. 팽가주님이 팽군호 그놈을 그렇게 아꼈다 하더라고.”

“출처는?”

당진산의 말에 백리평이 물었다.

“우리 아버지.”

당가주에게서 들은 이야기란다.

“그래서 사실 그날 난 보통 걱정이 되었던 게 아니야.”

하무백이 팽군호를 개박살을 내놓던 장면을 떠올리며 당진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이야기도 있어. 팽가주님이 우리 교관님한테 직접 따지려고 교룡관으로 오다가, 신비고수랑 시비가 붙었다고.”

당진산의 말에 네 사람이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그 말이 맞다면……. 우리 교관님은 정말 천운이네.”

낙우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다들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는 찰나.

“신비고수하고 한 번 비무나 해볼까?”

“으헉!”

“헉!”

“꺄악.”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생도들은 짧은 비명을 터트렸다.

언제 다가온 것일까.

기척도 없었는데.

다섯이 모여 쑥떡거리며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여섯이 되어 있었다. 물론 추가된 한 명은 하무백이었다.

“어휴. 교관님. 무슨 귀신이십니까? 기척도 없이 갑자기 그러시면 저희는 어쩌라고요.”

당진산이 뻔뻔한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잡담 시간이 아니고, 수련 시간이다만.”

“그, 강호의 정세를 논하는 것도 수련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당진산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그래. 그럼 그 신비고수하고 직접 손을 섞는 수련도 해보자.”

하무백의 말에 당진산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에이, 교관님이 괴물 같이 강하시기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신비고수하고는…….”

당진산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홀로 팽가 전력 절반을 괴멸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일이라 생각했으니.

눈앞의 교관이 그럴 리는 없다 생각한 것이다.

“허리 비었다.”

당진산이 그러거나 말거나, 곧장 날아오는 하무백의 검집.

생도들을 상대할 때는 검집 채로 휘둘렀다.

“컥.”

당연히 당진산은 그대로 두드려맞았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다른 네 사람이 검진을 형성하며 경계를 했다.

하무백 방식의 대련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한 시진 후.

“휴우.”

하무백이 개운한 듯 깊은 숨을 내쉬고는 어깨를 휘휘 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남은 시간은 각자 수련해라.”

그리고는 연무장을 떠났다.

“에고고.”

당진산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가 오늘 제일 심하게 당했으니.

“그래도 확실히 교관님 뭔가 고민이 있으신 것 같네.”

단목운뢰가 그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

백리평의 고개를 주억거렸다.

“뭘까?”

연하민이 궁금하다는 듯 짧게 말했다.

그런다고 그들이 알 수 있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좀 나아지신 것 같지 않아?”

당진산의 물음에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표정이 많이 풀려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하단 말이야.”

소오태산에서 무창으로 돌아온 지도 나흘이 흘렀다.

그 사이 팽가와의 일에 대한 소문이 강호에 퍼졌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개방의 솜씨였다.

하무백은 무언가 놓친 듯한 찝찝함이 있었다. 그 덕에 요즘 들어 계속 표정이 무거운 것이었다.

뭐, 오늘 제대로 칠 조 생도들을 수련시켰더니 좀 나아지긴 했다.

확실히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때 누군가가 하무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응?”

익숙한 기척이다. 다만 저 기척의 주인공이 자신을 찾을 이유가…….

“하 교관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일이지?”

남궁지후는 하무백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부탁?”

“네. 사실 요 며칠 계속 찾아갔습니다만, 자리에 안 계시거나,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셔서…….”

말을 끄는 남궁지후의 모습에 하무백은 살짝 머리를 기우뚱 기울였다.

이 남궁가의 기재가 자신에게 무슨 볼일이…….

“그보다 오늘은 내가 괜찮아 보였나?”

“아, 그 진산이 알려줘서…….”

그사이 제법 친해진 모양이었다. 하투제의 제일 목표였던 남궁지후와 이제는 친하게 어울린다라.

역시나 당진산이 친화력 하나는 훌륭했다.

“재빠르기도 하네.”

칠 조의 생도들과 대련을 할 때 주변에 남궁지후는 없었다. 그런데 수련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리 빨리 찾아오다니.

“그래서 어떤 부탁?”

“저, 지도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남궁지후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용건을 꺼냈다.

“나한테?”

하무백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나 맹룡대 교관인데?”

“네.”

“그리고 자네는 잠룡대 생도이고.”

“네.”

“그래도 되나?”

“상관없을 겁니다.”

“음…….”

하무백은 잠시 입을 닫았다.

“왜 굳이 나에게? 잠룡대 교관도 있을 테고, 남궁가의 어른들도 있을 텐데?”

하무백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제대로 깨져보고 싶어서요.”

하투제 때 하무백에게서 받은 인상이 너무나 강렬한 탓도 있었다.

“흐음.”

제법 당돌한 녀석이다.

아니 향상심이 엄청나다고 해야 하나. 이러니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것일 터.

“귀찮은데…….”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막 푸닥거리 한 번을 끝냈으니, 개운하게 씻고 침상에 눕고 싶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나, 녀석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으킨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썼으니.

게다가 그간 고민 때문에 쉬어도 쉬지 않은 느낌 아니었던가.

“그…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지후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그래서 내가 얻는 것은?”

“네?”

“나도 얻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돕겠습니다.”

지체없이 튀어나온 대답.

그냥 해본 말인데, 즉시 답이 돌아오는 것을 보니, 그만큼 간절한 것 같았다.

남궁세가라는 거대 세가의, 그것도 가주의 아들이 저런 간절함이라니. 한낱 맹룡대 교관에 지나지 않은 자신일 진데, 강해질 실마리가 있다 생각하니 저리 허리를 숙이고 부탁하는 모습.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귀찮으니, 빨리 끝낸다. 들어와라.”

귀찮지만, 아주 잠깐 시간을 내주기로 결정했다.

“네? 여기서요?”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 남궁지후는 놀란 듯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돌아온 대답에 남궁지후는 서둘러 검을 뽑아 기수식을 취했다.

남궁세가의 이름 높은 절기, 창궁무애검이었다.

하무백에게도 익숙한 검법이다.

지난 전쟁에서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으니.

‘가주의 장남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제왕검형이 아닌 창궁무애검이라……. 아직 소가주의 직에도 오르지 못했다 했는데……. 흠.’

뭐, 그쪽 사정이니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남궁지후는 기수식을 취한 채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무지 치고 들어갈 곳이 없었다.

허점이 없었다.

“쯧.”

그 모습에 하무백이 혀를 찼다.

“완벽한 기회라는 것은 고수를 상대할 때는 의미 없다. 하수한테나 통하는 거지. 너무 허점만 노리려고 하지 마라.”

툭.

하무백이 가볍게 발을 내딛는 순간.

“윽.”

남궁지후는 오싹함을 느꼈다.

전신 모든 곳으로 하무백의 공격이 날아오는 듯했으니까.

어느새 코앞에 도착한 하무백이 손끝으로 가볍게 남궁지후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악!”

어마어마한 고통이 이마 한가운데 작렬했다.

마치 망치로 힘껏 두들긴 듯한 고통이다.

“허점이 없는 상대라면 우선 허점을 만들어야지. 허점이 생기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이마를 감싸 쥐고 주저앉은 남궁지후는 하무백의 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가의 어른들과는 다른 말이었다.

창궁무애검을 펼침에 있어, 푸른 하늘과 같이 굳건히 버티다가 찰나의 순간 나타나는 상대의 허점을 단숨에 베어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 교관은 허점이 없으면 만들라 했다.

상충 되는 가르침.

그런데 왜일까? 남궁지후는 하무백의 말에 더 끌렸다.

“그럼 난 간다.”

하무백이 막 몸을 돌리던 차.

“저, 교관님. 혹시 새로 부관주님이 오신다는 소식 들으셨습니까?”

“응?”

하무백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렇잖아도 관주가 없어 어수선한 교룡관이다. 그런 차에 부관주가 새로 온다니.

“아무래도 이번 일 때문에 팽가를 견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대세가 사이에 나와서…….”

당진산도 모르던 이야기다.

그래도 남궁가주의 장남이란 것인가.

“아무래도 연가에서 사람이 올 듯합니다.”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팽가를 그 모양으로 만든 것은 자신인데, 그 덕에 나름 자신의 편의를 봐주던 팽도율의 입지가 줄었다니.

일이 이상하게 흘렀다.

‘하필이면 연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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