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여전히 가족인 게야.
“어찌 되었느냐?”
연백량은 언짢은 얼굴로 눈앞의 수하에게 물었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언짢음에 분노가 더해져 연백량의 얼굴에 어렸다.
“쓸모없는 것들…….”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음성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수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히 변명하다가는 더 큰 분노를 사게 될 거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소가주님.”
그때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들어오거라.”
연백량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노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연백량의 앞에 와 부복을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교룡관에 다녀오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공후 놈은 별다른 낌새가 없더냐?”
그는 연공후를 감시하던 다섯 수하들 중 하나였다.
“네.”
짧은 대답.
“흠…….”
연백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막내 동생 연백진을 교룡관 부관주로 보낸 것은 어디까지나 가주인 아버지의 뜻이었다.
헌데 그놈이 교룡관으로 가기 전에 연공후를 찾았다.
거기에 함께 가자고 권하기까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가문에서 사라진 날. 연백량은 그 일을 꾸민 흉수로 두 사람을 확신하고 있었다.
연공후와 연백진.
평소 그 아이를 아끼고 두둔했던 두 사람 아니던가.
심증으로는 그 둘이 범인이었으나, 증좌가 없었다.
해서 은밀히 감시 중이었다.
그동안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연백진이 교룡관 부관주로 내정되기 전에는 말이다.
아니 실상 부관주로 내정된 뒤에도 특별할 건 없었다.
연백진이 연공후에게 함께 가기를 권했고, 연공후는 무심하게 거절했다.
평소랑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제 어미가 이곳에 있는 한 그 아이는 결국 돌아오긴 할 게다……. 세상 유일하게 남은 피붙이니.”
연백량이 섬뜩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쪽도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래. 혹시라도 허튼 짓을 하게 두면 안 될 게다.”
부복해 있던 수하는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교룡관에 무언가 있을 거 같더냐?”
연백량의 물음에 수하가 냉철한 표정으로 답했다.
“연 공자가 유일하게 반응한 때가 그때입니다.”
“보고서에는 평소랑 다를 바 없었다고 되어 있다만.”
연공후를 감시하는 다섯 사람은 매일 각기 보고서를 작성해서 연백량에게 올렸다.
그것은 연공후에 대한 감시인 동시에 서로에 대한 감시가 되기도 했다.
“저는 분명 느꼈습니다. 분명 평소와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연백진이 연공후에게 함께 교룡관으로 가서 자신을 도와달라 했을 때, 연공후는 무료하고도 무심하게 답했다.
그게 지금 부복하고 있는 무사, 동주산의 감각에 걸린 것이다.
무료해도 너무 무료했고,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말이다.
동주산은 그것에 주목했다.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에.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 자체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교룡관에 분명 무언가 있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흐음.”
연백량의 생각이 길어졌다.
동주산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일을 처리하는 수하들 가운데서도 매우 빼어난 자다.
그런 그가 연공후의 감시에서 빠지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
연공후.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지만, 현재 연가의 후기지수들 중 가장 뛰어난 아이다.
자신의 첫째 동생의 아들이 아니랄까 봐, 제 아비를 뛰어넘는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동주산이 빠짐으로 인해 그에 대한 감시에 혹시라도 공백이 생기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놈은 분명 언젠가 무슨 수를 쓰든 그 아이와 연락을 할 게다.’
그리 확신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그것을 노린 거라면?”
“네?”
“누군가가 너처럼 반응해서 자신에 대한 감시에 틈이 생기도록 의도한 거라면?”
연백량의 물음에 동주산은 답하지 못했다.
그간 지켜본 연공후라면 충분히 그런 심계를 부릴 수 있었으니.
“연 공자라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만……. 제 감은 교룡관에 무언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음…….”
연백량은 다시금 고민에 잠겼다.
동주산이 이렇게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간 그를 부린 경험상, 그의 감은 상당히 잘 맞았다.
“그만한 성과가 있어야 할 거다.”
이윽고 떨어진 허락.
“감사합니다.”
동주산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뒷걸음질로 걸어 나갔다.
문득 연백량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가 저리도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 아니던가.
그런데도 자신은 그의 행동을 마뜩치 않아하고 있다니.
“우습군.”
연백량이 자조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에게 충성을 보이고 있건만, 자신은 그 충성을 언짢아하다니.
“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수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되었다. 총관이나 오라 하거라.”
“네, 넵.”
그는 부리나케 밖으로 빠져나갔다.
동주산이 빠진 자리를 메우려면 총관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려야 할 듯했다.
***
교룡관은 평화로웠다.
새로운 부교주의 발령으로 며칠 시끄럽기는 하였으나,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무지막지한 업무량에 연백진이 좀처럼 집무실 밖으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날에는 어떻게든 숨 좀 쉬겠다며 집무실을 탈주하려 하였다.
그러나 둘째 날 이후로는 마치 업무에 파묻혀 죽겠다는 듯 집무실에서 두문불출이었다.
그러기를 벌써 열흘이 넘었다.
그 모습에 기유찬 수행위사가 무척이나 만족해한다는 소문이었다.
연백진이 좀처럼 집무실 밖으로 나오지 않은 덕인가.
연하민도 점차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무백은 오늘도 가만히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살기가 많이 누그러졌군.”
하무백이 담담히 중얼거렸다.
“과연 그렇구나.”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위지군이었다.
“아, 스승님.”
하무백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맹룡대 칠 조 다섯 사람은 수련에 집중하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녀석. 네 뒤를 잡으려면 이제 나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구나.”
위지군의 이마에 가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연가의 아이라고 그랬지?”
“네.”
“란아와 함께 방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팽도율의 배려인지 노림수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하설란이 교룡관에 입관하기로 하자 마침 자리가 비어있던 연하민의 연룡숙 방으로 배정했다.
“요즘 좀 불안해 하는 것 같다고 란아가 걱정이 많더구나.”
그 말에 하무백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설란이 자신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그런 거니, 서운해하지 말거라. 차차 나아지겠지.”
지난 세월 때문인가, 아직 하설란이 하무백을 좀 어려워하는 기색이 남아 있었다.
의지해도 되건만, 홀로 서려 하는 모습.
그 모습이 대견하기 보다는 안타까운 하무백이다.
“네가 그렇듯 란이도 항상 네 걱정이다.”
“스승님이 함께 계셔서 다행입니다.”
“스승 아니더냐. 그보다 관주가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하는 게 저 아이 때문이겠지?”
“제가 협박을 좀 했습니다.”
하무백의 말에 위지군은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팽가가 그 꼴이 된 다음이니, 협박이 제대로 먹혔겠구나.”
“그래서 저 아이를 보지 않기 위해 집무실로 숨은 거 같습니다. 보게 되면 자신이 연가의 가솔인 이상 본가에 알려야 한다 하니까요.”
“쯧. 가족 간에 그 무슨 더러운 일인지…….”
“냉혹한 이야기입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이제 가족은 아니지요.”
하무백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허나 위지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여전히 가족인 게야.”
“네?”
“너와 란이가 나에게 가족인 것처럼. 저 아이도 여전히 연가의 가족인 게다. 그런 가족을 수단과 욕망의 대상으로만 삼는 연가 놈들이 금수만도 못한 게고.”
“…….”
하무백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너와 란이가 내 가족이라는 말.
그 말이 하무백의 가슴을 둔중하게 두드린 탓이다.
“왜 그러느냐?”
“아닙니다. 스승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무백이 애써 평소처럼 말했으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만큼은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다.
“녀석. 싱겁구나.”
위지군의 말에 하무백은 그저 무심한 얼굴을 가장하며 연무장의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다.
“해서, 네가 부관주를 대상으로 한 협박. 정말로 실행에 옮기면 안 될 일이다. 어쨌든 네가 맡은 아이의 가족이니.”
“저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러겠습니다.”
위지군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의미다.
“그래.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리 말을 하던 위지군의 얼굴이 굳었다.
하무백 역시 마찬가지였다.
“쥐새끼가 들어왔군요.”
하무백의 기감에 연가의 무공 기척이 걸려들었다.
교룡관의 뒷담을 은밀히 넘고 있었다.
“어찌하려느냐?”
위지군의 물음에 하무백은 고민에 잠겼다.
일단은 상황 판단이 먼저라는 결정을 내린 하무백.
“일단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하무백의 말에 위지군이 한켠 옆으로 비켜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무백은 그 말은 남기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그런 교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맹룡대 칠 조원들의 눈에는 ‘또?’라는 의문이 가득했다.
검은 야행복을 입고 복면을 쓴 동주산은 최대한 은밀히 움직였다.
이곳 교룡관에 자신의 잠행을 눈치챌만한 고수는 몇 없었기에 그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철저히 그림자 속으로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은밀하기 그지없었다.
아직은 밝은 오후였기에 활동 범위에 제약이 있었으나, 그는 차근차근 관주각으로 향했다.
일단 연백진의 모습을 확인해야 했다.
사람을 사서 미리 수집한 정보로는 부관주는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한다 했다.
그가 알고 있는 연백진의 행동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그가 있지 않은가.
이공자의 영향을 크게 받은 막내공자가 연백진이다.
그런 막내공자가 이곳에 왔다면 분명 그와 교분을 나누려 할 터.
저렇게 업무에 파묻혀 있다는 것이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태양이 떠 있음에도 관주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연백진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요량이다.
그렇게 잠입한 부관주실.
연백진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그 곁에는 역시 서류의 산과 싸우고 있는 한 인물이 보였다.
얼굴 만면 웃음을 지은 그 모습이 흡사 미친놈 같았다.
“부관주님.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이런 속도라면 앞으로 나흘이면 밀린 업무가 모두 해결될 듯합니다.”
“여전히 업무가 이리 많이 밀린 게 신기할 지경이군. 대체 관주님은 어떤 생활을 하신 겐가?”
“무릇 관주님이라면 교룡관의 대소사를 가라지 않고 모든 것을 아셔야 하죠.”
기유찬이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모습에 연백진은 기가 질린 듯 고개를 저었다.
“자네 승진은 못할 듯하이.”
대체 하루 식자재 반입량까지 왜 관주가 확인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사소한 것까지 전부 업무로 올라오니 이렇게 엄청난 양이 밀려 있는 것이다.
“이것 보게. 아니 왜 생도 간의 사소한 말싸움까지 보고가 올라오는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관주님은 관내의 모든 대소사를 아셔야 합니다.”
“난 부관주이네만.”
“관주님이 부재중이시니, 부관주님이 다 아셔야죠.”
“혹여나 해서 묻네만, 만약 자네가 정천맹주님의 수행위사가 되어도 이리 일을 할 겐가?”
“당연한 말씀을. 정천맹의 맹주라면 무릇 정파 무림은 물론이요, 사파와 마도를 포함한 전무림의 대소사를 모두 알아야 하지요.”
“어떻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것을 알아낼 겁니다.”
기유찬은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교룡관 내에서 자네가 모르는 일이 대체 무언가?”
연백진의 물음에 기유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글쎄요……. 어지간한 일들은 모두 알고 있지 싶습니다. 가령 위 노인이 어느새 관내의 모든 일꾼들을 통솔하고 있다는 것까지요.”
“응? 보고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네만?”
“내일 올라갈 보고서에 작성할 내용입니다.”
그 대답에 연백진은 고개를 저었다.
관내의 잡일을 하는 일꾼들 사이의 세력 판도까지 파악을 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교룡관 내에서라면 저 인간의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싶었다.
‘그래도 그 아이의 정체는 모르는 모양이군.’
지금까지 처리한 보고서에 연가의 연자도 없었기에 그리 생각했다.
두 사람의 그런 대화를 은밀히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동주산이다.
그리고 무심한 눈으로 그런 동주산을 바라보고 있는 하무백.
저 쥐새끼를 어찌해야 할까 고민에 잠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