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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70화 (70/312)

70화. 쥐새끼일 뿐일세

깊은 밤.

후원을 거니는 청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짙은 달그림자에 가려 그 표정을 쉬이 볼 수 없었다.

‘동주산이 없다.’

청년, 연공후는 자신의 기감에 걸리지 않는 한 인물을 떠올리며 수심에 잠긴 것이다.

연가의 그 누구도 연공후의 경지를 몰랐다. 이미 전력으로 은신한 동주산의 기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라는 것도.

백부의 수하들 중 가장 거슬리는 자였다.

허점이 눈에 띄면 언제든 물어 뜯어버릴 기세를 풍기는 자.

은신을 해서 자신을 감시하든, 대놓고 자신을 감시하든, 늘 불편했던 자다.

그런 그가 사라졌음에 기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나, 연공후는 그러지 못했다.

자신을 놔두고 어디에 붙었는지 걱정이 되는 탓이다.

‘백진 숙부에게로 간 것이겠지 아마…….’

어디로 갔을지 예상이 갔기에 걱정이 되는 것이다.

설마하니 가문에서 신경도 쓰지 않던, 아니 하찮게 여기는 교룡관에 가문의 사람을 보낼 줄이야.

혹시 언젠가는 보낼지도 모른다 생각했으나 그래도 이 년 내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그곳에 숨으로 일렀건만.

그나마 막내 숙부가 가게 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숙부의 성정상 그 아이를 발견하게 되면 본가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으리라.

‘내 실수다.’

호량 숙부가 함께 교룡관으로 가자고 할 때, 너무 놀랐기에 평소보다 더 무심하게 반응했다.

동주산 놈은 아마도 그것을 알아차린 거겠지.

그러니 백부를 설득해 자신의 감시에서 벗어난 것이다.

가장 거슬렸기에, 오히려 자신에게 묶어 두려 했건만.

연공후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심정과는 너무도 다르게 환히 빛나는 달.

‘민아. 부디 무사하거라.’

하나뿐인 동생이 백부의 마수에 다시 걸려들지 않기를 연공후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는 발을 돌려 수련실로 향했다.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이 빌어먹을 가문을 바꿀 수 있다.

***

날이 밝았다.

“사전 정보는 대강 확보했다.”

작게 중얼거린 동주산이 교룡관의 정문 앞에 섰다.

은신하여 감시하며 얻을 수 있는 기본 정보는 얻었다.

이제 곁을 지키며 교룡관에서 그녀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얻어야 했다.

“무슨 일이오?”

정문의 수문위사가 동주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보더라도 정문으로 들어오려는 모습이었으니.

“연가에서 나왔소이다. 부관주님을 뵈러 왔소이다.”

동주산의 말에 수문위사는 기별을 했고, 사람이 나와 그를 관주각으로 안내했다.

오래지 않아 동주산은 연백진을 만날 수 있었다.

집무실이 아닌 접객당이었다.

“무슨 일인가? 동 무인.”

연백진은 동주산이 설마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찾을 줄은 몰랐다.

“소가주께서 부관주를 곁에서 도우라 하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동주산의 뻔뻔한 말에 연백진을 인상을 찌푸렸다.

“날 이곳에 보낸 것은 아버님인데, 왜 형님이 자네를 보낸 건가?”

“가문의 대부분의 일은 소가주께서 관리하시는 중이지 않습니까.”

“아버님의 재가는 받은 건가?”

“이 정도 일이야 소가주님 판단으로 충분히 가능한 것이지요.”

“가문에서 교룡관에 관심이 없다보니 관칙도 모르나 보군. 사사로이 가문의 수행위사나 호위무사를 데리고 오지 못한다네.”

연백진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물론 그도 기유찬이 산처럼 떠넘긴 업무를 쳐내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연공후에게 함께 가자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건…….”

“관주님께서도 홀로 와 계신 데 내가 자네를 곁에 둬서야 되겠는가?”

그리 말하곤 함께 자리한 기유찬을 바라보는 연백진.

“부관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기유찬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동주산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머리를 굴리는 그.

금세 방법을 떠올렸다.

“허면, 저도 교룡관의 직을 맡게 되면 그건 가능한 겁니까? 사사로이 곁에 두는 게 안 된다면 말입니다.”

“그건 상관 없습니다만. 관주님께서 부재중이시기에 임명은 불가능합니다. 교룡관의 인사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는 관주님이십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지요.”

관주보다 위에서 떨어뜨리면 될 일이다. 연백진이 부관주가 된 것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다만 그러자면 며칠 간은 연백진의 곁에 있지 못한다.

‘피곤하지만 다시금 은밀히 감시해야지.’

“알았네. 일단 지금은 자네는 교룡관의 사람이 아니니 일단 나가 있게나.”

차가운 말투다.

동주산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백진이 자신을 마뜩치않게 여김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

접객당을 나선 동주산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교룡관을 나간 즉시 다시 담장을 넘어야 하리라.

어제도 거의 못 잤는데. 당분간 제대로 수면을 취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문의 사람에게 너무 냉정하신 거 아닙니까?”

“쥐새끼일 뿐일세.”

기유찬의 물음에 연백진이 차갑게 대답했다.

“아, 그보다 맹룡대 칠 조에서 현장실습을 나가겠다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미 부관주님의 재가가 떨어졌다며 이른 새벽에 관을 나갔습니다. 곧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기유찬의 보고에 연백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빨리 움직였군.’

***

“저, 교관님.”

당진산이 가장 앞에서 말을 타고 가고 있는 하무백을 조심스레 불렀다.

“왜?”

“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른 새벽에 갑작스러운 호출에 연무장으로 모였다가 짐도 제대로 못 챙기고 말을 타고 나왔다.

말까지 끌고 나온 것을 보면 결코 가까운 곳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하투제를 대비한 수련을 할 때도 걸어가지 않았던가.

“현장실습. 아니 예습이라 해야 하나.”

하무백의 대답에 더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당진산.

그러나 하무백의 말에 신경을 쓰는 이는 당진산과 백리평 두 사람이 전부였다.

다른 세 사람은 하무백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말을 타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연하민, 단목운뢰, 낙우진.

이 세 사람은 말을 타는 것이 처음이었으니.

대강의 요령만 알려주더니 말안장에 올려놓고 바로 출발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하무백이다.

타고 가다 보면 자연히 익히게 된다나.

세 사람의 보조에 맞추다 보니 말을 타고 움직임에도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다.

그러니 목적지에 관심이 있는 것은 당진산 혼자일 수밖에.

“현장이라 하시면……. 혹시…….”

그런데 하무백의 대답에서 짐작 가는 것이 있었던지, 백리평의 얼굴에 작은 불안이 어렸다.

“아마 맞을 거다.”

하무백이 짧게 답했다.

“응? 뭔데? 뭐야?”

백리평이 무언가 아는 것 같자, 당진산이 물었다.

“현장이라고 하면, 우리가 갈 현장일 테고, 예습이라 하면 미리 가본다는 거잖아.”

백리평이 거기까지 말하는 순간 당진산이 입을 쩍 벌렸다.

그도 눈치를 챈 것이다.

황급히 하무백의 곁으로 말을 모는 당진산.

“교관님. 아니죠? 아니죠? 네? 어제까지 아무 말씀 없다가 오늘 갑자기 이러시는 건 강호의 도리가 아니죠!”

당진산이 다급히 말했다.

“미리 말하든 안 하든 가는 것에 변함이 없는데, 뭘.”

무심한 대답.

“아니. 거기 가면 우리 다 죽는다면서요!!”

당진산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말에 말을 타는데 급급하던 세 사람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니들끼리 가면 죽는다는 거지. 내가 같이 가는데, 뭘.”

뭔가 살벌한 이야기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데?”

단목운뢰가 백리평에게 물었다.

“산월마림. 아마도.”

돌아온 대답에 단목운뢰는 물론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희가 거기에 갈 수준이 되나요?”

연하민이 불안한 듯 물었다.

“안 되지. 그런데 보통의 맹룡대원들은 아마 지금의 너희들보다 못한 수준으로 그곳에 배치된다.”

여전히 무심한 말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지난봄에 너희들에게 그냥 가라할 것이 아니라, 그곳을 보여주면 됐을 것을.”

그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네 사람.

오직 백리평만이 그나마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그……. 이제 저희 집으로 돌려보내는 건 포기하신 거 아닙니까? 그 끔찍한 약까지 먹여 놓고!”

단약의 맛이 떠올랐는지 억울한 듯 외치는 당진산.

“돌려보내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맛을 살짝 봐야지. 너희들이 내후년에 배치될 곳을. 뭐, 외곽을 돌아서 살짝 맛만 볼 거니까 걱정 말고.”

하무백이 태연히 답했다.

“잘 아시는 건가요?”

연하민의 질문.

“뭐, 나름 좀 알고 있어.”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하무백.

대체 저 교관의 정체는 무어란 말인가.

맹룡대에 들어와 전반기를 보냈다. 그랬기에 산월마림에 대해 여기저기서 들은 것들이 있었다.

고작 맹룡대의 교관이 감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 맹룡대를 밀어 넣는다는 것이 역설적이었지만.

계속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었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이야.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그때 멀리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하무백이 인상을 찌푸렸다.

빠른 속도로 말을 몰아 다가오는 세 사람.

그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응?”

말발굽 소리와 함께 이는 먼지구름에 단목운뢰가 돌아보았다.

세 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 교관님!!!”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목소리의 주인을 다들 알고 있었다.

“한 교관님?”

낙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후…….”

하무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따라올 줄이야.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아니 애초에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신들이 교룡관을 떠난 것을 알았을까?

한설빙 일행이 하무백 일행을 따라잡는 건 금방이었다.

“어떻게 쫓아온 거냐?”

“흔적을 그렇게 많이 남겨두셨는데, 제가 못 쫓을 리 있나요.”

맞는 말이다.

말을 처음 타는 이들이 있었기에, 흔적을 고스란히 남길 수밖에 없었고, 한설빙이라면 그 흔적을 쉬이 추적할 수 있었다.

“하 교관님. 혼자서 그곳에 가신다면서요?”

한설빙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우리 조가 함께 가는 거다.”

“그래서 저희 조도 가보려고요.”

“어디로 가는 줄 알고?”

“현장실습이라면서요? 하 교관님 성격상 현장이라고 하면 뻔하죠. 맹룡대가 갈 현장이 어디겠어요?”

한설빙의 대답에 하무백이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 위험한 곳에 가는 걸 알고 가겠다고?”

“설마요. 하 교관님이 계신데.”

한설빙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최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하설란은 가면 안 되고, 자신의 조원들은 가도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니.

“우리 조 아이들도 미리 봐두면 좋죠. 어떤 곳으로 가야 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동기부여가 될 테니까요.”

“글쎄. 동기부여가 아니라, 퇴관을 원할지도 모르겠는데….”

하무백의 말에 칠 조 다섯 사람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대체 그곳에 가는 목적이 무어란 말인가.

연가의 눈에서 연하민을 가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조원들에게 산월마림의 실상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겸사겸사인 것이다.

원래 내년 삼 월쯤 데리고 가려던 것을 연가 때문에 앞당긴 것이다.

“뭐, 알았다. 함께 가지.”

하무백은 부관주의 허가를 얻었냐 따위의 절차적인 문제는 일절 묻지 않았다.

자신도 그런 것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그런 낯 두꺼운 짓은 하지 않으니.

그렇게 일행이 늘었다.

두 명의 교관과 일곱 명의 생도.

그들은 맹룡대가 고기 방패로 버려지는 저주 받은 땅, 산월마림으로 향했다.

절강성 동남부.

그곳에 산월마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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