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그 음흉한 속내를 누가 알까
“원, 귀신에 홀린 기분이로군.”
중년의 사내가 얼떨떨하니 중얼거렸다.
“왜 그래? 당직도 끝났는데?”
다른 곳에서 걸어온 동료가 멍하니 중얼거리던 그에게 물었다.
“아니 새벽같이 와서 말 여섯 필을 내달라잖아. 명령서도 없이.”
마굿간 관리인인 그가 툴툴거리듯 말했다.
“그래서?”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명령서도 없이 그냥 구두로 확인하고 내줬다가 누구 경을 치려고.”
중년인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거, 부관주한테 허락받았다고 내달라고 하는데…….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글쎄…….”
“글쎄?”
친구는 궁금하다는 듯 중년인의 말꼬리를 따라 하며 물었다.
“기 위사를 데리고 오더라고. 아니 자고 있는 기 위사를 잡아 왔다고 해야 하나?”
“허…….”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기 위사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관주의 수행위사로 관내의 대소사에 관해 끼지 않는 곳이 없는 인간이다.
나름 교룡관의 핵심 권력층인 인사를 자고 있는데 잡아 왔다니, 대체 얼마나 막 나가는 인사란 말인가.
“대체 그 미친놈은 누군가?”
“맹룡대 하 교관.”
중년인의 대답에 친구는 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봄에 담룡각의 일로 관을 뒤집어 놓은 인물이지 않던가.
왠지 그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헌데 그게 끝이 아니야.”
“그러면?”
“막 교대하려는 무렵에 한 교관이 찾아왔어.”
“한 교관이라면 이번에 새로 온 그 끝내주는 미녀 말인가?”
친구의 말에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하 교관이 말을 받아 갔냐 묻더라고. 그래서 그랬다고 했지. 명령서 받을 시간도 없었는데 어떻게 내줬냐고 해서 있었던 일을 말해줬지. 그랬더니?”
“그랬더니?”
이번에도 중년인의 말을 따라 하는 친구다. 그만큼 흥미진진했고, 궁금했다.
“그녀도 기 위사를 잡아 왔다네.”
“허…….”
이번에는 더 긴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말 세 필을 받아다가 나갔다네. 기 위사에 하 교관이 간 행선지도 묻더구먼.”
“어디로 갔는데?”
“뭐, 워낙에 말도 안 되는 곳이라서……. 내가 제대로 들은 건지 긴가민가한데.”
“그래서 어딘데?”
“산월마림.”
중년인의 말에 친구가 눈을 찌푸렸다.
“그 저주받을 곳에는 왜? 맹룡대라면 어차피 가게 될 곳이지만.”
“내 말이 그 말일세. 대세 왜 그러는 건지. 그러니 귀신에 홀린 것 같단 말이지.”
중년인의 말에 친구를 고개를 끄덕였다.
“원, 근데 한 교관 의외로군. 그런 미인이 그런 막무가내라니. 원. 그래도 좋았겠구만, 그런 미인과 마주 보고 이야기도 하고.”
친구가 부럽다는 듯 말했다.
“아니, 이 친구가. 경을 칠 소리를 하고 있어. 우리 마누라가 듣기라도 하면 난 집에서 쫓겨나네.”
중년인의 호들갑에 친구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난 한 교관 보다는 남궁 소저가 더 아름다운 것 같더구만.”
이야기의 주제가 갑자기 미녀 품평으로 바뀌었다.
중년의 남자 둘이 나누는 대화였기에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생도들이라면……. 단연 연 소저지.”
중년인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연 소저면 연하민?”
맹룡대에 출신도 모르는 이였기에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이름은 이들의 대화를 흥미롭게 들으며 걸음을 옮기던 한 남자의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동주산이다.
‘연하민이라고?’
지난 몇 개월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의 이름 아닌가.
설마 본명 그대로 사용해서 교룡관에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맹룡대에?
동주산은 금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리 없었다.
맹룡대가 어떤 곳이던가.
산월마림, 그 저주받은 땅에 고기 방패로 투입될 이들 아니던가.
그런 곳에 무공이라고는 일초 반식도 모르는 연하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동명이인일 것이다.
연하민이라는 이름은 기실 강호에서 흔한 이름이지 않던가.
그럼에도 동주산의 걸음은 그 두 사람을 향해 가고 있었다.
확인해야 했으니.
두 사람에게 확인을 마친 동주산은 교룡관 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주로 맹룡대 칠 조와 자주 부딪히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연하민의 용모에 대해 물었다.
확인을 거듭할수록 설마 하던 의구심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곳이었다.’
으드득.
이가 갈렸다.
등하불명이라고 설마 교룡관 그것도 맹룡대에 숨어 있을 줄이야.
‘연 공자. 참으로 대단한 심계요.’
교룡관으로 가자는 말에 연공후가 반응을 보인 것이 이 때문이었다.
연하민이 교룡관에 있으니 그럴 수밖에.
이곳에 그녀가 있다는 확신은 얻었지만, 동시에 커다란 문제도 확인했다.
‘하무백. 그 인간이라니.’
동주산은 연백량의 최측근으로 하무백이라는 인간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교룡관에서 활동할 때 조심해야 할 가장 위험한 인물이 그였다.
그런데 연하민이 그 하무백이 교관으로 있는 조의 조원이란다.
게다가 마굿간의 일꾼의 말을 빌리자면, 그 하무백이 조원들을 데리고 산월마림으로 갔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상부에 보고 해서 적당한 직책을 받을 시간도, 은밀히 연백진을 감시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동주산은 걸음을 돌려 관주각으로 향했다.
이것은 직접 확인해야 했다.
“이 무슨 행패인가!”
집무실 앞에서 연연백진이 얼굴을 찡그린 채 고성을 내질렀다.
그 앞에는 얼굴이 시뻘게진 동주산이 있었다.
“연하민. 교룡관에 있습니다. 그렇지요?”
연백진의 노기를 정면으로 훅 치고 들어온 동주산.
그 물음에 순간 연백진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이내 입을 열었다.
“연하민이라는 이름이 강호에 그 아이 하나뿐인가. 그 이름을 가진 이가 교룡관에 있는 것이 무에 어때서 그러는가!”
“그냥 이름만 같은 아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아는가.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
연백진이 마주 버럭 분노를 토했다.
그 말에 동주산이 움찔했다.
그가 와서 본 연백진의 일과라면, 맞는 말이긴 했다.
집무실과 숙소 이외에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빡빡한 일정이었으니.
그야말로 업무에 갈려 나가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그래도 그 이름이면 확인하시고 본가에 보고 하셨어야 합니다. 게다가 공자께서 그토록 좋아하는 그가 교관으로 있는 조 아닙니까?”
“그러기에는 일이 너무 많았네.”
연백진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하. 그러십니까?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아십니까?”
동주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자네. 아무리 자네라지만, 점점 선을 넘고 있어.”
연백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가, 그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간 것인지 아십니까?”
분통이 터진다는 듯한 동주산의 물음에 연백진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산월마림! 그곳으로 갔단 말입니다!”
그 말에 연백진은 두 눈을 부릅떴다.
잠시 동주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현장실습을 다녀오겠다더니.
갑자기 산월마림이라니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잠깐… 현장실습……. 현장……. 아…….’
이제야 현장실습의 의미를 깨닫는 연백진이다.
맹룡대가 갈 현장이 산월마림이었으니.
“부관주님. 이제 그만 업무를 재개하시지요. 이 서류부터 처리해주시고요.”
그때 기유찬이 집무실 밖으로 연백진을 찾아 나왔다.
“그게 뭔가?”
“이른 새벽에 제가 잠을 못 잔 이유이지요. 맹룡대 칠 조의 현장실습. 아, 이십 조도 현장실습 나갔습니다.”
연백진이 서류를 건네받았다.
그곳에는 목적지가 명확히 쓰여 있었다. 산월마림이라고.
“산월마림으로 가는 것을 승인해 준건가? 자네가?”
“아까 말씀 드렸듯이, 이미…….”
기유찬의 말에 연백진은 손을 뻗어 그의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분명 자신이 현장실습을 허락했다. 아니, 통보를 받고 묵인을 한 것이다.
연하민을 저놈 눈에서 숨기기 위해.
‘하지만 산월마림이라니…….’
조카가 그 저주받은 땅으로 향하고 있다 하니 걱정이 절로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소가주님께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동주산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어서 이 소식을 본가에 전해야 했다.
전서응으로 간략히 적어 보내긴 했지만, 이건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보고해야 했다.
소가주의 분노를 어찌 감당할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
여정은 조용했고, 평온했다.
산월마림으로 가는 길이니 조용할 수밖에.
저마다 생각들이 많았다.
한설빙이 하무백의 곁으로 말을 몰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에요?]
한설빙이 전음으로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대체 왜 따라온 거냐?]
[전날 쥐새끼 하나가 들어온 거 같던데 그거랑 관계가 있는 건가요?]
역시 그녀였다. 그녀도 동주산의 기척을 느낀 것이다.
하무백은 대꾸하지 않았다.
[하. 그 음흉한 속내를 누가 알까.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지.]
한설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식구는 챙겨야지.]
짧은 대답.
그러나 한설빙을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겪은 단주가 일을 벌일 때는 늘 저런 이유였으니.
[그래서 누구예요? 연하민?]
전날 숨어든 쥐새끼의 기척이 줄곧 부관주 근처에 머물렀다.
부관주도 연씨다.
그러니 자연히 생각이 그렇게 이어질 수밖에.
[정말로 연가의 아이일 줄은 몰랐네요.]
한설빙이 놀랐다는 듯 말했다.
하무백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고 그저 앞만 볼 뿐이다.
[결국 산월마림 행은 연 소가주를 유인하려는 미끼로군요.]
[너도 알고 있었나?]
[올 초에 연가가 뒤집어진 일이니. 당연히 알고 있지요. 그때만 해도 저 부단주였어요. 다만 저 아이가 그 아이인 줄은 몰랐네요. 연씨 성에 저런 미모를 가지고 있어서 설마 하긴 했는데……. 본명을 그대로 쓰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서.]
한설빙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연하민을 힐끗 쳐다본 후 말했다.
“후.”
하무백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서. 나를 따라와? 란이를 데리고?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무슨 일은요. 연 소가주 곡소리 나게 잡겠죠.]
정말이지 부단주라는 것들이 도무지 제어가 안 된다.
뭐, 지금은 그런 직책이 상관이 없는 상황이지만.
[란이가 하민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같은 방을 쓰잖아요. 오늘 갑자기 연무장에 아무도 나타나지를 않으니.]
[아무리 그래도…….]
[쯧. 세상 가장 소중한 동생이라면서 저렇게 무심해서야. 란이에게 하민이는 태어나서 처음 생긴 동성 친구예요.]
그 말에 하무백은 숨이 턱 막혔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뒤를 힐끗 보니 하설란과 연하민이 나란히 말을 몰고 있었다.
승마가 서투른 연하민에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하설란.
그래도 하설란은 섬에서 사부에게 승마를 배웠던 모양이다.
섬을 나올 때는 말을 곧잘 타고는 했으니.
그 요령을 지금 성심을 다해 연하민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낙우진과 단목운뢰는 또 그것을 어깨 너머로 배우고 있었고.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네 말대로 무심했군. 고맙다.]
빠른 인정에 한설빙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가장 유리한 전장을 찾아서 산월마림으로 가는 건가요?]
산월마림.
저주받은 땅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곳이다.
[연가에서 감시자를 교룡관에 보낸 이상 결국은 하민에 대해 연가에 알려질 수밖에 없어. 잠시 교룡관을 떠나있는다고 해도, 그간 하민을 본 이가 한둘이 아니야. 그 미모에 대해 듣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지.]
하무백은 연백진을 만났을 때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 그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뭐, 그러면 연 소가주가 득달같이 들이닥치겠지요.]
[교룡관에서 그 난리가 벌어지면, 수습하기도 귀찮고 수습한 다음도 곤란해. 그러니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곳으로 불러야지.]
하무백의 말에 한설빙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그렇게 요란하게 굳이 교룡관의 마굿간에서 말을 가져온 건가요? 그놈 귀에 들어가라고? 뭐 일부러 그 난리를 친 거 같아서 저도 난리 한 번 치고 나왔어요.]
그 말에 하무백이 한설빙을 돌아보았다. 난리를 치고 나오다니.
[뭐, 저도 이 말들 끌고 나오느라 기유찬 한 번 잡아 왔었어요.]
새벽부터 아침에 이르기까지 수난을 두 번이나 겪은 기유찬에게 괜시리 미안해졌다.
[부관주에게는 안 알렸죠?]
[그냥 잠시 나와 있겠다고만 했지. 알아봐야 별 도움도 안 되니.]
[뭐, 지금쯤 원망은 엄청 하고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