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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72화 (72/312)

72화. 나도 제법 무서운 사람이다

“공후. 그놈을 불러와라. 당장!”

연백량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세차게 떨리는 손에는 동주산이 전서응으로 보낸 급보가 들려있었다.

그 내용이 연백량을 이토록 격노하게 만들었다.

잠시 후 연공후가 연행되듯 끌려 들어왔다.

아마도 오지 않겠다고 버텼던 모양이다.

연백량의 서늘한 눈빛이 당장에라도 연공후를 천참만륙할 듯했다.

“민아를 교룡관에 숨겼더냐?”

차가운 목소리.

그 물음에 연공후는 담담한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맹룡대에 숨겼더구나.”

연공후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연백량의 말은 이어졌다.

“헌데 어찌 이름은 숨기지 않았느냐? 그렇게 대놓고 있었는데, 지금껏 찾지 못한 저놈들이 멍청한 놈들이긴 하다만.”

그 물음에 연공후의 안색이 살짝 변하는 듯했다.

‘내 그렇게 가명을 쓰라 했건만. 맹룡대의 허술한 입관 절차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연공후는 연하민이 왜 본명을 그대로 사용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안타까웠다.

“입관 절차가 허술하니 맹룡대에 가라 일렀겠지. 헌데 네 놈도 맹룡대가 어떤 곳인지는 알 터. 대체 무슨 생각인 게냐? 민아에게 죽을 자리를 찾아준 게냐?”

음성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연공후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가 지금! 산월마림으로 가고 있다!”

“네?”

그 말에는 연공후가 반응했다.

이건 그가 세운 계획과는 달랐다.

산월마림으로 가는 것은 2년의 교육을 수료한 후다.

연공후의 계획은 이 년 차 전반기 교육을 마친 후 퇴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강호에서 살아남을 만큼의 단련은 되었을 터.

혼자 힘으로 어디든 숨어서 살 수 있으리라.

그런 계획까지 모두 일러두었건만.

어찌 일 년 차 후반기에 산월마림으로 향한다는 것인가.

“흥. 이건 계산 밖인가 보구나. 제 잘난 머리만 믿고 모두를 바보 취급하더니. 제 여동생을 사지로 보내는구나.”

“어찌 된 일입니까?”

교룡관의 소식은 전혀 몰랐다.

아니 강호의 소식 자체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연백량이 연공후의 밖으로 향하는 눈과 귀를 모두 막은 탓이다.

그랬기에 죽기보다 싫었지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들에 대한 내용을.

“하무백. 그 미친놈의 소행이다.”

연백량은 동주산이 보낸 서신을 연공후를 향해 집어 던졌다.

자신의 얼굴을 맞고 떨어지는 서신을 잡은 연공후는 빠르게 그 내용을 훑었다.

“이건…….”

연공후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당황했음이 역력한 모습이다. 연백량은 여전히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런 연공후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무백…….’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이름이다.

아니 머릿속 한구석에 각인된 이름이다.

선친 때문이다.

진정한 대협이라고 어찌나 극찬을 하던지. 결코 잊을 수 없는 무인 아니던가.

‘진정한 무인, 진정한 대협이라고 하셨지만……. 이 내용대로라면 그런 단순한 인물은 아니다.’

연공후는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산월마림으로 떠난 그의 의도가 읽히는 듯했다.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다.

백부는 그저 연하민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로 그 이면을 보지 못하고 있었으니.

아니 애초에 욕망과 욕정에 휩싸인 순간부터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할 리 없었다.

‘다만 그가 하민의 일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의도가 달라진다.’

연공후는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하무백이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선친에게 들은 것이 전부다.

최근 팽가와 있었던 큰 싸움에 관해서도 몰랐다.

그저 팽가가 신비고수와의 일전으로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는 가솔들의 수군거림을 들었을 뿐.

자세한 사정은 가문의 수뇌부들만 알고 있었고, 그 내용은 연공후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연백량이 막은 탓이다.

‘만일 그가 하민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다면. 이건 함정이다. 백부를 유혹하는 함정.’

선친에게 들은 그에 관한 정보 중 하나가 그의 성정.

자신의 품에 들어온 이들은 끔찍이도 아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정보에 근거한 판단이다.

***

“놈과 호북연가 사이를 엮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이호법.”

원한이 줄줄 흘러나오는 목소리다.

장안 하오문 총타.

하오문주 예초아였다.

“네. 문주님. 연가의 동주산이 무창으로 들어갔습니다.”

“동주산이라면……. 분명 소가주 연백량의 수족일 텐데요? 본문의 정보도 종종 사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그는 지금 다른 일에 매달리고 있는 거 아닌가요? 무창으로 갔다고 해도 그 일 때문일 텐데요.”

연백량의 욕정에 관한 것은 하오문에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개방과 쌍벽을 이루는 정보집단인데 그런 중요한 정보를 놓칠 리 없었다.

“그게 묘하게 엮였습니다.”

이호법은 일이 재미나게 돌아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이 찾는 그녀가 놈이 맡은 생도였습니다.”

예초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 중요한 일을 이제야 알아낸 건가요? 그녀의 행방을 찾는 것 또한 의뢰가 들어온 것일 텐데요.”

질책이 담긴 물음이다.

“그녀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기에, 가능성이 높은 곳을 먼저 찾다 보니 교룡관은 놓쳤습니다. 그 내부에 대한 조사가 어렵기도 하고요.”

변명을 위한 변명이었으나 예초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유찬. 그놈이 교룡관에 있으니.”

교룡관의 모든 정보를 관장하고 있는 기유찬.

하오문에서 교룡관에 사람을 심으려 할 때마다 번번이 그에게 가로막혔다.

개방도 그에게 가로막혀 사람을 교룡관 내부에 심지 못한 걸로 안다. 그저 근처에서 구걸만 할 뿐.

“그런 놈이 왜 고작 교룡관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호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행방 추적은 분명 기루 위주로 진행이 되었지요?”

“네. 애초에 연가에서도 그곳을 중점적으로 찾아봐 주길 요청했었고요.”

“그러니 아무리 우리라도 놓칠 수밖에 없었네요. 그래도 개방은 찾을 수 있었을 텐데요? 그들이 찾았으면 우리도 알았을 테고.”

“의협심이 가득한 거지들이 그런 인간의 요청을 받아들일 리 없죠. 백도회의 입장이 있으니 받아들이는 척하고 아마 찾지 않았을 겁니다.”

이호법의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예초아.

맞는 말이었다.

그런 추악한 목적에 절대 협력하지 않을 거지들이다.

“그런데 용케 찾았네요.”

“주머니 속의 송곳은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요. 그 미모를 가릴 수는 없는 법이지요.”

“언제 찾은 건가요?”

“그것이…….”

이호법이 말을 잇지 못했다.

예초아가 그런 이호법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복귀하니 보고서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

예초아가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 것이다. 아직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으니.

“소재를 확인했음에도 연가에 알리지 않은 것은…….”

“그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럴 상황도 아니었고요. 그리고 아껴뒀다가 써먹을 때가 오지 않을까도 했습니다.”

축 가라앉은 이호법의 음성에 예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지금이로군요.”

예초아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네. 연가와 놈을 붙이는 겁니다.”

이호법의 말에 예초아가 마뜩찮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일을 저희가 키워야지요. 놈이 그녀를 빼돌려 산월마림으로 갔습니다.”

“함정이로군요.”

예초아는 대번에 하무백의 의도를 읽었다.

연백량을 끌어들여 처리해, 연하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라는 것이 뻔히 보였다.

가지고 있는 정보의 힘이었다.

“놈의 의도대로 진행이 된다면 함정이겠지만, 저희가 중간에 흐름을 바꾼다면. 오히려 놈이 함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예초아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최근 들은 말 중 가장 기대가 되는 말이었기에.

“놈의 약점도 함께 갔습니다. 그게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약점이 무엇인지는 이미 파악이 끝났다. 놈의 여동생이다.

역린이 될 수도 있다.

팽가가 그 역린을 건드려 그 꼴이 난 것 아닌가. 자신들 역시 그 일에 휘말려 버린 것이고.

정확히는 그 일을 이용하려다가 역으로 당한 것이지만, 예초아와 이호법은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했기에 그저 재수없게 휘말렸다고 여겼다.

“좋아요. 한 번 그림을 제대로 그려봐야겠어요. 혜아와 대호법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도.”

하오문의 대호법 자리는 공석이었다.

이호법이 이어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나, 원수를 갚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다며 이호법이 고사한 것이다.

하무백의 계획에 하오문이 훼방을 놓기 위해 끼어들려 하고 있었다.

***

깊은 밤이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간.

일행 중 오로지 한 명, 연하민만 깨어 있었다.

노숙을 하는 가운데 불침번인 탓이다.

하무백와 한설빙이 함께 하는 이상 불침번은 필요 없었다.

더욱이 일행은 모르지만, 믿음직한 조력자 한 사람이 은밀히 따르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침번을 세운 것이, 수련이기 때문이다.

명색이 현장실습이라고 나온 것 아니던가.

하나하나 철저히 챙겨야 했다.

타닥타닥 소리 내며 타고 있는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연하민.

눈빛이 공허한 것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심사는 복잡했다.

갑자기 교룡관을 떠나서 향하는 곳이 산월마림이라니.

교관님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믿고 있으나, 의도를 알 수 없으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것이다.

나를 믿어라.

교관님이 해주셨던 말.

그 말을 떠올리며 연하민은 마음을 다잡았다.

“불안하냐?”

그때 갑자기 들려온 하무백의 목소리.

연하민은 깜짝 놀랐다.

“믿고 있어요.”

연하민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믿는 거랑 불안한 거랑은 또 좀 다른 거라.”

하무백이 연하민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그 말에 연하민이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다들 깊게 잠들어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대화를 들을 사람은 없으니까.”

이미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한 하무백이다.

“사실 부관주가 교룡관에 온 그 순간부터 네 소재가 연가에 알려질 적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네가 연가로부터 벗어나려면 결국 그 원흉을 해결할 수밖에 없지.”

연하민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네가 강해져서 그 원흉의 마수에서 벗어날 시간적 여유가 사라진 거야.”

하무백은 냉정하게 말했다.

이제는 현실을 그대로 알려줘야 했으니.

“그러기에는 교룡관은 적당한 곳이 아니야.”

하무백은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은밀하면서도 도망칠 곳이 없는 곳에서 확실히 결착을 지어야지. 그러기 위해서 교룡관을 나온 거다. 핑계는 일단 부관주와 연가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렇다면 제가 미끼인 거군요.”

연하민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리 말해주지 않고 내 멋대로 일을 진행해서 미안하다.”

“아니요. 믿고 있어요. 교관님의 말씀대로 이제 시간적 여유는 없으니까요.”

연하민도 현실을 직시했다.

“하지만요……. 그 사람 무서운 사람이에요.”

연하민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연백량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화인처럼 연하민의 머리 깊이 박혀 있는 두려움.

“나도 제법 무서운 사람이다.”

하무백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훗.”

갑작스러운 말에 연하민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런 웃음이라도 흘리니 좋네.”

하무백의 말에 연하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조금 남았다. 얼마 후면 마음껏 웃을 수 있게 될 거다.”

그 말을 끝으로 하무백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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