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73화 (73/312)

73화. 뜬금없다니?

“이제 하루만 더 가면 된다.”

기진맥진한 동주산. 그야말로 전력으로 달렸다.

장강을 거슬러 의창으로 향하는 배를 이용했으면 편하게 갔을 터다.

그러나 그렇게 가자면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강을 거스르기도 하였고, 강을 따라 빙 둘러 가는 길이다.

동주산은 그럴 수 없었기에, 무창에서 의창까지 곧장 일직선으로 주파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내공을 소모하여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그렇게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사흘이 흘렀다.

전서응은 이미 도착했으리라.

의창이 하루거리에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피로가 몰려왔다.

마침 작은 객잔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저곳에서 쉬어가자.”

아무리 그였지만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목욕보다도 따뜻한 잠자리가 간절했다.

무조건 잠부터 자겠다고 마음 먹고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간 찰나.

향긋한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딱 한 자리에 두 남자가 만두와 닭튀김을 먹고 있었다. 그 냄새가 너무 향기로워, 동주산은 처음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한쪽 구석의 식탁에 앉았다.

“어서 오십시오.”

늦은 밤이었기에 늙은 주인이 직접 동주산을 맞았다.

“만두 한 접시와 백주 한 명 내주시오. 그리고 자고 갈 방이 있소이까?”

“식사 하시는 동안 준비해 드립지요.”

차를 내온 객잔 주인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한쪽에서 쉬고 있던 것인지, 점소이가 나와서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방을 준비하기 위함이리라.

만두는 금세 나왔다. 백주 한 병과 함께.

역시나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동주산은 만두 한 개를 집어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향긋한 냄새 그 이상의 맛이었다.

만족스러웠다.

이 객잔에서 쉬어가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자네 그거 아는가?”

그때 다른 자리에서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주산의 귀에 들어왔다.

진즉 들을 수 있었으나, 음식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냥 봐도 상인들로 보였으니.

“뭐 말인가?”

“이번에 문에 새로 들어온 정보 말일세.”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남자. 이내 두 사람의 말소리가 굉장히 작아졌다.

동주산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오기가 생긴 동주산은 굳이 내공을 귀에 집중했다.

천이통까지는 아니었지만, 하는 일이 일인지라, 내공으로 청력을 제법 강화할 수 있었다.

“하무백. 그자의 약점 말이지.”

두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다. 갑자기 하무백이라니.

상인들이 어찌 그 이름을 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주산은 술을 한 잔 마시면서 두 사람의 행색을 다시 살폈다.

상인이라 생각했으나, 하무백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들은 상인일 수 없었다.

강호인이다.

그것도 정보에 제법 밝은.

어지간한 명문정파에서도 하무백의 존재를 모르는 이은 부지기수다.

“흐음. 그자는 왜?”

“지난번 일 있지 않은가. 본문이 뒤집어진.”

실낱같이 작은 소리다.

동주산은 열심히 기억을 뒤졌다. 강호의 어지간한 사건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있었다.

최근에 한 문파가 뒤집어진 일이라면.

‘팽가.’

하지만 팽가는 아니다.

팽가의 사건.

신비 고수에게 박살이 난 것이 강호에 널리 퍼졌지만, 그것은 오히려 새 발의 피다.

더 큰 일이 있었다.

‘멸공.’

동주산은 팽가가 멸공에 손을 댔다는 정보에 접근할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호북연가 소가주의 최측근이었으니.

멸공에 생각이 이르자 곧 다른 문파도 떠올랐다.

‘하오문.’

팽가에서 멸공을 빼돌리려다 하무백에게 호법 몇 사람과 문주의 딸이 목숨을 잃었다.

개방에서 얻은 정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고 그들을 다시 살피자 많은 부분이 수상했다.

보통 상인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친 신분을 위장한 자들로 보였다.

‘하오문이군.’

동주산은 즉시 기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두 사람의 무공 수위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하오문도라면 그 수준이 뻔했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역시나 보잘 것 없었다.

동주산의 손과 입이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한가하게 만두나 먹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만 방으로 올라가겠소.”

음식값과 방값을 치른 동주산은 방 정리를 마치고 내려온 점소이의 안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간 즉시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으로 은밀히 빠져나왔다. 은신술을 극성으로 펼쳤음은 당연한 일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좀 더 제대로 들어야 했다.

주인 영감은 꾸벅꾸벅 졸고 있고, 점소이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 듯했다.

덕분에 두 사람의 말소리는 조금 커져 있었다.

“그러니까 팽가가 하무백이랑 싸우게 된 게, 팽가의 망나니가 하무백의 여동생을 희롱해서다 이거지?”

동료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이 역린이지. 그래서 문주님이 주시하고 있어. 복수를 해야 할 테니.”

“에헤이. 그런 역린이라면 오히려 그 미친놈의 화만 더 돋우는 거 아닌가?”

“그러니 조심해서 설계를 잘해야지. 놈이 빼도 박도 못하게. 더군다나 그 약점을 캐내다가 의뢰도 하나 완수하게 되지 않았나?”

“아! 연가?”

“나 참. 설마 맹룡대에 있을 줄은……. 천하의 기루라는 기루는 다 뒤진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어쨌든 찾았으니 된 거지. 내일이면 의창에 들어가니 서둘러 의뢰를 마치고 잔금을 받아야지.”

“그런데 순순히 인정을 하려나. 지금 하무백과 함께 산월마림으로 향하고 있다는데 말일세. 그것도 여동생도 함께. 거기에 한설빙까지. 그 미친놈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남자는 술잔을 들이켰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으면 그게 미친놈인가?”

동료의 말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내 다른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기 시작했다.

동주산은 다시금 방으로 들어왔다.

너무 많은 정보를 들었다. 역시나 하오문이다 싶기도 하고.

과연 이게 우연인가 싶기도 했다.

‘너무 공교롭다.’

저들이 본가의 의뢰 결과를 알리기 위해 의창으로 향하던 중 객잔에서 쉬는 거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헌데 자신을 마주쳤다면?

그것도 자신이 들으라는 듯이 하무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자신에게 저 내용을 흘렸다고.

그렇다면 그 목적은?

‘차도살인지계.’

연가의 칼을 빌려 하무백을 처단하려는 거다. 마친 그녀가 그놈과 함께 있으니.

[팽가 꼴이 날 각오가 되어 있으면 교룡관으로 오라는 말도 함께 전하라 하더군. 그가.]

연백진에게 등을 돌리고 거칠게 걸음을 옮기던 그때.

연백진이 전음으로 전한 말이다.

얼마나 광오한 말인가.

저 광오한 말속에는 연하민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연가와 싸우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녀를 데려오려면 어차피 놈과 싸워야 한다.

하오문에서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게다.

그럼에도 이런 정보를 준다는 것은.

‘어설프게 덤비지 말라는 건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정보가 많았다.

교룡관에 대해서는 눈 감고 귀 막고 있는 연가로서는 미처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설빙이라면 분명 호천단의 부단주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호천단을 나갔다는 정보는 있었으나, 설마 교룡관의로 가서 하무백과 함께 움직이고 있을 줄이야.

그런 거물이 움직임도 교룡관에 있다는 이유로 놓쳐버리다니.

분명 문제였다.

이제는 교룡관에도 신경을 써야 할 듯했다.

가문의 정보 수집에 있어 큰 구멍이나 다름없으니.

연공후는 진작에 그 구멍을 파악하고 연하민을 그곳에 숨긴 것이리라.

“후우. 잠을 잘 때가 아니로군.”

자신이 전서응으로 긴급으로 보낸 정보에 구멍이 너무 많았다.

한시라도 빨리 본가로 돌아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해야 했다.

잠궜던 방문의 빗장을 열고는 창문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잠은 틀렸지만, 그래도 배를 든든하게 채운 덕인가.

땅을 박차는 발에 힘이 들어갔다.

***

깊은 밤이 다시 찾아왔다.

오늘은 생도들 모두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불침번을 서는 이는 한설빙.

제법 많은 길을 왔고, 생도들이 제법 지쳐 있었기에 그녀가 자청해서 불침번을 서기로 한 것이다.

사실 하무백이 있는 이상 불침번은 필요 없었다.

지난 전쟁에서 하무백의 귀신 같은 기감은 질리도록 겪었으니.

그럼에도 불침번을 선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그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다.

“어디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모닥불에서 떨어진 곳. 하무백의 곁에 풀썩 주저앉아 물었다.

“…….”

“안 자는 거 다 알아요.”

한설빙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하무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림이랄 게 있나. 그저 흘러가는대로 해결할 뿐이지.”

여전히 누워서 눈을 감은 채 하무백이 답했다.

“너무 뜬금없이 대놓고 움직이잖아요.”

정천맹 최고의 책사는 당연히 공손 영감이다.

지난 전쟁에서 공손 영감은 그 사실을 몇 번이고 증명했다.

하지만 한설빙이 생각하기에, 저 뻔뻔한 얼굴로 자고있는 자신의 전 단주 하무백, 그도 교활한 책략가였다.

절대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미친놈 같이 움직여도 모두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행동이었다.

몇 번이나 감탄을 터트렸는지 모를.

그간의 경험이 계속해서 하무백의 의도를 고심하게 만들었다.

어잿밤에는 연하민과 긴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던가. 물론 기막으로 차단해서 그 내용은 모르지만.

지난번에 하무백과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내용대로라기에는 하무백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성정이라면 분명 무언가 더 엮으려 할 것인데.

“뜬금없다니? 이렇게 움직여야 연 소가주가 움직일 텐데?”

“그거야 그런데. 과연 연 소가주의 움직임만을 의도한 거냐는 말이지요. 단주님의 성격이라면 다른 무언가도 노리고 있을 테니까요.”

하무백이 돌아누웠다.

한설빙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하무백의 등을 노려보았다.

분명 무언가 있는데.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니다.

강호는 평화로웠고, 그래서 하무백이 굳이 적으로 상정할만한 이들이 없었다.

이번 일도 자신이 담당하는 생도, 연하민을 보호하기 위해 벌인 일.

“딱히 적이라고 할 집단도……. 아!”

거기까지 말을 잇던 한설빙은 한 곳을 떠올렸다.

있었다.

적이라고 할만한 곳이.

아니 적이라기보다는 원한 관계라 해야 할까.

“하오문.”

한설빙이 나직이 중얼거리는 순간, 하무백의 어깨가 살짝 반응했다.

한설빙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하무백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게. 찝찝할 일을 왜 저질러요. 진짜 알 수가 없다니까요. 단주님은. 어떨 때는 모든 걸 치밀하게 계산해서 움직이나 싶다가도, 어떨 때는 눈이 뒤집혀서 손 먼저 나가고.”

“…….”

하무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도 멸공 때문에 눈이 뒤집혔죠? 영소혜를 벨 때도?”

하무백은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멸공에 눈이 뒤집혀서 일을 저지를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슬슬 걱정되는 거죠? 설란이.”

하무백의 어깨가 다시 한번 살짝 움찔했다.

정곡을 찔렸다.

당시 멸공에 대한 분노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설란이 교룡관에 있거늘.

세상 제일 음흉하며 정보에 밝은 하오문 놈들이랑 원한을 만들어 버렸다.

당시에는 멸공을 찾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죽어도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였으니.

호천단주 시절대로, 죽어도 말하지 않겠다니 죽여주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호천단주 시절과 그때는 처한 상황이 달랐건만.

“그래서 하오문이 이번에 어떻게 나오는지도 시험해보려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네가 교룡관에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었어.”

이윽고 하무백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는 짜증이 서려 있었다.

세상 가장 믿음직한 수신호위가 설란에게 있지만, 그래도 변수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았으니.

그런데 한설빙이 하무백을 쫓아오면서 변수가 늘어나 버린 것이다.

하무백의 말에 한설빙이 입술을 샐쭉거렸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다. 네 말대로 무심했군. 고맙다. 이건 어디 사는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일까요?”

한설빙의 물음에 하무백은 다시금 돌아누웠다.

“쳇.”

짧게 혀를 차는 한설빙.

“…….”

하무백은 아무 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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