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귀찮아서 대강 지었다
“자, 내공의 흐름은 이렇게. 그리고 마지막에 다리와 발바닥으로 살짝 억눌렀다 한 번에 뿜어내면.”
그 말과 함께 하무백의 신형이 단번에 위로 높이 솟구쳐 올랐다.
일곱 생도는 고개를 쳐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최소로 잡아도 오 장은 날아오른 것 같았다.
가볍게 몸을 뒤집은 하무백이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쉽지? 요령은 간단하다. 특별히 심법을 가리는 신법도 아니야. 각자 익힌 심법으로 내가 알려준 요령대로 내공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면 된다.”
“그… 쉬워 보이지는 않는데요…….”
낙우진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법의 이름이 뭔가요?”
하설란이 조심스레 물었다.
“주작비천(朱雀飛天). 어기충소의 일종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해보도록!”
하무백의 말에 성벽 앞에 선 생도들은 내공을 움직이며 땅을 박차기 시작했다.
쉽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 내공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을 동시에 제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공과 몸이 따로 놀았다.
생도들은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그 와중에 주우명은 조금씩 요령을 익히고 있었다.
그럴수록 전날의 수련이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고작 한 시진 정도의 수련이었지만, 어느새 몸이 성벽 위로 도약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만큼, 내공의 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이 지났다.
어느새 해는 하늘 한가운데 걸려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슬슬 점심 식사를 해야겠다 싶을 무렵.
“타핫!”
기합성과 함께 주우명의 신형이 솟구쳐 올랐다.
삼 장.
정확히 그 높이를 뛰어올라 밧줄의 매듭 위를 붙잡았다.
“우와!”
“이야!”
각자의 수련을 멈추고 그런 주우명의 모습에 감탄을 내질렀다.
그 순간.
곧바로 하무백의 신형이 딱 삼 장 높이를 뛰어올랐고, 손바닥으로 그대로 주우명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찰싹!
찰진 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윽.”
그리고 주우명의 작은 신음소리.
“붙잡았으면 최대한 빨리 벽을 타고 올라야지. 뭘 멍하니 붙잡고 있나. 넌 지금 강시에게 당한 거다. 분명히 말했지. 강시도 삼 장은 뛰어오른다고.”
바닥에 착지한 하무백이 사납게 외쳤다.
수련에 있어서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주우명. 하 교관님의 말씀이 맞아. 너무 허술해.”
주우명의 담당 교관인 한설빙 역시 같은 지적을 했다.
땅으로 내려온 주우명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안일했습니다.”
“알았으면, 넌 저기서 달려와서 뛰어올라 벽을 타고 올라가는 수련을 시작해라.”
하무백의 지시에 주우명은 다시금 수련을 시작했다.
두 번째로 성공한 이는 예상과 다르게 단목운뢰였다.
다들 두 번째는 당연히 백리평이라 짐작했었으니.
주우명의 경우가 있었기에 단목운뢰를 밧줄을 잡자마자 전력으로 벽을 타고 올랐고, 하무백의 손바닥은 허공을 갈랐다.
그다음은 백리평과 연하민이었다.
이어서 하설란과 당진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낙우진까지.
해 질 무렵이 되자 모두 삼 장을 뛰어오르는 데 성공했다.
다시금 성벽 위에서의 저녁 식사 시간.
“교관님. 그런데 주작비천은 어느 곳의 경공인가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진산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상당히 뛰어난 신법이었다. 높이 뛰어오르는 방면에 한해서지만.
그래도 이런 신법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천맹의 신법이다.”
하무백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네? 그거 이렇게 아무나 익혀도 되는 건가요?”
당진산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이 정도 경공이라면, 적어도 기밀 등급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관없어.”
“기밀 아닌가요?”
그 물음에 하무백의 시선이 한설빙에게로 향했다. 거기까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한설빙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맞아요. 기밀.”
그 대답에 일곱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천맹에서 기밀로 분류한 무공을 맹룡대 생도인 자신들이 익혔다.
이것이 혹시라도 알려지게 된다면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상관없다니까. 지들이 알면 어쩔 거야.”
하무백은 정말 사소한 문제라는 듯 말했다.
“저 말도 맞아.”
한설빙이 첨언했다.
그 말에 생도들은 혼란에 빠졌다.
기밀인데, 상관없다니.
“하 교관님이 만드신 무공이야. 필요에 의해서.”
생도들의 표정이 다시 한 번 급변했다.
저 도깨비 같은 교관이 무공을 만드는 수준이었다고?
실력이 대단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저, 그런데 왜 주작비천인가요?”
주작이 날아오르는 모습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높이 뛰어오르는 신법에 비천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던진 물음이다.
“귀찮아서 대강 지었다.”
하무백이 질문을 한 연하민을 힐끗 보고는 답해 주었다.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하무백의 동생인 하설란마저도.
전후 사정을 모두 하는 한설빙이 피식 웃었다.
“청룡, 백호, 현무도 있어.”
그 말에 생도들의 표정이 더 기괴하게 변했다.
“하무백표 사신공이지.”
생도들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설빙이 말했다.
“저, 그거 한 교관님도 익히신 건가요?”
단목운뢰가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 그리고 아마 너희들도 익혀야 할 거야. 강시들을 상대하면서 만든 무공이니까.”
“세 가지가 더 있다고요?”
백리평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뭐, 나머지도 다 주작비천이랑 비슷해. 내공을 딱히 가리지 않고, 어렵지 않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아, 어려우려나…….”
잠깐 생각을 하던 한설빙이 자신 없게 중얼거렸다.
무공을 익히는 이들이 달랐다.
사신공은 강시들과 악전고투를 하는 가운데, 하무백이 호천단의 무인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호천단원들에게는 익히기 어렵지 않았지만, 맹룡대 생도들은 달랐으니까.
주작비천이야, 정말 도망을 위해 만든 가장 쉬운 경공이었고.
“어렵지 않기는. 어렵다.”
하무백이 같잖다는 얼굴로 첨언했다.
“그럼에도 익혀야 해. 이번 실습의 목적이니까. 익힐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다. 내일은 진법으로 강시 상대하는 실전을 할 거다.”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하무백.
그 말에 생도들은 다시금 질린 표정을 지었다.
“강시를 상대로요?”
“도망가는 법 익혔으니, 이제 싸워봐야지.”
당진산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한 하무백의 대답.
“몰려오면요?”
당진산이 다시 물었다.
“방금 말했다. 도망가는 법 익혔다고. 도망가야지. 그것도 실전을 겪어봐야지. 쫓기지도 않는데 연습으로만 뛰어오르는 게 아니라.”
“그, 저…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당진산이 조심스레 말했다.
“며칠은 더 수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전이 곧 수련이다. 걱정 마라. 죽지는 않게 잘 봐줄 테니.”
그 말이 더 무서웠다.
죽지는 않게 해준다니.
그럼 다른 일은 있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게 밤이 흐르고 아침이 밝았다.
아침을 해결하고 줄을 타고 성벽 아래로 내려왔다.
“내가 갈까?”
“제가 다녀올게요.”
하무백의 물음에 한설빙이 답했다. 하무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백의 시선이 하설란과 주우명에게로 향했다.
“너희는 합격술을 익히지 않았지?”
“네.”
“예.”
두 사람이 답했다.
“그럼 일단 처음은 지켜보는 걸로 하자.”
하무백의 말이 끝나는 순간 한설빙이 사라졌다.
“검하고 방패 들고 준비해라. 일 각 안에 강시가 올 거다.”
하무백이 칠 조 생도들에게 말했다.
당진산이 막 무어라 항변하려다가 말고는 즉각 진법에 맞춰 자리를 잡았다.
지난 하투제에서 남궁지후를 잡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던가.
자연스레 진법이 이루어졌다.
주우명이 그 모습에 작은 탄성을 흘렸다.
“아, 저게…….”
“그래. 남궁지후를 잡은 진법이다.”
주우명의 두 눈이 빛났다.
무당에서 남궁지후가 패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떨렸던가.
호승심으로 가슴이 가득 찼던 그때가 떠올랐다.
이제 그 진법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비록 강시를 상대로 하는 거라 하지만.
“온다.”
일 각은 커녕 반 각도 안 되었다. 그런데 하무백이 나직이 경고를 날렸다.
칠 조 생도 다섯의 두 눈에 긴장감이 흘렀다.
검과 방패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한설빙이 빠르게 경공을 펼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훌쩍 뛰어올라 칠 조의 진법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났다.
흉측하기 그지없는 그 괴물 놈이.
하무백이 강시라 일컬었던 놈.
몸 곳곳이 썩은 채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놈 하나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기이했다.
몸 이곳저곳이 고장 난 듯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빨랐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한쪽 눈알은 썩어 사라지고 안와는 텅 비어 있었다.
얼굴 살가죽도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뼈가 드러나 보이는 팔을 휘둘러 왔다.
“정신 차려라!”
그때 하무백이 외쳤다.
그 외침에 낙우진이 본능적으로 방패를 움직였다.
쾅!
썩어 문드러진 팔의 위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울리며 낙우진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너무도 흉측한 모습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탓이다.
하지만 이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상상했던 강시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강시란 깨끗이 염습한 시신의 모습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상상 속의 존재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썩어 문드러진 시체였으니.
“으으…….”
하설란이 차마 강시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똑바로 봐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서, 어떻게 싸우겠다는 거냐.”
그 모습에 하무백이 냉정히 말했다.
지금은 오라비가 아닌 교관이었다.
그래도 첫 번째 공격의 위력이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일까.
이후 칠 조 생도들은 검진을 제대로 펼쳤다.
낙우진이 정면에서 막고, 단목운뢰가 측면에서 공격했다.
백리평은 정면에서 강시를 공격했다.
당진산이 백리평의 곁에서 공격을 도왔다. 연하민은 강시의 뒤를 노렸다.
“우어어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강시가 팔다리를 휘둘렀다.
지저분한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울부짖기도 했다.
“알려줘야 하지 않아요?”
그 모습에 한설빙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칠 조는 잘 싸우고 있었다.
다만, 몰랐기에 대비하지 않다가 예상외의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인 후 외쳤다.
“놈은 사강시(死僵屍)다. 이빨에 강시독(僵屍毒)이 있어. 물리면 저 놈 같은 사강시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러니까 안 물리게 조심해라.”
그 말을 들은 순간 칠 조 생도들은 움찔했다.
어쩐지 아까부터 이빨을 들이밀더라니.
검이 계속해서 강시를 베었다.
그러나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검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검진을 이룬 칠 조 생도가 사강시를 상대로 압도하고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놈을 쓰러트리지 못했다.
“사강시는 머리를 터트리거나 목을 베어야 쓰러진다.”
하무백이 조언을 더 했다.
그 말에 검의 목표가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강시의 목.
잘 베이지 않았으나, 베고 또 베니, 결국은 목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놈의 움직임도 멎었다.
“후아.”
“헉. 헉. 헉.”
“하… 죽겠다.”
긴장이 풀린 듯 다들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만은 하무백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어땠나?”
그 물음에 다섯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진짜…….”
당진산이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