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엄청난 거였네
“저런 괴물들이랑 싸우는데 아무것도 안 알려 주시다니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정말 진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저 괴물에게 물리면, 저런 괴물이 될 수 있다니…….”
당진산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난 너희를 처음 만났을 때 분명히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집에 가라고. 가지 않은 것은 너희들이다.”
하무백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에 당진산은 입을 꾹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저런 괴물인 줄은 몰랐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단목운뢰였다.
“난 분명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 안 나는 거냐? 머리 나쁜 녀석들. 쯧.”
하무백이 혀를 찼다.
“끊임없이 사강시가 나타나는 곳이다. 어제 죽은 내 동료가 다음 날 사강시가 되어 내 앞을 막아서는, 그야말로 저주받은 땅이지.”
연하민이 혈색 없는 얼굴과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무백이 칠 조 생도들에게 집에 가라면서 해줬던 말이다.
“그 말씀이 이거였군요.”
어제 죽은 동료가 다음 날 사강시가 되어 내 앞을 막는다.
그 말의 의미를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래. 사강시의 강시독에 중독되어 죽으면 사강시가 되어버리지.”
한설빙이 긍정했다.
사강시가 되어버리는 수 있다는 경고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하무백이 잠깐 뜸을 들였다.
“하민은 아마 기억하는 거 같은데. 사강시가 이곳에서 가장 약한 마물이다. 잡스러운 놈들을 빼면 말이지.”
그 말에 다시금 생도들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연하민 역시 질린 기색이 얼굴에 내려앉았다.
“혈강시(血僵屍)에 독강시(毒僵屍)…….”
단목운뢰도 그때의 이야기가 떠올랐는지 중얼거렸다.
“거기에 암혈강시(暗血僵屍)랑 묵철강시(墨鐵僵屍)라는 놈들도 있어.”
한설빙이 말을 보탰다.
일곱 생도의 어깨가 축 쳐졌다.
산월마림에 대해 충분히 각오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신들이 산월마림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그때 하무백이 왜 그렇게 자신들에게 집에 가라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단순히 듣기만 하는 거랑 보고 겪는 건 차원이 다른 법이다. 어쩌겠나. 결정에 책임을 져야지.”
하무백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나에게도 있고. 그래서 이렇게 실습하러 온 거다.”
생도들에게는 맹룡대에 남은 책임이, 하무백에게는 그런 생도들을 가르친 책임이 있었다.
하무백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강시만 해도 이토록 끔찍한데 다른 강시는 어떤가요?”
신색을 조금 회복한 백리평이 물었다.
“사강시는 강시독만으로 생긴 강시라면, 다른 강시들은 혈교 놈들이 특별한 술법으로 수작을 부린 것들이지. 암혈강시와 묵철강시는 이곳에서도 이제는 희귀하니, 혈강시와 독강시만 우선 말해주자면.”
하무백이 백리평의 질문에 상세하게 답해 주었다.
“혈강시는 빠르고 단단하고 강하다. 대신 물린다고 특별히 중독되거나 하지 않아. 반면에 독강시는 손톱에도 독이 있어. 상처를 입으면 중독이다.”
“끄응.”
듣기만 해도 무서웠다.
특히나 독강시가.
당하면 중독되어 죽고, 강시가 된다는데 어찌 무섭지 않을까.
한설빙이 그런 생도들의 마음을 읽었다.
“독이 없다고 혈강시 우습게 보지 마. 독강시보다 혈강시에 당해서 죽은 무인들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렇다면 암혈강시랑 묵철강시는 대체 어떤 괴물이란 말인가.
이런 곳에서 무려 오 년을 버텨야 한다.
“생환율 오 푼. 엄청난 거였네…….”
백리평이 중얼거렸다.
“그래. 엄청 높은 거였어.”
당진산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쯧.”
하무백이 혀를 찼다.
“오 년간 있으면서 너희들이 상대할 놈들은 대부분 사강시다. 혈강시나 독강시는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이니까. 미리 포기하지 마라.”
하무백의 말에도 이들의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하무백이 주우명을 돌아보았다.
“어때? 상대할 수 있겠어?”
“한 개체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두 개체까지도 어쩌면. 그래도 물리는 걸 조심해야 하니 그 정도가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객관화가 제대로 된 녀석이다.
하무백의 평가도 같았으니.
그 말에 움찔 반응한 것은 칠 조 생도들이었다.
자신들은 검진을 펼쳐 상대한 것을 혼자서 두 개체나 상대 가능하다고?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호승심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은 후기지수 최강이라는 남궁지후를 검진을 이뤄 잡아냈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검진이 결코 주우명의 실력에 뒤지지 않을 터.
주우명이 홀로 두 개체를 상대할 수 있다는데, 겨우 한 개체와 싸운 후 이렇게 침울해 있다는 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하무백은 그런 모습에 피식 웃었다.
“너희도 두 개체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겁에 질려 꼬리 감춘 개 마냥 움츠리고 있다면 불가능하겠지만.”
하무백이 작게 일어난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칠 조 생도들은 어느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좋아. 이번에는 주우명. 네 차례다.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한설빙은 생도들과 함께 있고 하무백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하무백이 사강시 하나를 끌고 왔다.
주우명은 검을 뽑아 들고 사강시와 맞붙었다. 방패는 있었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무당의 검만 사용해서 사강시를 상대했다.
사강시의 목을 베는 데까지 반 각이 조금 더 걸렸다.
“좋아.”
“잘했어.”
하무백과 한설빙이 짧게 평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하설란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상황은 애매했다.
혼자서 사강시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칠 조의 검진에 함께 하기도 힘들었다.
애초에 검진을 배운 적이 없으니.
그녀가 칠 조의 검진에 끼면, 오히려 검진의 조화가 깨져 더 약해질 뿐이다.
“설란은 나랑 하자.”
한설빙이 나섰다.
“네?”
“내가 보조를 맞춰줄 테니까. 한번 혼자서 상대해봐.”
“네. 해볼게요.”
하무백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자리를 떠나더니, 곧 사강시 한 개체를 유인해서 나타났다.
하설란이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꽉 쥐고는 사강시를 맞았다.
“응?”
그때 당진산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단목운뢰가 물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말이야. 저 사강시 입 안이 좀 이상한 걸…….”
당진산의 말에 단목운뢰의 시선이 사강시의 입으로 향했다.
과연.
달랐다. 자신들이 상대했던 강시와, 그리고 주우명이 상대했던 강시와.
입 안에 이빨이 하나도 없었다.
죄다 부러져 뽑혀 나간 듯, 정말 이빨이 하나도 없었다.
“저러면, 물려고 해도 물 수 없는 것 아닌가?”
당진산의 의문에 단목운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물려도 강시독에 중독되거나 그러지 않을 것 같아.”
“그래. 저런 방법이 있었네. 있어어.”
당진산이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물리면 사강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얼마나 움츠러들어 강시를 상대했던가.
헌데 하설란이 상대하는 강시는 이빨이 단 하나도 없었다.
저런 개체를 골라서 데리고 왔을 리 없다. 그것보다 그냥 사강시의 이빨을 전부 부숴서 뽑아내는 것이 저 교관에게는 훨씬 쉬운 일이리라.
“단약 먹을 때 생각나네.”
어딘가 차별을 당한 듯한 박탈감을 느끼며 당진산이 중얼거렸다.
저런 방법이 있으면서, 왜 자신들은 그 흉측하고 추악한 이빨을 보며 겁에 질려 강시를 상대해야 했던 걸까.
정작 하설란은 자신이 상대할 강시의 이빨이 없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차이를 발견하기엔 그녀는 지금 너무 긴장해 있었으니까.
강시를 상대하면서도 검로가 뚝뚝 끊겼다.
위기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한설빙이 적절히 개입해서 막아줬지만.
일 각이란 시간이 흐르고도 결판이 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하무백의 말이 끝나자 한설빙의 검에 새하얀 강기가 맺혔다.
순간, 사강시의 목이 떨어졌다.
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에는 새하얀 살얼음이 맺혀 있었다.
“우와…….”
그 모습에 당진산이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검을 주로 사용하는 주우명과 백리평의 두 눈이 반짝였다.
깔끔하고 훌륭한 검격이었다.
저 수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검을 휘둘렀을까.
두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언젠가는 자신들 역시 저런 검격을 떨칠 수 있는 날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가, 감사합니다.”
한설빙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인 하설란은 그대로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 일 각이었다.
“어…….”
잘려 굴러다니는 사강시의 목을 본, 하설란은 그제야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이빨이 하나도 없는 사강시의 목.
앞선 두 개체와는 분명히 달랐다.
그녀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다른 생도들과는 달리 특별 대우를 받는 것 같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생도들 사이에 도는 분위기를 하무백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랬기에 하무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들 생각하는 꼴 하고는. 쯧. 수준에 맞춰준 것뿐이다. 누구를 특별히 대우하고 그런 게 아니라.”
음산하기까지 한 목소리다.
그 모습에 당진산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두 개체다. 칠 조. 준비해라.”
그 말과 함께 하무백이 사라졌다.
다시 사강시를 유인하러 간 것이다.
잠시 후 두 개체의 사강시를 이끌고 나타났다.
어디서 사강시를 찾아 저렇게 딱 맞게 몰아오는 것인지 감탄이 나왔다.
“어?”
검과 방패를 들고 준비하고 있던 당진산이 묘한 음성을 흘렸다.
두 개체의 사강시 중 한 개체의 이빨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준비해. 진산.”
백리평의 말에 서둘러 집중하는 당진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번에는 이 각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한 개체의 이빨이 없었기에 치명적인 상황은 겪지 않았다.
“나쁘지 않군. 이 정도 수준으로 몇 번 더 겪으면 되겠어.”
그와 동시에 사강시를 상대하면서 검진을 펼치는 데에 있어 미숙한 부분을 향한 지적도 이어졌다.
“너희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검진을 펼쳐 상대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혼자서 저놈들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해.”
“네!”
다섯 생도가 동시에 대답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네? 아직 시간이…….”
하무백의 선언에 주우명이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남은 시간은 오늘 실전의 복기와 미숙한 부분에 대한 수련이다. 지금부터 실시하도록.”
그 말에 저마다 검을 들고 복기와 수련을 시작했다.
하설란에게는 한설빙이 일대일도 붙어서 가르쳤다.
이 중에서 실력이 가장 떨어지기도 했고, 하설란이 사용하는 검법의 검로에 대해 한설빙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마다 수련 삼매경에 빠진 모습을 확인한 후 하무백은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직 실전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무백이 사라진 것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한설빙은 알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 시진 동안 정말로 모든 것을 잊고 수련에 매진하는 생도들이다.
“크어어어어.”
“카아아아.”
“우그그그.”
갑지기 들려오는 괴성.
사방에서 열에 달하는 사강시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속도도 빨랐다.
오늘 자신들이 상대했던 개체들에 비해 최소 오 할은 더 빠른 것 같았다.
숫자도 많았고, 빠른 사강시들.
일곱 생도는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