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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79화 (79/312)

79화. 돌아가시지요

“연백량이 삼백의 정예 수하로, 그놈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예초아가 불안한 듯 물었다.

“놈 혼자라면 연백량이 당할 겁니다. 아무리 그가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요.”

수하의 말에 예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일 때 오히려 더 무서운 괴물, 그것이 바로 하무백이었으니.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담당하는 생도가 다섯에, 여동생까지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들은 짐입니다.”

“주우명에 대한 정보는 전했겠지?”

무당의 제자다. 그것도 현 무당 장문인의 사제 아니던가.

사실 하오문 입장에서야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연가의 입장에서는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괜한 분노가 하오문으로 튀는 것을 방지하려면, 주우명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야 했다.

“전했습니다. 하지만, 연백량의 상태가…….”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소리다.

“한설빙은 어때?”

“쉽지 않겠습니다만 그녀는 그에게 비할 바가 아니지요.”

수하의 평가에 예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멸공의 분해와 재조합은?”

“순조롭습니다. 오랜 시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하오문은 이미 멸공의 부분, 부분을 구해서 오랫동안 연구 중이었다.

온전한 멸공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을 뿐.

그래서 팽가에 그렇게 공을 들인 것이다.

“흠…….”

수하의 대답에 예초아가 손을 쥐락펴락했다.

연분홍빛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 기운이 피어오를 때, 그녀의 눈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멸공의 기운이다.

오랜 시간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자신의 몸에 직접 시험했으나, 애석하게도 저주를 제거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멸공의 수련을 멈춘 상태다.

불완전한 멸공을 연구한 탓이라는 결론에 온전한 멸공을 찾고 구했다.

제대로 분석해, 분해하고 재조합만 한다면.

그렇다면 저주가 빠진 새로운 신공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것이 하오문의 희망이었다.

제대로 된 무공이 없었기에 늘 무시당하고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그 처참한 현실을 극복할 유일한 희망.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익힌 이들도 준비해뒀습니다. 연가와의 싸움으로 지친 놈의 뒤를 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하의 말에 예초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그만두지. 놈은 우리가 멸공을 가지고 있음을 몰라. 알았다면 가만뒀을 리가 없는 놈이야. 괜히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지 말지. 연가가 놈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 수도 있지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수 있어. 우리는 어디까지나 뒤로 빠져 있어야 해. 놈에게 빌미를 주면 안 될 일이야.”

예초아의 말에 수하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거기 간다!”

당진산이 크게 외쳤다.

“좋아.”

단목운뢰가 방패를 들었다.

쾅!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단목운뢰는 방패로 두 개체의 사강시를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었다.

서걱. 서걱.

백리평과 연하민의 검이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사강시의 목을 단번에 갈랐다.

불과 나흘 만에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무백은 그 모습을 만족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실전만 한 수련은 없어.”

생도들의 검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거기에 살기도 사라졌군.”

연하민을 바라보며 하무백이 중얼거렸다.

생과 사를 오가는 치열한 실전.

그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연하민의 검에 서린 살기가 사라졌다.

지금 이들이 상대하는 것들은 사람이 아닌, 그저 마물인 탓이다.

적을 파괴하려는 것이지, 죽이려는 것이 아니니.

다른 한쪽에서는 주우명과 하설란이 함께 사강시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쪽도 막 강시의 목이 떨어진 참이다.

때를 정확히 맞춰 한설빙이 나타났다.

그녀 뒤로 네 개체의 사강시가 따르고 있었다.

“역시 잘 몰아 오는군.”

하무백이 만족스레 중얼거렸다.

생도들은 다시 치열한 전투를 이어 갔다.

그 사이 한설빙이 하무백의 곁에 자리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한설빙의 물음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면 내일, 늦으면 모레 정도?”

“어떻게 정확히 예측돼요?”

한설빙의 물음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연가에서 전력으로 달리면 이곳까지 그쯤 걸릴 거라는 거 알잖아.”

“그거야 중간에 아무런 오차 없이 최대한의 속력으로 냈을 때의 이야기지요. 의창에서 절강성 끝자락인 이곳까지면 삼천 리(里)에 가까운 거리예요.”

“무림 고수가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리면, 열흘이면 달릴 수 있는 거리야.”

“그 사이 말을 몇 마리를 바꿔 타야 할까요?”

“연가라면 어떻게든 수를 내겠지. 반쯤 미친 것 같던데.”

하무백의 말에 한설빙은 쓴웃음을 지었다.

반박할 수 없는 탓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잠시 후 한설빙이 물었다.

하무백이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강시와 치열하게 싸우는 생도들.

“내일 더 깊이 들어간다.”

“아…….”

한설빙은 그 말에서 하무백의 의도를 읽었다.

“우리는 연가의 일행을 만난 적이 없어야지.”

싱긋 웃는 그 웃음이 섬뜩했다.

“그러자면, 쥐새끼들을 좀 잡아야 하니까 애들 좀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하무백의 신형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성벽을 넘어 산월마림 밖의 숲으로 향했다.

모두 네 곳.

[이제 잡을 생각이 든 게냐?]

그때 하무백을 향해 들리는 전음.

은밀히 하무백 일행을 따라온 위지군이었다.

오로지 하설란의 안위 때문에 따라온 터다.

그리고 위지군의 존재는 하오문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상정한 오차 범위를 넘어선, 재앙에 가까운 인물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네. 두 놈을 맡아 주십시오.]

[알았다.]

퍽!

네 곳에서 소리가 울렸으나, 마치 단 한 번의 소리인 것처럼 동시에 울렸다.

그리고 네 사람이 쓰러졌다.

하무백과 위지군은 그들을 한곳에 모았다.

“뭐 하는 놈들이냐?”

“하오문 놈들입니다.”

“피값이로구나.”

하무백의 대답에 위지군이 낮게 말했다.

“제 업보이지요.”

하무백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네가 의미 없는 살계를 열었을 리 없다.”

사부의 믿음에 하무백의 입가에 걸린 고소(苦笑)가 더욱 짙어졌다.

“당시에는 저도 그리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그냥 화풀이였는지도. 멸공에 스러져간 동료와 수하들에 대한 분노를 그들에게 투영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멸공이라…….”

혼돈혈하멸공.

그 존재에 대해서는 위지군도 알고 있었다.

그 멸공의 결과물이 저 장성 너머 마림 안에 돌아다니고 있음도 말이다.

“암혈강시라고 하였더냐?”

“네.”

“아직도 남아 있더냐?”

“산월마림은 넓습니다. 그리고 놈들은 강하고요.”

“쯧. 하오문 놈들이 죽을 짓을 하고 있는 게다. 손댈 것이 없어서 그런 저주받은 무공을 손대다니.”

“제 놈들이 스스로를 망치는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다만, 멸공으로 스스로를 멸하고 암혈강시가 되었을 때, 주변의 무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피해를 볼지…….”

하오문의 총타는 장안에 있었다.

일찍이 제국의 도읍이기도 했던 거대한 도시다.

그곳에 갑자기 암혈강시가 나타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살계를 열어서라도 막았으면 되었다.”

위지군이 하무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놈들은 제가 적당히 버려두고 오겠습니다.”

“그러거라.”

하무백은 네 사람들을 들쳐 메고는 빠르게 달려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던져두었다.

혼혈을 한 번 더 짚었다.

하루는 지나야 정신을 차리리라.

***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연공후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백량이 고개를 획 돌려 분노에 찬 눈빛으로 연공후를 노려보았다.

“네가 지껄이지 않아도 알고 있다.”

말들이 뻗었다.

중간에 두 번이나 말을 바꿨다.

삼백여 필의 말을 한 번에 팔고 살만한 대도시가 몇 없었던 탓이다.

이틀 전에 지났던 도시가 마지막이었다.

하오문의 길잡이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는 말의 보급이 어렵다고 했다.

해서 갈아탈 말까지 구하려 했으나, 그 정도 숫자의 말은 없었다.

“하루 쉬어가야 합니다.”

연공후가 다시 말했다.

연백량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연공후에게로 향했다.

“기쁘겠구나. 우리의 일정이 늦춰져서.”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익.”

분노에 찬 연백량이 이를 악물었다.

지극히 옳은 조카의 말에도 이렇게 분노할 정도로 그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소가주님. 진정하십시오. 쉬어 가는 게 맞습니다. 말들뿐 아니라, 수하들도 지쳤습니다.”

동주산이 연백량을 말렸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말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굉장히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그것을 며칠째 쉬지도 않고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전력으로 하루에 거의 삼백 리를 달렸다.

아무리 내공을 익힌 고수들이라 해도 지칠 수밖에 없는 가혹한 여정이었다.

노숙이긴 하였으나, 하루 정도는 쉬어줘야 했다.

이제 목적지까지는 하루거리라 했다.

오늘 하루 쉬게 되면 이틀거리.

이틀 뒤에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괴물을 마주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 중에는 지난 전쟁의 경험자도 있었다.

산월마림을 겪은 이도 있었고.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또한 오래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딱 그런 시간이었다.

“산월마림에 들어가게 되면 하무백만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어디에서 강시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체력과 내공을 충분히 회복한 후 가야 합니다.”

계속된 동주산의 설득에 연백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를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잠시 후 곤혹스러운 얼굴의 하오문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뭐냐?”

연백량의 목소리에는 언짢음이 가득했다.

“저, 송구합니다만…….”

“응?”

연백량의 눈썹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시작부터 송구하다니.

이런 경우 항시 분노를 터트리게 되어 있었다.

“놈들의 종적을 놓쳤습니다.”

“뭐라?”

역시나.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네 곳으로 나누어서 산월장성 너머의 낌새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동시에 습격을 받았다 합니다. 하루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원래 있던 곳과는 다른 곳이었고……. 놈들이 있던 곳으로 갔을 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고 합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는 하오문도.

그 말에 연백량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제 지척인데, 종적을 놓쳤다니.

“흔적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장성을 넘어 성벽 주변의 흔적을 확인한 결과 마림 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합니다.”

“추적은?”

“죄, 죄송합니다. 강시들의 위협 때문에 성벽에서 십 장 이상 떨어진 곳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오문도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쓸모없는 버러지들.”

연백량이 분노를 담아 중얼거렸다.

그 말에 허리를 숙인 하오문도는 이를 악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그 모습이 연백량에게 보이지 않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깟 감시도 제대로 못해서 종적을 놓쳐? 그리고 무서워서 추적도 못 해? 하. 어이가 없어서. 이런 놈들을 믿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니…….”

“돌아가시지요.”

그때 연공후가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뭐라?”

짝!

연백량이 그대로 연공후의 뺨을 후려쳤다.

격노한 손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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