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97화 (97/312)

97화. 허어… 허허허

하무백의 말에 공손무외는 내공을 안력에 집중했다.

지금도 충분히 집중하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함이었다.

사실 지금 요혈에 침을 꽂은 의미조차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자리는 분명 혈맥을 보하는 곳이었지만, 어느 자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심지어 위험한 자리이기도 했다.

하무백은 시침을 마친 후 궁소유의 맥문을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공을 밀어 넣었다.

내공이 움직이는 길은 하무백의 사문의 독문 심법, 무극여의심법의 경로를 따랐다.

그러면서 요혈에 놓인 침들과 하무백의 내공이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그 후에야 하무백이 침을 놓은 자리들이 비로소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다만 공손무외로서는 그것을 알 방도가 없었다.

내공의 흐름을 알아볼 방법이 없었으니.

다만, 하무백이 내공을 흘려 넣은 다음 침에 변화가 생겼음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공손화경과 공손비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유곡의 혈족 세 사람은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궁소유의 상태를 살폈다.

“으음…….”

잠들어 있는 궁소유의 입에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혈맥이 자극받아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침과 내공의 상호 작용으로 현재 막히고 약해져 있는 혈맥 아홉 곳에 골고루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렇게 얇아지고 약해진 혈맥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분명 이전보다는 좋아졌다.

그렇게 일각 정도 흘렀을까.

하무백이 궁소유의 맥문에서 손을 놓았다.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 말에 위지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구나. 오늘도 이만하면 충분히 무리했다.”

하무백이 침을 모두 거둬들이고 뒤로 물러선 후 공손무외가 궁소유의 맥을 잡았다.

그리고는 곧 두 눈을 부릅떴다.

진맥 한 번으로 궁소유의 혈맥에 생긴 변화를 알아차린 것이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혈맥이 너무 약해져 있었습니다. 해서 오늘은 아주 조금만 혈맥을 보했습니다. 상태가 들쭉날쭉한 혈맥들을 모두 균일한 상태로 맞추는 정도까지만 진행했습니다. 이 이상은 혈맥이 기운을 버티지 못할 거라서요.”

하무백이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공손무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끔벅였다.

흡사 백치가 된 듯한 모습이다.

공손무외가 궁소유의 맥을 놓고 물러서자, 공손화경이 딸의 맥을 잡았다.

그 반응은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반응이었다.

“허어… 허허허.”

공손무외는 그저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네요. 이게 이토록 간단히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니…….”

공손화경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딸이 혈맥 아홉 곳의 상태를 균일하게 만들어 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도가 있었던가.

그 모든 것이 실패했다.

그런데 눈앞의 사내는 그것을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저희 사문의 심법이 가진 공능이 침술과 함께 작용한 덕이지요.”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거기에 더 캐묻지를 못했다. 사문의 심법이라 하니. 어찌 더 묻겠는가.

“무백의 말대로 정말로 운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자를 치료할 수 있었지요.”

위지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구음절맥도 칠음절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이니, 시일이 걸리더라도 치료할 수 있겠군요. 이틀에 한 번씩 이렇게 치료받으면 될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위지군의 말에 공손무외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만, 잘 먹는 것 또한 중요한 치료입니다. 당분간 약은 쓰지 마시고 먹는 것만 잘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위지군의 당부에 공손무외가 답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하무백과 위지군이 떠났다.

그 자리에 남은 공손가의 삼대는 멍한 얼굴로 궁소유를 바라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너는 알겠더냐?”

공손무외의 물음에 공손화경은 고개를 저었다.

“상리를 벗어난 자리에도 시침을 했어요. 저로서는 알 수가 없었어요.”

공손화경의 대답에 공손무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연구는 해 봐야지.”

공손비연이 지필묵을 꺼내 인체의 그림을 그리고 침이 놓였던 자리를 표시했다.

수없이 많은 침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 모든 자리와 순서를 기억했다.

그것은 공손무외와 공손화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각자 기억을 비교하며 정확한 자리를 복기했다.

그리고 장고에 들어갔다.

순서와 자리가 가진 의미를 깨우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음…….”

궁소유가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났다.

두 시진은 흘러 있었다.

“치료는 잘 끝난 건가요?”

궁소유가 어머니를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

“네가 더 잘 알게다.”

공손화경의 말에 궁소유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 몸이 가볍기는 해요.”

“완치될 것 같구나.”

공손무외의 말에 궁소유의 두 눈에서 주루룩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까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도 그랬지만, 다시 한 번 눈물이 흘렀다.

할아버지가 저리 말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이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을 만들었다.

“치료받는 동안 고통스럽지는 않았니?”

공손화경이 조심스레 물었다.

“깊이 잠들어 있어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궁소유의 대답에 공손화경은 고개를 작게 끄덕인 후 그녀를 안아 주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

“소공녀가 무창으로 향했다 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궁도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유곡을 나왔다고? 왜?”

짜증 섞인 물음이었다.

선유곡에서도 조카를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보고에 그는 희망에 부풀었었다.

궁소유는 만물련의 련주인 궁무혁의 무남독녀 외동딸.

유일한 후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구음절맥으로 명을 달리한다면, 만물련주의 후계자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순위는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궁도혁은 궁소유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

형 궁무혁은 만물련 사상 최고의 천재였다.

덕분에 만물련은 현재 더 없는 성세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궁무혁은 몸이 약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약한 몸이 족쇄가 되어 그 재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가인 선유곡에서 전력을 다해 그의 몸을 돌보고 있기에 그나마 이 정도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건강은 훨씬 더 나빴을 것이다.

허약한 몸으로 인해 궁소유의 동생을 가지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그녀도 얼마나 힘들게 얻었던 자식이었는가.

련주는 몸이 약했고, 그 후계자는 구음절맥이다.

이 상황이 궁도혁으로 하여금 야망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 야망을 적당히 부추긴 이들도 있었다.

“무창에 구음절맥을 치료할 방도가 있다는 것 같습니다.”

수하의 대답에 궁도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중원 최고의 의술을 지녔다는 선유곡에서도 불가능한 일이거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궁도혁이 스산한 목소리로 수하에게 물었다.

“그것이… 공손무외가 먼저 무창으로 간 후 소공녀를 그곳으로 불러들였다 합니다.”

돌아온 대답에 궁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선유곡의 곡주인 공손무외가 허튼 일을 벌일 리는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톡. 토토톡.

손가락으로 서탁을 두드렸다.

그가 고민에 빠질 때면 보이는 습관이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봐.”

궁도혁의 지시에 수하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골치 아프군.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라 여겼는데…….”

짜증 섞인 목소리다.

궁도혁의 시선이 벽에 걸린 족자로 향했다.

복잡한 기호와 수식이 얽혀 있는 족자다.

무언가의 일부를 그린 듯한 것.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저것이 전부였다.

“만천금쇄폭뢰(萬天禁碎爆雷)라…….”

궁도혁이 중얼거렸다.

벽에 걸린 족자는 만천금쇄폭뢰 설계도의 일부였다.

궁도혁이 얻을 수 있는 한계.

만천금쇄폭뢰는 개인용 암기였다.

정확히는 폭약을 사용한 암기로, 그 위력은 개인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엄청났다.

지난 전쟁 때 완성했다면, 전황을 바꿨을 물건이다.

하지만 완성된 것은 고작 이 년 전.

전쟁이 끝난 후의 일이다.

원래 만물련에 있던 만천혈뢰(萬天血雷)라는 암기를 개량하여 만든 물건이다.

말이 개량이지, 거의 새로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엄청난 일을 해낸 이가 바로 궁무혁이다.

괜히 천재라 하는 게 아니다.

궁무혁은 본인이 만들고도 그것의 엄청난 위력에 곧바로 만천금쇄폭뢰를 봉인했다.

시제품으로 만든 것 단 하나만 존재한다.

그것은 궁무혁이 항시 지니고 있었고, 설계도는 모두 다섯 개로 나누어졌다.

온전한 설계도는 궁무혁의 머릿속에만 있을 뿐, 기록으로 남긴 것은 다섯 조각으로 찢어져 누가 가졌는지도 모른다.

궁도혁이 그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궁도혁이 그 설계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은근히 접근해 왔다.

그리고 설계도에 대한 이야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어쩌면 다음 만물련주는 그가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야망의 씨앗을 그저 심었을 뿐이다.

궁무혁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궁소유의 구음절맥이 점차 진행될수록.

놈들은 더 자주 궁도혁을 찾았고, 야망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했고, 궁도혁은 이제 당연히 자신이 만물련주가 되어야 한다 여기고 있었다.

이쯤 이르자 그들은 야욕을 드러냈다.

어제 처음으로 만천금쇄폭뢰에 대해 언급했던 것이다.

다만 그들도 저 족자가 설계도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연했다.

궁무혁이 만든 암호의 해독법을 모르면 읽을 수 없게끔 만들어진 설계도였으니.

그저 난해한 기호와 도형의 족자로만 보인다.

궁도혁은 궁무혁에게 설계도를 받을 때 암호의 해독법을 배웠다.

“내가 련주가 된다고 해서 다른 네 개의 소재를 알 수 있을까?”

궁도혁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신의 형이라면, 다섯 개의 설계도 모두 다른 암호로 숨겼으리라.

놈들의 목적대로 쉬이 설계도를 손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궁도혁은 요즘 강렬한 유혹을 느꼈다.

그들의 손을 잡으라는 마음속 욕망의 목소리.

그는 이미 그들의 음모에 완벽히 빠져 있었다.

***

“련주의 건강은 좀 어떠냐?”

깊은 밤.

궁소유가 잠에 빠져든 이후 공손무외가 딸에게 물었다.

공손화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계속 약해지고 있어요. 원인을 알 수가 없어요… 본디 약한 체질을 타고 났다고는 하나, 최근에 더 심해져서.”

딸과 남편의 건강이 모두 나빴다.

“곡으로는 오지 않겠다더냐?”

공손무외의 물음에 공손화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유만 잘 돌봐달라 해요.”

“흐음.”

공손무외가 고민 가득한 신음을 흘렸다.

“지유가 완치된다고 하더라도 궁 서방이 그 꼴이면…….”

련주라는 호칭이 궁 서방으로 바뀌었다.

어쨌든 그의 사위 아니던가.

“걱정이에요.”

공손화경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후우. 선유곡이 중원 최고의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우습구나. 사위와 손녀도 제대로 치료를 못 하고 있거늘.”

공손무외가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혹시 대인이라면 어떤 방도가 있을까요?”

작은 기대를 가지고 공손화경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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