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방법이 있겠습니까?
“장인어른. 정말 이곳에 제가 살 방도가 있습니까?”
궁무혁이 심각한 얼굴로 무창을 바라보며 물었다.
공손무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진맥한 결과가 맞다면, 자네가 살 방도는 저곳에 가는 것뿐이네.”
궁무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저 최근 허약하던 자신의 체질이 더 쇠약해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여명이 불과 1년이라니.
충격적인 진단이었다.
어느 의원도 그리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조차, 도무지 원인을 모르겠다고만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장인이 자신의 맥을 잡아보더니 남은 생명이 불과 1년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궁무혁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처음에는 불신했다.
그러나, 자신의 장인이 누구던가.
무려 선유곡의 곡주다.
중원제일의 신의라 칭송받는 이가 아니던가.
그런 장인의 말이다. 허언일 리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인 후 찾아온 감정은 절망이었다.
남들보다 몸이 약한 체질이라 여겼건만, 그게 아니었다니.
그때 공손무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었다. 살 방도가 있으니 함께 가지 않겠냐고.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오직 그 말뿐이었기에, 고민 끝에 궁무혁은 함께 무창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 연유를 말씀해 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궁무혁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일단 화경이와 지유를 만난 후 이야기하세.”
답답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궁무혁은 그리 답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마차는 천천히 움직여 무창의 성문을 지나쳤다.
주변으로는 만물련에서 나온 호위무사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련주의 원행이었기에 당연한 일이다.
다만 공손무외는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미리 일러 두었기에 마부는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 들어가 객잔 앞에 마차를 세웠다.
공손무외는 궁무혁과 함께 별채로 들어섰고 십여 명의 호위무사가 그 주변을 에워쌌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으나, 공손무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별채 입구.
공손무외는 우뚝 멈춰 서서 호위무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안에는 우리 가족들뿐이네. 자네들은 별채 밖에 대기하게.”
“그럴 수는 없…….”
호위단의 단주가 즉각 반발했으나, 궁무혁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별채 안에는 부인과 딸, 조카가 전부네. 나도 조용히 있고 싶군.”
궁무혁의 말에 호위무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별채를 에워쌌다.
밖의 소란에 공손화경과 공손비연이 별채 밖으로 나왔다.
“아버님…….”
남편과 함께 나타난 공손무외의 모습에 공손화경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들어가자.”
궁소유는 잠에 빠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혈색이 좋아 보였다. 궁무혁은 대번에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많이 건강해졌군요.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궁무혁이 쇠약해진 몸으로 꾸벅 허리를 숙였다.
“내가 한 게 아닐세.”
“네?”
“내가 할 수 있으면, 곡에서 치료를 했지, 어째서 이 먼길을 달려 왔겠나. 그것도 아픈 지유를 데리고 말일세.”
“허면…….”
궁무혁이 의문에 휩싸인 눈으로 물음을 던졌다.
“일단 오늘은 푹 쉬게나. 여독도 풀어야 하고. 그 몸에 이번 원행은 상당한 부담이었을 터이니.”
“알겠습니다.”
궁무혁은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그렇지 않아도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온몸을 감싸오던 차였으니.
공손화경이 궁무혁을 자신이 머무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무슨 일인가요? 할아버지.”
공손비연이 조심스레 물었으나, 공손무외는 굳게 입을 닫고 있을 뿐이다.
***
하무백과 위지군이 객잔 앞에 서서 입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제법이구나.”
위지군이 말했다.
“어제 들어왔을 때부터 나쁘지 않게 움직이더군요.”
하무백이 사부의 말에 답했다.
두 사람은 이미 전날 공손무외가 무창에 들어올 때 그 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서 온 이들이더냐?”
“만물련입니다. 공손 곡주가 만물련으로 갔는데, 그곳 사람들과 함께 온 모양입니다.”
하무백은 지난 전쟁에서 만물련의 무사들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기감으로 그들이 만물련에서 왔음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유독 기가 약한 이가 하나 있는데… 아마 그 때문이겠구나.”
위지군은 궁무혁의 기감을 정확히 알아차렸다. 그가 현재 정상의 상태가 아님도 알았다.
“아마도 만물련주인 듯 합니다. 그때문에 공손 곡주가 만물련으로 갔던 것인데… 치료 방도를 찾지 못한 모양입니다.”
“대체 무슨 일인 것인지… 가보자꾸나.”
위지군이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객잔 정문을 들어서 후원으로 향하는 통로로 갈 때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선유곡의 사람들이 머무는 별채가 있는 길로 가려 할 때.
“멈추시오. 이곳은 갈 수 없습니다.”
만물련의 호위단이 하무백과 위지군의 걸음을 막아섰다.
그들의 제지에 하무백과 위지군은 일단 멈춰 섰다.
괜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그만두게나. 두 분 다 내 손님이시니.”
그때 별채의 문이 열리며 공손무외가 나타나 그들을 말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련주님께서도 함께 계십니다. 련주님께서 계시는 이상 저희는 저희의 임무를 다할 뿐입니다.”
단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만두게. 장인어른 손님이라시지 않는가.”
그때 궁무혁까지 밖으로 나와 호위단주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저희의 임무는 련주님의 안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외의 일은 모릅니다.”
단주의 대답에 하무백이 빙긋 웃었다.
자신의 예전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하무백 역시 호천단의 단주로 있을 때는 저런 모습이었다.
공손무외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로서는 궁무혁의 치료를 하무백과 위지군에게 부탁하려 했다. 그것도 저 호위단 모르게.
솔직히 현재 공손무외는 만물련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저희 련주님께서는 무공을 거의 익히지 않으시다시피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호위단주는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호위단주와 자신의 장인을 번갈아 보던 궁무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련주로서 명령하겠네. 이 각(약30 분) 동안은 아무도 안에 들어오지 말게나.”
“그, 그것은…….”
호위단주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어라 하려 했으나, 궁무혁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의 반론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하무백과 위지군은 별채 안에 들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각은 단 이 각.
물론 하무백과 위지군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저 호위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었으니.
“이렇게 모시게 되어 송구합니다.”
공손무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밖에서 들으셨겠지만, 이쪽은 만물련주입니다. 제 사위이기도 하지요.”
“궁무혁이라 합니다.”
비쩍 마른 체형의 병약한 얼굴을 한 사내가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하무백과 위지군이 마주 포권을 취했다.
“그러니까…….”
막 사연을 이야기 하려던 공손무외는 바깥의 동향을 살피며 주저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의 이야기가 밖에는 들리지 않을 겁니다.”
하무백이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한 후 그리 말했다.
하무백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었기에, 공손무외는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궁무혁은 태생적으로 허약한 체질은 맞았다. 하지만, 만물련의 독문무공도 익히고 있었고 나름의 수련도 했기에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랬으니 만물련의 암기도 개량하고 새로운 암기도 만들어낸 것 아니겠나.
하지만 지금 궁무혁의 상태는 달랐다.
“독(毒)입니다.”
“네?!?”
가장 놀란 이는 궁무혁이었다.
독이라니.
만물련의 련주인 자신이 만물련에서 중독이 되었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제 진맥 결과는 독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독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증상은…….”
잠시 뜸을 들이는 공손무외.
“절맥증과 같았습니다.”
“?!?”
궁무혁은 더 놀랄 기력도 없는 듯한 표정으로 공손무외를 바라보았다.
“절맥증을 유발하는 독이라는 것이…….”
하무백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중독의 흔적이 있으며, 현재 그 증상은 절맥증입니다. 본 곡의 대라조화심의결(大羅造化心醫訣)을 운용해 찾아낸 중독의 흔적이니, 독이 쓰였음은 틀림없습니다.”
대라조화심의결.
선유곡의 독문 심결로, 그 효용이 철저히 의술에 치중된 것으로서 무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의공(醫功)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내공을 환자의 몸에 흘려 넣어 병증의 원인을 찾고 치료하는 데에 특화된 심결이었다.
비록 절맥증에는 효용이 없었으나, 수많은 환자를 구한 심결이다.
하무백 역시 호천단 시절에 수하들이 그 도움을 받았다.
대라조화심의결로 진맥한 결과가 독이라 하니, 독이 틀림없을 터.
하지만 그 증상이 특이했다.
절맥증이라니.
“최근에는 독이 쓰인 징후가 없습니다. 이미 절맥증이 유발되었으니, 더 이상 하독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저로서는 만물련의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련주가 만물련 한가운데서 중독이 되었으니까요.”
“그런…….”
궁무혁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장인이 보인 행동이 납득되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리 행동한 것이리라.
“해서 두 분께서 봐주셨으면 하고 이리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부탁의 말을 마지막으로 공손무외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마음이 급한 것인지, 빠르게 말을 해 이제 겨우 일 각이 흘렀을 뿐이다.
“어디 봅시다.”
위지군이 먼저 나서서 궁무혁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기를 잠시.
“분명 절맥증과 유사한 증상이로군요. 하지만 절맥증은 아닙니다. 그 어떤 독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 저주받을 천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다만, 현재 상태가 극히 나쁜 것은 분명하군요.”
위지군이 하무백에게도 진맥해보라 눈짓했다.
하무백이 궁무혁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본인의 내력을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분명 절맥증처럼 보였으나 달랐다.
혈맥의 상태가 훨씬 더 처참했다. 은은하게 스며든 독기 때문이리라.
하무백은 미세하게나마 궁무혁의 혈맥에서 독기를 느꼈다.
이러니, 공손무외가 독이라 확신한 것이다.
위지군 역시 이 독기를 느꼈을 터.
독기로 약해진 혈맥에 탁기가 쌓이면서 혈맥이 점점 좁아져 가고 있었다.
그 형태만 보면 여지없는 절맥증이었다.
다만 절맥증은 지나친 음기나 양기 때문에 혈맥이 약해지면서 막히는 병증.
엄밀히 따지면 원인 자체가 달랐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공손무외가 조심스레 두 사람에게 물었다.
궁무혁 역시 긴장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건… 고민을 좀 해봐야 할 듯 합니다.”
위지군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만 곡주께서 섣불리 손대지 않으신 것은 잘하신 듯합니다. 혈맥 곳곳에 독기가 스며 있어 함부로 손을 댈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위지군의 대답에 공손무외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역시. 대인이시라면, 독의 흔적을 느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유곡의 독문 심결을 사용해서 겨우 감지한 독이었다.
그것을 저들 사제는 진맥만으로 손쉽게 알아냈다. 그 사실에서 공손무외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이 각 되었습니다.”
그때, 밖에서 호위단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