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뭐하냐?
그 목소리에 공손무외가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마음에 들지 않는 호위단주였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무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자정에 다시 뵙도록 하지요.]
그리고 전음으로 전하는 말.
궁무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공손무외는 눈빛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렇게 하무백과 위지군이 떠났다.
***
“음…….”
남궁지후는 고민에 가득한 얼굴로 검을 내려다보았다.
일전에 하무백과 가졌던 단 한 번의 비무.
그 뒤로 다시 도전하려 했지만, 그때 그가 던진 화두를 아직 풀지 못했기에 계속해서 고민할 뿐이다.
“아직도 고민 중인 거야?”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남궁지후가 고개를 돌렸다.
누나인 남궁지유였다.
“허점을 만들라는 게… 나보다 약한 상대라면 쉬운 일이지만, 나와 수준이 비슷하거나 나보다 강한 상대라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임이 가득한 목소리.
“후우.”
남궁지유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답을 찾아가야지. 무작정 완벽한 답을 찾은 후 움직이려 하니 더 길이 안 보이는 거야.”
남궁지유의 조언에 남궁지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답답해서 말해주는 거야. 너는 늘 그랬어. 항상 완벽하다고 판단된 뒤에 움직였지. 때론 그게 완벽하지 않을 때도 움직여야 해. 그 녀석들처럼.”
덧붙인 남궁지유의 말.
그녀가 지칭한 그 녀석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랬다.
당시의 그들은 불완전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자신의 패배.
“그리고. 네 수준에서는 완벽하지 못한 게 당연한 거야. 아니 세상에 완벽이라는 게 존재할까?”
그 말을 남기고 남궁지유가 자리를 떴다.
남궁지후는 누나에게 또 다른 화두를 받아 버렸다.
스스로는 완벽이라 여겼지만, 세상에는 그런 것은 없다는 말.
남궁지후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의 작은 세계가 그와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얼마간 충격에서 허우적거리던 남궁지후는 벌떡 일어났다.
“그래. 일단 부딪혀 보자.”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더라도 움직여보라는 누나의 조언.
그걸 당장 실천해볼 생각이었다.
하무백이 있는 맹룡대의 연무장. 남궁지후의 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단단히 마음먹고 왔건만 연무장에 하무백은 없었다.
대신 맹룡대 칠 조와 이십 조의 생도들이 뒤얽혀 대련을 하고 있었다.
지금 대련을 하고 있는 이는.
‘단목운뢰. 그리고 주우명.’
무당의 제자인 주우명은 자신 역시 우열을 장담할 수 없는 실력자라 들었다.
단목운뢰는 지난 하투제에서 한 번 겨뤄 봤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한다면, 주우명의 압승이 예상되었다.
“응? 지후? 어쩐 일이야?”
다들 두 사람의 대련에 집중해 있던 사이, 당진산이 용케 남궁지후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 그게…….”
막 하 교관의 소재를 물어보려던 차에 당진산이 그를 잡아끌었다.
“뭐, 그건 천천히 이야기하고. 지금 한창 재미난 판이니까 이쪽으로 와.”
남궁지후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의 손에 이끌려 갔다.
당진산은 겪을수록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였다. 저 친화력은 당최 적응이 안 되었으니.
그렇게 남궁지후는 주우명과 단목운뢰의 대련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곧 두 눈을 부릅떴다.
단목운뢰의 실력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기도 했지만, 그가 보이는 움직임에서 번뜩이는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뭐하냐?”
그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하무백이었다.
“어? 오늘 자율 수련 아니었나요?”
하무백의 등장에 당진산이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최근 하무백이 자주 자리를 비웠기에 오늘 다시 나타난 것은 상당히 특이한 일이었다.
“뭐, 그렇게 됐다. 그나저나 뭐하냐?”
주우명과 단목운뢰의 대련이 막 주우명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게, 한 교관님께서도 자율 수련을 하라 하셔서.”
당진산의 대답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신이 다른 교관에게 뭐라 할 입장이 아니었으니.
“그럼, 얘는?”
하무백이 턱 끝으로 남궁지후를 가리켰다.
생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남궁지후에게로 향했다. 그제야 남궁지후의 존재를 인식하는 이도 있었다.
“교관님을 뵈러 왔습니다.”
“무슨 일로?”
“대련을 청합니다.”
남궁지후가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그 말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는데?”
남궁지후와 대련을 했던 것이 부관주가 막 부임했을 무렵이니 한 달도 더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자주 찾아올 것 같이 굴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답은 찾았고?”
하무백의 물음에 남궁지후가 고개를 저었다.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부딪혀 보려고 왔습니다.”
그 말에 하무백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나쁘지 않군. 좋아. 들어와.”
하무백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연무장의 가장자리였다. 대련을 펼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장소.
남궁지후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지 않았던가.
장소가 무슨 상관인가.
그리 생각하고 검을 뽑았다.
그러자 생도들이 황급히 거리를 벌려 자리를 만들었다.
그때 남궁지후가 땅을 박차고 검을 휘둘렀다.
조금 전 주우명과 단목운뢰의 대련에서 단목운뢰가 그랬듯.
단목운뢰는 그의 수준에서는 허점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것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남궁지후는 자신 역시 지난번과는 다르게 변화를 먼저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검을 움직였다.
창궁무애검의 초식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지난 하투제에서 이미 한 번 상대한 적이 있는 검법이었지만, 그 사이 위력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생도들의 입장.
하무백의 시선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하무백은 한 발을 내딛는 것으로 남궁지후의 검격을 간단히 피했다.
그리고.
딱!
이번에도 남궁지후의 이마에 터지는 딱밤.
“윽!”
남궁지후는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지난번에는 이마를 감싸 쥐고 주저앉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미 한 번 겪어본 고통.
검을 다시금 휘둘렀다.
한 번 피한 검이 다시금 하무백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모습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다시 움직인 하무백의 손끝.
딱!
정확히 같은 자리를 다시 두들긴 딱밤.
“아악!”
이번만큼은 남궁지후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검을 놓치고 주저앉았다.
양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는 남궁지후.
벌써 이마가 새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제법이네. 한 대를 버티다니.”
하무백의 말에 주저앉아 있던 남궁지후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꾸벅 인사를 했다.
칠 조의 생도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자신들을 상대할 때와 남궁지후를 상대할 때의 모습을 보자면 전혀 다른 무인이었다.
“우리한테는 나름 수준 맞춰서 많이 봐주는 거였네…….”
당진산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저기에 맞으면 어떨까?”
낙우진의 물음에 다들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무백의 시선이 그런 생도들에게로 향했다.
“왜? 맞아 보려고?”
그 물음에 다섯 생도는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저, 저도 가르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주우명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하무백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주우명은 즉시 검을 뽑아 들고 몸을 날렸고, 그 역시 딱밤 두 대에 무너졌다.
***
자정.
하무백이 언질을 준 시간이다.
만물련의 호위단은 여전히 객잔의 별채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일부는 잠을 잘 법도 하건만, 깊은 밤에 오히려 모두 깨어 있었다.
낮 시간에 교대로 수면을 취했다.
하무백이 객잔의 지붕 위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무심하게 별채를 내려다보았다.
근처에 하무백이 나타났음에도 그의 기척을 감지한 이는 호위단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봐도 제법이야.”
정말로 철저히 훈련을 받고, 그대로 행동하는 호위의 모범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렇다고 해서 하무백이 저들의 경계에 막힐 일은 없었다.
무극여의보법.
주변 환경에 완벽히 동화할 수도 있는 이 보법은 변화가 현묘하기도 하였지만, 잠행에도 뛰어났다.
하무백은 완벽히 어둠에 동화하여, 호위단의 경계망의 허점 사이로 유유히 움직였다.
그리고 아무런 흔적도 없이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무백의 모습이 나타나자 공손무외가 나직이 말했다.
궁무혁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런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허. 호위진이 이토록 쉽게 뚫릴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직접 고민하여 만든 배치인데…….”
궁무혁은 심사가 복잡한 얼굴이었다.
과하게 자신을 지키려는 호위들을 하무백이 뚫고 들어온 데 대한 반가움과, 자신이 고안한 호위진이 파훼된 것에 대한 실망감.
“훌륭한 배치였습니다. 어지간한 무인은 아무 흔적 없이 파고드는 것이 불가능할 겁니다.”
하무백이 그리 말했으나, 이미 뚫어버린 사람의 말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하 단주는 능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분이네. 자네도 알지 않은가.”
만물련의 련주인 궁무혁은 역시 하무백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고안한 호위진에 자신이 있었기에 설마 설마 했거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지요. 련주님의 치료가 먼저입니다. 오늘 소유도 치료를 못 했었고요.”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으니.
“이쪽으로 가세나.”
궁소유는 이미 잠에 빠져 있었다. 일단 궁무혁을 먼저 보기로 했기에 그가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그래 방도가 있겠는가?”
공손무외가 물었다.
“독기를 빼내야 합니다만. 현재 혈맥의 상태로는 독기를 빼는 과정을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일단 혈맥을 튼튼히 하는 것부터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사부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십니다.”
공손무외의 생각에도 그것이 순리였다.
다만 그는 혈맥을 튼튼히 할 방도가 없었다. 오음절맥과는 또 다른 양상이었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처방대로 함부로 약재를 쓸 수도 없었다.
“가능하겠는가?”
공손무외의 물음에 궁무혁 역시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사부님과 논의를 해본 결과, 일단 이론상으로는 가능할 듯합니다.”
이제 공손무외의 시선은 궁무혁에게로 향했다.
치료를 받은 환자는 그였으니, 그가 결정할 문제였다.
“어차피 제 여명은 일 년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방법이든 시도해봐야죠. 그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시면.”
궁무혁은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답했다.
방도가 하나밖에 없기에, 그는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궁무혁이 나신이 된 채 침상에 누웠다.
하무백이 수혈을 짚어 그를 재운 후 온몸에 빽빽하게 침을 놓았다.
흡사 고슴도치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단목운혜나 궁소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침이 놓였다.
혈이 있는 곳은 물론이고 혈이 없는 곳까지 모두 침이 꽂혀 있었다.
공손무외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자신의 의술 안에는 없는 방법이었다.
하무백이 궁무혁의 손목을 잡고 내공을 밀어 넣었다.
그야말로 미약하게.
무극여의심법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스레 궁무혁의 혈맥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