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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01화 (101/312)

101화. 정말 고맙네

‘대체 이건 무슨 독기인거냐?’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혈맥에 얇고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독기의 느낌이 지독했기 때문이다.

하무백이 비록 독에 대한 조예가 없다고는 하지만, 지금 궁무혁의 혈맥에 자리한 독이 그 어떤 독보다 악독하고 지독한 종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미약한 내기로 혈맥 일부를 감싸 서서히 독기를 태웠다.

“크윽.”

궁무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작은 부분에 극도로 조심하며 독기를 제거하고 있는데도 이렇다.

하무백의 이마에 주름이 늘었다.

사부와 의논할 때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건 예상보다 더했다.

거기에.

‘독기가 도망치려 한다.’

마치 의지라도 있는 양 하무백의 내공이 독기를 태워서 제거하자, 주변의 독기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려 했다.

그 움직임 또한 혈맥에 부담을 주었기에 궁무혁의 입에서 재차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만 독기들이 흩어지지 못한 것은, 미리 시침한 침들 때문이었다.

혈맥의 독기들을 고정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하무백도 위지군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앞으로 좀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원하시면 재워드리겠습니다.”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궁무혁은 미세하게 고개를 젓는 것으로 그 제안을 거부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하무백이 다시금 독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주 작은 부분을 얇게 감싸고, 내공으로 태운다.

치익.

하무백의 귀에는 마치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크으윽.”

실제로 들리는 것은 고통을 참으려는 궁무혁의 신음소리 뿐이었지만.

무극여의심법의 묘리에 따라 혈맥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고통은 심하되 혈맥은 무사했다.

그렇게 두 시진이 흘렀다.

궁무혁은 물론이고 하무백의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후우…….”

하무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을 모두 뽑았다.

“정말 고맙네. 고생했어.”

공손무외가 땀을 닦을 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치료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기에 하무백이 어떤 고생을 했는지 충분히 알았다.

“아닙니다. 련주님이 대단하신 거죠. 그 과정을 모두 참아내시다니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궁무혁이 피식 웃었다. 그와 동시에 입에 물고 있던 천이 침상으로 툭 떨어졌다.

통증을 참기 위해 이를 너무 심하게 악물었기에, 지켜보던 공손무외가 중간에 물린 것이다.

궁무혁의 몸에 있는 땀은 대부분 고통을 참는 과정에서 나온 식은땀이었다.

“왼팔 팔꿈치까지의 독기는 모두 제거했습니다. 이 정도로는 별 차이를 못 느끼시겠지만요. 혈맥은 여전히 좁아져 있는 상태이고요.”

하무백이 치료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손무외와 궁무혁이 동시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다만 저 혼자서는 무리일 듯합니다. 사부님께 말씀드려서 다음부터는 함께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이 힘겹게 침상에서 일어나 깊게 허리를 숙였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 기연을 만난 것인지 잘 알았기에.

“곧 동이 틀 듯하군요. 아무래도 소유의 치료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듯싶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공손무외와 궁무혁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하무백이 조용히 사라졌다.

하무백이 스며들었을 때부터 떠날 때까지 호위단 그 누구도 그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저를 치료해주는 것도 그렇지만… 만물련의 최정예로 구성된 호위단의 무사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니…….”

궁무혁의 말에 공손무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백도회에서 그를 극도로 견제하는 게 아닌 게야.”

***

“좋아.”

기유찬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엄청난 서류 더미를 정리해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갈 곳은 뻔했다.

보고 하러 상급자를 찾는 것.

그의 상급자는.

“후우. 그건 또 뭔가?”

부관주 연백진이었다.

팽도율은 아직도 팽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아주 중요한 서류입니다.”

“자네가 가지고 오는 것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 않은가?”

연백진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기유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씀드렸잖습니까? 아주아주 중요하다고요.”

당당한 기유찬의 대꾸에 연백진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동투제에 대한 사항들을 전부 정리한 서류입니다.”

기유찬이 서류의 내용에 대해 말했다.

“동투제?”

연백진이 되물었다.

연가는 교룡관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그 행사 하나하나가 생소했다.

“하투제 같은 것인가?”

그나마 그간 처리한 일 덕분에 하투제는 알고 있었다.

그가 부관주로 오기 전의 일이었지만, 아직 거기에 대해 처리할 사소한 일들이 남아 있어 몇 가지 보고서가 올라왔었기 때문이다.

“네.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하투제라면, 후반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동투제입니다.”

“그러면 개최일이 동지겠군.”

“그렇습니다. 교룡관의 일 년을 마무리하는 큰 행사이니 아주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기유찬이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말했다.

“알겠네. 후우.”

연백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마어마한 서류 더미를 받아 들었다.

그의 곁에는 비슷한 양의 서류 더미가 이미 네 개가 있었다.

“그만큼 급한 것이니 빠른 결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연백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아직 할 일이 잔뜩이야!!”

결국 연백진이 폭발했다.

엄청난 업무를 자신에게 밀어붙이는 이가 바로 연백진이었기 때문이다.

“그거 전부 제가 정리해서 올린 보고서들입니다만…….”

연백진이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저 말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보고서 작성에 훨씬 많은 시간이 드는데, 검토하고 결재만 하면 되는 부관주의 일 처리가 어찌 자신보다 늦냐는 힐난 아닌 힐난이었다.

“후우…….”

답변이 궁색해진 연백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마어마한 업무 처리 능력을 자랑하는 저 미친 인간 때문에…….

그러다가 문득 관주에게 생각이 미쳤다.

팽도율 역시 자신과 비슷한 곤란을 겪었을 것 같은데, 교룡관에서 지내보니 자신만큼 격무에 시달리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관주였지만, 다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랬다.

“관주님은 이 많은 업무를 어찌 처리하셨나?”

“제가 전결로 처리하였습니다.”

그 말에 연백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전결이라니.

결국 관주가 아닌 기유찬이 모두 결재했다는 것 아닌가.

“허면 나는 왜…….”

“관주의 부재 시, 관주를 대리해 전결할 권한은 오직 ‘부관주에게만’ 있다…가 관칙입니다. 관주께서 자리를 비우는 순간부터 저는 전결할 권한이 없습니다.”

기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아. 빌어먹을 관칙 같으니라고.”

그래서 그렇게 어마어마한 서류 더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알겠네. 알겠어. 최대한 빨리 처리할 터이니 기다리게.”

그렇게 연백진은 다시금 서류 더미에 파묻었다.

미친 듯이 몰려드는 업무량 덕에 가문의 일에는 신경도 못 쓰고 있었다.

이것이 어쩌면 그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복잡한 심사를 빨리 잊을 수 있었으니.

***

“련주가 무창에 당도했다 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궁도혁이 얼굴을 찡그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하루하루 쇠약해져 가던 형.

갑자기 선유곡주가 찾아와 형을 진맥하더니 다짜고짜 형을 데리고 련을 떠났다.

련주를 말이다.

궁도혁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기에, 사람을 붙였다.

아니, 애초에 형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이들 중에서도 자신의 사람이 있었고.

그랬기에 일단 궁무혁의 행적에 대한 보고가 정기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무창에서 특이 사항은?”

“그것이… 두 사람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하나가?”

“하무백이라 합니다.”

그 말에 궁도혁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갑자기 그놈 이름이 왜 나와?”

궁도혁의 짜증에 수하는 고개를 숙였다.

보고를 하는 그로서는 자신의 주인이 왜 저리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무백이라는 이름을 전달받고 조사해보았으나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로는 그가 호천단주였다가 지금은 교룡관 교관이라는 것이 전부였으니.

“후우. 그래. 만나서 뭘 한 거지?”

“그것이… 련주님의 명령으로 호위단 누구도 함께 있지 못했다 합니다. 하무백이 련주님을 만난 시간은 이 각 정도라 합니다.”

궁도혁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갑자기 찾아온 선유곡주에, 이번에는 하무백이라는 괴물이 형을 만났다.

그의 진정한 정체를 아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가 궁도혁이었다.

궁무혁이 엄청난 무인이 있다며 이야기를 해줘서 알게 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형의 진지한 얼굴에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뒀다.

정천맹에서 실각하여 교룡관에 가 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형을 만나다니.

‘형이 대체 왜…….’

궁도혁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형과 조카의 동향만 살피며 그 이후를 대비해 련의 사람들을 자신의 휘하로 흡수하고 있을 뿐.

다른 한 가지라면 가끔 그들과 만난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무척 은밀히 행해졌기에 련 내에서 자신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예정에 없던 련주의 행보에 궁도혁은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제대로 조사해봐.”

“존명.”

궁도혁의 명령에 수하는 대답 후 조용히 물러났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제는 가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쌀쌀해진 날씨.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추운데 뭣들 하는 게냐? 어서 들어가지 않고?”

공손무외가 걱정 어린 얼굴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 말에 가만히 후원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던 일남일녀가 고개를 돌렸다.

궁무혁, 궁소유 부녀였다.

“그것이 찬 공기가 기분이 좋아서 말입니다.”

“네. 할아버지. 공기가 너무 상쾌해서…….”

두 사람의 대답에 공손무외가 빙그레 웃었다.

그럴 수밖에.

그만큼 두 사람이 건강해졌다는 방증이었으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만하면 되었다. 탕약을 먹을 시간이니 두 사람 모두 들어가자.”

공손무외의 말에 두 사람은 순순히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을 맞이하는 두 그릇의 탕약.

깔끔하게 비워낸 두 사람의 얼굴에는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살도 제법 오르고 혈색은 건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보기 좋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궁무혁과 궁소유가 깜짝 놀랐다.

지금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접객실에 빙그레 웃으며 서 있는 하무백의 모습은 그들이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님을 말해 주었다.

“어찌…….”

궁무혁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경계는 오히려 밤이 더 엄중합니다.”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호위단은 밤에는 전원이 전력을 다해 별채를 지키고 낮에 교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이 시간에는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건지요?”

공손무외가 물었다.

하무백이 별채에 올 때면 기막으로 소리를 완벽히 차단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말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소유와 한 약속을 지키러 왔지요.”

그 말에 다들 의문 띤 시선으로 궁소유를 바라보았다.

궁소유 역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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