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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05화 (105/312)

105화. 그게 꼭 필요한가?

10월의 마지막 날.

이제는 정말로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습한 날씨가 특징인 무창은 조금만 서늘해져도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여름의 더위는 지나가고, 가을의 선선한 날씨가 오는가 싶더니, 이제 겨울이 오려 하고 있었다.

하루해가 짧아지고 있음도 절로 실감이 되었다.

그런 변화에 잠룡대 칠 조 생도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이유는 하나다.

추워질수록, 해가 짧아질수록,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였으니.

동지.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

그러나 교룡관의 생도들에게는 동투제가 있는 날.

그랬기에 하루하루 흐를수록 생도들은 예민해졌다.

헌데, 요즘은 그런 생도들보다 더 예민한 이가 있었다.

하무백이다.

그랬기에 칠 조 생도는 오히려 그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도 하무백은 자신의 지정석에 인상을 잔뜩 쓰고 앉아 있었다.

생도들의 수련에 대해서는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하무백은 인상을 쓴 채 기감을 무창 전체에 퍼트리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되는 한계까지 최대한 넓게.

일부 지역은 무창의 경계 밖으로까지 하무백의 기감이 닿았다.

하무백으로서도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기감을 넓히는 일. 그러니 자연히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수련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감시라 할 수도 있었다.

마교의 버러지들이 혹시라도 더 무창에 들어와 있나 찾고 있는 것이었다.

마교 놈들은 지난 전쟁의 패배 이후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마기를 숨기는 법을 만들어낸 듯했다.

일전에 잡은 네 마리의 버러지들도 내공을 끌어올리기 전에는 마기를 느끼지 못했었으니.

결국은 그것들이 마기를 숨기는 방법도 꿰뚫고 살펴야 한다.

하무백에게는 그 방법이 있었다.

무극명륜안.

다만 무극명륜안은 상대를 직접 봐야 한다.

기감으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하무백은 그 부분을 마기만을 감지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상대의 내공의 연원을 꿰뚫어 보려면 직접 봐야 하지만, 무극명륜안을 응용해 상대의 마기만 탐지하는 것은 기감으로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래도, 한계까지 기감을 넓히고 거기에 동시에 무극명륜안의 일부를 운용하고 있었다.

아무리 하무백이라 해도 힘든 일인 것이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아직 하무백의 기감에 걸리는 마교의 잔당은 없었다.

하무백이 아는 놈들은 절대 이렇게 물러날 놈들이 아닌데.

기감을 거두며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바퀴벌레가 어딘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 찾지 못했을 때의 찝찝함 때문이다.

계속해서 안 좋은 쪽으로 변하는 하무백의 표정 때문에 다섯 생도는 각자의 수련에만 집중했다.

***

“여기 있다.”

궁도혁은 만천혈뢰 열 개를 삼령주에게 건넸다.

장부를 조작해 열 개의 폐기분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최소 한 달은 예상했는데, 그보다 훨씬 빠른 준비였다.

궁도혁이었기에 가능했다.

이미 만물련의 대소사를 모두 장악했기에.

“그럼, 그것은요?”

삼령주가 궁도혁의 가슴을 바라보며 물었다.

항시 품에 지니고 있을 절대의 암기.

만천금쇄폭뢰.

저것이라면 그 괴물의 한쪽 팔 정도는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삼령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궁도혁은 그런 삼령주의 눈빛을 정확히 느끼고 있었다.

만천금쇄폭뢰를 향한 저 간절함은 진짜였다.

자신을 이용하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묻지. 그가 정말로 이걸 사용할 정도인가?”

“애초에 우리가 만물련에서 부련주를 밀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을 얻기 위함이지.”

궁도혁의 대답에 삼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왜 그것을 필요로 할까 생각해본 적 없으실까요?”

왜 없을까. 수없이 고민했던 문제다.

저들은 왜 만천금쇄폭뢰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지금 이 순간 삼령주의 물음에 머리를 스치는 생각.

“설마?”

“그렇습니다. 그를 상대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여겼기에 설계도와 제작 방법을 구하려 했던 거고요.”

“…….”

궁도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제 수하들 중 그 누구도 무창에 들어서질 못하고 있습니다. 저조차도 감히 무창에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요. 무창 내의 정보도 하오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구하고 있다보니 솔직히 지금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힌 심정입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삼령주의 경지는 지난번 그가 자신을 향해 위협을 가할 때 잠시나마 겪어본 궁도혁이다.

그런 경지의 인간이 무서워서 근처에도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무창 내부로 들어가지를 못한다니.

“만천혈뢰 열 개가 만천금쇄폭뢰 하나와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습니까?”

삼령주의 물음에 궁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만천금쇄폭뢰 하나의 위력이 더 강했다.

개량형이라 했지만, 이건 개량이 아니라 몇 단계 진화한 것이다.

이것을 뚝딱 만들어낸 궁무혁은 정말이지 괴물이라는 말도 모자랄 천재였다.

“저희 계산으로는 솔직히 만천금쇄폭뢰 세 개는 있어야 그를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삼령주의 담담한 말에 궁도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품에 손을 넣고는 검은빛의 원통을 꺼내 들었다.

“사용법은 어떻게 됩니까?”

만천금쇄폭뢰를 조심스레 받아 들며 삼령주가 물었다.

“내공을 끌어올려 뒷부분의 단추를 누르면 발화가 된다.”

뒷부분의 단추라는 부분을 유심히 살핀 삼령주가 조심스레 자신의 품에 넣었다.

감히 시험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공을 사용해야 격발할 수 있다니… 신기하군요.”

“어떤 방법인지는… 오직 련주만이 알고 있다.”

***

자정을 넘어 축시에 이른 깊은 밤.

궁소유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방.

궁무혁이 다탁의 의자에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벼운 손짓에 궁소유는 궁무혁의 맞은 편에 앉았다.

“전음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리 번거로이 하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굉장히 작은 목소리다.

입가에 귀를 대어야 겨우 들을까 말까한 속삭이는 소리에 궁소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아버지인 궁무혁도 몸이 약했기에 무공은 익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마 궁무혁은 만물련의 내공을 조금이나마 수련하였지만, 궁소유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그래도 이제 완전히 회복되면 가능할 일이겠지.”

궁무혁이 미소를 지으며 작게 말했다.

“네.”

궁무혁의 목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답하는 궁소유.

사실 그녀는 왜 이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낮에 은밀히 전한 종이에 이리 적혀 있어 따를 뿐.

“호위단은 날 호위하기 위해 따라오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날 감시하고도 있단다.”

뭔가 처연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궁소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몸이 약한 탓인 게지.”

더 이상의 자세한 사연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총명한 궁소유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론했다.

“해서 이 일은 저들이 알면 안 되었기에 이리 번거롭게 너를 불렀다.”

그 말과 함께 궁무혁은 품에서 비단에 쌓인 원통을 조심스레 다탁에 올려놓았다.

비단 덕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궁소유가 의문 섞인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만천금쇄폭뢰라는 물건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궁소유. 그녀로서는 영문을 모를 물건이다.

“만천혈뢰의 열다섯 배에 달하는 위력을 내는 기물이지.”

그제야 궁소유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아직 어리지만 만물련주의 딸이다. 만천혈뢰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다만, 격발이 내공을 사용하게끔 하여 오히려 만천혈뢰보다 안전하다. 지금 내공이 없는 네가 사용할 수는 없는 물건이지.”

다소곳이 아버지의 말을 듣은 궁소유의 얼굴에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을 왜 내놓으신단 말인가.

“하지만 네가 언제까지 내공이 없지는 않을 터. 일단 지니고 있어라. 만약을 대비해서.”

“제가…….”

망설이는 빛이 역력한 그녀의 목소리에 궁무혁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련주가 호위단에게 감시를 당하는 상황이다. 련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만약을 대비한 안배라 생각하고 지니고 있거라. 그런 생각으로 네게 줄 것을 챙겨온 것이니.”

“네.”

아버지의 당부에 궁소유는 조심스레 만천금쇄폭뢰를 품에 넣었다.

호위단의 수준으로는 이들의 이런 움직임과 대화를 알아차릴 수 없었기에, 이날 밤의 이 은밀한 만남은 두 부녀만의 비밀이었다.

***

중원 각지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생겼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와중에 한둘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보잘것없는 변화.

그랬기에 그것을 눈치챈 이는 없었다.

개방이나 하오문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정도로 일상적인 움직임 속의 작은 변화였다.

삼령주의 명령을 받은 그의 수하들이 중원 각지에서 무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집결지는 동정호.

무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되, 마음먹은 순간 빠르게 무창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삼령주.”

어느 버려진 관제묘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곳에서 삼령주가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하고 있었다.

“네. 대령주.”

낮게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정녕 그를 쳐야 하는 건가?”

미심쩍다는 물음이다.

“만물련을 손에 넣으려면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의 행보와 저희의 행보가 달라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만물련은 다릅니다.”

고민이 가득했지만, 결정을 내린 듯한 흔들림 없는 대답이었다.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미 연백량이 그의 손에 당했습니다.”

삼령주의 말에 대령주라는 복면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면 분명 연백량에게서 자신들의 흔적을 발견했으리라.

“대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만물련의 무기들과 대장장이들이 필요합니다. 헌데 그가 만물련주에게 붙으면서 저희의 계획이 틀어지고 있습니다.”

“꼭 그와 부딪히지 않아도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그에 대한 네 개인적인 원한이 작용한 것은 아니고?”

“…….”

삼령주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만물련주와 그 딸년이 회복한다해도 죽이면 그만이다. 지금은 무창에서 그놈과 함께 있기에 손을 쓸 수 없지만, 언제까지 함께 있지는 않을 터. 기다리면 기회가 올텐데 너무 서두르고 있어.”

“그렇게 하면 만천금쇄폭뢰의 설계도와 제작 방법을 얻기가 요원해집니다. 련주와 그 딸이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중에 틈을 노려 설계도를 얻어야 합니다.”

“그게 꼭 필요한가?”

대련주의 물음에 삼령주는 자신의 한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를 처단하려면 필요합니다.”

이를 악문 채 말하는 삼령주.

“교주님의 폐관이 몇 년 안에 끝난다. 그렇다면 아무리 그놈이라도 일초반식의 상대도 안 될 터. 우리는 그저 원래의 계획대로 교주님의 폐관이 끝날 때를 맞춰서 천천히 준비해도 될 일이야.”

“…….”

삼령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령주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교주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었기에.

“뭐, 좋아. 만천금쇄폭뢰도 얻었겠다. 그 위력도 시험하고, 그놈의 지금 수준도 가늠할 수도 있겠지. 타초경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자네 목숨을 걸어야 할게야.”

“명(命)!”

대령주의 허락에 삼령주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럼, 다음에 살아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지.”

그 말을 끝으로 대령주는 사라졌다.

삼령주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흠… 공기가 영 기분이 나쁜 걸?”

하무백이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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