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쳐라
삼령주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궁무혁, 궁소유 제거.
그랬기에 그들은 곧장 한 곳을 향해 치달렸다.
무창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깊은 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무창성의 담장을 넘어 안으로 진입했다.
궁무혁이 머무는 객잔의 위치는 이미 충분히 숙지한 터.
사방에서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그 경로에 교룡관은 없었다.
교룡관을 거쳐 가는 경로는 모두 배제했다.
혹시라도 하무백이 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에, 그를 자극할 수도 있는 경로를 제외한 것이다.
그렇게 객잔의 별채를 이백한 명의 인원이 둘러쌌다.
련주의 호위단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나타나 별채를 향해 달려온 이백여 명의 복면인들 때문이다.
알아차리는 것이 늦어 어떻게 대처할 시간도 없이 포위되었다.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워낙 많은 인원이라 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검은 야행복을 입은 그들은 차가운 눈으로 별채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위단주는 이를 꽉 깨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정말로 자네 말대로군…….”
공손무외는 별채를 둘러싼 수많은 적들의 기척을 느끼며 말했다.
하무백이 자신들을 찾은 것이 대략 두 시진 전이었다.
준비를 좀 하고 오느라 늦었다면서.
그때 그가 전한 믿을 수 없는 소식.
마교의 잔당들이 궁무혁과 궁소유를 노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하무백은 두 가지 선택지를 이야기했다.
다른 장소로 옮기든지, 아니면 이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든지.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이 확실히 지켜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기에 이동보다는 이곳에서 수성을 하는 것을 택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궁무혁은 호위단에게 언질을 주었다.
누군가 자신들을 노리고 접근하고 있다는 첩보를 얻었다고.
호위단주는 그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련주가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첩보를 줄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호위단주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다.
어디서 저런 인원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포위한 것일까?
저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저들이 거의 삼십 장 거리에 접근했을 때였다.
기척도 기척이었고, 저리 많은 인원이 몰려오면, 그 움직임이 육안으로 확인 가능했으니.
아무리 깊은 밤이고 야행복을 입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단주님. 어떻게 합니까?”
이곳에 온 호위단의 인원은 고작 열다섯 명.
열다섯으로 이백이 넘어 보이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중과부적이었다.
별채를 포위한 이들에게서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느껴졌다.
게다가 거리를 격하고 느껴지는 저들의 필사의 의지.
자신들보다도 오히려 저들이 더욱 긴장한 듯 보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해야할 일은 해야 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 자신들은 련주의 호위단이었다.
“자리를 사수한다. 접근하는 이들은 전력을 다해 막는다.”
“차라리 퇴로를 찾는 것이…….”
수하의 말에 단주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각오가 느껴지지 않느냐?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차라리 우리도 필사의 각오로 저들을 막는 게 낫다. 자리를 지켜라.”
그 말에 수하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돌아서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절대 이러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다.
아니 이곳에서 저놈들을 막다가 헛되이 죽어버리면, 부련주가 약속한 것들은 모두 먼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삼령주는 복잡한 눈빛으로 별채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 거리에 있음에도 그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가 저기에 있었다.
그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별채를 지키고 있는 듯한 만물련의 저 얼간이들은 자신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애초에 감시가 목적인 놈들이었으니…….’
부련주 궁도혁의 사람들임을 알고 있으니.
굳은 마음을 먹고 이곳에 왔다.
준비도 했다.
그럼에도 막상 그 괴물의 존재를 마주하니 고민이 되었다.
지금이라도 그냥 포기하고 퇴각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삼령주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랬기에 이곳에 도착하고도 일 각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대치.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터.
“쳐라.”
삼령주의 나직한 명령과 함께 마교의 무인들이 별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섬뜩한 검광이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모두 전력으로 자리를 지켜라! 한 놈도 뒤로 보내면 안 된다!”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린 호위단주는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았다.
과연 몇 놈이나 막을 수 있을까.
그때, 호위단의 한 놈이 먼저 움직였다.
방향은 별채에서 멀어지는 쪽.
조금 전에 퇴로를 찾자던 놈이었다.
‘멍청한…….’
사방이 포위된 상황이다. 홀로 저리 달아나봐야…….
“크악!!”
달려오는 적들의 검에 가슴이 꿰뚫리며 비명을 지르는 놈.
결국 저리되는 것을.
‘뭐,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 죽는 건 매한가지인가.’
그런 생각이 단주의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
파지직!
커다란 소리와 함께 별채의 천장이 부서지면서 한 인영이 허공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가 나타나는 순간, 적들의 기세가 일변했다.
별채로 달려들던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한 것이다.
“별채로 들어가서 련주 가족을 지켜.”
호위단의 귀에 생생히 들리는 음성.
멀리 퍼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에게 들리게끔 내공에 실어 보낸 명령 같은 말.
그러나 그 음성에는 강한 힘이 있었다.
단주가 저도 모르게, 같은 명령을 수하들에게 내렸으니까.
“안으로 들어가서 련주님을 지킨다.”
단주의 명령에 호위단은 빠르게 움직여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절반은 별채로! 절반은 적을 상대한다!”
삼령주의 명령에 별채로 향하던 인원의 절반이 하무백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가소로운.”
허공 높이 솟아오른 하무백이 양손을 휘둘렀다.
깊은 밤의 어둠을 꿰뚫고 은색 빛살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하무백이 준비해온 비수였다.
그에게 있어서 홀로 다수를 상대할 때 비수만 한 병기가 없었다.
하무백의 내공을 잔뜩 머금은 비수 백여 개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윽.”
“으악.”
“아아악.”
사방에서 터지는 비명.
특히나 별채로 진입하려던 이들에게서 더 많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백 개의 비수는 백 명의 적을 쓰러트렸다.
그중 구십여 명은 별채로 향하던 이들이다.
‘저 정도는 잠시는 막을 수 있겠지.’
호위단 열네 명에 공손무외와 공손화경이 있으니 위급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살아남은 열 놈의 무공 수위와 별채 안에 있는 이들의 수준까지 가늠해서 내린 결론이다.
허공답보로 천천히 허공을 걸어 내려오며 하무백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팔십여 명을 바라보았다.
열한 놈은 아직 뒤에서 추세를 관망하고 있었다.
“우습군.”
하무백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허공을 박찼다.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그의 신형.
하무백의 검광이 번뜩일 때마다.
“으악.”
“크윽.”
“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마교도들.
이를 악물고 하무백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찌르지만, 하무백은 너무도 손쉽게 피하고 막았다.
머리와 다리를 동시에 노려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방 아니 팔방에서 검을 찌르고 들어가도 한순간 모두 쳐내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격에 마교도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그의 검은 사나웠고 잔인했다.
일말의 자비도 없이 단번에 마교도들의 생을 끊었다.
“흐음…….”
삼령주는 침음을 흘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 괴물은 괴물이다.
지난 세월 동안 나름 사력을 다해 키운 자신의 수하들이 이렇게 나가떨어지다니.
“응?”
그 순간.
하무백의 신형이 우뚝 멈췄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빠른 속도로 별채로 향해 달려가는 하무백.
그 모습에 삼령주는 무언가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했다.
기회였다.
“따라가서 친다!”
그의 명령에 그와 열 명의 수하들이 하무백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무백이 몸을 돌린 이유는 간단했다.
별채 내부의 전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호위단이 쓰러졌다.
잘 막고 있다가 한 곳에서 구멍이 뚫리는가 싶더니 우수수 쓰러졌다.
마교 놈들을 상대하면서도 별채 내의 상황에 대한 기감을 거두지 않았기에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와장창!
벽을 그대로 부수고 내부로 진입한 하무백이 검을 떨쳤다.
궁무혁을 향해 날아가던 검이 그래도 부서졌다.
하무백이 재빨리 궁무혁 일행의 앞을 막았다.
호위단은 한 놈을 빼고 모두 쓰러져 있었다.
마교 놈들과 함께 궁무혁 일행을 둘러싸고 있는 호위무사 한 놈.
저놈이 문제였다.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숨을 헐떡이는 호위단주.
“운열… 네, 네 놈이 왜…….”
그의 두 눈에는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잘 막고 있다 싶은 순간, 돌변해서 자신들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으니까.
마교 놈들은 이게 웬 떡이냐는 식으로 그를 도와 호위단들을 도륙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방금 하무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궁무혁은 죽었다.
궁소유는 품을 더듬으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궁무혁이 그런 그녀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공손무외와 공손화경의 검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묻어 있었다.
“네 놈. 마교 버러지는 아닌 것 같은데?”
하무백이 운열이라 불린 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응? 마교? 아하. 이들이 마교였나? 지난 전쟁에서 패하고 사라진 게 아니었나 보군. 크.”
그는 애초에 함께 한 이들이 마교라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그러면 대체 왜……?”
의문 가득한 눈으로 묻는 호위단주.
그의 두 눈에 깃든 생기가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간단해. 의뢰를 받았거든. 련주와 그 딸을 죽이라고. 불과 이틀 전이었나? 크크크.”
“호, 호위단인 네 놈이…….”
“호위단? 하. 난 그런 거 모르고 그저 돈이 되니 있었을 뿐이야. 이제 난 저 둘을 죽이고 약속된 돈만 받으면 끝이지.”
운열은 재미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의뢰자가 누구지?”
하무백이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 알려줄 수 없는걸?”
운열의 얼굴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 모습에 호위단주는 분노했다.
이 년이 넘게 등을 맡겼던 수하이자 동료가 저런 놈이었다니.
게다가 상대의 역량도 가늠 못하는 머저리이기까지.
저런 놈이 어떻게 만물련의 호위단에 들어올 수 있는지 의문…….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던 호위단주의 눈이 잘게 떨렸다.
저놈이 어떻게 호위단에 들어왔는지 떠올린 것이다.
허나 호위단주에게 남은 생은 얼마 없었다.
그는 간절한 눈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허공으로 하무백이 솟구쳐 올랐을 때, 그가 얼마나 강한지 얼핏 느꼈으니.
그라면 저 배신자 놈을 처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무백은 그런 호위단주의 간절함을 읽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단주의 시선이 궁무혁을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사력을 다해 전음을 남겼다.
[운열은 부련주의 추천으로 호위단에…….]
거기까지였다.
호위단주의 생이 다했다.
바닥에 그대로 쓰러지는 호위단주.
“쯧쯧. 한심한 양반.”
운열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는 순간.
푸욱.
검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