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어떻게 저게…
“어, 어떻게…….”
운열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새파란 예기를 빛내는 검이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으니.
여전히 통증조차 없었기에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어떻게는. 그냥 찌른 거지.”
하무백이 무심히 답하며 검을 살짝 비틀었다.
“크아아악!”
불에 지지는 듯한 통증이 가슴에서 전신으로 퍼졌다.
운열은 비명을 질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뒤통수 치는 새끼야. 의뢰자는 기다리다 보면 튀어나오겠지.”
하무백은 검을 쑥 뽑으며 말했다.
정확히 심장을 꿰뚫었기에 그 순간 운열의 가슴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궁무혁은 재빨리 궁소유의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으, 으으… 으으…….”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으로 가슴을 내려다보던 운열은 그대로 쓰러져 절명했다.
“쓰레기 새끼 때문에 애꿎은 이들만 목숨을 잃었군…….”
하무백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의 시선이 마교도들에게로 향했다.
“계속 할까?”
하무백의 시선에 마교도들이 움찔했다.
그때.
“쳐라!”
그들의 등 뒤에서 들리는 삼령주의 명령.
명령에 따라 그들은 하무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섬뜩한 검광이 번뜩였으나, 하무백의 일검에 그들 중 절반이 후두둑 쓰러졌다.
그 사이 삼령주는 수하 열 명과 함께 별채에 들어섰다.
스무 명씩 열 개의 조로 만들었던 삼령대.
이제 남은 이들은 채 오십이 되지도 않는다.
삼령주는 자신과 함께 있는 열 명의 수하를 힐끗 보았다.
조장들이다.
이들에게 만천혈뢰를 맡긴 상태다.
삼령주는 가만히 하무백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의 행동 양식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남은 다섯에서 전음으로 명령을 이어서 내렸다.
[저 괴물은 피하고, 뒤에 있는 이들을 먼저 제거한다. 궁무혁과 궁소유를 노려라.]
이미 그 둘의 용모파기에 대한 숙지는 마친 터.
삼령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다섯 마교도는 전력으로 하무백에게서 멀어졌다.
그들도 죽는 것은 싫었으니.
거리를 벌렸다 싶은 순간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모두 필사적이었다.
하무백의 눈에는 그 의도가 뻔히 보였다.
“같잖은.”
하무백이 피식 웃으며 왼손을 떨쳤다.
다섯 손가락에서 뻗어가는 다섯 줄기의 지풍.
별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그들이 하무백으로부터 멀어지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풍이 충분히 허공을 격하고 그들의 목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거리.
“꾸르륵.”
바람 빠지는 소리와 같은 비명을 흘리며 다섯이 풀썩 쓰러졌다.
그 모습에 삼령주는 확신을 가졌다.
역시 저 괴물은 지난 전쟁과 마찬가지였다.
다행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작전이 맞아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사 조장. 궁무혁을 향해 최대한 접근해서 만천혈뢰를 사용해.]
삼령주의 명령이 전음으로 전달되기 무섭게 움직였다.
그것이 곧 죽음임을 알고 있음에도 일말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다섯이 쓰러지자마자, 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이의 곁에 있던 이가 홀로 움직였다.
“어딜.”
하무백이 그 앞을 막으려는 찰나, 그가 손을 앞으로 뻗었고 그걸 확인한 하무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난 전쟁에서 정말 지겹도록 보았던 것이다.
도움도 받았고, 피해도 입었고.
하지만 적어도 마교 놈들의 손에 들린 적은 없던 물건인데!
“모두 엎드려!!!”
보자마자 큰 소리로 외치고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왼손에 강기를 최대한 집중해 덧씌워서 앞으로 뻗었다.
암기를 들고 있던 놈의 목은 이미 하무백의 검에 잘렸지만, 격발단추를 누르고 한 호흡의 시간이 흐르는 것은 막지 못했다.
화약 냄새가 난다 싶은 순간.
콰콰콰콰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불꽃 소용돌이가 별채 내부를 덮쳤다.
“꺄악!”
궁소유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크윽.”
“이익.”
“어, 어떻게 저게…….”
저마다 신음을 흘리며 최대한 폭발의 충격을 견디려 했다.
궁무혁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주저앉았다.
이곳에 있을 수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만천혈뢰.
만물련 최고의 화약 병기.
그것이 왜 적들의 손에 있단 말인가. 련 내에서도 엄중히 다루는 물건을.
만천혈뢰가 쏟아낸 폭발의 화염은 별채 내부를 초토화시켰다.
삼령주와 수하들은 일찌감치 밖으로 몸을 피했다.
하무백이 굳건히 서서 화염과 싸웠다.
그의 뒤로 넘어가는 화염은 없었다. 다만 뜨거운 열기만은 하무백을 넘어 뒤에 있는 이들의 살갗을 두드렸다.
정말 짧은 시간이다. 일 각을 열다섯으로 쪼갠 것 중 하나가 흐를 정도의 시간.
그 시간 동안 별채는 화염에 휩싸여 활활 타올랐다.
곳곳이 파괴되어 뼈대만 겨우 남았다.
그러나 하무백의 뒤로는 멀쩡했다.
하무백의 호신강기와 강기가 모두 막아낸 것이다.
하무백이 인상을 찡그리며 연신 왼손을 털었다.
강기로 겹겹이 둘러쌌음에도 통증이 상당했다.
그의 왼손에는 화염을 쏟아내던 만천혈뢰가 들려 있었다.
화염을 쏟아내며 폭발하는 중간에 하무백이 왼손으로 잡아 부쉈기에 위력이 절반 정도 줄어들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후우. 저 새끼들이 이걸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용한 녀석이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서 살았네.”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맨손으로 잡아 멈추는 인간이 있다니.
아니 그것이 가능한 존재가 과연 인간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천혈뢰는 투척 암기였다. 저렇게 손에 들고 단추를 누르는 것이 아닌, 단추를 누른 후 던지는 것이다.
“타핫!”
하무백의 기합과 함께 주변을 강렬한 내공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남아 있던 불꽃은 모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
반쯤 불에 타 앙상하게 남은 별채와 그것을 멀리서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는 마교놈들.
삼령주는 복면 아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무백이 그의 예상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뒤에 있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천혈뢰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사 조장을 보낸 것이다.
전쟁 이후에 영입되어 만천혈뢰의 사용법을 모르는 이였기에, 삼령주가 알려준 대로 행동했으니.
***
“꺄악!”
갑자기 무창 하늘을 울린 폭음에 하설란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함께 있던 한설빙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아픈 기억을 자극하는 폭음인 탓이다.
“왜 그러는가?”
위지군의 물음에 한설빙이 답했다.
“많이 들어본 소리라서요.”
위지군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하설란을 한설빙에게 데려왔다.
혹시라도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면, 그녀라면 하설란을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도 위지군의 정체를 알기도 했고.
“많이 들어본 소리?”
“네. 만물련의 암기가 내는 폭발음이랑 비슷하네요. 엄청난 위력에 도움도 받고 피해도 입고 했었는데…….”
그 말에 위지군이 인상을 찡그렸다.
전장에서 사용되던 만물련의 암기와 비슷한 폭발음이라.
하필이면 이곳에 그 마교놈들과 만물련의 련주가 있었다.
불길했다.
그랬기에 행동의 방향을 정할 수가 없었다.
하무백을 도우러 갈지, 이곳에서 하설란을 지킬지.
위지군의 기감이 무창 전체를 뒤덮었다.
수상한 기척은 없는 듯했다.
아니, 수상한 기척은 모두 하무백의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도 없었다.
자신은 하무백과 달리 기척 속에서 마기를 읽어낼 수 없으니.
“사부님. 오라버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죠?”
고민에 휩싸인 위지군을 향해 하설란이 물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구나.”
위지군의 대답에 한설빙이 인상을 썼다.
“설마 정말 만천혈뢰인가?”
하무백이 끼어 있다니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이윽고 결심한 듯 한설빙이 벌떡 일어섰다.
“가시죠!”
“응?”
“하 교관님께 가자고요. 하 교관님이 계신데도, 만물련에서 만천혈뢰를 사용했다는 것은 보통 적이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지난 전쟁에서 마교나 혈교에서 만천혈뢰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만물련이 철두철미하게 공급하였기에 오직 정천맹만이 사용했다.
오폭이나, 오발로 인한 피해가 크기도 했지만 적어도 적들이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한설빙이 오해한 것이다.
무창성에 들어와 있는 만물련에서 만천혈뢰를 사용했다고.
***
[이 조장. 사용법은 숙지하고 있지? 세 번 누르고 궁무혁에게 던져.]
삼령주의 명에 이 조장은 망설이지 않고 품에서 만천혈뢰를 꺼내서 격발단추를 빠르게 세 번 눌렀다.
이 격발단추는 최대 다섯 번까지 누를 수 있는데, 그것이 폭발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한 번 누르면 한 호흡 뒤, 두 번 누르면 두 호흡 뒤 폭발하는 방식이다.
삼 조장은 하무백의 뒤편을 향해 만천혈뢰를 던졌다.
궁무혁을 향해 날아가는 암기.
“미친 새끼들. 대체 저걸 어떻게.”
날아가는 암기의 모습을 확인한 하무백은 다시금 호신강기를 전력으로 펼쳤다.
이번에는 여유가 좀 있었다.
양손과 날아오는 암기도 강기로 감쌌다.
콰콰쾅!
커다란 폭음이 울렸지만, 아주 작은 공간에서의 폭발일 뿐이다.
하무백이 둘러싼 강기 안에서의 폭발.
“어, 어찌…….”
궁무혁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한 개가 유출된 것만으로도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인데, 또 다른 만천혈뢰라니.
그런데 그것을 강기로 둘러싸서 막아버리는 인외의 존재라니.
그 사이 여덟 방향에서 암기가 시간차를 두고 날아들었다.
하무백은 그것들이 모두 만천혈뢰임을 알아보았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저걸 어디서…….”
전쟁이 끝난 지도 한참이다.
하무백이 알기로는 정천맹에도 저 정도 수량은 보관하고 있지 않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비상용으로 네 기 정도 보유 중인 것으로 아는데.
저 빌어먹을 새끼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꺼낸 것만 열기다.
그렇다면 나올 구석은 뻔하다.
만물련.
그곳밖에 없었다.
호위단에서 배신자 새끼가 나온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만물련에 이상이 생겼다.
하무백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지금 할 일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만천혈뢰의 제거였다.
콰콰콰쾅!!
그 순간 하늘에서 요란한 폭음과 함께 화염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가장 높이 날아오던 하나가 허공에서 폭발한 것이다.
“아악!”
“크윽.”
“악.”
하무백은 이를 악물었다.
남은 것은 일곱.
허공에서 폭발했기에 바닥에 납작 엎드린 이들에게 피해는 크지 않았다.
열기에 피부가 따끔거렸지만.
그 순간 다시.
콰콰쾅!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화염을 쏟아냈다.
던진 것도 시간차를 두었지만, 폭발 시간도 제각각으로 단추를 누른 것이다.
“어떤 새끼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새끼다.
자신을 정말로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전부 쳐내고 싶었으나.
이곳은 전장이 아니다.
무창성이다.
쳐낸 곳은 죄다 민가.
애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수 있었다.
“후읍.”
깊게 숨을 들이마신 하무백이 몸을 날려 날아오고 있는 만천혈뢰의 중앙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전력으로 허공섭물을 펼쳤다.
제각각에서 날아가던 만천혈뢰가 자석에 이끌리듯 하무백을 향해 움직였다.
이미 호신강기는 극한으로 끌어올렸고, 양손에도 강기를 최대한 덧씌웠다.
양손이 새하얗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