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09화 (109/312)

109화. 이제 그쯤 하지

휘몰아치는 화염의 폭풍에 궁무혁은 바닥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그의 시선은 적의 손에 들린 암기로 향했다.

만천혈뢰.

만물련 최강의 암기였던 것.

그것이 적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지난 전쟁의 유실물이거나 정천맹에서 흘러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하지만 두 개째가 등장했을 때 그 생각이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 일곱 개가 동시에 날아오고 있는 지금.

호위단주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운열은 부련주의 추천으로 호위단에… 라고 했다.’

만물련의 부련주.

자신의 동생, 궁도혁.

자신이 암기 연구에 빠져 련의 일을 등한시할 때, 련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한 동생.

그가 없었다면 만물련은 굴러가지 않았다.

그라면 만천혈뢰 열 기는 충분히 구할 수 있다.

운열에 이어 만천혈뢰까지.

‘네가 나를 노리는 거냐… 어이해…….’

참담했다.

동생이 형을 노리다니.

아마도 련주 자리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이까짓 자리 말만 하면 얼마든지 넘겨줬을 것을.

아니 애초에 자신의 건강 상태로는 련주의 자리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었다.

‘아!’

머리를 때리는 생각.

최근 하무백과 위지군을 만나고, 급격히 건강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것이 동생으로 하여금 저런 참담한 마음을 먹게 한 것이리라.

형의 건강 때문에 곧 자신이 련주가 될 것으로 생각했을 텐데,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하니.

“도혁아… 어찌…….”

너무도 참담하였기에 작게 흘러나온 중얼거림.

그 와중에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는 하무백의 신위는 놀라웠다.

어찌 인간이 만천혈뢰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만천혈뢰를 개량한 자신으로서는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지금 일곱 기의 만천혈뢰가 하무백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새하얀 강기가 양팔에 맺혔다.

수강이라고도, 권강이라고도, 장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형태.

그저 하무백의 손의 움직임에 따라 강기도 움직였다.

하무백은 허공섭물에 따라 모여든 만천혈뢰를 모두 잡아 강기의 막 속으로 집어넣었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일곱 기를 모두 강기 막으로 둘러싼 순간.

콰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커다란 폭음이 터지며 일곱 기가 일제히 폭발했다.

“크윽.”

하무백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자신이라 하지만 일곱 기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을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폭발에 폭발이 더해지면서 그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강기의 구체가 폭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깨지려 했다.

하무백은 내공을 더욱 끌어올려 강기의 구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폭발의 시간도 더욱 길어졌다.

하나였으면 벌써 끝났을 폭발이 화염의 용을 만들며 더욱 날뛰고 있었다.

단전이 욱신거리며 아팠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자신이 멈췄다가는 이 일대가 폭발에 휘말릴지도 몰랐다.

자신의 뒤에 선 사람들은 물론이고.

삼령주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과연 자신의 예상대로였다.

하무백, 저 괴물은 지금 폭발을 막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저 한 놈을 목표로 했다면, 만천혈뢰 열 기와 만천금쇄폭뢰 한 기를 모두 쏟아부어도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일곱 기의 폭발을 억누르는 저 강기를 자기 몸에 둘러쌌다면 훨씬 더 강력한 폭발에서도 견딜 수 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고 있지.”

작게 중얼거린 삼령주.

그는 하무백이 만든 강기의 폭발이 절정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용틀임하는 화염이.

구체 곳곳을 두드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깨질 듯 흔들거리는 강기의 구체였건만 하무백이 내공을 끌어올림에 따라 이내 안정되었다.

그 순간.

“지금이다.”

삼령주의 신형이 사라진다 싶더니 하무백의 일 장 옆에 나타났다.

하무백의 눈썹이 꿈틀했다.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이지만, 느낀 적이 있는 기척이었다.

분명 지난 전쟁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오랜만이다, 하무백. 여전히 괴물같이 강하구나. 그럼 어디 이것도 막아 보거라. 그때처럼.”

승리의 기쁨에 찬 목소리.

삼령주는 품에서 그것을 꺼냈다.

믿을 수 없는 하무백의 신위를 보던 중, 궁무혁은 문득 생각이 다른 것에 미쳤다.

자신을 제거하겠다는 참담한 마음을 먹은 동생이 과연 만천혈뢰 열 기만 저들에게 주었을까.

현재 만물련 최강의 암기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만천혈뢰와 달리 련주인 자신의 재가가 없으면 반출할 수 없지만, 부련주에게는 련주의 재가가 필요 없는 것, 한 기가 있었다.

바로 부련주의 호신을 위해 주었던 하나.

만천금쇄폭뢰.

그가 그것까지 저들의 손에 들려 보냈다면?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저들 중 하나가 하무백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품에서 꺼내 드는 원통형의 암기.

분명했다.

그것이다.

확인하는 순간 외쳤다.

“피해!!!!!!”

필사적인 외침.

하무백이 힐끗 궁무혁을 보았다.

간절하고도 필사적인 눈빛에 하무백은 훌쩍 몸을 솟구쳤다.

그 순간 삼령주는 하무백을 향해 만천금쇄폭뢰를 겨눴고, 내공을 담은 손가락으로 격발 단추를 눌렀다.

궁도혁에게서 사용법만 설명을 간단히 듣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듣지 못했기에 이후의 일은 삼령주도 몰랐다.

슈우우욱!

폭발음이 아니었다.

원통의 끝이 열리면서 무언가 쏘아져 나갔다.

허공으로 솟구치는 하무백을 향해 곧장 날아가는 무언가.

하무백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철환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무백은 자신과 함께 솟구치고 있던 강기의 구체로 자신의 앞을 막았다.

그 순간 철환이 강기의 구체에 부딪혔고.

진로가 막힌 순간.

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아아!!!

천지를 떨어 울리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강기의 구체는 산산조각이 나고, 그 안의 아직 남아있던 만천혈뢰의 화염과 만천금쇄폭뢰의 화염이 뒤섞여 하늘로 승천하듯 타올랐다.

엄청한 화염 폭풍에 바로 뒤에 있던 하무백은 속절없이 휩쓸렸다.

삼령주는 아래에서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하, 하하. 하하하하.”

화염 폭풍에 휩쓸려 신형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린 하무백.

그 모습에 삼령주는 확신했다.

저 정도면 설사 신선이라 해도 살아남지 못한다.

하무백은 죽었다.

드디어 저 괴물이 죽은 것이다.

과연 만천금쇄폭뢰!

단 한 번 사용한 것이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암기일 줄이야.

“드디어! 드디어! 저 괴물을 없앴다! 푸하하하하!”

희열에 가득 찬 광소가 삼령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삼령주는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궁무혁을 바라보았다.

이런 엄청난 암기를 만들어낸 인간이라니.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살아있다면, 어쩌면 이 만천금쇄폭뢰를 무력화하는 암기도 만들어낼지 모른다.

삼령주와 시선이 마주친 궁무혁이 움찔했다.

그의 살기 띤 안광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도혁이. 그 녀석이 마교와 손을 잡은 것인가?”

궁무혁이 잔뜩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과연 머리가 좋군.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상황만으로 알아차리다니.”

삼령주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 말에 공손무외와 공손화경, 그리고 궁소유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궁무혁의 동생이 마교와 손을 잡다니.

“고마워. 덕분에 하무백 저 괴물을 쓰러트렸네. 평생 불가능할 거라 여겼는데. 크흐흐흐.”

기쁜 탓인가.

그답지 않게 말이 많아진 삼령주다.

“역시 도혁이 녀석의 만천금쇄폭뢰였군.”

궁무혁의 말에 삼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단 하나라 시험도 못 해보고, 그저 시키는 대로 쓸 수밖에 없었어. 이건 투척형이 아니라 투사형이었군. 어째 던지라는 말이 없더니. 크흐. 엄청난 물건을 만들었어.”

살기 가득한 눈빛.

공손무외는 그의 살기를 읽었기에 검을 들고 궁무혁의 앞을 막았다.

그 곁에는 공손화경이 자리했다.

“훗. 선유곡의 곡주님이시라.”

삼령주는 가소롭다는 듯 그런 둘을 바라보며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의 몸에서 사방으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마기.

“으윽.”

전신이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저놈은 마교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이길래 이런 어마어마한 마기를 뿜어내는 것이란 말인가.

공손무외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사위와 손녀를 지켜야 했다.

공손화경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의 검에서 각기 검강과 검기가 솟아올랐다.

“가소롭군.”

삼령주가 흑빛 마기를 잔뜩 머금은 검을 휘둘렀다.

“아악.”

공손화경이 십 초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공손무외는 전력으로 삼령주의 공격을 막았다. 삼령주의 예상과 달리 제법 출중한 실력이었다.

“곡주는 곡주라는 것인가?”

삼령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더욱 진해졌다.

“으음…….”

공손무외가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대라조화심의결(大羅造化心醫訣).

선유곡의 독문심법으로, 의술에 치중된 심법이긴 하나 그래도 무공이었다.

더욱이 이것은 마기에는 상극이었다.

그랬기에 삼령주의 저 어마어마한 마기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삼령주도 그것을 느꼈다.

“과연 선유곡. 상극이라는 건가? 크.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에서나 의미가 있는 이야기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휘몰아치는 마기의 폭풍이 더욱 강해졌다.

흡사 태풍과도 같은 마기.

“크으윽.”

이를 악문 공손무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끝내지.”

삼령주의 검이 공손무외의 검을 쪼갰다. 그리고 왼손으로 펼친 일 장이 공손무외의 가슴을 두드렸고, 공손무외는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삼령주가 궁무혁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를 지켜줄 이는 없었다.

아니 그가 지켜야 할 딸을 자신의 뒤에 숨기고는 사나운 눈으로 삼령주를 노려볼 뿐.

“이제 끝내지. 어차피 당신을 죽여준다는 조건으로 손을 잡은 것이니. 물론 당신의 딸도 말이야.”

그 말에 궁무혁의 눈이 잘게 떨렸다.

설마 딸까지 노릴 줄이야.

구음절맥을 앓고 있어 한 사람의 몫도 못 하는 딸이건만.

“삭초제근이라 했지. 뭐, 당신 딸도 점점 병이 낫고 있기도 하고.”

삼령주의 검 끝이 궁무혁에게로 향했다.

“머, 멈춰!!”

그때 궁소유가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악을 쓰듯 외치며 앞으로 나왔다.

덜덜 떨리는 팔을 삼령주를 향해 쭉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것.

삼령주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어찌 아니 그럴까?

조금 전 저걸 사용해서 하무백을 죽이지 않았던가.

만천금쇄폭뢰.

그것이 저 작고 연약한 여아의 손에 들려 있었다.

“과연. 가지고 있었어. 고맙군. 한 번 사용해보니 또 구하고 싶어졌는데 말이야.”

저벅.

삼령주가 궁소유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머, 멈춰! 다가오면 쏘, 쏠거야!”

궁소유 발작적으로 외쳤다.

하무백을 죽였다고 하는 암기, 그것이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것과 같은 것임을 아버지와 저 흉적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저 흉적을 겨누고 나선 것이다.

외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쓰러졌다.

이제 자신과 아버지를 지킬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훗. 쏠 수 있으면 쏴 보거라.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것을 사용하려면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걸. 너에게 내공이 있더냐?”

삼령주의 물음에 궁소유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말대로다.

급했기에 나섰지만, 그녀의 몸에 내공은 없었다.

거의 회복되어 곧 내공을 익힐 수 있다 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이익.”

그럼에도 궁소유는 자신이 하무백에게 치료받을 때, 혈맥을 휘돌던 내공의 감각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그것을 재현하려 하며 만천금쇄폭뢰의 단추를 눌렀다.

딸칵.

그러나 헛된 소리만 울릴 뿐.

궁무혁은 두 눈을 감았다. 그 역시 내공이 없기는 마찬가지.

안전을 위해 내공이 필요하도록 설계했건만, 그것이 지금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제 그쯤 하지.”

삼령주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그리고 손을 뻗어 만천금쇄폭뢰를 잡으려 했다.

“너야말로 그쯤 하지.”

그때 등 뒤에서 들리는 섬뜩한 목소리!

아니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

들리는 순간 삼령주는 반사적으로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에 떨어지는 검격.

콰직.

바닥에 검이 박혔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남자.

온몸이 검게 타버린 하무백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