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10화 (110/312)

110화. 너 이 새끼!

화염에 그슬려 얼굴도 거뭇거뭇했다.

옷은 여기저기 불에 타 검게 변해 있었고, 머리카락조차 여기저기 타버렸다.

불구덩이에서 막 탈출한 사람의 모습을 한 하무백.

“씨발, 정말로 뒤지는 줄 알았네.”

하무백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하무백의 두 눈이 희번덕거렸다.

전장에서 살기를 줄줄 흘리던 사납기만 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어, 어떻게… 그 화염 속에서…….”

삼령주는 말을 채 잇지를 못했다.

그럴 수밖에.

완벽히 죽었다고 확신했던 인간이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

“이렇게 멀쩡히 돌아올 수 있지……?”

믿기지 않는다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삼령주.

“너 이 새끼. 내 꼬라지를 봐봐. 이게 멀쩡한 걸로 보여? 진짜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대단해. 아주.”

쿵.

한 발 앞으로 내딛는 하무백의 진각에 땅이 울렸다.

삼령주는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하무백의 검에 새하얀 검강이 맺혔다.

그것을 보는 삼령주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적의 엄청난 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직면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두 가지 때문이었다.

궁소유는 그런 삼령주의 모습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모조리 도륙해버릴 듯했던, 대적할 수 없던 강대한 적이 저렇게 두려움에 떠는 꼴이라니.

지금까지 자신과 아버지를 치료해주던 하무백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사람인지 깨달은 것이다.

쿵.

다시 한번 진각이 울렸다.

검을 들어 삼령주를 가리키는 하무백.

그때.

삼령주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본 것이다.

하무백 검 끝의 강기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가 아는 하무백이라면 절대 저럴 일이 없었다.

“그, 그렇지. 그래. 그 폭발 속에서 멀쩡할 리 없지! 만천혈뢰 일곱 기와 만천금쇄폭뢰의 폭발이었는데! 쳐, 쳐라!”

삼령주의 다급한 명령에 남아 있던 마교도들이 모조리 하무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아남은 조장 아홉과, 하무백이 밖에서 처리하지 못한 오십여 명의 적도들.

모두 육십의 마교 놈들이 하무백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육시럴 새끼들이.”

하무백의 왼손이 품에 들어갔다 나온다.

마지막 남은 열 자루의 비수가 빛살이 되어 열 놈의 목을 땄다.

그러나 하무백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공격을 명령한 대장 놈이 호시탐탐 자신의 뒤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빌어먹을 새끼들을 모조리 없애는 것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뒤에 있는 이들을 지키는 것.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치료받는 이와 치료하는 이의 관계 아니던가.

그런데 이렇게 죽을 고비까지 넘겨 가며 지켜야 할까?

대답은 그렇다였다.

자신과 인연을 맺었고, 지난 전쟁에서 저들과 관련된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 도움에 보답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하무백이 검을 휘둘렀다.

챙. 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사방에서 하무백의 팔다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검을 빠르게 쳐냈다.

살짝 뒤로 한 발 물러났다가 다시 제자리로 복귀한 뒤.

휘두르는 검에 두 놈의 가슴이 뚫렸다.

하무백을 뛰어넘으려는 놈의 사타구니에 권강을 날려 곤죽을 내주었다.

상하좌우에서 달려드는 놈들의 공격을 모조리 파훼하고 이어진 반격에 줄줄이 쓰러지는 마교도들.

남은 이의 숫자가 스물이 되었을 때.

그들은 잠시 멈췄다.

“괴, 괴물…….”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괴물이다.

그런데 그 몸으로 이런 무지막지한 강함이라니.

“놈도 지쳤어! 더 몰아쳐!”

삼령주가 악을 쓰듯 외쳤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궁씨 부녀를 향해 접근했다.

하무백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딱 한 걸음 움직여 그런 삼령주의 진로를 막았다.

“이익.”

이를 악무는 삼령주.

“너 이 새끼. 나 만난 적 있지? 어디에 있던 놈이냐? 십령대냐?”

십령대.

마교 교주 직속의 최정예들이었다.

강했고, 은밀했으며, 교활했던 자들.

지난 전쟁에서 하무백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물론 모조리 때려 부쉈다.

“알 것 없다!”

악을 쓰듯 외치는 삼령주.

“이런 추잡한 짓을 벌이는 것을 보면 일령이나 이령은 아니야. 조금 전 무공수위를 보면 그래도 상위령일 테니. 삼령 정도 되려나?”

하무백의 중얼거림에 삼령주가 움찔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하무백.

“삼령대로군. 그럼 설마 네 놈이 삼령주냐? 인원을 보니 얼추 삼령대 전체가 온 것 같은데.”

“제법 보는 눈은 있구나.”

여기까지 유추한 마당에 부정하는 것도 웃긴 일이라 순순히 인정한 삼령주.

“후. 이 씨발 바퀴벌레 새끼들은 언제 다시 이백을 다 모은 거야. 분명 십령대 전부 싸그리 처리했는데.”

하무백이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삼령대가 이백을 다 회복했으면… 나머지 십령대 놈들 다 회복했다 봐야겠군. 미친. 마교 새끼들이 최고 이천은 있다고? 하.”

사나운 음성으로 중얼거린 하무백이 죽일 듯한 눈빛으로 삼령주를 쏘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 생각났다. 교주 새끼 멱을 딸 때, 도망친 새끼들이 서른 정도 있었어. 너 이 새끼. 그때 그중 하나로구나!”

하무백의 외침에 삼령주는 움찔하는 듯했으나 오히려 악을 쓰며 외쳤다.

“그렇다! 이 악적 새끼야! 우리 마교는 영원불멸이다! 천마강림! 만마앙복! 혈세천하!”

마교도들의 경구까지 외치는 삼령주.

“지랄! 만마앙복이면 마귀 같은 새끼들하고 놀 것이지. 천하를 왜 피로 씻겠다고 지랄이야! 미친 새끼들.”

하무백의 검에서 새하얀 검강이 다시금 솟구쳤다.

그 끝이 가리키는 곳은 삼령주.

“놈은 지쳤다! 쳐라!”

이번만큼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이 마기로 검게 물들었다.

검은 마기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었다.

그의 명령에 남은 이들이 다시 하무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이 찔러온다.

피한다.

그리고 찌른다.

한 놈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다른 놈이 허리를 노리고 검을 베어 왔다.

가볍게 흘렸다.

서걱.

그와 동시에 내리쳐 가슴을 갈랐다.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빌어먹을 새끼들의 숫자를 차근차근 줄여 나갔다.

그럼에도 하무백의 백색검강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하무백은 태연한 얼굴로 이를 살짝 물었다.

단전이 깨질듯한 통증이 온몸으로 퍼진 탓이다.

이미 가진바 내공은 화염에서 몸을 지키고 탈출할 때 모두 사용했다.

혈맥에 조금씩 남아 있던 내공을 박박 긁어서 싸우고 있었다.

다른 이라면 한 줌도 안 되는 내공일진데, 하무백에게는 강기를 만들어낼 정도의 내공이었다.

다만,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랬기에 굳이 중간에 상대의 정체를 묻는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애초에 하무백 성격대로면, 상대가 마교인 것을 확인했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어냈을 것을.

그 잠깐의 대화 동안 무극여의심법은 최선을 다해 내공을 모았고, 단전에 약간의 내공이 모였다.

지금 그것을 모두 소모한 것이다.

단전이 다시금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이 조금 전의 통증이다.

삼령주를 빼고도 남은 놈은 여덟.

령주라는 놈이 수하들 뒤에서 명령만 내리는 꼬락서니가 짜증 났다.

남아 있는 여덟의 기세가 지금까지의 놈들과는 달랐다.

아마도 조장이라는 놈들일 거다.

“천살팔마진(天殺八魔陳)을 펼쳐라!”

삼령주의 외침에 여덟 새끼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지금까지도 합격술을 펼치며 공격해오던 놈들이 더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은 놈들이 진법을 준비하는 약간의 여유.

그때 서둘러 무극여의심법을 운용해 약간의 내공을 모았다.

여덟 놈이 팔방에서 진법의 움직임에 따라 공격해왔다.

한 가지, 하무백은 자신의 뒤는 내주지 않았다.

뒤에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에.

하무백을 완전히 포위하지 못했음에도 진법은 순조롭게 움직이며 하무백을 압박해 왔다.

여덟의 내공이 가중되어 하무백에게 전해지는 압박감이 어마어마 했다.

하지만.

조금 전 회복한 내공이 있었기에.

하무백은 단번에 모든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런 진법을 상대로 시간을 끌면 불리해지는 것은 하무백.

온몸에서 폭발적으로 내공이 터져 나오며 하무백은 적들의 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기감은 여전히 삼령주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으면서.

하무백의 검이 움직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이었다.

그저 검강을 입혀 막 휘두르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검법을 펼치는 것은.

무극여의팔절검해.

순식간에 펼쳐진 검해의 오의.

일 절부터 팔 절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졌다.

그 결과는.

푸하악.

여덟 곳에서 솟구치는 피분수.

천살팔마진을 펼치던 여덟 조장은 각자의 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절명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

압도적인 하무백의 모습에 삼령주는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우.”

그 틈에 깊은 호흡을 하는 하무백.

또 한 줌의 내공을 모았다.

“이익!”

이내 정신을 차린 삼령주가 하무백을 향해 마기가 가득 실린 검을 던졌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검.

하무백이 검강을 입힌 검으로 쳐냈다.

쉬이이익!

맞은편으로 힘없이 날아간다 싶었던 검이 다시금 날아왔다.

“이기어검…….”

검의 움직임을 본 하무백이 중얼거렸다.

초절정에 이르러야 겨우 펼칠 수 있는 상승의 경지를 상대가 보여주고 있었다.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의 하무백이라면 어렵지 않았을 터이지만, 이제 고작 한 줌의 내공을 다시 모은 하무백에게 쉽지만은 않았다.

삼령주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자신만 남았다.

가진 것은 다 썼다. 여기서 어떻게든 몸을 빼지 않으면 죽는다.

하지만 저 괴물이 몸을 빼게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단 하나.

그것을 써야 했다.

사실 몸을 빼도 죽은 목숨이다.

삼령대 전체를 잃었으니, 대령주가 가만두지 않을 터.

검게 물든 삼령주의 두 눈이 희번덕거렸다 싶은 순간.

그의 내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마기 또한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쿠아아아앙!

섬뜩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마기의 덩어리나 다름없는 검.

하무백이 전력을 다해 검을 뻗었지만.

까가가강!

하무백의 검강이 무참히 깨졌다.

전신에 끌어올린 호신강기 또한 박살이 나며 하무백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커헉.”

피를 토하는 하무백.

전력을 다해 막았기에 삼령주의 검에 씌워진 마기가 모두 날아갔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마기가 넘실넘실 피어올랐다.

강기와 뒤섞인 마기.

마강기(魔罡氣).

불길하고 섬뜩하게 빛났다.

“크흐흐흐. 역시 네 놈도 힘이 다했구나. 그런 거였어. 마지막 한 발짝. 그것만 떼면 되는 거였어! 크하하하하!”

하무백이 나동그라지는 모습에 삼령주는 광소를 터트렸다.

그의 몸은 마강기로 둘러싸여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하무백은 적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흑마잠혈고…….”

“크큭. 역시 알아보는구나. 설마 내가 이 녀석을 깨우게 될 줄은 몰랐다. 죽기 살기로 터트렸는데. 최고의 선택이었어. 크크크. 이제 그만 죽어라!”

쎄에에엑!

다시금 이기어검으로 날아오는 마강기의 검.

하무백은 그야말로 온몸의 내공을 박박 긁어모았다.

새하얗게 피어오르는 작은 검강.

무극팔절검해 팔 절.

하무백의 검이 움직였다.

콰콰콰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하무백이 형편없이 뒤로 굴러갔다.

삼령주의 검 역시 뒤로 날아갔다.

그것을 삼령주가 가볍게 쥐었다.

다시금 마강기가 검에 피어오르고.

그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크크크. 마침 다 모여 있구나. 한 번에 죽여버릴 수 있겠어.”

삼령주가 살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무백은 어느새 궁무혁과 궁소유의 바로 앞에 쓰러져 있었다.

저벅저벅.

승리에 도취되어 하무백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삼령주.

하무백은 이를 악물고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강호에 첫 출도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모든 내공을 소모한 적이 언제던가.

단전에 금이 가려 하고 있었다.

고작 마교의 삼령주 따위에게 이런 꼴이 되리라고는.

그래도 등 뒤에 지켜야 하는 이가 있었기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단전을 깨트리는 것은 최후의 수단.

일단 선천진기를 먼저 끌어와야겠다 마음먹은 순간.

하무백의 왼손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힐끗 내려다보니, 궁소유가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그것의 정체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게 한 그것이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보았다. 그리고 삼령주가 궁소유에게 하던 말도 들었다.

‘내공을 주입해서 눌러야.’

다행히 실낱같은 내공은 남아 있었다.

이것을 누르는 것 정도야.

어느새 하무백 앞 이 장 거리에 다다른 삼령주.

삼령주의 간격이었기에, 이제 일 검이 눈앞의 이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다.

그리 생각하는 순간.

하무백이 삼령주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훗. 무얼 하는… 그, 그것은……!.”

가소롭다는 웃음을 흘리던 삼령주는 하무백의 손에 들린 것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만천금쇄폭뢰.

그것이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이익!”

전력을 다해 몸을 빼려고 땅을 박찼지만.

딸칵.

하무백이 내공을 실은 손가락으로 단추를 눌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