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14화 (114/312)

114화. 저 가죽신

밤은 제법 추웠다.

겨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숨을 쉴 때마다 김이 서렸다.

하무백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가장 기본적인 외공의 수련을 위해.

축시에 이른 깊은 밤.

아무도 없는 맹룡대 칠 조의 연무장에서.

모든 내공을 금제한 채, 오로지 근육의 힘으로만 움직였다.

생도들에게 들라고 했던 쇳덩이를 자신이 직접 들고 일정한 동작으로 움직였다.

세세한 근육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다르군.’

벽을 넘은 것이 내공뿐 아니라 외공과 근육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훨씬 쉽게 쇳덩이를 들고 움직일 수 있었다.

이 감각에 우선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현재의 몸에 적응해야 했다.

생과 사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벽을 넘었다.

덕분에 자신의 감각과 육체의 능력 사이에 미묘한 오차가 생긴 상태.

그것을 빨리 보정해야 했다.

추운 날씨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하무백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무백의 수련은 인시 말(대략 05시)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목욕장에서 찬물로 땀을 씻어낸 하무백은 자신의 숙소에서 잠깐 눈을 붙인 후 연무장으로 다시 향했다.

‘며칠 걸리겠군.’

감각의 오류가 조금씩 잡혀가는 듯했지만, 이전과 같이 정교하게 딱 떨어지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무백이 연무장에 다시 도착한 시간은 진시 말(대략 9시).

생도들은 이미 모여서 수련 삼매경이었다.

그런데.

어째 사람이 많았다.

분명 칠 조 생도는 다섯 명인데.

왜 연무장에 아홉 명이 있는 것인지.

하무백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어서는 안 될 이들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하무백의 물음에 한설빙은 딴청을 피웠다. 하설란과 주우명은 그런 교관의 곁에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너.”

하무백의 날카로운 시선이 향한 곳.

“너는 아예 잠룡대잖아.”

남궁지후는 하무백의 지적에 머리를 슬쩍 긁적였다.

“대련다운 대련을 할 만한 이가 잠룡대에는 없어서…….”

그러면서 남궁지후는 슬쩍 사람들을 쳐다봤다.

주우명, 백리평, 단목운뢰였다.

“그래. 알아서들 해라.”

하무백이 손을 휘휘 젓고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애초에 알아서들 하고 있었는데…….”

당진산의 중얼거림이 하무백의 귀에 들렸으나 못 들은 척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

천검파(千劍派).

신진팔문의 수장 격인 문파였다.

지금은 그 자리를 도림에게 넘겨주었지만.

그것은 오로지 소휘웅 때문이었다.

두 번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의 영웅이자, 정천맹주 그리고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인.

그런 소휘웅의 출신 문파가 도림이었으니, 신진팔문의 수장 자리를 도림이 차지할 수밖에.

천검파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래도 절치부심 수장의 자리를 되찾으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천재 한 명의 탄생으로 수장 자리가 도림에 넘어갔기에, 천검파는 소휘웅을 뛰어넘을 천재를 찾아 천하를 뒤졌다.

그렇게 열 명의 아이를 찾았고, 그중 하나는 정녕 하늘이 내린 천재였다.

그 아이가 지금 교룡관 와룡대에 있었다.

하반기의 시작과 함께 은밀히 입관했다.

목표는 남궁지후와 주우명.

우선 그 둘을 무참히 꺾는 것이었다.

주우명이 교룡관에 입관한다는 소식에 천검파에서도 서둘러 그 아이를 교룡관에 보낸 것이다.

남궁세가 세가주의 장남과 전대 무당제일검의 유일한 제자.

꺾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이었다.

현재 도림에는 소휘웅의 뒤를 이을 만큼 특출한 이가 없었다.

그럴수록 천검파 후기지수의 위용을 보여 신진팔문을 천검파 중심으로 끌어모아야 했다.

도림은 최근 그 위세가 줄어들고 있었다.

당장 교룡관에서 여생도를 희롱하다가 폐인이 된 한평이라는 놈만 보더라도 현 상황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와룡대 이십 조 생도 목청산.

하투제에서의 망신을 되갚기 위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당과 남궁을 꺾기 위해.

교룡관에 보낸 천검파 최고의 후기지수였다.

“후우.”

한바탕 검무를 끝낸 그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없는 연무장.

그는 홀로 검을 휘둘렀다.

와룡대 이십 조의 다른 생도들은 수련을 마치고 자리를 뜬 지 오래.

현재 와룡대에서 가장 강한 목청산만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텅 빈 연무장을 둘러본 그가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생각들인 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가 모자란 듯 수련에 매진해도 부족하거늘.

다른 이들은 어찌 저리 여유를 부리고 있을까?

“대사형. 이제 곧 해가 지는데 아직도 수련 중이십니까?”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와룡대 일 조의 생도 다섯 중 한 명인 목청산의 사제였다.

천검파에서 심혈을 기울여 기르는 열 명의 후기지수 중 한 명.

와룡대주 상경문이 ‘와룡대에 입관할 리 없는 인재’라 평한 이, 범일소.

“동투제가 머지않았다, 사제.”

목청산이 진중한 얼굴로 답했다. 아니 그의 표정에는 범일소를 향한 책망이 어려 있었다.

어찌 수련에 더 매진하지 않느냐는 책망.

“하하, 대사형께서 나가시니, 어차피 우승은 대사형께서 떼놓은 당상 아닙니까? 이 사제는 나가 봐야 우승은 못 하니 적당히 해야지요.”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태도였다.

“사제. 그 무슨.”

“아, 알겠습니다. 사형. 내일부터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본파도 아니고 교룡관인데 너무 그렇게 질책만 하지 마십시오.”

목청산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범일소가 앓는 소리를 했다.

“실은 그곳에 가볼까 해서 수련을 일찍 마친 겁니다.”

그때 범일소의 곁에 있던 이가 말했다.

아마도 철기방 출신이라 했던 이였다.

“그곳?”

“지난번에 화룡이 승천했다는 그 객잔 말입니다.”

“화룡이라니, 터무니없는…….”

그날 밤의 난리는 목청산의 기억에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폭음과 어두운 하늘을 붉게 물들였던 불꽃.

목청산이 알고 있는 지식 안에서 그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화룡이라는 허무맹랑한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 무얼 하려는 것인가?”

목청산이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객잔의 폐허는 깨끗이 정리했지만, 화룡에게 휩쓸린 별채 건물 중 일부는 남았다는군요.”

범일소가 말했다.

“그래서?”

“객잔주가 오늘부터 그곳을 공개했다네요. 화룡승천지라나.”

화룡승천지라니.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물론, 관람료를 좀 내야 한답니다.”

이어진 범일소의 말에.

“허.”

목청산은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

“아… 또 졌다!”

단목운뢰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백리평은 그런 단목운뢰의 어깨를 툭 쳤다.

“오늘도 겨우 이겼어.”

그 말대로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

이렇게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다음에는 자신이 질 것 같았다.

노을이 지고 있는 시간.

오늘의 수련 시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해가 빨리 지는 만큼 수련 시간도 짧아졌다.

연무장 여기저기에는 땀에 전 생도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것은 주우명과 남궁지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오늘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대련인 만큼 두 사람 모두 최후의 한 수를 숨기는 탓일까.

딱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자, 그보다 내가 재미난 소식을 들었어.”

당진산이 두 사람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너희들도 이쪽으로 와봐.”

당진산이 생도들을 불러 모았다.

교룡관의 소식통 중 한 명이 당진산이다. 그 뛰어난 친화력으로 곳곳의 소식을 가지고 왔으니.

“화룡승천지라고 들어봤어?”

당진산의 물음에 생도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무창에 그런 곳은 없었으니.

생도들의 어리둥절해하는 얼굴에 신이 난 당진산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신이 난 만큼 목소리가 컸기에 하무백은 물론 한설빙과 하설란도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한설빙과 하설란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그러니까. 보려면 관람료를 내야 한다는 거네?”

단목운뢰가 고민이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보고는 싶은데, 관람료가 걸리는 모양이었다.

화룡이 승천한 자리라 하니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화룡이라니 말도 안 돼.”

주우명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남궁지후 역시 그 의견에 힘을 보탰다.

“그러면, 그건 뭔데?”

당진산의 물음에 두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씨익 웃음 짓는 당진산.

“그러니까 한번 가서 확인해 보자는 거지.”

그 말에 결국 주우명과 남궁지후까지 설득당했다.

낙우진과 백리평, 연하민 역시 호기심이 동한 얼굴이다.

“자자, 다들 가자고. 운뢰. 너는 내가 빌려줄 테니까 나중에 성공해서 갚아라.”

단목운뢰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당진산.

그들의 시선은 하설란에게로 향했다.

“설란. 같이 안 가?”

연하민이 물었다.

“아니. 나는 괜찮아. 오늘 좀 힘들기도 하고.”

그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무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외출증이라면 한 교관에게 받아. 귀찮다.”

“하, 정말.”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한설빙이 외출증을 품에서 꺼내 생도들에게 건넸다.

자정까지만 돌아오면 되었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생도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연무장에는 하무백과 한설빙, 하설란만 남았다.

“화룡이 되신 소감이 어때요?”

한설빙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미친.”

간단한 답.

“그런데 그곳이 관람료를 받을 정도인가요?”

하설란이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불에 타고 남은 별채의 잔재를 그녀는 이미 보았으니까.

“객잔주가 장사를 잘하네.”

하무백의 짤막한 평이었다.

관람료를 받은 덕일까.

폐허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지만, 금줄을 둘러친 안쪽으로 들어서는 이는 별로 없었다.

객잔주가 고용한 무인들이 주변을 지키기도 했고.

객잔주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화룡승천지(火龍昇天地).

그가 붙인 이름이다.

‘암, 분명히 화룡이 승천했고말고. 그것도 둘이나.’

객잔주는 그날 밤 분명히 보았다.

어두운 하늘을 불태우며 높이 솟아오르는 화룡을.

그 일이 있고 다음 날, 찾아온 별채의 손님들도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분명 용이라 그런 것이다.’

객잔주는 끊임없이 되뇌며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소문을 흘렸다.

이미 별채의 재건 비용은 넘치도록 받았지만, 당분간 별채보다는 이리 두는 것이 훨씬 짭짤한 수입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게다가.

‘저 가죽신.’

한 켤레도 아니고 한 짝만 남았다.

‘흐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던 용이 남긴 흔적이 분명하다.’

스스로 그렇게 믿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그리 말하니.

화룡이 떨어뜨린 가죽신이니 용이 남긴 흔적인 게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사람들을 다시 한번 구름 같이 모았다.

객잔주가 낸 소문을 사람들이 이리 쉽게 믿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다들 그날 아침에 이곳에 와서 주변을 자욱이 덮은 서리 안개를 본 탓이다.

승천한 용이 남긴 안개라 생각하는 것.

널리 퍼진 소문은 무창 사람들 모두 한 번쯤 이곳에 오도록 만들었다.

금줄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멀리서나마 보려는 것이다.

화룡이 승천했다는 그 신성한 곳을.

그중에는 이 아이도 있었다.

단목운혜.

하무백의 치료로 건강을 많이 회복한 덕에 이곳에 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되었다.

‘용이 승천한 곳에서, 그 기운을 받으면 더 빨리 나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으로 이곳까지 걸음한 것이다.

하지만 작고 어린 그녀는 쉬이 금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쳇. 뭐야. 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거면서. 왜 이리 귀찮게.”

범일소는 주변을 둘러싼 인파가 걸리적거린다는 듯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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