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15화 (115/312)

115화. 어? 오라버니?

“저기, 좀 지나갈게요. 죄송해요.”

단목운혜는 사람들 틈을 헤치며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용의 기운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물론 관람료를 내고 입장하는 입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만 그곳은 무인들이 지키고 있었기에 갈 수가 없었다. 최대한 금줄에 붙어서 승천지를 보려 했지만 어리고 약한 단목운혜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덩치 큰 성인 남자들에게 막혀 도무지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관람료를 낸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 쪽이 조금이라도 틈이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에잇. 이건 또 뭐야. 귀찮게. 가뜩이나 사람 많아서 짜증 나는데.”

단목운혜가 막 파고들던 틈 앞에 있던 험악한 인상의 장한이 거슬린다는 듯 몸을 비틀며 팔을 휘둘러 단목운혜를 밀쳤다.

“아악.”

단목운혜는 힘없이 튕겨 나갔다.

금줄 아래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굴러 통로에 주저앉았다.

“응?”

그 위치는 범일소 일행이 막 지나가려던 곳이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주저앉은 여자아이.

주변을 지키던 무인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단목운혜를 끌어내려는 것이다.

“아, 잠깐만요.”

범일소가 손을 들어 무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단목운혜를 찬찬히 살폈다.

낡은 옷에 볼품없는 꼬락서니.

그나마 얼굴은 깔끔했고, 살짝 살이 올라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약해 보이는 팔다리로 이 아이의 사정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귀찮은 이들이 많은 곳을 지나쳐 왔는데 이런 아이가 앞을 막다니.

“넌 뭐냐?”

범일소가 단목운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기세가 자못 날카로웠다.

“그, 그게…….”

단목운혜가 깜짝 놀라 말하길 주저했다.

***

“흠.”

하무백이 홀로 남은 연무장 바위 위에 반가부좌를 하고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들어 강기를 주입했다.

백색 수강이 손에 맺힌다.

이번에는 왼손을 들어서 강기를 뿜어냈다.

묵빛 강기.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가지 강기가 양손에 동시에 맺혔다.

“이게 되네?”

하무백이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본래 두 가지 성질의 강기를 다루던 하무백.

하지만 둘을 동시에 사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벽을 넘으면서 그게 가능해진 것이다.

무겁고 패도적인 묵빛 강기.

단단하고 빠른 백색 강기.

특히나 강시들에게는 백색 강기가 더 강한 위력을 발했다.

상황에 따라 하무백이 판단을 내려 적절한 강기를 사용했다.

헌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묵빛 강기를 사용하다가, 필요하다면 거기에 백색 강기를 추가하면 되니까.

이전이라면 묵빛 강기를 거둬들이고 백색 강기를 사용해야 했다.

여유로운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는 그 일수유의 틈이 치명적일 수도 있었으니.

혈맥은 더욱 넓고 튼튼해졌다.

단전은 훨씬 더 단단해졌다.

강기를 유지한 채로 기감을 펼쳤다.

쑥쑥 범위를 넓혀 갔다.

무창성을 넘어 더 먼 곳까지.

그럼에도 단전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전에는 이 정도면 단전에서 통증이 느껴졌는데.

“확실히 강해졌다.”

하무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강기를 거둬들였다.

“다만 문제는…….”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하무백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략적인 추측만 가능할 뿐.

그 추측으로 내린 결론이 만천금쇄폭뢰 네 기의 공격을 견디는 정도다.

감각의 오차를 완전히 보정하고, 현재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지금 강호에 흐르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팽가의 가주, 연가의 소가주, 산월마림의 상태, 그리고 이번 만물련의 반역에 관여한 마교.

하나같이 하무백의 신경을 긁었다.

그 모든 것이 일 년이 안 된 시간 동안 일어났음이니.

“그래. 확실히 해야지. 만약의 사태를 준비하지.”

하무백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끙차.”

기지개를 한껏 켠 후 홀연히 사라졌다.

***

“그러니까 몸이 너무 약해서 어머니가 걱정하시는데, 화룡승천지에 가서 용의 기운을 받으면 조금이라도 건강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이곳에 왔다. 들어갈 관람료는 없으니, 최대한 승천지에 가까운 곳에 가려다가 밀려 넘어져서 이곳까지 왔다는 거냐?”

살짝 겁을 먹고 띄엄띄엄 설명한 단목운혜의 말을 요약한 범일소.

단목운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여길 혼자? 아버지는?”

범일소의 물음에 단목운혜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돌아가셨어요.”

침울한 목소리.

“아.”

범일소는 짧은 탄성을 흘렸다.

가만히 지켜보던 일행 넷은 범일소를 쏘아 보았다.

저 어린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을 하게 만들다니.

“큼. 미안하다.”

잘못한 것을 인정했기에 빠르게 사과하는 범일소.

그의 시선이 통로의 금줄 옆에 잔뜩 모인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범일소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시선도 그곳에 모여 있었다.

정확히는 한 사람.

단목운혜를 밀친 장한을 향해서였다.

범일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주변의 사람들은 긴장한 채 조용히 있었다.

교룡관 와룡대의 관복을 입은 이였으니, 명문 무림문파의 제자임을 알아본 탓이다.

무창 사람들에게 잠룡대와 와룡대의 관복은 익숙한 것이었으니.

그렇게 조용한 덕에 단목운혜의 작은 목소리를 제법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을 모두 들은 이의 날카로운 시선이 장한에게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 그게…….”

많은 이들의 사나운 시선을 받은 장한은 당황해서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 사나운 시선 중 하나가 범일소의 것인 탓이다.

“우, 우아악!”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달아나는 장한.

그 모습에 범일소는 눈살을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너. 일단 얼굴은 기억해뒀다.”

“고, 고맙습니다.”

단목운혜가 그런 범일소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응? 뭘?”

범일소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 저 아저씨…….”

단목운혜의 시선이 멀리 달아나는 사내에게로 향했다.

“저놈이 네게 사과를 한 것도 아니고, 저 혼자 놀라 도망가는 건데. 네게 감사받을 일이 아니다.”

찌릿.

범일소의 일행의 시선이 다시 날카롭게 그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아직 승천지는 제대로 못 본 거지?”

“네? 네.”

범일소의 물음에 단목운혜가 답했다.

“그럼 같이 가자.”

“네?”

예상치 못한 말에 놀라서 묻는 단목운혜.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네게 실례되는 말을 했으니 사과의 의미로 승천지에 데려다주마.”

“그, 그게…….”

놀라운 제안에 단목운혜는 미처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녀도 관람료가 얼마인지 알고 있는 탓이다.

은자 한 냥.

엄청난 금액이었다.

오라버니의 월봉이 은자 스무 냥이라 했다. 헌데 화룡이 승천한 곳을 잠깐 보는 데 대한 대가가 은자 한 냥이라니.

단목운혜로서는 엄두도 못 낼 금액이며, 누군가가 호의를 베푼다 해도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금액이었다.

“우와. 역시 범일소. 통이 크구만!”

와룡대 일 조의 다른 생도가 범일소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은자 스무 냥이면 4인 가족이 한 달을 제법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은자 한 냥은 그 정도로 큰 금액.

이들에게는 큰 부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처음 보는 여자아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쓸 금액도 아니었다.

단목운혜는 지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상대의 호의에 기대어 화룡승천지를 볼 것인가, 인간의 도리에 따라 분에 넘치는 호의를 거절할 것인가.

화룡승천지의 유혹이 강렬했기에 단목운혜는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뭘 고민해?”

그 모습에 범일소가 날카로운 눈으로 단목운혜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그대로 곁에 있는 무사에게 튕겼다.

“저 아이 몫.”

이들은 이미 관람료를 내고 들어오고 있던 터였기에, 단목운혜의 것만 추가로 낸 것이다.

“어? 어어!?!”

“난 돈 냈다. 이제 들어오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

그러면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범일소.

***

“이 아이는 어디를 간 거람?”

집 앞에서 주변을 돌아보는 여화.

단목운혜가 집을 나간 지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아 걱정되었다.

벌써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는 탓이다.

“아마 화룡승천지 쪽으로 간 모양이야.”

그때 곁에서 들리는 늙수그레한 목소리.

벽력개였다.

“아, 어르신.”

여화는 다소곳이 허리를 숙였다.

“그 아이가 그곳에는 왜 갔을까요?”

“잇속에 밝은 객잔주 놈이 퍼트린 헛소문에 이끌린 듯해.”

“아…….”

벽력개의 말에 여화는 안타까운 음성을 흘렸다. 그 소문은 그녀 역시 저자에서 들었으니.

폐허를 보는데 은자 한 냥이라니.

미쳤다고 했다.

물론 여화의 집은 이제 여유가 있었다.

단목운뢰가 매달 월봉을 보내주고 있었고, 여기 있는 방 어르신이 운혜의 건강을 돌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금액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 돈을 쓸 수 없었다.

운뢰가 고생하면서 벌어온 돈이었기에, 운혜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아니면 최소한의 돈만 사용했다.

언제고 운뢰에게 돌려줘야 하니까.

“얘는 왜 그런 곳으로.”

“흘흘. 빨리 건강해지고 싶은 게지. 너무 걱정 말게나. 제법 건강해졌으니. 나도 한 번 가볼 터이니.”

“감사합니다. 어르신.”

여화가 벽력개를 향해 다시 한번 꾸벅 허리를 숙였다.

***

“이, 이걸 어떻게…….”

범일소는 이미 승천지 안으로 가버렸다.

덩그러니 남은 단목운혜와 생도 네 명.

“어린 소저. 저 녀석 나름의 방식이니까, 들어가서 봐요. 돈은 이미 냈으니까.”

좀 전에 범일소의 어깨를 두드리던 사내가 말했다.

“그래도…….”

“저 녀석 마음도 헤아려줘요. 조금 전 그 말이 많이 미안한 듯하니. 이렇게라도 사과하고 싶은 모양이에요. 표현이 서툰 녀석이라.”

결국 단목운혜는 그들 네 사람과 함께 화룡승천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객잔 별채의 잔해 앞에 먼저 도착했던 범일소가 뒤늦게 온 일행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중 단목운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슬쩍 웃었다.

“어때?”

일행의 물음에 범일소가 어깨를 으쓱하며 눈짓했다.

“직접 봐.”

주춧돌과 타고 남은 기둥들 몇.

그리고 무너진 지붕의 잔해.

그 정도가 전부다.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다.

이런 것을 화룡승천지라 하면서 은자를 한 냥이나 쳐 받다니.

객잔주 놈 정말 제대로 된 장사꾼이란 생각이 들었다.

단목운혜는 그 잔해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부디 화룡의 기운이 자기에게도 깃들기를 바라는 간절함.

범일소는 잠자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별로 떠오르지도 않는, 아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으니.

천검파의 눈에 띄기 전.

유랑 걸식하던 어린아이였던 자신.

“자자, 그럼 어디 어떤지 한번 보자고!”

그때 멀리서 들어오는 기운찬 목소리.

그런데 어디선가 들은 듯 익숙한 목소리다.

아마도 교룡관 여기저기서 들은 듯한.

그런 인물이라면 한 명이 떠올랐기에 범일소는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당진산이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시끄럽게 들어서고 있었다.

범일소의 시선이 멈춘 곳에 그 녀석들이 있었다.

지난 하투제의 아픈 기억을 만들어 준 세 사람.

그리고 그중 자신을 탈락시켰던 녀석.

“어? 오라버니?”

그때 눈앞에 있던 꼬마 녀석의 놀란 목소리가 범일소의 귀에 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