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오라버니라니?
갑자기?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뻔했다.
자신의 일행과, 맹룡대 칠 조의 일행들.
그렇게 두 무리가 전부였다.
하긴 이런 폐허를 보는 데 관람료 은자 한 냥은 지나치게 비싼 값이다.
그 돈을 내고 볼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무튼 자신의 일행에 저 아이의 오라버니는 없었다.
당연한 일.
그렇다면 저 녀석들 중 한 놈이 이 아이의 오라버니라는 것인데.
우연도 이렇게 공교로울 수 있을까.
하필이면.
범일소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단목운혜는 오라버니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달려갔다.
막 승천지로 들어서던 맹룡대 칠 조의 생도들은 깜짝 놀랐다.
예상치 못한 이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왔으니까.
여기 있는 이들 대부분이 단목운혜와 안면이 있지 않던가.
“우, 운혜야?”
단목운뢰가 깜짝 놀랐다.
이곳은 저 아이가 있을 곳이 아니었으니. 들어오려면 거금 은자 한 냥을 내야 한다.
자신도 그 금액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돌아가겠다고 했다가 당진산에게 끌려오다시피 들어왔다.
그런데 운혜가 먼저 와있다니.
“네가 어찌 여기에?”
단목운뢰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아, 저. 그게…….”
오라버니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힘껏 달려왔지만, 지금 받은 질문에 갑자기 할 말이 궁색해졌다.
“네 녀석 동생이었던가?”
그때 다가온 범일소.
단목운뢰와 일행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하투제에서 단목운뢰 자신의 손으로 탈락시켰던 상대였으니까.
방심한 틈을 노렸던 일격이 먹혔던. 정말로 천운이 도왔던 순간이었다.
“범일소. 네가 왜?”
단목운뢰의 물음에 범일소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 저기. 오라버니. 이 분이 이곳에 들어오게 해주셨어요…….”
단목운뢰가 인상을 썼다.
집에서는 부르지도 않는 오라버니라는 호칭에, 경어까지.
낯선 사람들과 함께인지라 주변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처신을 하고 있는 단목운혜.
처음 단목운뢰를 발견했을 때도 오빠라는 말보다 오라버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범일소를 비롯한 그 일행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단목운뢰의 시선이 다시 범일소에게로 향했다.
“범일소. 네가 왜?”
조금 전과 같은 물음.
하지만 지닌 의미는 달랐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었군. 단목이라는 성이 흔한 성이 아닌데.”
범일소는 단목운뢰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다른 말을 늘어놓았다. 깜빡했다는 듯.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나서는 사내.
“뭐, 약간의 소란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도 설마 단목운뢰, 네 동생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선유곡 출신의 와룡대 생도인 사평주였다.
“응? 사평주? 그러고 보니 와룡대 일 조가 전부 왔구나.”
한 발 앞으로 나서는 당진산.
아무래도 와룡대 일 조와 맹룡대 칠 조에서 가장 사교성이 좋고 타인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두 사람이 나선 것이다.
“워낙에 대단한 소문이라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 그러니까.”
사평주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단목운뢰의 표정이 풀렸다.
이내 미안한 얼굴로 범일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줄 모르고.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은자 한 냥은 언제가 됐든 꼭 갚을게.”
단목운뢰가 꾸벅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근데. 그놈은 어디로 간 거야? 우리 운혜를 밀친.”
당진산이 인상을 와락 쓰며 물었다.
그러나 이미 죽어라 뜀박질하며 달아난 사람을 어찌 찾을까.
“얼굴이라면 기억해 뒀으니, 지나가다 마주치면 알려주지.”
범일소가 툭 내뱉듯 말했다.
당진산이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의외라는 표정을 얼굴 한가득 짓고서는.
“그런데 맹룡대가 여긴 무슨 일이지?”
툭 끼어드는 사내.
철기방 출신의 마립이었다. 건장한 덩치에 근육이 우락부락한.
“너희랑 같은 용무 같은데? 그리고 잠룡대도 하나 끼어 있어.”
백리평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별거 없다.”
남궁지후를 힐끗 보면서 말하는 마립.
백리평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립은 지난 하투제에서 백리평에게 탈락당했으니까.
범일소처럼 상대의 운에 당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실력으로 당했었다.
전반기가 끝난 후 휴관기 동안 철기방에서 그 일로 얼마나 많은 갈굼을 당했던가.
“동투제 나오겠지?”
마립이 백리평을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지난번과는 다를 거다.”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마립. 그 방향은 승천지를 빠져나가는 쪽이었다.
그의 등은 투지로 불타고 있었다.
아마도 연무장을 향해 가는 것이리라.
“갑자기 왜 저러지. 미안하다.”
사평주가 백리평에게 대신 사과했다.
“무인이 호승심을 보이는 걸 뭘 사과하고 그래. 단목운뢰. 이번 동투제에서 각오해라. 지난번처럼 마냥 운이 좋지만은 않을 거다.”
이번에는 범일소였다.
하지만 그는 마립처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별채의 잔해에 다시 한번 다가가 이리저리 살폈다.
“어, 저. 오라버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단목운뢰를 쳐다보는 단목운혜.
“별일 아냐. 특별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그런 동생을 안심시키려는 듯 단목운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단목운혜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남궁지후와 주우명이 있었다.
단목운혜가 미처 만난 적이 없던 이들.
“그런데 저분들은 누구신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뒤를 힐끔거리는 단목운혜.
그 모습에 당진산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요거 요거. 우리 운혜. 남자 보는 눈이 제법 높구나. 잘생긴 애들만 꼭 짚는 거 보면?”
당진산의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단목운혜.
“아, 아저씨…….”
“아. 역시 나 정도의 평범한 외모는 아저씨로구나. 전에 분명 오라버니라 했던 거 같은데. 저 잘생긴 애들을 보고 나니까 다시 아저씨로 보이는 거구나.”
이어지는 당진산의 놀림.
“그만해.”
나선 것은 연하민이었다.
“신경 쓰지 마. 운혜야.”
“언니!”
그제야 연하민을 발견하고 달려가 안기는 단목운혜.
“많이 건강해진 거 같네. 다행이야.”
“만나서 정말 좋아요. 언니. 가끔 놀러 오세요.”
단목운뢰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자신은 분명 화룡의 흔적을 보러 온 것 같은데.
“너희들 재미있게 지내는구나?”
그 모습에 사평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럭저럭.”
낙우진이 별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그럼 운혜 소저?”
사평주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단목운혜를 불렀다.
“네?”
“화룡의 기운을 받아서 건강해진 것 같아요?”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추며 묻는 사평주.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좋아지겠죠. 정말 감사합니다.”
단목운혜가 허리를 다시 한번 꾸벅 숙였다.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행동이다.
“내가 부족하기는 해도, 의술을 조금 배웠는데…….”
그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용건을 꺼내려는 사평주.
건강이 안 좋다 하니, 자신이 진맥을 해보고 사문에 도움을 청하려는 생각이었다.
이런 것도 인연인지라.
“아, 맞다. 너 선유곡 출신이었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하는 당진산.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오히려 단목운혜였다.
굉장히 반가운 표정.
그런 모습에 사평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유곡 출신이시면 혹시 궁소유 언니 아세요?”
그리고 툭 튀어나온 이름에 사평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이름이 왜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구, 궁소유? 운혜 소저가 어떻게 그 이름을 아는 거지?”
이번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단목운혜였다.
왜 언니 이름을 듣고 저런 반응이지 하는 의문.
“만났으니까 알지요.”
“여기 무창에서?”
이어지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단목운혜.
사평주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가 알기로는 분명 본곡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곡주의 손녀인데.
왜 무창에서 단목운혜를 만났단 말인가.
선유곡이라는 이름에 단목운혜가 반응을 보인 것이니, 동명이인도 아닐 터.
“무창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아, 저랑 비슷한 병을 앓고 있어서 치료받으러 왔대요. 저를 치료해주시는 교관님께요.”
술술 나오는 이야기.
그러나 들을수록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그런 사평주의 모습에 단목운혜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자신이 뭘 잘못했나 하면서.
그런 일행을 뒤로하고 단목운뢰는 별채의 잔해로 다가갔다.
운혜는 연하민이 잘 데리고 있으니 걱정할 게 없을 듯했다.
주우명과 남궁지후 역시 별채의 잔해로 향했다.
“동생이 이쁘네.”
주우명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쁘지.”
담담하게 답하는 단목운뢰. 그러나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어때?”
남궁지후가 주우명과 단목운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나 이렇게 본다고 무얼 알 수 있을까.
그저 화재 후 남아 있는 잔해로 보일 뿐.
이곳에서 용의 기운이니 그런 것은 느낄 수가 없었다.
“장사꾼한테 속은 거지. 용은 무슨.”
범일소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다시 봐도 역시 아무것도 아닌 화재의 잔해였다.
“그런데 단순히 불이 난 게 아니라. 그날 밤…….”
남궁지후의 말에 나머지 셋은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보러 왔지만, 역시나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동투제 각오해라. 단목운뢰.”
범일소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의 움직임에 와룡대 일 조의 생도들은 모두 화룡승천지를 빠져나갔다.
그중에는 혼란에 빠진 사평주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 사람이 한 거라면. 그 사람은 대체 어떤 괴물일까.”
남궁지후가 잔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릴 때.
그 주변으로 나머지 생도가 모두 모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다.
동시에 칠 조의 생도들과 주우명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적어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장 무시무시한 괴물을.
***
“무슨 일이더냐?”
청석길을 빗자루질하고 있던 위지군이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물었다.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하무백이 짧게 말했다.
“나를 뛰어넘은 녀석에게 가르침은 무슨.”
위지군이 빙그레 웃으며 비질을 계속했다.
“너무 갑작스러웠던지라, 몸이 적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
“너라면 금세 할 게다.”
비질의 박자에는 변함이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무얼 말이더냐?”
하무백이 답답한 듯이 말하자 그제야 빗자루를 멈추는 위지군.
그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제가 얼마나 강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위지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제자를 바라보았다.
제자의 두 눈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번에 벽을 넘으면서 네가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이 늙은 스승을 상대로 시험을 해보고 싶다 이거냐?”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하무백은 가장 먼저 한 말을 다시 한 번 했다.
“그게 가르침이더냐? 사부를 상대로 한계까지 마음껏 힘을 써보겠다는 것이?”
어이없다는 듯 다시 묻는 위지군.
그러나 그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이런 제자가 대견하고 자랑스럽기 그지없다는 표정.
말투와 표정이 상이했다.
“사부님께서도 벽을 넘으셔야지요.”
“허허. 그래. 어디 한번 어울려보자꾸나!”
호쾌하게 답하는 위지군.
그러고는 다시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저, 사부님?”
“좀 기다리거라. 저기까지는 오늘 끝내놔야 한다. 난 교관이 아니라 일꾼이다.”
***
와룡대의 생도들과는 다른 길로 홀로 움직인 범일소.
그의 눈앞에는 그가 오늘 얼굴을 기억해 둔 장한이 있었다.
어째서 자신의 눈앞에 이놈이 있는 것일까?
귀찮게.
“야. 너.”
범일소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그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