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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17화 (117/312)

117화. 좋구나!

범일소는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목적지는 이 싸구려 유흥가를 지나야 나오는 곳이었다.

지금은 편하게 지나다니지만, 원래 질 나쁜 시정잡배들의 본거지였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른 채 관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가다가 만난, 시시껄렁하게 돈 내놓으라고 덤벼들던 놈들.

별것도 아닌 시정잡배 놈들이.

그래서 이 거리의 시정잡배들을 아주 죄다 박살을 내놓았었다.

그게 불과 두 달 전.

교룡관 하반기가 막 시작하던 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놈을 딱 마주쳤다.

자신을 보자마자 저리 겁에 질리는 것을 보니, 이놈도 그 시정잡배놈들 중 하나였었나.

어찌해야 할까.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아직 있으려나?’

귀찮은데.

“죄, 죄송합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리!”

사내는 털썩 무릎을 꿇고 사력을 다해 빌었다.

하는 양을 보니 자신에게 호되게 당했던 듯하다.

그러면 아까 그렇게 도망간 것도 사람들의 시선이나 교룡관의 관복 때문이 아닌, 범일소 때문이었으리라.

‘괜한 말을 했네.’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가급적 뱉은 말은 지키고 싶었다. 그 대상이 단목운뢰 그놈이라면 더더욱.

‘하. 가뜩이나 시간 없는데… 그래도 어쩔 수가 없군.’

범일소는 결정을 내렸다.

“죽이지 않아.”

범일소의 나직한 말에 사내의 얼굴에는 살짝 안도의 빛이 서렸다.

“대신 따라와라.”

금세 사그라졌지만.

범일소는 굳이 다시 화룡승천지가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사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터벅터벅 걸었다.

날이 어두워졌음에도 금줄 주변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았다.

범일소는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앞을 객잔주가 고용한 무사가 막았다.

“이 이상 가시려면 관람료를 내셔야 합니다.”

“조금 전에 나왔소만?”

“그래도 내셔야 합니다.”

단호한 무사의 말에 범일소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응? 범일소?”

그때 맞은편에서 그를 알아본 인물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진산이었다.

“안 들어가도 되겠군.”

마침 화룡승천지에서 나오는 맹룡대 칠 조 일행이었다.

“아까 말한 것 때문에.”

범일소가 뒤쪽을 향해 고갯짓하며 말했다.

“응?”

“말한 것은 지켰다. 그럼 난 간다.”

몸을 돌려서 나가는 범일소와 그런 그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내.

당진산은 그런 사내를 가만히 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혹시? 그놈? 운혜를 밀친?”

생도들의 시선이 단목운혜에게로 향했고,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칠 조 생도들의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연하민마저도.

***

사부와 제자는 빠른 속도로 무창성을 벗어났다.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려면 인적이 없는 곳이 좋았기에, 평소 하무백이 수련하던 인근 야산으로 향한 것이다.

“제법 괜찮은 곳이구나.”

적당한 산속의 공터를 찾았다. 아마도 화전을 일구던 사람이 있었던 모양.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공터다. 지력이 쇠해 떠난 듯했다.

위지군이 먼저 검을 뽑았다.

하무백도 검을 뽑았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노려보았다.

반 각의 시간 동안 두 사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서로의 빈틈을 찾는 시선.

그러는 와중 두 사람 주변의 공기가 변했다.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옷자락.

이내 잔뜩 끌어올린 기운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거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럼에도 미동도 없는 두 사람.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수많은 검초가 오갔다.

같은 무공을 수련하고 서로를 잘 알기에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이미 수십 번의 공방을 펼친 것이다.

팽팽하게 끌어올린 기운이 극에 달했을 때.

타핫.

위지군이 먼저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검을 감싸는 푸른 검강.

산을 쪼갤 듯한 기세로 위지군의 검이 하무백을 향해 떨어졌다.

하무백 역시 검을 마주했다.

새하얀 검강이 하무백의 검을 완전히 감쌌다.

쾅!!!

검과 검이 부딪혔는데, 산이 터져나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강 대 강의 부딪힘.

하무백의 검강이 더욱 하얗게 빛났고, 위지군의 검강 역시 시리도록 푸르게 빛났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접전.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은 그렇게 검을 맞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뒤에서부터 몰아치는 거센 내공의 폭풍.

공터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이 세차게 흔들렸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위지군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물러나는 두 사람.

이번에는 하무백이었다.

물러나나 싶더니 다시 앞으로 쇄도.

상대의 심장을 찔러가는 빛살 같은 검격.

위지군의 모습이 순간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불쑥.

하무백의 왼쪽에서 날아오는 검.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는 하무백.

이번에 두 사람은 신법을 절정으로 펼치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무극여의보법이 극성으로 펼쳐졌다.

그야말로 어지러운 빛살의 향연이 펼쳐졌다.

챙! 채챙!

그 과정에서 몇 번씩 부딪히는 검강이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조금 전의 굉음과는 다른 부딪힘이었다.

“좋구나!”

위지군이 흥이 난 듯 외쳤다.

그리고는 검을 멀리 던졌다. 사부의 행동에 하무백 역시 검을 던졌다.

휘리릭 돌아가 나란히 땅에 꽂히는 검 두 자루.

강기는 두 사람의 주먹에 서렸다.

좁은 간격에서 서로를 향해 마구 휘두르는 주먹과 발.

무극박투(無極搏鬪).

두 사람의 사문인 무극검문의 박투술이 펼쳐졌다.

핑! 슝!

살벌한 파공음이 서로의 얼굴과 몸을 스쳐 지나갔다.

강기의 스침은 예리하고 날카로웠지만, 서로의 호신강기를 뚫지는 못했다.

하무백의 발끝이 위지군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고, 위지군의 주먹이 하무백의 관자놀이를 스쳤다.

주먹과 발,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 눈으로 좇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빨랐다.

두 사람은 그 극한의 속도가 당연하다는 듯 서로를 향해 공방을 주고받았다.

무려 일 각의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박투를 펼친 스승과 제자.

다시 한번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잠깐 멈춰 숨을 돌리는 두 사람.

보통 사람이라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을 격렬한 박투를 치렀음에도, 두 사람의 신색은 고요했다.

“과연. 아직 강해진 몸에 감각이 적응을 못 했구나.”

위지군이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무백의 움직임에 미세한 어긋남이 있었다.

그 덕분일까.

지금까지의 대결에서는 위지군이 우세를 점했다.

“그래도 확실히 극한까지 움직이니, 홀로 수련하는 것보다는 적응이 빠릅니다.”

하무백의 말대로였다.

움직일수록 어긋남이 줄어들고 있었다.

감각의 오차를 보완하는데 며칠을 예상했는데, 어쩌면 오늘 끝날 수도 있을 듯했다.

“실전만 한 훈련은 없는 법이지.”

위지군이 손을 뻗자 검이 휘리릭 그의 손에 빨려들었다.

하무백 역시 허공섭물로 검을 가져다 쥐었다.

“그럼 이제 어디 얼마나 강해졌는지 마음껏 쏟아내 보거라.”

쑤욱 솟아오르는 푸른 검강은 그 길이만 삼 장(약9 미터)에 이르렀다.

하무백의 검에서 역시나 삼 장에 이르는 묵빛 검강이 솟아올랐다.

오늘 처음 사용하는 묵빛 검강이었다.

쾅! 콰콰쾅!

다시금 울리는 굉음.

하무백은 정말로 마음껏 검을 휘둘렀다.

전신의 내공을 모조리 끌어 올려 검에 담았다.

묵빛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화해, 위지군의 푸르른 검강을 마구 유린했다.

쾅! 쾅! 쾅!

검강과 검강이 부딪히는 굉음에 하늘이 울리고 땅이 떨렸다.

한 번의 부딪힘이 몰고 오는 후폭풍에 주변의 나무가 꺾일 듯 흔들렸다.

위지군이 조금씩 뒤로 밀렸다.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고, 이를 악물었다.

‘벌써 이 정도나…….’

제자의 강함이 새삼 놀라웠다.

이번에 벽을 넘으며 자신을 뛰어넘었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미 나를 넘어서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두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무수한 실전을 치러 냈던 경험.

청란도에서 피 냄새를 빼는 과정에서의 심상 수련.

그것만으로도 아마 자신을 넘어섰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벽까지 넘었으니.

제자의 수련에 어울려 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듯했다.

위지군의 옷이 세차게 펄럭였다.

그야말로 전신의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지난번, 만천금쇄폭뢰의 폭발을 견디기 위해 하무백이 그랬던 것처럼.

전신 혈맥에 스며 있는 내공까지 정말로 박박 긁어모았다.

그렇게 모은 내공을 일 검에 실었다.

무극팔절검해.

팔절. 무극.

자신의 평생의 오의를 담은 검을 떨쳐냈다.

하무백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검에 담긴 어마어마한 거력이 절로 느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지극히 깊고도 현묘한 오의가 담긴 검의 움직임.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검식이다.

자신이 사부에게 배우고 익힌 사문의 검법.

무극팔절검해의 마지막 초식, 팔절.

무극.

하무백 역시 펼쳤다.

무극을.

사부에게 배웠지만, 이제는 사부와는 조금 다른 해석을 거친 오의.

고오오오오오오.

두 검이 가까워질수록 심상치 않은 울림이 사방을 흔들었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야말로 붕천의 굉음이 천지 사방을 떨쳐 울렸다.

***

“뭐? 뭐야?”

동생을 밀쳤던 사내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가는 길에 방 어르신을 만나기도 했었다. 어머니의 부탁에 운혜를 찾으러 나서던 길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운혜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교룡관으로 향하던 중.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울리고 하늘이 떨렸다.

땅에서 전해지는 세찬 진동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굉음이 들려온 곳은 북쪽.

그곳에서 수많은 새 떼가 어두운 하늘을 뚫고 날아오고 있었다.

칠 조 생도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대체 무슨 일인 거야?!?”

당진산이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외칠 때, 남궁지후가 고심에 찬 얼굴로 읊조렸다.

“화룡에 천둥에 지진이라니.”

낙우진도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언가 불길한 징조인가?”

“원시천존이시여.”

무당파 출신답게, 도사가 아닌 속인임에도 주우명은 원시천존을 찾으며 두 눈을 감았다.

단목운뢰는 몸을 돌려 집으로 달려갔다.

연하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익숙한 느낌?’

동료들은 놀라고 겁에 질렸지만, 그녀는 이 무서운 현상 속에서 어딘지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냥 육감 같은 것이었기에.

“꺄악!”

한설빙이 놀라서 뾰족한 외침을 터뜨렸다.

“교, 교관님?”

한설빙의 갑작스러운 모습에 놀란 하설란이 그녀를 불렀다.

“지, 지진이야. 지진이라고! 이리와, 어서! 위험해!”

한설빙이 하설란을 서둘러 챙겼다.

어쩔 땐 냉철하고, 어쩔 땐 장난스러우며, 어쩔 땐 다정한 모습을 보이던 한설빙이다.

그러나 이렇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인 적은 단연코 없었다.

지금 이 진동은 그녀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한때를 떠올리게 했다.

의외의 모습에 하설란은 당황할 법도 했으나 침착하게 그녀를 진정시켰다.

누가 교관이고, 생도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모습이다.

“지진 아니에요. 교관님. 걱정 마세요.”

한설빙의 품에 안긴 하설란이 차분한 어조로 말하자 그제야 그녀가 조금씩 진정했다.

“그, 그래……?”

“네. 보세요. 이제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그 말대로다. 지진이라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럼 대체 이건…….”

“글쎄요.”

그리 답한 하설란은 북쪽을 바라보았다.

모른다고 했지만 알 것 같았다.

익숙한 기운이었다.

굉음과 지진과 같은 떨림에 가려졌지만, 하설란은 그 속에 담긴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

궁도혁은 비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이를 악물고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대한 철문.

저 안에 만천금쇄폭뢰가 들어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열어야 한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곳까지는 부련주의 권한을 들이밀며 우격다짐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막혔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술 수는 없었다.

저것을 부쉈다가는 비고 전체가 무너지니까.

애초에 그런 기관을 만들어뒀다.

기관이라면 중원 최고라 자부하는 만물련 아니던가.

그리고 궁무혁만큼은 아니지만, 궁도혁 자신 역시 련의 기관에 통달했다.

그러나 이곳만큼은 열 수가 없었다.

기관으로 잠긴 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술법이라니.”

궁도혁의 오른손 손가락에서 조금씩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문 앞의 작은 돌탑, 중심의 아주 작은 홈.

그곳에 궁도혁의 손가락에서 떨어진 걸로 보이는 피가 고여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변화도 없었다.

“이런 젠장! 씨발! 술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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