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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23화 (123/312)

123화. 잘 보거라

내공으로 일으킨 불꽃이 새파랗게 타올랐다.

필요한 약재를 정확히 계량하여 넣어둔 연단로를 위지군이 내공을 일으켜 달구고 있었다.

연단로 내부에서는 약재들이 녹아 엉겨들고 있었다.

그 과정에 위지군의 내공이 은은히 스며들었다.

위지군은 심유한 눈으로 연단로를 바라보았다.

녹진녹진해진 약재들.

검게 변해서 서로 뒤엉켜 있었다.

위지군이 내공의 운용을 바꿨다. 푸른 불꽃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내공을 직접 연단로 안으로 주입했다.

내공의 움직임에 따라 휘도는 약재들.

그렇게 약재들은 위지군의 내공과 함께 잘 섞여 들어 천천히 굳어갔다.

얼마나 집중했을까.

연단로 안에는 완성된 단환 세 개가 남았다.

위지군의 등은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보았느냐?”

몸을 일으키며 위지군이 물었다.

“네.”

하무백이 짧게 답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곁에서 보고 있었다.

사부의 지시에 따라 무극명륜안까지 운용하고 있었기에 내공의 흐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언제고 네게 연단법을 가르쳐야 한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일이 되는구나.”

무량환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모두 사부가 직접 연단을 한 것이다.

하무백도 언젠가는 배워야 했던 일.

마침 그날이 오늘이 된 것이다.

“무량환 역시 마찬가지 방법이니라. 약재만 다를 뿐이지.”

“연단을 하는 사람의 내공을 어떻게 주입하느냐가 중요하군요.”

하무백의 말에 위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덕에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그 사이 위지군이 작은 벽 하나를 넘었으니.

“그러니 네가 연단을 하면 내가 한 것과는 또 다른 효과가 나타날런지도 모르겠구나. 기본적인 약효야 당연히 동일할 테지만.”

위지군의 말에 하무백은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이 무량환을 연단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표정을 읽은 위지군.

“궁금해도, 당장은 할 일이 있지 않더냐?”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는 하무백.

그랬다.

지금 사부가 연단한 저 단환 세 개가, 마지막 약이었다.

지금까지 탕약으로만 다스렸던 세 사람의 병증을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

세 사람 모두 이미 구 할 오 푼 이상 치유가 된 상태이다.

저 단환으로 오늘 화룡점정의 마지막 치료를 할 예정.

세 사람을 차례대로 치료하려면 바쁜 날이 될 터였다.

“어디를 먼저 갈 테냐?”

“운혜를 먼저 치료하기 시작했으니, 운혜에게 가야지요.”

“운뢰는 어찌할 생각이냐?"

동생이 병마에서 완전히 회복되는 날이다.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 좋은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이제 동지가 이틀 후다.

동투제를 대비해 막바지 수련에 열심인 녀석.

“운뢰에게 물어보겠습니다.”

하무백의 대답에 위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백이 단목운뢰를 따로 불러내 조용히 물어보니, 수련보다 동생이 중요하다며 당장 따라나서겠다 했다.

그렇게 단목운뢰도 함께 가기로 했다.

갑자기 수련을 빠지는 그의 모습에 다른 생도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연하민은 슬쩍 미소 지었다.

무언가 그에게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을 예상한 것이다.

교관님이 연하민 자신에게 주었던 도움. 오늘 운뢰도 그런 도움으로 고민이 해결될 것 같았다.

“잘 보거라.”

위지군이 하무백에게 말했다.

[내공의 소모가 커서, 쉽지만은 않은 치료다. 벽을 넘었기에 이번에는 어떨런지 모르겠다만.]

가족들이 걱정할 것을 염려해, 전음으로 하무백에게만 당부하는 위지군.

오늘은 침을 놓을 일이 없었다.

단환을 복용하고 내공을 사용해, 진기를 이끌어 절맥의 남은 뿌리를 제거하고 혈맥을 튼튼히 해주는 것이 오늘의 치료였다.

위지군이 단목운혜의 등 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하무백은 사부의 말대로 집중해서 그 모든 모습을 눈에 담았다.

한쪽에는 여화와 단목운뢰, 그리고 벽력개가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만 지나면 완전히 건강해질 거란다. 운혜야. 아픈 것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만 몸속에 이상한 느낌이 난다고 소리를 내거나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부하는 위지군.

“네!”

단목운혜는 당차게 대답했다.

위지군의 장심이 단목운혜의 명문혈에 닿았다.

“그럼 복용하거라.”

위지군의 지시에 단목운혜는 손에 있던 단환을 입 안에 넣었다.

그 모습에 단목운뢰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안 좋은 쪽으로 단환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가진 탓이다.

입 안으로 들어간 단환은 침과 닿자마자 순식간에 놓아 액체로 화해 목으로 넘어갔다.

상쾌하고 기분 좋아지는 향기가 입을 넘어 코에까지 감돌았다.

단목운혜는 향기에 취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 시진이 흐른 후.

얼굴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위지군이 천천히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눈을 감고 있는 단목운혜.

가족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위지군은 이미 은은한 웃음을 머금은 채 하무백 곁에 섰다.

“보았느냐?”

“네. 모두 보았습니다.”

“그럼 소유와 궁 련주는 네가 하거라.”

“알겠습니다.”

위지군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때.

단목운혜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은 더없이 맑고 투명해, 심각한 병증을 앓았던 아이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미 건강을 많이 회복해서, 이전의 병약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달랐다.

정말로, 한 시진 전과는 달랐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확연히 다른 것이 느껴졌다.

“우, 운혜야…….”

여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딸을 부르며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엄마. 나 이제 하나도 안 아파!”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단목운혜.

“운혜야!!! 흐윽……!”

그런 단목운혜에게 쓰러지듯 달려가 그녀를 꼭 안고는 울음을 터뜨리는 여화.

“어, 엄마. 왜 그래. 다 나았는데…….”

여화의 울음 때문일까.

단목운혜의 두 눈이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으아아앙.”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단목운뢰도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벽력개는 눈물을 닦으며 슬그머니 집 밖으로 나갔다.

기쁨의 울음바다가 된 가족들을 잠시 지켜보던 하무백이 밖으로 나왔다.

가족들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 것이다.

“오늘로 이 집도 마지막이구만.”

벽력개가 눈물 섞인 눈으로 움막 같은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새 집을 구했다고요. 내일 이사하고요.”

날짜가 참 절묘했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아떨어졌을까.

“교, 교관님. 어디 계세요?”

잠시 후 울먹이는 목소리로 단목운뢰가 하무백을 찾았다.

하무백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교관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어르신!”

연거푸 하무백과 위지군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여화와 단목운뢰, 단목운혜 가족.

위지군과 하무백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싶었다.

단목운뢰의 집을 나선 하무백과 위지군은 궁씨 부녀가 머무르고 있는 장원으로 향했다.

궁소유 뒤에 하무백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제 시작하자.”

하무백의 말에 단목운혜가 먹었던 단환을 입 안에 넣는 궁소유.

단환은 역시 순식간에 액체로 화하며 상쾌한 향기를 입안 가득 채웠다.

궁소유가 그 향기에 취하려 할 때.

하무백이 그녀의 명문혈에 장심을 올리고 천천히 내공을 주입했다.

사부가 그랬던 것처럼.

궁소유는 등 뒤에서 따스한 기운이 천천히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건만, 궁소유는 그 기운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으니까.

하무백은 천천히 내공을 움직여 단환의 약력을 이끌었다.

전신으로 넓게 퍼져 나가려던 약력이 하무백의 인도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아홉 개의 혈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마지막 음기를 뿌리째 뽑았다.

천천히 전신의 혈맥을 휘돌며, 조금씩 그 속으로 스며드는 약력.

약력이 스며듦에 따라 혈맥은 튼튼해졌다.

더 이상 균형을 잃은 음기나 양기 따위가 자리할 수 없을, 넓고 단단한 혈맥으로 변모해갔다.

그렇게 궁소유는 완치되었다.

궁무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경우는 음기가 아닌 마기를 머금은 독기를 뽑아내야 한다는 게 달랐지만.

그럼에도 하무백은 모두 말끔하게 치료를 마쳤다.

두 번의 치료를 연이어 마친 하무백은 얼굴은 물론 등도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연이어 하기에는 쉽지 않은 치료였다. 사부의 경고대로 내공의 소모가 상당히 컸다.

그래도 벽을 넘었기에 이 정도에서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사부가 말씀하시길 설란의 마지막 치료 때는 내공을 모두 소모해 탈진했다 하셨다.

해서 위지군 역시 곁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의 일을 대비해서.

이곳도 울음바다가 되었다.

공손무외, 공손화경, 공손비연.

선유곡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만물련의 궁씨 부녀 두 사람까지.

쉬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정말, 정말 감사하이. 하 교관, 아니 하 단주.”

공손무외는 하무백의 손을 놓지를 못했다.

“어르신… 정말 감사드립니다.”

궁무혁과 궁소유는 위지군에게 연신 허리를 숙였다.

***

“후우.”

만감이 담긴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어찌저찌 시일은 맞췄군.”

교룡관의 현판이 보이는 정문 앞.

중년인은 작게 중얼거린 후 앞으로 걸어갔다.

수문위사들은 정문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는 경계를 높였다가 이내 깜짝 놀랐다.

“과, 관주님!!!”

가문의 일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던 교룡관주, 팽도율.

그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팽도율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즉각 관주각으로 전해졌다.

그는 느긋한 걸음으로 관주각을 향해 걸으며 교룡관 여기저기를 살폈다.

일이 터진 지 이제 겨우 두 달하고 보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팽도율은 마치 오랜 시간 떠나있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거, 왜 오셨습니까?”

한창 상념에 잠겨 걷고 있는데, 불퉁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기유찬이 입을 삐죽 내밀고 서 있었다.

“허허. 내 있을 곳이 이곳이라 돌아왔지. 그런데 자네는 왜 그런가?”

“관주님 안 계셔서, 한창 제대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돌아오셨으니 또 제대로 안 돌아갈 것 같아서 그러지요.”

그 말에 팽도율이 피식 웃었다.

관주의 권한으로 그에게 전결 처리하라고 미룬 업무가 많았었으니.

부관주와 함께 일을 처리하는 동안은 아마 신이 났으리라.

안 봐도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관주님. 연백진이라 합니다.”

기유찬의 뒤에 있던 연백진이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팽도율이라 합니다. 제 가문의 부덕의 소치 때문에 부관주님께 큰 폐를 끼쳤습니다.”

팽도율이 포권을 하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거무죽죽하게 죽은 피부, 퀭한 눈 주위.

누가 봐도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그리 말하는 연백진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간단한 해후를 하고 팽도율은 관주실로 향했다.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비웠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기유찬의 일처리일 터.

“내일부터 업무를 보시면 됩니다. 뭐, 내일 하루가 지나면 휴관기지만요.”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기유찬의 말에 팽도율은 그저 웃을 뿐이다.

“그래. 그럼 일단 오늘은 여독을 좀 풀어야겠네.”

그렇게 팽도율은 관주의 관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교관들의 숙소 쪽으로 걸음했다.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

마침 그가 근처에 나와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기척을 느낀 것이리라.

“왔소이까?”

하무백이 팽도율을 보며 말했다.

“그래. 왔네 그려. 그동안 별일 없었던가?”

팽도율이 빙그레 웃으며 하무백에게 물었다.

“별일이라…. 바람 잘 날이 없었소이다. 여기 터가 안 좋은 건지.”

하무백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여전히 상대가 시끄러운 거지.”

팽도율의 말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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