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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24화 (124/312)

124화. 동투제를 시작한다!

교룡관에 처음 왔던 날.

조용히 있어 달라는 팽도율의 요청에 하무백이 했던 말이다.

항상 조용히 있었지만, 상대가 시끄러웠다고.

사실 맞는 말이다.

이번에도 늘 상대가 시끄러웠다.

연백량이 그랬고, 마교가 그랬다.

정말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용케도 가문에서 몸을 빼냈소이다?”

하무백의 물음.

그 물음에 팽도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봉문하기로 했네. 아마 십 년 정도는 갈 듯하이.”

봉문.

세가나 문파가 대외 활동을 모두 멈추고 문을 닫는 것을 칭하는 말이다.

봉문을 하면 문파의 명맥을 잇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만 할 뿐, 그야말로 무림에서 은퇴한 듯 숨죽이고 지내게 된다.

그 말인즉, 오대세가는 사대세가가 된다는 말이다.

아니면, 팽가가 봉문한 십 년 동안 새로운 세가가 나타나 팽가의 자리에 대신 이름을 올려 오대세가가 되던가.

“그럼 관주도 팽가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오?”

봉문이란 모든 대외 활동을 멈추는 것이었기에, 정천맹에 있는 팽가의 사람들도 모두 돌아가야 한다.

팽도율도 예외는 아닐 터.

그러나 팽도율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교룡관에 있기로 했네.”

“그게 가능한 일이오?”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원칙대로면 불가능한 일이지.”

“혹여 파문이라도 당한…….”

이내 고개를 젓는 하무백.

무극명륜안을 발동해 살핀 바로는 그의 단전에는 여전히 팽가의 내공이 담겨 있었으니.

“그냥 예외라고 해두지. 봉문을 풀었을 때를 대비한. 그리고 난 본가보다는 이곳 교룡관이 더 좋다네. 내 모든 것을 바친 곳이라 애착이 간다고 해야 할까.”

팽가가 있는 북쪽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는 애잔함이 가득했다.

“그래, 내일은 어떨 것 같은가?”

분위기를 바꾸며 팽도율이 하무백에게 물었다.

“무얼 말이오?”

“동투제 말일세. 지난 하투제 같은 이변이 있을 것 같은가?”

그 물음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이미 그때 증명했는데, 이번에도 이변이라 하는 거요?”

“나야 그리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지난번의 결과를 우연이라 여기고 있을 거네.”

“관을 두 달이나 비운 사람이 잘도 알고 계시는구려.”

하무백의 핀잔에 팽도율은 그저 웃을 뿐이다.

“직접 그 눈으로 확인하시구려.”

하무백은 몸을 돌려 숙소로 걸어갔다.

이제는 정말 쉬어야겠다는 기색으로.

그러고 보니 제법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며 해가 떠오른다.

어둠에 물들어 있던 새벽에 이미 눈을 뜨고 준비를 마친 교룡관의 생도들.

오늘은 하반기의 마지막 날이자, 일 년의 성과를 집대성하는 날이다.

동투제(冬鬪祭).

교룡관의 일 년을 마무리하는 날.

전 생도들의 지원을 받아 무작위 추첨 후 벌어지는 비무 대회.

하투제가 일 년 차 생도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동투제는 연차에 상관없이 모든 생도들이 비무대 위에서 맞붙는다.

그래서 본디 사 년 차 생도들에게 유리한 비무 대회였다. 쌓은 경험이 달랐으니.

다만 올해는 달랐다.

잠룡대와 와룡대 일 년 차 생도 중 워낙 대단한 인간들이 있었으니.

남궁가의 남궁지후와 천검파의 목청산, 그리고 무당의 주우명.

각기 잠룡대와 와룡대, 맹룡대의 기대주였다.

보름 전부터 준비해 어제 완성된 비무대 주변으로 생도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앙의 대형 비무대 주변을 일반 비무대들이 여덟 방위로 둘러싸고 있었다.

전 생도들의 단체 훈련을 위한 거대한 연무장이 비무대와 관람석으로 가득 찼다. 덕분에 보름 전부터 단체 훈련은 없었다.

입김이 절로 나오는 추운 아침.

비무대 전부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높게 만들어진 단상에 교관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룡관주 팽도율이 가장 상석의 태사의에 앉았고, 주변에 마련된 자리에 부관주 연백진과, 각대의 대주들이 앉았다.

“상 대주. 드디어 자네가 좋아하는 동투제구만. 어떨 것 같은가?”

팽도율의 물음에 와룡대주 상경문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세 생도 중 하나가 우승하겠지요. 뻔한 일입니다.”

“남궁지후, 목청산, 주우명 중 하나 말인가?”

“당연한 일입니다. 명가의 제자에다가, 실력 또한 군계일학이며, 수련에 임하는 그 열성적인 자세까지 보면 그 셋 이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네는 그중 누가 제일일 듯싶은가?”

계속되는 팽도율의 물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일입니다만… 제 사견으로는 아무래도 목청산 쪽이…….”

처음 한 말과 다르게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평가다.

상경문은 와룡대의 대주로, 신진팔문 중 한 곳인 뇌정루 출신이었으니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이다.

“능 대주. 자네 생각은?”

“남궁지후입니다. 지난 하투제의 그 일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화산의 속가제자인 능우담 역시 같은 백도회에 속한 남궁지후를 지지했다.

그들의 대답에 이번에는 팽도율의 시선이 모용진호에게로 향했다.

맹룡대의 대주.

사실 하무백 때문에 가장 속을 끓일 인물이었으나, 그는 영리하게도 하무백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관여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하무백의 행적에만 조금 신경을 쓰는 정도로 그와 거리를 유지했다.

“모르겠습니다.”

모용진호는 정말 짧은 답을 내놓았다.

그 대답에 상경문과 능우담은 피식 웃었다.

그러니 맹룡대주에 머무르고 있지라는 듯한 웃음이다.

하지만 모용진호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상경문과 능우담이 모르는 하무백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밑으로 발령받아 오기로 결정되었을 때, 팽도율이 말해줬으니까.

그 이후로 하무백이 보인 행보들은 그야말로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러니 동투제도 알 수 없었다.

남궁지후도 주우명도 하무백을 찾아갔다는 소식 정도는 듣고 있었다.

그리고 칠 조의 생도들 역시.

하투제에 보여준 이변을 동투제라고 보여주지 못할 리 없었고.

그렇게 모두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동투제가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햇살의 온기가 조금씩 비무대를 데우기 시작할 때쯤.

“동투제를 시작한다!”

팽도율의 선언과 함께 여덟 곳의 비무대에서 동시에 비무가 시작되었다.

중앙의 비무대는 8강 전부터 사용할 예정으로 현재는 비워두었다.

교관들이 돌아가며 판정관을 보았다.

와룡대와 잠룡대 생도 간의 비무라면 맹룡대 교관이 판정관을 보는 식으로.

다만, 맹룡대 교관들의 실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했기에 와룡대와 잠룡대의 교관들이 부판정관을 보는 것으로 조정했다.

간혹 실력이 출중한 잠룡대나 와룡대 생도의 경우 맹룡대 교관의 실력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 비무대에서 빠른 속도로 비무가 진행되었다.

맹룡대 생도의 경우 하투제와 마찬가지로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잠룡대, 와룡대와는 다르게 교육 기간이 겨우 이 년인데다가, 대부분이 교룡관에 입관 후 무공에 입문한 이들인 탓이다.

맹룡대에서 하투제에 참가한 이는 칠 조와 이십 조 생도 일곱이 전부였다.

이것만 해도 작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투제와 동투제는 잠룡대와 와룡대만의 축제였으니.

하무백은 비무대 주변의 적당한 건물 지붕에 올라 비무를 구경했다.

“고만고만하군.”

딱히 눈에 띄는 이는 없었다.

사 년 차 생도라 하더라도. 맹룡대 칠 조의 생도가 그들보다 더 강했다.

그 아이들이 우승을 노린다면 넘어야 할 녀석들이 그래도 몇몇 보였다.

굳이 비무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하무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놈, 저놈, 저놈.”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대부분이 와룡대와 잠룡대 일 조의 생도였다. 한 녀석만 낯설었다.

“응?”

그때 하무백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

분명 와룡대 일 조의 생도였는데, 전반기에 보았을 때와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제법…….”

어쩌면 저 녀석이… 라는 생각을 떠올릴 때쯤.

하무백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판정관을 보러 올라갈 차례였다.

“응?”

비무대에 올라온 하무백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안면이 있는 교관이 부판정관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철기방 출신의 묵해진이었다.

잠룡대 쪽 교관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비무를 하는 이들은 잠룡대와 와룡대의 생도.

삼 년 차 생도로 보였는데, 둘의 실력은 고만고만해 보였다.

“시작!”

하무백의 선언과 함께 비무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고만고만한 실력이었다.

누군가는 막상막하의 치열함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무백에게는 도토리 키재기였다.

하무백의 눈에는 한참 동안 투닥거리는 걸로 보였다.

너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때쯤.

하무백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잠룡대 생도의 왼쪽 팔목을 잡아챘다.

“어? 어!”

그사이 공격하던 와룡대 생도는 검을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하무백을 찌르려던 찰나였다.

그러나.

휙. 휘릭.

가벼운 손짓에 와룡대 생도는 그대로 비무대 바닥에 누웠다.

쿠쿵.

“하 교관. 무슨 일이오?”

비무대의 가장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던 묵해진이 다가왔다.

반대편의 잠룡대 교관도 빠르게 다가왔다.

“이봐! 무슨 짓이야!”

그는 하무백이 잠룡대 생도를 막은 것 때문인지 화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교관이 비무를 방해하면 어떻게 해!”

자리에 당도하자마자 하무백을 책잡는 잠룡대 교관.

하무백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를 무시했다.

“이놈. 실격.”

짤막한 말.

그 말에 잠룡대 교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아무리 판정관이라지만, 마음대로 비무에 난입해서 이 무슨 행패야!”

마치 잠룡대 생도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듯한 모습.

하무백이 그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잡고 있던 팔목 소매를 걷었다.

그곳에는 검정색 손목띠가 채워져 있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계속해서 길길이 날뛰는 잠룡대 교관.

하무백은 그 손목띠를 끊어서는 그 교관의 코앞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에 잠룡대 생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무언가 있군.’

가만히 지켜보던 묵해진은 잠룡대 생도가 부정을 저질렀음을 직감했다.

“이게 뭐 어쨌… 어……?”

막 하무백에게 무어라 하려던 잠룡대 교관이 순간 움찔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휙 돌려 잠룡대 생도를 노려보았다.

그도 무언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주 미세한 농도의 마비산이다. 찰나지간 작은 현기증 정도만 일으킬 정도겠군. 당한 사람조차 눈치를 못 챌 정도로.”

하무백이 차가운 눈으로 잠룡대 생도를 노려보며 말했다.

“…….”

잠룡대 생도는 눈을 내리깔고 부들부들 떨었다.

절대 걸릴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걸려 버리다니.

대체 이 교관은 뭐란 말인가.

“어째 뭐가 이상하다 싶은 비무가 몇 번 있더라니.”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이런 장난질을 치고 있었네. 이건 아마도 당가의 솜씨인가?”

하무백의 물음에 생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머지 일곱 곳의 비무도 중지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모조리 하무백이 있는 비무대로 모였다.

반면 하무백의 눈은 사방을 훑었다.

이런 같잖은 수작질을 한 놈을 찾기 위해서다.

무극명륜안을 운용한 두 눈은 수많은 사람의 내공 연원을 살폈다.

그 중 당가의 내공을 익힌 놈은.

“저놈이로군.”

하무백이 한 곳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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