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아는 놈이오?
당가호는 순간 깜짝 놀랐다.
비무대 위의 판정관을 맡은 교관이 자신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제법 거리가 있기에 자신을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은 이내 지워졌다.
정확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살짝 옆으로 움직여 보니 시선이 그대로 따라왔으니까.
등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저 멍청한 놈이 어설프게 사용해서 걸리는 것 같더라니.
그런데 잠룡대와 와룡대의 비무면 맹룡대의 교관이 판정관을 할 텐데 그런 눈썰미를 가진 교관이 있을 리가…….
있었다.
불현듯 전반기에 보았던 한 교관을 떠올렸다.
소문도 자자했었다.
그럴 수밖에.
잠룡대 수석교관을 박살 낸 사람이었으니까.
재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저런 교관 앞에서 그 수작을 부리려 했으니.
그러면서 동시에 의구심이 생겼다.
잠룡대와 와룡대의 교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방법이었는데, 저 교관은 어찌 단숨에 잡아냈을까.
하무백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잠룡대 생도는 그대로 마혈을 제압당한 채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몸을 훌쩍 날리는 하무백.
당가호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눈 깜짝할 새였다.
“너지?”
하무백이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리도리.
당가호는 일단 부정하고 보았다.
교관의 기세가 자못 사나웠기 때문이다.
하무백은 상대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같잖았기 때문이다.
“이런 수작을 부릴 만한 사람은 당가나 선유곡 출신밖에 없을 텐데. 잠룡대 놈이니 당가일 테고. 잠룡대에 당가 출신은 네 놈밖에 없는 듯한데?”
그 말에 당가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맞는 말이다.
현재 교룡관에 당가 출신 생도는 단 두 명이었다.
하나가 자신, 다른 하나가 맹룡대의 당진산.
전반기만 하더라도 당가 출신의 생도는 몇 명 더 있었지만.
‘당추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하투제에서 무참히 깨지고 본가로 돌아간 그놈은 혼자 가지 않았다.
자신을 따르던 다른 당가의 생도들도 모두 데리고 돌아갔다. 고작 일 년차 생도 주제에 윗 년차 생도까지 전부.
직계에 가까운 방계인데다가 당가삼준으로 꼽히는 놈의 힘이 그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당가호 자신은 방계 중에서도 가장 한미한 계라 당추와는 접점이 없었기에 계속 교룡관에 남아 있었던 것이고.
아니 당가호 자신의 존재를 알기는 했을까? 그 거만한 놈이.
어쨌든 걸렸다.
이렇게 된 것, 어떻게든 일의 범위를 최소화해야 했다.
“하 교관. 무슨 일인가.”
팽도율이 단상에서 내려와 하무백에게 왔다.
하무백을 바라보는 팽도율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역시 자네가 있는 곳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무백은 대답 대신 손에 들고 있던 검정 손목띠를 자신의 손목에 착용했다. 그리고는 가볍게 팽도율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으며 내공을 일으켰다.
권풍과 내공에 손목띠에 스며있던 마비산 가루가 미세하게 일어나 팽도율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숨을 들이킨 팽도율.
핑.
찰나지간 어지러운 느낌이 드는 듯, 아닌 듯 미세한 이질감이 있었다.
“이건?”
팽도율이 하무백을 향해 물었다.
“이놈이 장난을 친 것 같소이다.”
그 말에 팽도율의 시선이 당가호에게로 향했다.
“자네는… 당가호였던가?”
팽도율의 물음에 당가호와 하무백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설마 팽도율이 그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아는 놈이오?”
하무백이 놀라서 물었다.
“적어도 교룡관의 생도들 얼굴과 이름은 모두 알려고 노력하고 있다네. 정말 모두 알지는 못하겠지만.”
봉문한 가문을 박차고 나와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생각했지만, 팽도율은 정말로 교룡관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어째서 맹룡대는 그대로 두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하무백의 머릿속에 잠깐 스쳤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일이었다.
“당가 놈답게 독을 제법 다룹디다. 정말 절묘하게 마비산의 약효를 조절했으니. 게다가 하독 방법도 제법 은밀하기까지 하고. 어째 무언가 찝찝하게 결판이 나는 비무가 몇 개 있다 했더니.”
하무백은 지붕 위에서 비무를 구경하며 묘한 이질감이 드는 비무 몇 개를 보았다.
하무백이 보기에는 도토리 키재기라 그런가 보다 했지만, 아니었다.
그 비무의 승리자들이 모두 잠룡대였던 것이다.
“그래? 누구누구인가?”
팽도율이 바로 물었다.
그가 보기에는 그런 비무는 없었으니.
역시 경지에 따라 보는 눈도 다른 법이다.
“잠깐 기다리시오.”
그 말과 동시에 하무백의 신형이 사라졌다.
“어?”
“어억!”
“우왁.”
곳곳에서 깜짝 놀란 듯한 경악성이 울렸다.
하무백은 금세 돌아왔다. 그 뒤로 잠룡대 생도 다섯이 줄줄이 끌려 왔다.
그들의 왼팔에는 하나 같이 검은색 손목띠가 채워져 있었다.
팽도율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이놈들이 전부가 아닐 거요.”
팽도율은 하무백이 말하는 바를 알았다.
“지금, 이 순간 부로 동투제는 잠시 중지한다. 그리고 참가 생도는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교관들이 확인하러 갈 거다.”
내공을 잔뜩 실어 터뜨린 팽도율의 사자후가 쩌렁쩌렁 울렸다.
몸을 찔끔하게 하는 기세가 실려 있었다.
감히 그 지시를 어길 만한 생도는 없었다.
당가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 걸린 그놈 하나와 자신, 이 둘만의 소행으로 어떻게든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었건만.
팽도율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생도들은 자신이 속한 대별로 나누어졌다.
잠룡대, 와룡대, 맹룡대.
교관들이 그들의 소매를 걷어보며 일일이 수색하고 다녔다.
소매만 걷어본 것이 아니다.
다른 곳도 꼼꼼히 수색했다.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동투제가 중단되고, 참가 생도들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진 것은.
그리고 결과는 참담했다.
열다섯.
하무백이 잡아낸 여섯 말고도 무려 열다섯에 이르는 생도의 손목에서 마비산이 나왔다.
팽도율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분노가 극에 달한 모습이었다.
“이, 이게 대체…….”
하무백은 차가운 눈으로 잡혀 온 생도들을 노려보았다.
정정당당해야 할 비무에서 이딴 암수라니.
경멸스러웠다.
혐오스러웠다.
이따위 놈들이 명문정파의 제자들이라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고?
우스웠다.
윗물이 그따위라 아랫물도 이런 모양일까?
“저놈들은 모두 뇌옥으로 보내라.”
팽도율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했다.
어쨌든 동투제 중이었다.
저딴 놈들 때문에 성실하게 동투제를 준비한 생도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자리가 정리된 후.
비무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처음과 같은 열기는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기에,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우, 우와!!!”
그런데 한쪽 비무장에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단목운뢰. 그리고 사평주.
맹룡대와 와룡대의 대결.
출신문파도 없는 녀석과 선유곡의 대결이었다.
모두들 당연히 사평주의 승리라 점쳤다.
단목운뢰가 속한 맹룡대 칠 조가 지난 하투제에서 선전한 것은 알고 있지만, 다들 우연으로 치부했다.
하투제의 전투 방식 자체도 다대다의 유격전이라는 특이한 방식이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전력으로 부딪혔다.
강렬한 기세의 검이 서로를 노렸다.
챙! 채챙! 챙!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선유곡이 의술과 술법의 문파로만 알려졌지만, 무공 역시 약하지 않았다.
무공이 약했다면 신진팔문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을 터.
대라선유검식.
선유곡의 절기가 사평주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 역시 지난 하투제에서 맹룡대 칠 조에게 당한 어이없는 패배가 억울했던 터.
오늘이야말로 설욕의 때였다.
게다가 상대가 사용하는 검법은 고작해야 삼재검법.
선유곡(仙遊谷)의 최고절기가 고작 삼재검법을 꺾지 못할 리 없었다.
“호. 비무가 한창인 모양이군.”
하무백이 올라 있는 지붕 위.
공손무외가 불현듯 찾아왔다.
동투제에 호기심이 동한 탓이다. 정확히는 하무백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하무백은 이미 기감으로 그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운혜의 오라비가 저 아이인가?”
공손무외가 단목운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상대가 본 곡의 제자로구만.”
곡주인 그가 사평주를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대라선유검식은 잘 알았다.
선유곡 최고의 절기였으니.
곡의 제자를 가르침에 있어 무공의 차별을 두지 않는 선유곡이었다.
“제법 제대로 익혔어.”
공손무외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뛰어난 제자를 보면 기꺼운 것이 문파 수장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비무의 양상이 조금씩 변했다.
사평주의 공세를 막기에 급급했던 단목운뢰가 점점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우와아!!”
함성이 터졌다.
방금 단목운뢰가 제법 날카로운 반격을 날린 것이다.
사평주는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아차 했으면 큰일 날 뻔했으니까.
‘지난 하투제와는 다르다.’
그때는 실제로 요행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녀석의 실력이었다.
사평주는 이를 악물고 검식에 더욱 집중했다.
신선이 노니는 듯한 검식.
대라선유검식.
단목운뢰의 주변을 천천히 감싸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보인다.’
단목운뢰는 점점 상대의 검식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저 자유로운 검식이 면면히 이어지는 가운데 조금씩 끊어지는 부분이.
다만 아직은 워낙 찰나였기에 단목운뢰로서는 그 틈을 찌를 수가 없었다.
‘그러면 틈이 커지게끔 한다.’
남궁지후, 주우명, 백리평과 행한 수많은 비무.
그리고 하무백과의 지도 대련.
그 속에서 배우고 익히며 성장한 단목운뢰다.
게다가 남궁지후, 주우명, 백리평이 하무백을 상대로 비무를 하는 모습도 집중해서 보지 않았던가.
산월마림에서 강시들을 상대한 실전까지!
단목운뢰의 경험이 사평주의 경험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그랬기에 단목운뢰는 상대의 틈이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초조해하지 않았다.
틈은 반드시 열린다.
자신과 사평주 정도의 실력 격차라면 반드시 그럴 것이라 확신했다.
초조해지는 것은 오히려 사평주였다.
삼재검법이라 우습게 보았지만, 그 방어가 단단했다.
어떻게 공세를 취해도 저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당연히 검식에 힘이 실리고 동작이 커졌다.
“저, 저런!”
그 모습에 공손무외가 안타깝다는 듯한 탄성을 흘렸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지금 비무의 흐름이 상대에게 넘어가고 있음이 보인 것이다.
“타핫!”
더욱 강한 검격을 위해 기합성까지 내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사평주.
그 순간 단목운뢰의 두 눈이 빛났다.
검식의 흐름이 끊기는 부분이 명확히 보였다. 단목운뢰 자신의 실력으로 충분히 그 틈을 노릴 수 있는.
삼재검법의 찌르기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으나, 단목운뢰의 검은 계속 움직였다.
사평주의 검은 튕겨 나갔다.
그리고 단목운뢰의 검 끝이 사평주의 가슴 앞에서 멈췄다.
“?!?”
사평주는 입을 쩍 벌리고 눈을 치켜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검이 튕겨 나갔고, 상대의 검이 자신의 가슴 앞에 멈춰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패배였다.
요행이나 운 따위가 아닌, 철저히 실력에서 패한 것이다.
“졌다…….”
짧은 패배 선언.
단목운뢰가 검을 내렸고, 사평주는 납검 후 그대로 몸을 돌려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우, 우와아아아아아!”
“이야아아아아!!”
“대단하다!!!”
사방에서 함성이 터졌다.
와룡대가 맹룡대에 패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보여준 명승부에 흥분한 생도들이 함성을 내지른 것이다.
그중에는 맹룡대 칠 조 생도들도 있었다.
“점점 무서워지네, 저 녀석.”
당진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사평주.
강한 생도다.
맹룡대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당진산이라면 절대 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
그를 단목운뢰가 오직 실력으로 꺾은 것이다.
당진산이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괜시리 몸에 열기가 감돌았다.
“자네. 가르치는 것도 대단하구만.”
비무의 결과에 공손무외가 감탄하며 하무백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