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26화 (126/312)

126화. 졌습니다

사평주와 단목운뢰의 비무가 끝난 후.

서서히 동투제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언제 분위기가 침울하게 가라앉았냐는 듯.

생도들이 비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한 비무대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럴 수밖에.

여인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오르고 있었다.

각기 면사를 쓴 두 여인.

그중 한 사람은 유명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교룡관의 생도라면 누구나 아는 인물.

그러나 쉬이 다가설 수 없는 인물.

무림오화 중 연난화 남궁지유.

그녀의 등장이었다.

사방에서 웅성거림과 환호성이 울려 나왔다.

면사와 펑퍼짐한 무복으로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릴 수가 없었다.

다른 일곱 곳의 비무대는 생도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오직 그녀가 있는 비무대로 생도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반응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남궁지유.

그녀는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상대가 될 이.

역시나 면사를 쓰고 오른 여인.

몇몇 생도는 웅성거리며 오히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지유와 마주하고 있음에도, 결코 그녀의 미모에 밀리지 않는 미인이었다.

잠룡대와 와룡대의 생도들은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여인.

맹룡대에 남궁지유와 견줄 만한 미인이 있다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연하민이라는 맹룡대 칠 조의 생도.

하지만 그녀는 지금 저기, 조금 전 엄청난 실력을 보여준 단목운뢰와 함께 같은 조원들과 있었다.

알려지지 않았던 맹룡대의 생도가 나타난 것이다.

“하설란…….”

남궁지유는 아주 작게 상대의 이름을 읊조렸다.

남동생에게 익히 들었다.

하무백 교관의 여동생이며, 제법 무공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하긴 그 괴물 같은 교관의 동생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자신은 왜 하무백 교관을 괴물 같다고 생각하는 걸까?

동생 남궁지후 때문이다.

둘만 있을 때, 어찌나 그 교관에 대해 이야기하던지.

딱밤 한 대 맞고 패배한 이야기를 하는데 반 시진이나 걸릴 이유가 무엇일까?

쓸데없는 잡념이 생기려 하자 남궁지유는 살짝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떨쳤다.

그리고 심유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과연 아름다웠다.

면사로 가렸지만, 그것으로는 가려지지 않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어설펐다.

어떻게 이 자리에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잔뜩 긴장한 기색.

‘이전 비무는 어떻게 이긴 거지?’

그런 의문이 남궁지유의 머리에 떠올랐다.

멀리 세워져 있는 대진표를 향해 안력을 집중한 그녀는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설란의 첫 상대는 잠룡대의 생도였다.

그리고 그 생도는 조금 전 뇌옥으로 끌려갔다.

한 번의 비무도 치러 보지 못한 채로.

그러니까, 지금 하설란은 동투제의 첫 번째 비무를 치르기 위해 비무대에 오른 것이다.

‘어, 어떡하지?’

하설란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첫 실전 비무대회다. 산월마림에 가서 사강시를 상대한 경험은 있었다.

‘이지를 상실한 채 무작정 붙잡고 물기만 하려던 마물이랑 사람은 다른데…….’

게다가 사강시를 상대할 때는 항시 오라버니나 한 교관님이 근처에서 지켜봐 주지 않았던가.

오롯이 혼자서 상대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걱정이 자리했기에, 그녀의 머릿속은 백지장으로 변한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차례라 해서 비무대에 오르기는 했는데, 그 상대가 남궁지유다.

무려 남궁세가주의 장녀.

아마도 사강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엄청난 강자.

그녀의 위명은 익히 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남궁지후의 무위를 매일 같이 직접 보지 않았던가.

볼 때마다 그 강함에 얼마나 감탄했던가.

첫 상대로 예정되어 있던 잠룡대의 생도에게만 신경을 썼었다.

어차피 경험을 쌓기 위해 출전한 동투제다.

그 첫 번째 비무가 자신의 마지막 비무가 될 것으로 생각했건만.

갑작스러운 소동과 함께 자신이 부전승으로 다음 단계로 올라섰고, 이렇게 남궁지유를 마주하고 있다.

하무백은 지붕에서 그런 동생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렇게 긴장할 것이 아닌데.

자신의 실력에 좀 더 자신을 가져도 될 텐데.

무엇이든 처음이란 저렇게 어렵고 어설픈 것이리라.

“자네 동생 아닌가?”

공손무외가 하설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허면 저리 두어도 되겠는가?”

하설란의 상태는 공손무외도 알아보았다. 그랬기에 하무백에게 물은 것이다.

“비무는 공정해야 합니다. 비무대에 올라가 상대를 마주한 이상, 지금부터는 스스로 극복해야지요.”

냉철한 말이다.

그러나 하무백의 심정은 그 말과는 정반대였다.

‘란아. 정신 차려라. 너도 강하다.’

일전에 그녀의 기감이 열렸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아마도 일차전을 부전승으로 이긴 것이 오히려 독이 된 모양입니다.”

하무백이 담담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신을 파악할 만한 적당한 상대를 건너뛰고 처음부터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난 것이 독이 된 경우였다.

평소의 실력만 발휘할 수 있다면 그녀도 충분히 남궁지유의 상대가 될 수 있었다.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시작!”

심판관의 외침과 함께 남궁지유는 검을 뽑았다.

챙!

그리고 동시에 하설란을 향해 달려갔다.

상대가 어설프던 말던 상관 없었다.

이건 비무였고, 실전이었다.

실전에서는 전력을 다한다.

지난 하투제에서 맹룡대 칠 조에게 배운 것이다.

남궁지유의 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하설란을 향해 날아갔다.

그녀의 손끝에서 창궁무애검이 펼쳐졌다.

남궁지후와 같은 검법을 사용하지만 다른 느낌이었다.

‘아, 아름답다…….’

하설란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을 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검의 움직임도 아름다웠고, 그 검을 펼치는 사람도 아름다웠다.

연하민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아름다움에 얼마나 놀라고 감탄했던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린 비무대 위에서, 연하민을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마주했다.

하설란은 멍하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순간 발걸음을 움직이면서 몸을 비틀었다.

그녀가 비켜선 자리로 남궁지유의 검이 지나갔다.

남궁지유의 눈썹이 꿈틀했다.

‘피했어?’

남궁지유는 전력을 다해 창궁무애검을 펼쳤다.

그런데 상대는 그것을 피했다.

어설픈 자세에 제정신이 아닌 듯한 눈빛으로.

‘어떻게?’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일 검을 피했다면, 이 검, 삼 검 계속해서 공격할 뿐이다.

몸을 빙글 돌리며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쳐올리는 검의 움직임.

남궁지유의 검이 하설란의 가슴을 쪼갤 듯이 날아들었다.

챙!

헌데.

언제 검을 뽑은 것일까.

하설란이 검을 들어 남궁지유의 검을 막았다.

그녀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고 있었다.

‘보인다.’

그랬다.

남궁지유의 검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움직일지 보였다.

그건 아마도.

‘남궁 공자의 검의 움직임과 같아.’

맹룡대 칠 조의 연무장에서 무수히 보았던 남궁지후의 대련.

그러면서 눈에 익은 창궁무애검의 움직임.

남궁지유의 손에서 펼쳐지는 창궁무애검은 그것과는 다른 분위기의 검법이었지만, 결국은 동일한 초식.

그것과 같은 방위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대, 대단한데?”

비무대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진산이 깜짝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하설란이 무공에 입문한 것은 하반기의 시작 즈음이라 들었으니.

“교관님의 동생이라는 건가…….”

낙우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들로서는 믿을 수 없는 발전 속도였으니까. 이건 가진 재능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설란은 기감을 느끼는 수련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첫 실전 비무라는 긴장감에 넋이 나가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기감은 펼치고 있었다.

그 결과.

이 주변 사람들의 기척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으아. 모르겠어…….’

하설란의 감각을 엄청나게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익숙하지 않은 기감이 오히려 독이 된 경우였다.

눈에 익은 검의 움직임 덕에 본능적으로 피하고는 있으나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남궁지유는 상대의 예상외의 실력에 당황할 법도 했건만, 냉정하고 침착하게 검법을 펼치며 하설란을 압박해 갔다.

하설란이 창궁무애검의 움직임을 몰랐다면, 끝났어도 진작에 끝났을 상황이었다.

부웅.

챙.

휙.

검을 휘두르고, 검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울렸다.

생도들은 침묵한 채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았다.

이미 비무가 끝난 다른 비무대는 그대로 멈췄다. 다음 비무가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대신 그들의 시선은 모두 남궁지유와 하설란 두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름다웠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마치 월궁 항아가 둘이 있어 서로 어우러져 검무를 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누구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절세미인 두 사람의 비무가 아닌 검무.

그렇게 보였으니.

실상은 남궁지유의 일방적인 공세였다.

격렬한 움직임에 따라 나풀거리는 면사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두 절세가인의 얼굴에, 교룡관의 남자 생도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생도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남궁지유는 고운 아미를 살짝 찡그렸다.

‘막아?’

피하는 와중에 몇 번은 자신의 검을 막은 하설란.

그것이 걸린 것이다.

현재 그녀의 실력이라면 자신의 검을 막을 수 없을 텐데.

“타핫!”

커다란 기합성과 함께 크게 검을 휘두른 남궁지유.

그리고는 잠깐 하설란과 거리를 벌렸다.

다시 검을 세우며 자세를 가다듬은 남궁지유는 깨달았다.

‘어설픈 건 나였구나.’

지난 하투제 이후 항시 전력을 다하겠다 마음먹었건만.

지금도 상대를 우습게 보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하겠다 하고서는 자신도 모르게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다.

상대의 어설픈 모습 때문이리라.

자신이 정말 전력을 다했다면, 하설란이 자신의 검격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남궁지유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무복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면사도 휘날렸다.

언뜻언뜻 보이는 붉은 입술과 오똑한 코는 그것을 보는 남자 생도들의 애간장을 녹게 했다.

‘어, 어떡하지…….’

하설란은 다시 한번 당황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를 지경인데.

남궁지유가 기운을 끌어올리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웠다.

‘오, 오라버니… 사, 사부님…….’

가장 의지가 되는 두 사람을 떠올렸으나, 이곳에는 그녀 혼자였다.

자신을 향해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기는 상대, 남궁지유.

어쩔 수 없이 하설란은 그녀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저 기운의 휘몰아침에 휩쓸려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으니까.

그러면서 그녀의 기감도 오롯이 남궁지유에게 집중되었다.

그러자 변화가 느껴졌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어지럽고 정신이 없었는데, 그런 것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남궁지유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이건?’

깜짝 놀라기도 잠시.

남궁지유가 땅을 박찼다.

검기를 머금고 은은히 빛나는 검.

하설란을 향해 다가오는 검.

‘뭐, 뭐지?’

하설란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기감이 온전히 남궁지유에게 집중되자, 그녀의 검의 움직임이 더욱 명확히 느껴졌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곳뿐만 아니라 앞으로 움직일 곳까지!!

‘여, 여기인가?’

최종적으로 자신을 노리고 날아들 방위.

그것이 보였기에 하설란은 그곳으로 검을 움직여 막으려 했건만.

쾅!

검기를 잔뜩 머금은 남궁지유의 검격에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아악!”

하설란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용케 검을 놓치지 않았다 생각할 찰나.

두 번째 검격이 날아들었고.

쾅!

이번에는 하설란의 검이 멀리 날아갔다.

검병을 쥐었던 손바닥에 상처가 나면서 살짝 피가 배어 나왔다.

그리고 그런 하설란의 얼굴 앞에 드리워진 남궁지유의 검끝.

“후우. 졌습니다.”

하설란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가만히 두 눈을 감고 패배를 인정했다.

“우, 우아아아!”

그와 동시에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던 비무대 주변으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넋을 잃고 비무에 빠져있던 이들이 내지른 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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