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27화 (127/312)

127화. 시작!

“허허. 자네도 사람이로구만.”

너털웃음과 함께 들려온 말에 하무백이 공손무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하무백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내 자네를 만난 이후, 조금 전 자네의 가장 다채로운 표정을 보았다네. 정말 인간적이었어. 지금까지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거든.”

공손무외의 말에 하무백은 살짝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하설란의 비무에 너무 집중하고 있었던 지라,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였을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자네 여동생 정말 대단하군. 절맥증에서 완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으니, 무공을 수련한 기간도 짧았을 텐데. 저 남궁지유의 창궁무애검을 저만큼이나 감당하다니 말일세.”

“제 예상보다 더 잘하긴 했습니다.”

하무백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걸렸다.

동생에 대한 칭찬에 그저 기분이 좋은 것이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비무대에서 내려오는 하설란을 맞이하는 맹룡대 칠 조의 생도들과 주우명은 그녀의 주변에서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예상 이상의 엄청난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기실 하설란은 수련 중 대련의 횟수가 적었다.

무공 입문이 늦었다는 이유였다.

생각해보면 산월마림에도 함께 다녀오고, 그녀 역시 그곳에서 강시를 상대했었다.

무공 입문이 늦었는데도.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놀라울 정도의 재능이었지만, 오늘 보여준 것은 그 이상이었다.

“대체 어떻게 창궁무애검에 일일이 다 대응을 한 거야?”

당진산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그, 그게… 보였어요.”

하설란이 아직은 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응? 보여?”

당진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다른 생도들에게도 그 비슷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게, 남궁 공자의 대련을 자주 봐서 그런지, 검의 움직임이 다 보였어요.”

이어진 설명.

당진산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하설란을 보았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단목운뢰를 쳐다보았다.

저놈도 저것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던가.

“여긴 괴물들만 모아 놨나봐… 하…….”

무언가 허탈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당진산은 자신을 호명하는 소리에 그곳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당진산의 비무 차례였다.

“아무리 그래도 괴물이라니…….”

하설란이 살짝 상처 입은 표정을 지었다. 꽃다운 나이의 여인이었기에, 괴물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좀 상한 듯했다.

잠시 후 다른 생도들의 이름도 하나둘 불렸다.

다들 자신의 차례에 맞춰 배정된 비무대로 올라가 비무를 치렀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16강.

교룡관에서 가장 강한 열여섯 명.

그 안에 맹룡대 칠 조 생도 다섯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거기에 주우명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 열여섯의 강자가 남았는데, 그중 여섯 명이 맹룡대였다.

엄청난 이변이었다.

남은 열 자리는 잠룡대와 와룡대가 각기 다섯씩 차지했으니, 결국 16강에 가장 많이 출전한 곳이 맹룡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와 같은 결과에 상경문과 능우담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와룡대와 잠룡대가 압도적일 거라 믿고 있었는데, 드러난 결과는 전혀 달랐으니.

맹룡대에서는 주우명 한 사람 정도 경계했으나 아니었다.

맹룡대에서 일곱이 출전하여, 여섯이 16강에 올랐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허허. 믿기지 않는 결과로군.”

완성된 대진표를 확인하며 팽도율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상경문과 능우담은 소태 씹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들 들으라는 듯한 소리 같았으니까.

“모용 대주. 오늘은 자네가 술 한 잔 사야겠어?”

팽도율이 모용진호를 은근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모용진호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전부 하 교관이 한 일입니다. 실제로 동투제에 출전한 생도들 모두 하 교관의 손이 닿은 생도들이니까요.”

모용진호의 대답에 상경문과 능우담이 입술을 짓씹었다.

하 교관.

하무백.

대체 뭐 하는 놈이란 말인가.

이놈 때문에 지난 하투제에서 당한 망신을 생각하면.

해서 본파에 하무백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어디에서 저런 놈이 뚝 떨어진 것인지.

그놈을 대하는 관주의 태도를 보면, 분명 무언가 아는 것 같은데 도통 알려주지를 않았다.

모든 공을 하 교관에게 돌리는 것을 보아하니, 모용진호도 그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을 법도 한데 늘 모르쇠였다.

맹룡대.

주우명, 백리평, 단목운뢰, 연하민, 낙우진, 당진산 이상 여섯 명.

잠룡대.

남궁지후, 남궁지유, 영호준, 청우자, 제갈웅 이상 다섯 명.

와룡대.

목청산, 범일소, 마립, 화태악, 관하경 이상 다섯 명.

이렇게 결정된 열여섯 명의 대진표.

최소한 8강은 가야 같은 대 소속의 생도가 맞붙게끔 대진표가 짜였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팽도율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 절묘하게 대진을 짰구만. 이건 당연히 기유찬 그 친구 솜씨겠지?”

“그렇습니다. 관주.”

그 혼잣말에 대한 대답은 곁에서 들려왔다.

부관주 연백진이었다. 그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아마도 기유찬에게 시달린 탓이리라.

그럴 수밖에.

관주인 팽도율이 귀환한 것이 어제이니, 결국 동투제 준비 내내 기유찬이 부관주를 쥐어짰으리라.

서서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팽도율이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번에 마지막 비무겠구만. 올해는 제법 치열했어. 동투제가 하루를 넘긴 게 몇 년만 인지 모르겠군.”

그랬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 동지.

그 동지에 열리는 비무 대회 동투제다.

비무가 치열하고 길어지면 해가 지기 전에 동투제가 끝나지 않는다.

다음 날로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해는 해가 지기 직전에 우승자가 나왔다.

아마도 야료가 있었으리라.

그 생각을 떠올린 팽도율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전의 일이 생각난 탓이다.

올해는 그 소동도 소동이었고, 전반적으로 치열한 비무가 많았다.

16강 여덟 개의 비무가 오늘의 마지막 비무가 될 듯했다.

여덟 개의 비무대에 열여섯 생도가 올라 각자의 상대를 마주 보고 있었다.

백리평, 제갈웅.

남궁지후, 낙우진.

남궁지유, 당진산.

연하민, 마립.

주우명, 관하경.

영호준, 화태악.

단목운뢰, 목청산.

범일소, 청우자.

“시작!”

여덟 곳에서 동시에 울린 판정관의 외침과 함께 비무가 시작되었다.

***

백리평의 상대 제갈웅은 제갈세가의 제자다. 잠룡대 삼 조의 생도로 연이어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며 16강에 올랐다.

사용하는 무기는 창과 방패.

제갈세가답지 않은 무기였다.

창도 창이지만, 방패라니.

하지만 병기로서 방패의 유용함을 항상 강조하는 제갈명 교관을 생각한다면 이해도 갔다.

같은 제갈세가이니 영향을 받았으리라.

백리평은 자신의 상대가 제갈웅으로 결정되는 순간, 동투제에서 처음으로 방패를 집어 들었다.

그 역시 제갈명의 방패술을 익히고 있지 않던가.

게다가 산월마림까지 겪었다.

방패의 유용함을 잘 알기에, 방패를 든 상대를 만나 백리평 역시 방패를 든 것이다.

제갈웅은 검과 방패를 든 상대를 바라보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검만 사용했었는데…….’

제갈웅 역시 자신의 상대가 될 이들을 자세히 살폈다.

종남 출신인 백리평의 검법에 얼마나 감탄했던가.

하지만 오직 검만을 사용했기에 나름 자신 있었다.

창과 방패를 함께 사용하는 자신의 무공이라면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가 검과 방패를 들고 나왔다. 이러면 계획이 틀어진다.

머리를 잘게 흔들어 잡념을 털어낸 제갈웅이 먼저 창을 찔렀다.

“탓!”

짧은 기합성과 함께 곧게 뻗어가는 창.

턱.

백리평은 방패로 가볍게 상대의 창을 흘렸다.

그 순간.

제갈웅은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방패를 다루는 솜씨가 자신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약 반 각 동안 이어진 공방 끝에.

“졌습니다.”

제갈웅이 창과 방패를 모두 놓치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남궁지후와 낙우진의 대전.

낙우진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상대를 바라봤다.

정말 열심히 수련했다.

정말이다.

피나는 수련이었다.

그리고 같은 조의 생도들과 무수한 대련을 치렀다.

가끔 남궁지후와의 대련도 있었다.

잠룡대 놈이 대련할 만한 사람이 맹룡대 칠 조에만 있다고 종종 찾아왔었으니.

그리고 남궁지후와의 대련은 전패였다.

전력을 다했으나,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오늘은 이긴다.’

낙우진은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땅을 박찼다.

남궁지유를 상대로 선전한 하설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 역시 남궁지후의 검을 질리도록 보지 않았던가.

그러나, 결과는.

백여 초식을 나눴으나.

낙우진의 패배였다.

“하, 방패를 들 걸 그랬나…….”

비무대를 내려오며, 아직 끝나지 않은 백리평의 비무를 힐끗 보며 작게 중얼거리는 낙우진.

“훌륭한 비무였다.”

남궁지후가 그런 낙우진에게 그 말을 남기고 지나쳤다. 그의 등이 땀에 살짝 젖어 있었다.

처음 남궁지후를 만난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남궁지후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당추 한 명조차 어쩌지 못해 모두 당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자신은 남궁지후와 백여 초식에 가까운 승부를 펼쳤다.

저 남궁지후의 등에 땀이 배게 하면서.

‘다음번에는 이긴다.’

낙우진은 그렇게 다짐했다.

“내가 복수해줄게. 잘 봐둬.”

당진산은 비무대에 오르기 전에 하설란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상대가 하설란을 꺾었던 남궁지유였으니.

같은 조원은 아니었으나, 같은 조원이나 다름없이 동고동락하지 않았던가.

반드시 설욕해주리라.

당진산은 그렇게 비무대에 올랐고.

내려왔다.

“미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땀에 흠뻑 젖어서.

당진산의 패배였다.

“괜찮아요. 당 공자님.”

하설란은 그런 당진산을 향해 밝게 웃어주었다.

그녀는 당진산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똑똑히 보았다.

평소 연무장에서 보였던 장난스러운 모습 따위는 없었다.

그야말로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었다.

엉망이 된 무복과 땀에 흠뻑 젖은 몰골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랬기에 하설란은 그렇게 웃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웃음이 면사에 가려 있었지만, 당진산은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내가, 다음에는 진짜 복수해준다.”

어느새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편 당진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반대편으로 비무대를 내려가며 그 모습을 본 남궁지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 역시 엉망진창의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어려운 승부였다.

“내 상대가 여자인가? 다음 상대도 어쩌면 여자일지 모르겠군.”

비무대에 올라 연하민을 바라본 마립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잠시 다른 비무대의 남궁지유에게로 향했다가 돌아왔다.

철기방 출신의 마립.

우락부락한 근육에 거대한 덩치.

외공만을 수련한 듯 보였으나, 내공 또한 경지에 이른 생도다.

연하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기분 나쁜 말을 지껄였지만, 저 근육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무백 때문에 외공 수련을 해봐서 안다.

저 정도 수준에 이르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지.

마립의 오른손에는 거대한 기병창이 들려있었다.

철기방.

철기(鐵騎).

기병이 주력인 문파다.

말이 없이 지상에서 싸우는 철기방도는 전력의 절반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곳은 동투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마립의 거대한 창이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연하민을 향해 날아갔다.

단번에 연하민을 날려버리려는 듯한 어마어마한 기세.

예전의 연하민이라면, 저 엄청난 기세를 어찌 상대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산월마림에서 혈강시를 상대해보지 않았던가.

아차해서 물리면 강시가 된다. 그 엄청난 공포와도 마주했던 자신이다.

연하민은 사뿐히 발을 옮겼다.

마립의 창은 연하민의 곁을 쓸고 지나갔다.

연하민의 검이 마립을 향해 날아갔다.

“흥.”

마립은 가볍게 쳐낼 요량으로 창을 휘둘렀다.

챙.

튕겨 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검은 그대로 창신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려왔다.

연하민의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미처 예상치 못한 속도.

“이익.”

마립이 창을 거칠게 흔들며 연하민을 떨쳐내려 했다.

연하민은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부드럽고 유려하며 아름다운 움직임이었다.

면사가 펄럭이며 살며시 드러나는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마립은 재빨리 창을 돌려 연하민을 공격하려 했지만, 연하민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어느새 마립의 목젖을 겨누고 있는 연하민의 검.

그리고.

마립은 패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연하민을 바라보는 마립.

“여자라고 우습게 본 순간, 네 패배는 결정되었던 거야.”

연하민은 제법 긴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비무대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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