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모두 끝났구만
관하경은 도림의 제자다.
도림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그저 그런 제자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피나게 수련을 했다.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녀는 교룡관에 입관했고, 와룡대 오 조가 되었다.
그렇게 사 년을 보냈다.
오늘이 교룡관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사 년 차 생도.
아니, 오늘 이 비무에서 이기면 내일이 마지막 날이 될 터였다.
와룡대에서도, 교룡관에서도, 그리고 사문인 도림에서도.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그녀였다.
작년 동투제에서도 이렇다 할 결과는 내지 못했다.
그런데, 교룡관에서의 마지막 동투제에서 16강에 올랐다.
교룡관에서 가장 강한 열여섯 명 안에 든 것이다.
감회가 남달랐다.
그리고 놀랐다.
올해의 동투제는 이변의 연속이었으니까.
설마 맹룡대 일 년 차 생도 여섯이 자신과 같이 16강에 오를 줄이야.
자신이 16강에 오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이변이었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그녀 자신이 이변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을 결정할 상대가 눈앞에 있었다.
비록 일 년 차 맹룡대 생도라 하지만.
주우명.
전대 무당제일검 무연진인의 유일한 제자.
배분으로만 따지면 현 무당 장문인과 같은 배분.
그가 맹룡대 일 년 차 생도라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애초에 교룡관에 올 인물이 아니었으니.
허나 지금 이렇게 자신의 앞에 비무 상대로 서 있었다.
‘꺾는다.’
관하경은 단단히 마음먹으며 도를 들었다.
“호오?”
길고 긴 동투제였기에, 이제는 지붕에 앉은 하무백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왜 그러는가?”
곁에 함께 앉아 있던 공손무외가 물었다.
그의 시선은 하무백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좇았다.
동시에 열리는 여덟 곳의 비무.
그 모든 곳을 보고 있었지만, 하무백이 반응을 보인 곳이 분명 따로 있으리라.
“모르고 있었는데, 제법인 녀석이 하나 있군요. 도림의 제자인 것 같은데.”
도를 들고 있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도림 출신의 인간 하나를 지겹도록 보아 왔기 때문이다.
도림이라는 말에 공손무외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도를 들고 있는 이는 단 하나였기에.
그것도 여인의 몸으로 거대한 대도를 들고 있었다.
정천맹주 소휘웅과 같은 형태의 대도였다.
“저 아이를 말하는 게로군.”
공손무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빛나지 않지만, 앞으로 분명 찬란히 빛날 겁니다. 도를 들고 있는 자세가 말해주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은 소휘웅을 절세의 천재라 평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그가 천재인 것은 맞지만, 단순히 천재라서 그런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도림의 도법에는 우직함과 꾸준함이 필요했다.
우보천리.
그렇게 매일같이 우직하게, 꾸준하게 정진하다 보면 어느 날 대성하는 도법이다.
단천참마도.
하늘을 자르기 위해서는 하늘이 내린 재능만이 아닌, 하늘을 가를 노력도 필요했다.
단천도(斷天刀).
관하경이 익힌 도림의 도법이다.
하늘을 끊어 버리는 도.
광오한 이름과는 달리 간결한 다섯 초식으로 이루어진 도법.
때문에 이것을 익힌 제자들은 다음 단계의 도법은 참마수라도(斬魔修羅刀)로 넘어간다.
허나 관하경은 그러지 않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보았던 한 장면 때문이었다.
정천맹주 소휘웅이 펼치던 단천도의 다섯 초식.
아름다웠고, 강맹했다.
넋을 잃고 봤고, 자신도 그런 단천도를 펼치고 싶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단천도를 수련한 것이다.
지금 그 수련의 결과가 펼쳐지고 있었다.
주우명에게 폭풍처럼 다섯 초식이 몰아쳤다.
처음에는 주우명도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자신의 흐름을 되찾고 반격을 해왔다.
주우명의 태청검과 관하경의 단천도는 어지러이 어울렸다.
천지사방을 덮으며 관하경을 압박하는 주우명의 태청검.
자신을 덮치는 태청검을 단칼에 잘라버리려는 관하경의 단천도.
막상막하였다.
아니 관하경이 조금 우세해 보였다.
이를 악문 관하경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히려 할 때.
주우명의 검법이 돌변했다.
그 어떤 거력으로도 부술 수 없는 크고도 부드러운 검법.
태극혜검.
무당의 최고 절기가 지금 주우명의 손 아래에서 펼쳐졌다.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
어느새 자신의 목 바로 앞에 멈춰 있는 검첨.
관하경은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졌습니다.”
짤막한 패배 인정과 함께 그녀는 몸을 돌려 비무대를 내려갔다.
“후우…….”
주우명은 깊은 한숨과 함께 비무대에서 내려왔다.
설마 태극혜검까지 꺼내게 될 줄이야.
이건 정말 꼭꼭 숨겨 놓았던 비장의 한 수였건만.
정말 엄청난 강적이었다.
그녀 자신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듯했지만 말이다.
화산의 제자 영호준은 지난 하투제 이후 이를 악물고 수련했다.
설마 맹룡대 놈들에게 그런 쓰라린 패배를 당할 줄이야.
고작 당추 한 놈도 감당 못 했던 놈들에게 말이다.
사문의 검을 갈고 닦았다.
그 결과, 드디어 검 끝에서 매화를 피워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라면, 남궁지후와도 겨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허나, 남궁지후는 맹룡대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비무를 하러 간다며.
영호준은 두 주먹을 꾹 눌러 쥐었다.
주우명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보다 약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당과 화산.
구파일방에서 검을 수련하는 문파로 늘 경쟁하는 관계 아니던가.
지금은 무당의 성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할지라도, 화산의 검이 무당의 검보다 약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의 상대는 뇌정루 출신의 화태악이었다.
와룡대 이 조의 생도.
뇌정루 출신답게 패도적인 권법을 사용했다.
양팔을 감싼 철로 된 권갑은 영호준의 검을 끊임없이 막았다.
예상치 못한 강적이었다.
와룡대 일 조도 아니고 이 조에 이런 생도가 있었다니.
그러나 지금의 영호준은 달랐다.
전반기의 영호준이었다면 졌을지도 모르지만.
이십사 수 중 열두 개의 매화를 피워내는 것만으로, 영호준은 승리했다.
그의 시선은 막 비무대를 내려오고 있는 주우명에게로 향했다.
다음 8강에서 자신의 상대였다.
‘기다려라. 화산의 검이 더 강함을 보여주마.’
호승심에 불타는 두 눈이었다.
목청산은 느릿느릿 비무대로 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맹룡대의 생도 단목운뢰라고 하였던가. 애초에 관심도 없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관심이 조금 생겼다.
그가 와룡대 일 조의 사평주를 꺾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작 삼재검법으로, 선유곡의 대라선유검식을 꺾었다.
목청산이 알기로도 대라선유검식은 가히 천하의 절기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뛰어난 검법이었으니.
하지만 그것은 사평주가 어설픈 탓이다.
자신은 달랐다.
목청산이 검을 뽑았다.
천환천로검법의 기수식.
검 끝이 단목운뢰를 향했다.
단목운뢰 역시 검을 뽑았다.
“시작!”
판정관의 선언과 함께 먼저 움직인 것은 목청산이다.
이런 곳에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오늘의 마지막 시합이라 해도,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고 체력을 온존하고 싶었다.
하나의 검이 둘로 나뉘어 단목운뢰를 향해 날아들었다.
단목운뢰는 침착하게 검을 휘둘러 자신을 향한 검격을 막았다.
둘이 넷이 되었고, 넷이 여덟이 되었다.
단목운뢰는 그 모든 것을 막았다.
여덟이 열여섯이 되는 순간.
단목운뢰는 일부는 막고, 일부는 흘리며 피했다.
목청산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열여섯의 검이면 단목운뢰를 꺾을 수 있을 거라 여긴 탓이다.
목청산의 천환천로검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금 단목운뢰를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는 서른두 개의 검영.
단목운뢰는 그 검영 속으로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분명 삼재검법의 단순한 초식인데, 서른둘의 검영을 모두 지웠다.
“이놈이…….”
목청산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검 끝이 흔들리며 순식간에 검영은 예순넷으로 불어났다.
그야말로 단목운뢰의 모든 방위를 감싸며 날아드는 검.
단목운뢰는 땅을 굴렀다.
나려타곤.
땅을 구른다는 그 행위 때문에 비웃음을 당하는 움직임이었다.
목청산의 입가에도 그제야 미소가 어렸다.
나려타곤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치욕으로 여기는 무인도 있었으니.
하지만 단목운뢰는 아니었다.
하무백에게 나려타곤 따위는 얼마든지 펼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딴 허례허식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단목운뢰는 땅을 한번 구르는 것만으로, 목청산의 검의 범위에서 완벽히 벗어났다.
예순넷의 검영을 완전히 떨쳐낸 것이다.
그제야 목청산은 그것을 깨달았다.
“이익.”
다시금 움직이는 검.
백스물여덟의 검영이 순식간에 단목운뢰를 덮치려는 순간.
단목운뢰는 보았다.
그 사이의 커다란 틈을.
도무지 놓칠 수 없는 틈.
단목운뢰의 검은 그 틈을 찔렀다.
탱그랑.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목청산의 검이 땅에 떨어졌다.
“어, 어떻게…….”
목청산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빈손뿐이다.
검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고.
상대의 검은 자신의 가슴 앞에 멈춰 있다.
“단목운뢰 승!”
목청산이 승복하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한참을 가만히 있자, 판정관이 판정을 내렸다.
승리 판정을 받은 후 단목운뢰는 비무대를 내려왔다.
목청산은 그때까지도 인정할 수 없다는 얼굴로 비무대에 있었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음에도 목청산은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천검파 최고의 기재.
정천맹주 소휘웅의 재능에 비견되는 천재.
그것이 자신 아니었던가.
그런데 겨우 맹룡대의 생도에게 이런 패배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으으윽.”
이를 악물었다.
화를 주체할 수 없어 발작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목청산은 이를 악물고 비무대를 내려왔다.
그의 두 눈은 핏발이 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청우자.
무당의 제자인 그는 하반기 들어 죽을 맛이었다.
무려 사숙조가 교룡관에 들어온 탓이다. 본산에 있을 때도 소문만 듣고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사숙조다.
그럴 수밖에.
무연 사조님의 제자로, 그분의 은거지에서만 지내고 있다고 했으니 볼 수 있을 턱이 있나.
그런 이가 대체 왜 교룡관에 온 것인지.
어쨌든 본문의 웃어른이 온 것이었기에 자신이 수행해야 한다 생각했다.
교룡관은 출신 문파나 배분 따위를 배제한다고는 하지만, 어찌 규칙대로 할 수 있겠는가.
교룡관을 수료하면 결국 자신은 무당의 제자인 것을.
허나, 사숙조는 맹룡대로 갔고 자신과 마주칠 일은 없었다.
잠깐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남궁지후는 잘도 어울리며 대련도 하는 것 같았지만,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청우자는 자신이 이렇게 심약한 줄은 처음 알았다.
사숙조 주우명의 존재만으로 심마에 들었으니.
그런 상태로 16강에 오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대진운도 좋았고.
그러나 운만으로는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없었다.
16강의 상대로 만난 범일소.
그가 예순넷의 검영을 펼치는 순간.
청우자는 패했다.
범일소는 가볍게 승리한 후 비무대를 내려온 후 다른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목청산이 한창 검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둘 중 승자가 자신의 다음 상대였기에,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단목운뢰의 승리로 끝이 났을 때, 범일소는 몸을 돌리며 피식 웃었다.
‘어설퍼.’
대사형의 천환천로검은 그가 보기에 아직 어설펐다.
우스운 일이다.
천검파 최고의 재능이 고작 저 정도라니.
“모두 끝났구만.”
공손무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미 사위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8강부터는 내일 진행된다.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났다.
“자네는 어찌할 텐가?”
공손무외가 하무백에게 물었다.
“좀 바쁠 듯합니다. 만나봐야 할 이들이 많아서요.”
하무백의 대답에 공손무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들을 챙겨야겠지.”
8강에 오른 이들 중 하무백이 담당하는 생도가 셋이다.
백리평, 연하민, 단목운뢰.
“그럼 전 이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하무백이 몸을 훌쩍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