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31화 (131/312)

131화. 누가 이길 것 같아?

역시나 아름다웠다.

조금 전 남궁지후가 보여준 창궁무애검과 분명히 같은 검법일진데.

그와 다르게 검이 움직이는 선이 아름다웠다.

물론 남궁지후의 그것도 아름다웠다.

관중들이 넋을 잃고 감탄하면서 보았으니까.

하지만, 남궁지유의 검은 또 달랐다.

뭐랄까.

그냥 그 근본이 아름다움인 것만 같달까?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연하민의 검은 또 어떤가.

분명 누구나 당장에 펼칠 수 있는 삼재검법이다.

삼재검법의 검법서는 교룡관 앞 서점에만 가더라도 수십 권이 쌓여 있었다.

그 검법서를 보는데 일 각이면 충분했고, 따라하는 데도 반 시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삼재검법은 누구나 쉬이 익힐 수 있는 검법이지만.

연하민의 삼재검법은 달랐다.

'어떻게 저게 삼재검법이지?'

'삼재검법을 저렇게 펼칠 수 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연하민의 검의 움직임은 분명 삼재검법의 그것이었으나.

깊이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남궁지유의 검에 비견될 만큼.

남궁지유의 검이 연하민의 요혈 곳곳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챙! 채챙!

그때마다 연하민의 검이 그 길목을 막았다.

유려하고 다양한 변화를 보이며 현묘하게 움직이는 남궁지유의 검.

단순하고 직선적이지만 깊이가 있는 움직임의 연하민의 검.

서로 대비되는 검법이기 때문일까.

그 공방이 점점 치열해졌다.

'고작 삼재검법이 어떻게······."

남궁지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제도, 오늘도.

어찌 삼재검법으로 펼치는 방어를 뚫을 수가 없는 것인지.

연하민의 검은 당진산의 그것보다 더욱 단단했고, 강했다.

그리고 간간이 찔러오는 반격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보여.'

연하민은 두 눈을 빛내며 남궁지유의 검을 쫓았다.

하설란이 그랬던가.

보였다고.

그녀만큼은 아니었지만, 연하민에게도 남궁지유의 검이 보였다.

그녀 또한 남궁지후의 검을 보았고, 또 대련을 한 경험도 있었으니.

연하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앞으로.

남궁지유를 향해 나아갔다.

두 사람은 한치의 물러섬 없이 검을 부딪혔다.

치열했다.

그리고 거칠었다.

분명 아름답기 그지없는 검을 펼치는 두 사람이었는데, 그 공방은 저돌적이고 사나웠다.

두 사람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사도 쉼 없이 펄럭였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용모가 연이어 드러났으나, 지금 그것에 눈길을 주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원초적인 검격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두 여인이 보여주는 강 대 강의 격돌이라니.

백리평은 담담한 눈으로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았다.

그런 그의 곁으로 남궁지후가 다가왔다.

"누가 이길 것 같아?"

그 물음에 백리평이 고개를 저었다.

"내 비무의 결과도 예측을 못 했는데, 다른 사람의 비무 결과를 어찌 알까."

"밖에서 보면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지."

"난 모르겠다. 그래서 넌 어떨 것 같아?"

"사실 나도 모르겠다."

백리평의 물음에 남궁지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삼재검법의 수련이 천성검법의 수련이었다는 건 무슨 의미야?"

남궁지후의 용건은 이것이었다.

비무 중 백리평이 한 말.

그 의미를 도통 알 수 없었다.

"삼재검법을 한번 익혀봐."

백리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신도 해보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으니.

그리고 천성검법을 다시 펼쳐보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도 못했던 것이었고.

이건 말로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른다.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된다.

자신이 그랬듯이 말이다.

남궁지후의 얼굴이 모호하게 변했다.

"하기 싫음 말고."

백리평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알겠다."

남궁지후는 그 대답을 끝으로 다시 비무에 집중했다.

"이번은 어떨 것 같은가?"

공손무외가 하무백에게 물었다.

"알고 전략을 짠 것인지, 본능적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무백은 어젯밤.

패배한 생도들을 격려했을 뿐, 오늘의 비무에 대한 어떠한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생도들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게 두었다.

이제는 그래도 될 수준에 올랐다고 판단했기에.

그래도 오늘 연하민이 보여주는 모습은 의외였다.

"연하민이라는 아이가 유리한 것 같은가?"

하무백의 말속에 숨은 뜻을 읽은 공손무외가 물었다.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남궁지유. 저 아이는 지금 이 대 일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이 대 일?"

공손무외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제 당진산과의 비무 말입니다. 그때 당진산이 그야말로 남궁지유의 전력을 모두 사용하게 했지요."

"그래도 하룻밤 쉬었으니, 내공은 이미 모두 회복하지 않았는가?"

"내공은 그렇겠지요. 선유곡의 곡주님이시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무백이 되물었다.

"아!"

공손무외가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근육의 피로를 말하는 게로군."

"네. 무공을 펼치는 근원이 내공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근육입니다. 내공으로 근육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피로를 풀어준다고 해도, 근육 자체에 쌓이는 피로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요."

하무백의 말에 공손무외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고 말고. 그래서 외공의 수련 또한 중요한데, 남궁지유 저 아이는 외공의 수련 흔적이 별로 없구만."

"대다수의 무인들이 그렇지요."

"옳은 말일세. 당장 우리 곡의 제자들도··· 쯧. 이번에 돌아가면 대대적으로 손을 좀 봐야겠군."

하무백이 빙긋 웃었다.

"물론 외공의 수련이 부족하다 하여도, 연이어 싸우는 경험을 쌓다 보면 근육도 적응을 합니다만, 저 아이는."

"아마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겠지. 저런. 벌써 조짐이 보이는구만."

하무백의 말에 대답하던 공손무외가 무언가를 보고 말했다.

챙!!!!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검명이 울렸다.

두 사람은 검을 맞댄 채, 서로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연하민의 공세에 남궁지유 역시 그대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궁지유의 두 팔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이익.'

남궁지유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경련은 조금씩 범위를 넓히며 심해져 갔다.

연하민도 그런 변화를 알아차렸다.

양팔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더욱더 강하게 상대를 밀어붙였다.

"으윽."

남궁지유의 악다문 이 사이로 가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하앗."

연하민의 기합성도 가늘게 흘러나왔다.

남궁지유는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이미 최대치를 끌어올린 상태였지만, 한계를 넘어서 단전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내공까지 쥐어짰다.

창궁대연심공(蒼胃大行心功).

남궁세가의 직계들이 익히는 비전 심법을 미친 듯이 운용했다.

부들거리는 팔의 근육에 내공들이 흘러 들어왔다.

남궁지유는 모자라는 근육의 힘을 내공으로 보충했다.

다시금 백중세의 상황.

연하민은 삼재심법을 운용했다.

그녀 역시 자신이 가진 내공을 몽땅 쏟아 부었다.

명가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인 남궁지유.

그녀만큼의 내공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껏 열심히 수련했다.

그 지독한 단환도 두 번이나 먹지 않았던가.

연하민의 단전에 있던 내공들이 노도같이 전신 혈맥으로 퍼졌다.

"하앗!"

연하민의 입에서 거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꺄악."

님궁지유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고.

그녀는 뒤로 날아갔다.

퍽.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가 겨우 몸을 가누고 일어나는 찰나.

순식간에 따라붙은 연하민이 검을 그대로 내려그었다.

우뚝.

검은 남궁지유의 정수리 한 치 위에서 멈췄다.

남궁지유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승부는 났다.

"졌습니다."

남궁지유가 두 눈을 감으며 작게 말했다.

그 말에 연하민이 검을 거두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대단하다!!!"

"휘익! 휘익!"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까지 들리며, 사방은 함성으로 뒤덮였다.

숨 막히는 승부가 이렇게 끝이 났다.

벌써 두 번째.

남궁이 패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연이은 명가의 패배에 더욱 흥분하는 건지도 몰랐다.

명가의 제자와 겨뤄 이길 수 없다는 자신들의 고정관념이 부서지는 것을 반기는 듯했다.

"후우."

남궁지유는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직 제대로 일으키기도 전에 연하민의 검이 날아들었으니까.

그런데 도무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공도 한 줌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

"자."

그때.

연하민이 손을 내밀었다. 아직 남궁지유의 앞에 있었던 것이다.

남궁지유는 멍하니 그 손을 바라보았다.

"잡아. 아마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을 거야. 내일은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를걸?"

살포시 웃으며 말하는 연하민.

좀처럼 웃지 않는 그녀의 미소가 싱그러웠다.

남궁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을 잡았다. 그녀의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면사에 가려 있었기에 그런 두 사람의 미소를 본 이는 없었다.

"멋지다!!"

"짝짝짝짝!!!"

사방에서 박수와 함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그렇게 연하민과 남궁지유는 함께 비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벌써 8강의 두 시합이 끝났다.

남은 시합도 둘.

장내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주우명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연이은 두 번의 명승부.

이런 승부를 보았으니, 몸이 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우명의 시선이 비무대 위를 향했다.

곧 자신이 올라갈 차례다.

주우명의 상대는 화산 출신의 영호준.

마침 영호준도 주우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이윽고 결전의 시간이 되었고.

둘은 천천히 비무대로 걸어 올라갔다.

사방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찌 아니 그럴까.

지금까지는 잠룡대와 맹룡대의 대결이었다면, 이번은 달랐다.

물론 소속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랬다. 하지만 그들의 출신.

화산 대 무당.

무당 대 화산.

구파일방에서 검으로 쌍벽을 이룬다는 두 문파의 제자가 동투제 8강에서 격돌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는 기대가 어렸다.

아주 오래된 논쟁이다.

구파일방 중 최고의 검파는 화산인가, 무당인가.

비록 교룡관 생도 두 사람의 대결이지만, 그 해묵은 논쟁의 연장선에 있는 비무는 모두의 이목을 끌 만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가볍게 예를 표한 후.

상대의 허점을 찾았다.

잠시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두 사람.

두 사람의 검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먼저 움직인 쪽은 영호준이다.

그의 검이 가늘게 떨리는가 싶더니, 서서히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한 송이, 한송이.

허공에 흩날리기 시작하는 매화.

그 꽃의 숫자가 스물넷에 이르러 주우명을 둘러쌌다.

"이십사수매화검법!!!"

관중들 중 누군가 크게 외쳤다.

화산의 절기로 너무도 유명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검법.

그 검법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저 나이에 만개하다니 제법이군요."

만개(滿開).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스물네 송이 꽃을 모두 피워내는 것을 지칭한 말이다.

하무백이 작게 감탄했다.

전장에서 만난 화산파 고수 중에서 만개의 경지에 이른 검수는 많지 않았으니.

"자네가 감탄할 정도면 저 친구도 대단한 친구인가 보군."

"몇 개월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공손무외의 말에 하무백이 대꾸했다.

"그러면 이번 승부는 어찌 될 것 같은가?"

"아쉽지만, 좀 늦었습니다. 더 빨리 정신을 차렸으면 모르겠지만요. 이제 막 만개에 이른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우명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하지요. 이십사수매화검법은 만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니까요. 영호준 저 친구는 이제 시작점에 발을 디뎠을 뿐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