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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33화 (133/312)

133화. 제자는 아닙니다만

하무백의 눈썹이 꿈틀했다.

범일소라는 저 녀석.

제법 실력이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 했다.

무극명륜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상대의 내공의 종류와 양, 그리고 그 흐름이다.

애초에 하무백이 무극명륜안으로 범일소를 살필 이유도 없었다.

그저 동투제를 지켜보면서 그를 보았을 뿐.

16강에서 그의 검법을 지켜본 결론은 '매우 훌륭하다'였다.

목청산이라는 아이보다 뛰어난 것은 확실했으니까.

다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녀석은 오랜만이었다.

"저거 대단하구만! 그렇지 않은가?"

공손무외 역시 감탄하며 물었다.

천검파의 천환천로검은 강호에서도 유명한 절기.

무림 최고의 검법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꼽히는 검법이다.

대라선유검식이 가히 천하의 절기라 꼽히긴 하지만, 천환천로검법에는 비할 수 없음을 공손무외도 알고 있었다.

그런 뛰어난 검법을 저 나이에 저런 경지로 펼치다니.

"그렇군요. 저 나이에 구 초식을 저 정도로 펼치다니. 제법 놀랐습니다."

하무백도 공손무외의 말에 긍정했다.

"자네 제자가 이번에는 좀 위태롭겠어."

"···제자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저 녀석도 저를 좀 놀라게 했던 녀석이라서요."

하무백은 아직 섣부른 결론을 내리진 않았다.

분명 단목운뢰의 수준에서 부담이 되는 상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간 단목운뢰가 보여준 의외의 모습이 있었기에, 게다가 최근 자신의 재능에 눈을 뜨며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이 있었기에.

하무백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단목운뢰는 자신을 덮치는 이백쉰여섯의 검영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검의 바닷속에 갇힌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는 장관이었다.

상대의 검을 넋을 놓고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

단목운뢰는 범일소가 검을 떨치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철저히 수련한 대로.

삼재검법의 움직임에 맞춰서,

다만.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강하게.

검을 떨치고 몸을 움직였다.

단목운뢰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범일소가 이백쉰여섯의 검영을 만들었다면, 단목운뢰는 그 신형이 둘로, 넷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늘어난 신형들은 검을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채챙!

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단목운뢰는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을 덮쳐오는 검의 바다에 맞섰다.

범일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형 목청산을 꺾을 때, 이미 만만치 않을 녀석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새로운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의 천환천로검법을 막아서다니.

이백쉰다섯의 구 초식이 범일소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헌데 저놈은 자신의 최선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겨루는 동안 성장하면서.

저놈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무아지경에 들려는 순간.

지금 저놈은 그 순간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자신이 적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꼴.

이를 악물었다.

'순순히 그리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범일소의 손이 더욱 바빠졌다.

단전에서는 연신 내공을 뿜어냈다.

더욱 발라지는 검의 움직임.

이백쉰여섯의 검영은 사라지기 무섭게 다시 나타나 단목운뢰를 몰아쳤다.

검의 바다에서 몰아치는 검의 파도.

아니 검의 해일.

단목운뢰는 그 속에서 더욱 빠르게, 더욱 강하게 범일소의 공세를 막아갔다.

반쯤 초점이 흐려진 단목운뢰의 두 눈.

무아지경에 절반쯤 들어선 상태에서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완전히 무아지경에 들지 못한 이유는 하나.

끊임없이 범일소의 검을 살폈기 때문이다.

흐름이 끊기는 한 부분.

분명히 있을 거라 믿고 그 부분을 찾고 있었다.

"저, 저······."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는 공손무외의 입이 벌어졌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백리평과 남궁지후의 비무를 다시 보는 듯하지 않은가.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성장해 나가는 비무.

범일소의 실력에 감탄했는데, 단목운뢰 역시 거기에 호응하며 발전하고 있었다.

하무백은 씨익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번 자신을 놀라게 했던 녀석이.

이렇게 또 성장을 하고 있었다.

저 재능은 참으로 놀라웠다.

'연하민은 어떠려나.'

하무백은 그녀가 단목운뢰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재능을 지녔을 것이라 평가했다.

아직 그 재능을 개화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도 남궁지유를 꺾지 않았던가.

"저 나이 때의 친구들은 놀랍네요. 계기만 있으면 저리 발전하니."

하무백이 담담하게 말했다.

단목운뢰와 범일소 둘 모두를 포함한 말이었다.

범일소의 검에도 조금씩 변화가 보이고 있었다.

단목운뢰가 보여준 방법에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면서.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강하게.

검영의 숫자는 이제 사백에 이르렀다.

천환천로검법 십 초식.

오백열둘의 검영을 피워내야 한다.

범일소가 펼치는 검법은 분명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천환천로검법의 발전 방향과 그 궤를 달리했다.

이백쉰여섯의 벽을 깨고 단번에 오백열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천검파의 정석이거늘.

지금 범일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검영의 숫자를 늘리고 있었다.

"저, 저··· 저 녀석. 그러면 그렇지. 사도(邪道)에 들어섰구나. 그래서 저런 게 가능했구나. 그렇지. 사도가 아니고서야 저 망나니 같은 녀석이 어찌 저 경지에."

그 모습에 목청산이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자신보다 못한 재능을 가진 사제, 자신보다 불성실한 사제.

그가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은 이유를 드디어 찾았다 생각하는 것이다.

범일소의 눈도 점점 초점이 사라져갔다.

단목운뢰가 무아지경에 접어들고 있었음만을 알았지, 자신 역시 같은 상태에 접어들고 있음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를 꺾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둘.

챙! 채채채채챙! 챙!

챙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쉼 없이 요란하게 울렸다.

마치 곡을 연주하듯 끊김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무수히 피워내는 검영과 검영의 부딪힘이었으니.

그렇게 얼마나 부딪혔을까.

범일소의 검영이 사백둘에 이르렀을 때.

단목운뢰의 눈에 빈틈이 보였다.

그 빈틈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목청산과의 비무에서는 빈틈이 보여도 그곳을 공격할 능력이 모자라 더 큰 빈틈이 드러나길 기다리기만 했던 단목운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찰나의 빈틈을 단목운뢰는 놓치지 않았다.

채애앵!

거칠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범일소의 검이 검로에서 크게 빗나갔다.

그와 동시에 사백둘에 이르던 검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단목운뢰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범일소의 품을 파고들었다.

두 사람의 검 모두 상대를 공격할 수 없는 간격.

단목운뢰의 왼팔이 빠르게 움직이며, 삼재권법의 투로를 따랐다.

퍽!

왼 주먹이 그대로 범일소의 아래턱을 후려갈겼다.

"크윽."

머리가 뒤흔들리는 충격.

한 걸음 물러선 범일소가 재빨리 검을 움직이려 했으나, 몸이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수유의 순간.

그동안 몸이 범일소의 통제를 벗어났다.

그때 몸을 회전한 단목운뢰의 오른발이 그대로 범일소의 머리를 후려 찼다.

"쿠억."

범일소를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정도 위력의 발차기였다.

그리고 몸을 채 일으키기도 전에 단목운뢰의 검이 범일소의 미간 앞에 멈춰 있었다.

범일소는 그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패했다.

실력과 실력으로 부딪혀서 패했다.

비무가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분명 자신이 더 강하다고 여겼건만.

그래도 방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강의 수를 꺼냈건만.

저놈은 그것을 극복하고 순식간에 성장했다.

"후우. 졌다."

범일소의 패배 선언.

단목운뢰는 검을 내리고 왼손을 다시 내밀었다.

범일소는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눈에 초점은 어느새 또렷하게 돌아와 있었다.

"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멋지다!!!!"

판정관이 단목운뢰가 승리했음을 판정하는 순간, 관중들의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도 빠른 공방에 숨 쉬는 것도 잊고 비무에 빠져들었던 관중들.

그 공방을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분명히 알았다.

엄청나게 빠르고 엄청나게 수준 높은 대결이었음을.

그것이 지금과 같은 함성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두 사람은 비무대를 함께 내려갔다.

조금 전 단목운뢰의 강타의 충격이 아직 범일소에게 남아 있던 탓이다.

"마지막 퇴법에는 감정이 좀 실린 거 같더라?"

비무대를 내려온 범일소가 여전히 퉁명스레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나한테 그럴 정신이 있었을까."

단목운뢰는 고개를 흔들며 그리 말했다.

그럼에도 범일소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처음의 권법과는 분명 달랐으니.

그랬기에 범일소의 입에서 꼴사나운 비명까지 터져 나왔던 것이고.

***

8강전이 마무리되었다.

백리평, 연하민, 주우명, 단목운뢰.

4강의 주인공들이 결정되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동투제 4강 진출자 전원이 맹룡대라니.

교룡관이 만들어진 이래 이런 일은 없었다.

동투제는 잠룡대와 와룡대의 축제였기에.

오늘의 결과는 그야말로 파격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허허. 대단하구만."

팽도율이 웃음을 흘렸다.

8강전은 과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명승부의 연속이었다.

과연이라 할 만했다.

8강에 오른 이들 중 누가 이기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대결.

그 승자는 모두 맹룡대였지만.

예년의 동투제였다면 8강에 오른 이들 모두 우승할 법했다.

올해의 동투제에서 대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상 대주, 어떤가?"

팽도율이 상경문에게 물었다.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설마 만개를 볼 줄도 몰랐고, 천환천로검법의 구 초식을 볼 줄도 몰 랐습니다."

그의 말에 팽도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헌데 그들이 모두 패했으니."

팽도율의 말에 상경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당의 검은 대단하더군요."

능우담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화산 출신인 그로서는 만개의 이십사수매화검이 승산이 더 높다 여겼건만.

태극혜검을 꺼내지 않고 영호준을 꺾었다.

"과연 무당 최고의 재능이었습니다."

능우담은 출신을 떠나 순수하게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해서 두 사람은 누가 우승할 것 같은가?"

팽도율이 물었다.

"백리평입니다."

"주우명입니다."

상경문과 능우담의 의견이 갈렸다.

다만 하나는 일치했다.

그들이 꼽은 두 사람은 구파일방 출신이었다.

각기 종남과 무당.

그것이 그 둘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8강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간단한 식사와 휴식 후 4강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치열한 비무를 치른 이들이 회복할 시간도 필요했으니.

4강 진출자들은 운기조식에 빠져 있었다.

먼저 비무를 치른 이들도 다른 이들의 비무를 지켜보느라 운기조식을 미루고 있었던 터였기에.

"자네는 누가 우승할 것 같은가?"

공손무외가 하무백에게 물었다.

"곡주께서는 누구를 생각하십니까?"

하무백이 되물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나는 아무래도 단목운뢰라는 아이 같구만. 비무를 치를 때마다 발전하는 모습이 아주 놀라워."

공손무외의 답에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조금 전의 비무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듯했다.

"자네는?"

다시 묻는 공손무외.

"글쎄요.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겠지요."

은근히 대답을 회피하는 하무백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결과가 그려지고 있었으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넷 모두 그의 손이 닿은 아이들이었기에.

"그런가? 나는 그래도 이왕이면 단목운뢰 저 아이가 우승했으면 좋겠구만. 이제 곧 그 아이도 올 텐데 말일세."

"그 아이요?"

공손무외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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