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허, 참. 사람하고는
궁소유는 최근 들어 하루하루가 너무나 좋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활기찼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단목운혜.
자신은 구음절맥, 그 아이는 칠음절맥.
같은 절맥증을 알았던 경험, 거기에 완치된 날도 같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집을 자주 찾았다.
처음 찾아갔을 때는 허름한 움막 같은 집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완전히 치료가 된 다음날.
이사를 했다.
그 집을 벌써 세 번째 방문하고 있었다.
오늘이 이사 후 두 번째 날.
그러니까, 이삿날부터 매일같이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곁에 오늘은 공손비연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데리고 갈 거니?"
"응. 언니. 운혜의 오빠가 8강에 올라갔는데, 비무 대회를 못 보면 아쉽잖아."
"그래도 운혜는 아직 어린데······."
"뭐, 피가 튀고 그러는 대회는 아니잖아."
그 말대로이긴 했지만.
"아예 없지는 않지."
사람과 사람이 병기를 들고 싸운다.
그렇다면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어제 운혜에게 말을 했는데······."
단목운뢰가 교룡관의 비무 대회에 나갔고,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단목운혜는 자신도 오빠가 대회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궁소유는 다음날 대회를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운혜의 오빠라면 분명 계속 살아남았을 거라 말하며.
그리고 밤에 장원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에게 동투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가.
동투제가 이틀간 치러지는 것이 몇 년 만이라니. 하마터면 단목운혜에게 괜한 기대만 심어줄 뻔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약속 먼저 해버린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다행스럽게도 단목운뢰가 8강에 진출했다는 소식. 정말 다행이었다.
해서 오늘 이렇게 단목운혜를 데리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데리고 가면 8강은 끝났을 것 같은데. 만약 8강에서 떨어졌으면?"
공손비연의 물음에 궁소유는 살짝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망설임이 담긴 대답이었다.
"언니!!"
단목운혜는 집 문 앞에서 궁소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추위에 뺨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미 단장까지 모두 마친 모습이다.
그 모습에 궁소유과 공손비연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반드시 데려가야 할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부디 단목운뢰가 4강에 진출했기를 바라면서, 단목운혜와 함께 교룡관으로 향했다.
***
"자네가 치료해준 아이 말일세."
"운혜 말씀이십니까?"
공손무외의 말에 하무백이 다시 되물었다.
"그렇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공손무외.
"그 아이가 이곳에 온다고요?"
"소유가 그리 약조했다 하더구만. 혹시 몰라 비연이가 함께 움직일걸세."
"흠. 운혜는 비무를 보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입니다만."
하무백의 지적에 공손무외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들 사이의 일이니 난들 어쩌겠는가."
그랬다.
이제야 완전히 건강해진 아이다.
오빠가 비무 대회에 나온 것을 보겠다는데 무턱대고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가 보기에 괜찮은 장면만 있는 것도 아닐 터인데.
그나마 4강에 남은 이들이 모두 자신의 손을 탄 아이들인 게 다행이랄까.
특별히 염려할 만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리라.
그때, 하무백은 관중들이 모인 가운데 한 곳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들었다.
자연스레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고, 소란의 원인을 알아보았다.
"도착한 모양이군요."
아무리 면사로 그 미모를 가렸다고는 하나, 흘러나오는 미색이 있었다.
공손비연의 미모는 면사로 전부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나타나자 관중들이 웅성거리며 소란이 인 것이다.
가뜩이나 혈기왕성한 나이의 젊은 생도들 아니겠는가.
공손비연은 설마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여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파를 피해 적당한 자리를 찾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좋은 자리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했으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시선과 그와는 또 다른 다양한 감정이 담긴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한 문제는 자신의 뒤에 있는 두 아이였다.
공손비연은 오늘 보호자로서 궁소유와 단목운혜를 데리고 교룡관을 찾았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오히려 소란이 일 듯하니.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어.'
오랜 세월 선유곡에서만 지냈다. 사람이 이처럼 많은 곳에 나온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 해봐야 저잣거리나 객잔 정도.
이렇게 많은 군중이 밀집한 곳은 처음이었기에, 이런 반응을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실수하셨습니다. 손녀분이 오히려 시선을 너무 끄는군요."
"끄응. 그렇구만. 나도 곡에만 너무 오래 있어서 현실 감각이 많이 무뎌진 모양일세."
공손무외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공손비연 일행은 관중들에게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잠시."
하무백이 몸을 훌쩍 날렸다.
허공을 천천히 노닐 듯 걸어, 공손비연 앞에 내려섰다.
"어?"
"어어어?"
관중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리고는 그대로 멈췄다.
그럴 수밖에.
공중에서 허공답보로 날아내린 고수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교관님!"
하무백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반가이 소리친 이는 단목운혜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이제부터 나와 함께 가자꾸나."
"대인. 죄송합니다."
궁소유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인. 면목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야기했다는 생각에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공손비연이 고개를 숙였다.
"곡주께서도 미처 생각지 못하셨을 정도이니. 괘념치 마세요."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고수가 저 미녀와 아는 사이였다니. 사람들의 얼굴에 갖가지 표정이 떠올랐다.
교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도, 거기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듯했다.
하무백은 그저 피식 웃었다.
한 팔로 단목운혜를 안고 다른 손으로 궁소유의 손을 잡았다. 궁소유는 공손비연의 손을 잡았다.
하무백이 가볍게 발을 디뎠다.
앞이 아닌 위로.
그렇게 천천히 허공을 걸어 올라가는 하무백.
그와 함께 궁소유과 공손비연도 서서히 허공으로 몸이 올라갔다.
"어? 어어?"
신기한 경험에 궁소유가 위아래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공손비연은 두 눈을 부릅떴다.
두 사람을 데리고 허공답보라니!
들은 적도 없는 경지였다.
공손비연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하무백의 내공에 의해 몸이 허공으로 뜨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허공답보로 허공을 거닐고, 함께한 두 사람의 몸은 능공섭물로 띄우고 있었다.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하무백의 엄청난 활약에 대해서는 벽력개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듣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달랐음이니.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데······.'
벽력개의 말이 모두 진실임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건 상상의 범주를 넘어선 모습이었다.
"고맙구만."
공손무외가 있는 지붕 위로 다시 올라서는 하무백.
공손비연과 궁소유도 지붕에 발을 디뎠고, 하무백은 단목운혜를 지붕 위에 내려주었다.
"떨어질 일은 없을 거다만, 조심해라."
하무백이 단목운혜에게 당부했다.
"네."
단목운혜는 짧게 답했다.
"그런데, 교관님. 오빠는요?"
하무백이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고 운공에 빠져 있는 단목운뢰가 있었다.
"4강에 올랐다."
"우와!"
하무백의 말에 단목운혜가 순수히 감탄했다.
"그보다, 밥은 먹고 온 거냐?"
하무백의 물음.
지금 시각이 점심시간이었다.
관중들 중 일부는 식사를 하러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공손비연이 등장했을 때 훨씬 큰 소란이 있었으리라.
"아, 그러고 보니······."
단목운혜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살짝 배를 내려다보았다.
오빠의 비무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일찌감치부터 문 앞에서 궁소유를 기다리느라 식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탓이다.
그것은 궁소유와 공손비연 역시 마찬가지.
"쯧. 잘 먹어야 한다니까."
하무백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절맥증에서 완치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끼니를 거른단 말인가.
하무백은 옆에 올려둔 봇짐을 풀었다.
주먹밥 두 개가 나왔다.
가볍게 내공으로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주먹밥을 따뜻하게 데울 정도로 딱 맞춰서.
금세 주먹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먹음직한 향기를 주변으로 풍겼다.
여러 가지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진 주먹밥이었다.
"여기 먹어라."
하무백은 주먹밥을 단목운혜와 궁소유에게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꾸벅 인사를 하며 주먹밥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바로 먹지는 못하고 눈치를 살폈다.
그럴 수밖에.
공손무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공손비연 역시.
"뭔가 했더니 점심식사였구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공손무외 또한 하무백의 곁에 놓인 봇짐을 발견했었다.
설마 그것이 주먹밥일 줄은 몰랐다.
"더 없나?"
공손무외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공손비연의 얼굴에도 작은 기대가 어렸다.
그 정도로 향기가 먹음직스러웠다.
없던 식욕도 절로 생길 향기였는데, 허기가 느껴질 점심때였으니.
"한 끼 굶는다고 어떻게 되는 거 아닙니다."
하무백이 칼 같이 대답하며 지붕에 털썩 걸터앉았다.
"너희도 앉아서 편하게 먹어라. 그렇게 먹다가 체할라."
그러면서 봇짐에서 대나무 물통 두 개를 꺼냈다.
"물도 먹고."
하무백이 단목운혜와 궁소유에게 물통을 건넸다. 이미 삼매진화로 데워서 따뜻했다.
"허, 참. 사람 하고는."
공손무외가 하무백의 곁에 앉았다. 공손비연도 그런 할아버지 곁에 앉았다.
자신들이 계속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다가는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없다는데.
"어제도 그냥 보시지 않았습니까?"
하무백의 말에 공손무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랬어. 헌데 자네가 만든 겐가?"
"친한 숙수에게 부탁했습니다."
담룡북각의 백족 숙수였다.
작소육을 비롯해 백족의 전통음식을 즐기는 하무백의 모습 덕에 숙수와 친해졌다.
담룡북각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그에게 비무를 보면서 입이 심심하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지붕 위에서 적당히 챙겨 먹으라며 그가 이른 아침에 뚝딱 만들어준 것이다.
"솜씨가 보통이 아닌 숙수일 것 같구만. 어느 객잔에 있는 숙수인가? 한번 가봐야겠어."
향기에 식욕이 제대로 동한 모양이었다.
"교룡관 담룡북각의 숙수입니다. 오늘 동투제 끝나고 함께 가시죠. 어차피 한 개는 곡주님 몫이었으니까요."
하무백의 대답에 공손무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봇짐에서 꺼냈던 두 개의 주먹밥.
그중 하나는 자신 몫으로 챙겨온 것이었다.
그 말에 공손무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식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자기 손녀가 오물거리며 먹고 있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불렀으니.
하무백이 자신을 신경 써 챙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슬슬 시작할 모양입니다."
하무백이 비무대 주변을 보며 말했다.
판정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기조식에 빠져 있던 4강 진출자들이 하나둘 눈을 뜨고 일어났다.
판정관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우와아아아아!!!"
기다리던 4강전의 시작.
관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비무대 위에 사뿐히 올라서는 두 사람.
백리평과 연하민이었다.
남궁지유는 비무대 한쪽 옆에 여전히 남아서 4강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남궁지후 역시 마찬가지.
공손비연이 궁소유, 단목운혜와 함께 찾아오면서,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 무림오화 중 셋이 모였다.
연난화 남궁지유, 빙연화 연하민, 선국화 공손비연.
과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조금 전 공손비연이 나타났을 때의 소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무백은 알고 있었으나, 그따위 것에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시작!"
판정관의 외침과 함께 백리평과 연하민이 서로를 향해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