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37화 (137/312)

137화. 심마로군요

서로를 마주 보고 선 주우명과 단목운뢰.

검병을 쥔 주우명의 손이 살짝 떨렸다.

단목운뢰가 자신의 이 갈증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기대 때문이다.

반면 단목운뢰는 긴장으로 손이 살짝 떨렸다.

이미 몇 차례나 대련했던 상대.

그때마다 벽에 가로막히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오늘 다시 그 벽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오빠다."

단목운혜는 먼 거리였음에도 단번에 단목운뢰를 알아보았다.

눈을 반짝이는 그녀를 보며 궁소유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경솔함 때문에 하마터면 단목운혜에게 상처를 줄 뻔했지만.

다행히 오늘도 동투제는 열렸고, 단목운뢰는 무려 4강에 올라 있었다.

결과가 좋으니, 잘된 일이라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앞으로는 이런 경솔한 행동 하지 마.]

공손비연의 전음만 아니었다면.

궁소유 자신의 잘못이 분명했기에, 그녀는 그저 입술을 삐죽일 뿐이다.

"어떨 것 같은가?"

공손무외가 은근한 어조로 하무백에게 물었다.

그는 단목운뢰를 응원하고 있었으니.

"현 수준에서 논한다면 아무래도 우명이 더 유리하지요."

담담한 하무백의 대답.

그 말은 단목운혜의 귀에도 들렸고, 그녀의 얼굴이 살짝 침울해졌다.

"아냐, 아냐. 운혜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그런 그녀의 변화를 눈치챈 궁소유가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단목운혜의 손가락이 반쯤 남은 주먹밥에 제법 깊게 박혀 들었다.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빛을 뿌리고 있는 검.

단목운뢰는 주우명의 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주우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싶은 순간.

그가 땅을 박찼다.

단목운뢰를 향해 날아드는 검.

태청검법의 검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무수히 봐온 검로다.

그랬기에 단목운뢰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손이 조금씩 어지러워졌다.

태청검법의 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운뢰, 네 비무도. 평과 하민의 비무도 잘 보았다. 너희가 할 수 있으면 나 또한 할 수 있을 터.'

단목운뢰가 보여주었던 속도를 배가함으로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

주우명 역시 그것을 사용했다.

단목운뢰는 이를 악물고 검을 떨쳤다.

애초에 그는, 수준 높은 상대가 펼치는 검법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검의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상대까지 속도를 높이니, 그로서는 더욱더 빠르게 검을 움직여야 했다.

'이익. 이런 걸 어떻게 막아낸 거야.'

단목운뢰는 조금 전 연하민의 비무를 떠올렸다.

변화무쌍함에 있어서는 주우명의 태청검법보다 백리평의 천성검법이 한 수 위.

자신은 속도가 빨라진 태청검법의 변화를 따라가기에도 급급한데, 연하민은 어찌 그런 천성검법을 모두 막아냈을까.

새삼 연하민의 재능에 감탄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민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단목운뢰는 집중했다.

그리고 더욱 빨리 움직였다.

'그래. 난 이미 해냈어.'

범일소와의 8강전을 떠올렸다.

이미 범일소는 자신처럼 검의 속도를 올리는 것으로 검의 변화를 더욱 어지러이 만들었었다.

천검파의 천환천로검법.

분명한 것은, 이 검법 역시 태청검법보다 훨씬 변화무쌍한 검법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깨닫자 단목운뢰의 검이 한층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여기까진가?'

주우명은 단목운뢰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간 비무의 경험 때문에 단목운뢰가 자신에 대해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심리적 우위를 이용해 몰아붙이려 하였건만.

역시나 검속을 높인 천환천로검을 막아내고 승리한 단목운뢰였기에, 검속을 높인 태청검법 역시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삼재검법으로 조금씩 태청검법의 영역을 잡아먹고 있었다.

본파인 무당의 사람들은 절대 믿지 못할 일이다.

삼재검법이 태청검법을 조금씩 밀어붙이고 있는 현실.

주우명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이런 것을 원했다.

영호준 역시 뛰어났지만, 주우명은 여전히 목말랐다.

직접 상대했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만개의 경지에 든 영호준의 이십사수매화검법보다 단목운뢰가 펼치는 삼재검법이 더 강했다.

그랬기에 주우명은 망설이지 않고 검법을 바꿨다.

태극혜검.

무당파 최고의 절기가 다시 한번 주우명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으윽."

검법이 바뀌고 단목운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빠르지 않았다.

강하지 않았다.

단단하지 않았다.

현란하지 않았다.

변화무쌍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뚫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빠르게 삼재검법을 펼쳐도 번번이 막혔다.

아무리 강하게 검을 휘둘러도 너무도 부드럽게 흘려 넘겨 버렸다.

대체 이런 검법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단목운뢰는 그럼에도 집중해서 주우명의 검법을 바라보았다.

빈틈을 찾기 위해.

눈을 떼지 않으면, 계속해서 집중하다 보면, 분명히 빈틈이 보일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 능력을 각성한 이후, 지금까지 지켜본 모든 상대에게서 빈틈을 발견하였으니까.

주우명과의 대련에서도 보았다.

그의 태청검법에도 빈틈은 있었다.

단목운뢰가 그것을 공략할 능력이 없었기에 대련에서는 패했지만.

그렇다면 지금의 검법에도 분명 빈틈이 있으리라.

그렇게 공격을 계속했다.

쉼 없는 공격.

주우명은 담담히 단목운뢰의 공격을 받아넘기며 반격할 뿐이었다.

"허어. 역시 하늘이 내린 재능이란 것인가. 태극혜검을 저 어린 나이에 저런 경지로 펼치다니."

공손무외가 감탄했다.

그가 보기에도 주우명의 태극혜검에는 빈틈이 없었으니까.

"저 정도일 줄은 저도 몰랐군요."

하무백도 작게 감탄했다.

자신이 짐작했던 수준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기에.

저렇게 되기 위하며 얼마나 열심히 수련하였을까.

재능에 더해진 노력이 저런 경지를 만들어 낸 것이리라.

'하지만 재능과 노력 모두 운뢰도 뒤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미치지 못할 뿐.'

하무백이 판단한 단목운뢰의 재능 역시 하늘이 내린 것이다.

그가 각성한 능력이 보통 능력이던가.

아쉬운 것이라면, 올해에야 무공에 입문했다는 사실.

비슷한 재능과 노력이라면, 그 시간의 벽을 넘을 수는 없으리라.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고 있었다.

챙!

채챙!

챙!

그러나 두 사람의 모습이 달랐다.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검을 떨치는 단목운뢰.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으로 검을 움직이는 주우명.

비무를 지켜보는 관중들도 느끼고 있었다.

8강전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던 단목운뢰였지만, 주우명에게는 점점 밀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뭐, 뭐야.'

그즈음 단목운뢰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었다.

'어, 없어.'

주우명은 이미 태극혜검을 마지막 초식까지 모두 펼쳤다.

같은 변화가 다시 한번 반복됨을 지켜본 단목운뢰다.

그럼에도.

빈틈이 없었다.

검법의 흐름 속에서 연결이 끊어지는 부분.

그 부분이 없었다.

그저 강물이 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여전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능력을 각성한 후 처음 겪는 경험.

'아.'

아니, 처음이 아니었다.

이런 적이 있었다.

'교관님.'

하무백과의 일대일 대련 때였다.

아무리 봐도 하무백의 움직임에서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압도적인 수준 차이 때문이었다.

'그럼 우명도?'

단목운뢰의 눈이 잘게 떨렸다.

설마 주우명 역시 그 정도로 자신과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단 말인가.

주우명의 진짜 실력은 태극혜검을 펼칠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인가.

그런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잡념이 생기는 만큼 검의 움직임 역시 흔들렸다.

주우명이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태극혜검이 점차 단목운뢰를 압박해 갔다.

그리고 단목운뢰는 그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런··· 쯧쯧."

공손무외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조금 전 연하민이 그랬듯.

단목운뢰 역시 마음이 꺾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극복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니."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자네 제자 아닌가. 너무 냉정하구만."

"제자는 아니라고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만."

하무백의 대답에 공손무외는 그저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단목운혜.

오빠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든 순간.

"오빠!!! 지지마!!"

단목운혜가 힘껏 외쳤다.

그냥 본능적인 외침이었다.

동생의 간절함 외침.

그 외침이 단목운뢰의 귀에 닿았다.

그러나 그뿐이다.

단목운뢰는 여전히 밀리기만 했다.

'혜아야.'

동생 앞에서 당당히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상대가 너무 강했다.

연하민처럼 동생의 외침에 다시 한번 힘을 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상대의 검법에.

단목운뢰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흐음. 심마로군요."

하무백은 단목운뢰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응? 심마? 저 아이가?"

공손무외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심마는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이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즉, 단목운뢰가 심마를 겪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다.

"뛰어난 능력이 독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믿기보다는 그 능력에 의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저런······."

공손무외가 안타까운 탄성을 흘렸다.

"심마를 극복한다면,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오를 테고, 심마에 먹힌다면 여기까지인 것이죠."

하무백은 마치 아무 상관 없는 타인에 대해 이야기하듯 무심히 말했다.

"쯧. 냉정하구만. 자네. 냉정해."

공손무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궁소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운혜는 오직 단목운뢰만을 간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비무대 위는 주우명이 만들어내는 태극혜검의 움직임으로 가득 찼다.

단목운뢰는 이제 비무대 끝까지 밀렸다.

어느새 주우명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살짝 떨리던 손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가슴의 두근거림도 사라졌다.

대신.

갈증은 다시 더욱 심해졌다.

여전히 몸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으니.

단목운뢰가 어느 정도 식혀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갑자기 시시해졌다.

그걸 인지한 순간.

주우명의 검이 멈췄다.

"응?"

"어?"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관중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단목운뢰 역시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으로 주우명을 바라보았다.

"재미없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주우명이 단목운뢰를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 맹룡대에 왔을 때의 주우명이라면 상상도 못 할 도발적인 말투였다.

그도 이곳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단목운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우명을 바라보았다.

"네가 언제부터 상대의 빈틈만을 노려서 이기겠다고 그렇게 비루하게 굴었지?"

적나라한 표현이었다.

"비루?"

단목운뢰가 작게 읊조렸다.

굉장히 기분 나쁜 표현이었다.

자신이 비루하다니.

"그래. 비루. 운뢰 너는 상대가 강하든 말든, 이길 수 있든 없든 항상 전력으로 부딪혀 왔다. 그런데 지금 이 꼴은 뭐냐? 빈틈을 못 찾겠다고 판단한 순간부터 그 정신 나간 꼴은?"

주우명은 단목운뢰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태극혜검에서 빈틈을 찾지 못했고, 그 순간 승부를 거의 포기했음을.

이 꼴을 보자고 태극혜검을 꺼내 든 것이 아니건만.

정곡을 찌르는 주우명의 말에 단목운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딴 식으로 싸울 거면 왜 검을 들고 있는 거냐? 그냥 기권하지."

주우명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믿음을 배신당한 것에 대한 분노.

"내가 너에게 기대했던 비무는 이런 게 아니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주우명은 다시금 검을 들었다.

그 사이 그의 기세가 달라져 있었다.

단번에 끝장을 보겠다는 기세가 주우명의 몸에서 넘실거리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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