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38화 (138/312)

138화. 허면 심마를?

단목운뢰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주우명의 호통 때문이었다.

자신이 과연 그리했던가.

손이 벌벌 떨렸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백리평과의 대련에서 처음 능력을 깨달았을 때.

그때의 놀람, 그리고 남몰래 숨겼던 희열.

그 이후의 대련과 비무에서 자신은 이 능력을 최대한 갈고 닦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주우명의 호통 덕에 지금 깨달았다.

갈고 닦은 것이 아니다.

그저 의지한 것이다.

범일소와 치렀던 8강전까지는 상대의 빈틈을 볼 수 있었기에 몰랐을 뿐이다.

빈틈을 볼 수 없게 됐을 때의 자신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오늘 4강.

주우명의 태극혜검은 빈틈이 없었다.

그 순간 자신의 비루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비루했네. 분명.'

오직 그 능력에만 의지하고, 그 능력이 막히자 승부를 포기하려 했다.

주우명이 화를 낼 만했다.

단목운뢰는 스스로를 냉정히 돌아보며, 혼란을 정리했다.

검을 꽉 쥐었다.

그 순간 주우명의 검이 날아왔다.

무서운 기세를 품고 있었다.

아마 조금 전의 비무에서 백리평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검기.'

아직 단목운뢰에게는 요원한 경지다.

그럼에도 그는 전력을 다해 주우명의 공격에 맞부딪혔다.

챙!!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단목운뢰의 검에는 검기가 없음에도, 검기를 입힌 주우명의 검과 부딪혀 밀리지 않았다.

"명검이구만. 자네 애들이 전부 명검을 가지고 있어. 지금은 병기 덕을 보는구만."

공손무외는 검기를 막아내고 있는 단목운뢰의 검에 감탄하며 말했다.

남궁지후의 검을 부러뜨렸던 백리평의 검.

연하민이나 단목운뢰의 검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하무백은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소리였으니.

저 검들이 누가 만든 검인데.

"어? 그거 교관님이 만들어주신 건데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오빠의 비무에 집중하고 있던 단목운혜가 검 이야기에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에 공손무외는 깜짝 놀라 하무백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네. 대장일도 할 수 있었던가? 아니, 그보다 저런 명검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괴물 같은 무공 경지에, 의술은 또 어떻던가? 구음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던가.

헌데 거기에 저런 명검까지 만들 수 있다니.

"그저 심마를 덜어냈을 뿐입니다."

하무백은 여전히 미소 지은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공손무외는 그 말이 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고 비무에 집중했다.

비무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챙!

채챙!

챙! 챙챙! 챙챙챙!

끊임없이 울리는 소리.

무표정한 얼굴로 전력을 다해 검을 떨치는 주우명.

태극혜검의 성향이 변해 있었다.

지금까지의 태극혜검이 조화의 극에 이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면, 지금은 패도의 끝에 이른 듯한 모습이었다.

검을 펼치는 자의 의도에 맞게 그 성향마저 자유자재로 변하는 태극혜검이었다.

단목운뢰는 그런 패도적인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조금씩 뒤로 밀렸지만, 그렇다고 물러나지는 않았다.

초식과 초식 사이의 끊김을 찾겠다고, 집중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에 집중했다.

일 검을 막고, 일 검을 지른다.

그것이 지금 단목운뢰가 생각하는 단 하나였다.

주우명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언제부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고.

그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단목운뢰의 자세였다.

덕분에 쉼 없이 검이 부딪혔다.

주우명의 공격을 막고, 주우명을 공격한다.

그러면 그가 자신의 공격을 막고, 다시 자신을 공격한다.

이것의 반복이었다.

주우명의 입가에 미소가 조금씩 돌아왔다.

그에 따라 태극혜검이 갖가지 모습을 보여주었다.

패검이었다가, 환검이었다가, 심지어 쾌검의 모습까지.

단목운뢰는 그 모든 모습을 받아냈다.

그의 삼재검법 역시 패검, 환검, 쾌검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다.

'과연.'

주우명은 그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사람들은 삼재검법을 우습게 여긴다.

당장 저자에만 나가도 '삼재검법'이라는 제목이 적힌 책자가 나돌고 있으니.

비급이라 하기에도 우스운 지경이었다.

허나 주우명의 스승은 달랐다.

유실되고 변형된 현재의 삼재검법일 망정, 그 기본은 남아 있으며, 그 기본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검법이라 하셨다.

'태극혜검의 본질이 조화라면, 삼재검법의 본질은 무(無)라고 하셨던가?'

주우명은 무연진인의 말을 떠올렸다.

태극혜검은 조화롭기에 그 어떤 형태로도 변할 수 있고, 삼재검법은 본디 아무런 모습이 없었기에, 어떤 형태든 될수 있다.

과연 그러했다.

주우명의 검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단목운뢰의 검은 그 모습으로 변하여 부딪혀 왔다.

이것이다.

주우명이 바란 것이 이것이었다.

자신의 공격에 대한 응전.

상대의 응전에 대한 자신의 응전.

그것의 반복.

그렇게 서로를 향한 공방으로부터 오는 이 치열함.

주우명의 몸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입가의 미소도 점점 진해졌다.

단목운뢰는 그런 것 따위 몰랐다.

그저 눈앞의 벽에 부딪혀 갈 뿐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서.

주우명의 태극혜검이 점점 현란하게 움직였다.

사방을 완전히 뒤덮은 태극혜검.

그 속에서 단목운뢰의 삼재검법은 자신의 영역만큼은 지키고 있었다.

단목운뢰의 두 눈은 여전히 빛났다.

오직 상대의 검에 모든 것을 집중한 눈.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보였다.

보려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려 하지 않으니 조금씩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태극혜검이 가진 조화의 묘리 속에 숨어 있던 빈틈.

그것이 주우명의 흥이 오를 때마다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역설적이었다.

주우명이 그저 검식에 충실하며 익히고 수련한 그대로를 내보였을 때는 없던 빈틈이.

주우명이 흥에 취해 점점 검에 빠져들수록,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목운뢰는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것에 연연하며 자신의 모습을 잃었던 것이 조금 전이지 않던가.

게다가 단목운뢰는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자신에게 실망한 주우명의 호통으로 알게 되기 전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단목운뢰는 눈에 보이려 하는 빈틈에서 눈을 돌렸다.

대신, 오직 주우명의 검에 집중했다.

서서히 단목운뢰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그리고 주우명의 눈에서도 서서히 초점이 사라졌다.

흥에 취한 주우명 역시 무아지경에 들어선 것이다.

주우명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다.

비무 중에 무아지경이라니.

허나,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아지경에 들었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이미 무아지경이 아니었기에.

아니, 이들은 아직 무아지경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것은 절정의 끝자락을 넘어 초절정의 초입에나 들어야 가능한 경지였으니.

"허어. 이거, 저게 저렇게 쉬운 거였나? 내 이번 동투제에서 저걸 몇 번을 보는지를 모르겠구만."

주우명과 단목운뢰의 상태를 알아차린 공손무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왜 그러시는데요? 할아버지."

공손비연이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 아이들. 눈이 보이지 않느냐?"

공손무외의 물음에 공손비연이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알아볼 수 없었다.

"모르겠어요."

결국 공손비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두 아이 모두 지금 무아지경에 들었다."

"네에?"

공손비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

"게다가 단목운뢰. 저 아이는 오늘 벌써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반쯤 들다가 말긴 했다만."

공손무외의 말에 공손비연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그녀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운뢰가 작은 벽을 하나 넘었습니다. 그랬기에 무아지경에 든 거죠."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허면 심마를?"

공손무외의 물음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극복한 듯하군요. 우명 덕분에. 좋은 동료를 두었습니다."

하무백은 조금 전 주우명의 호통을 모두 들었다.

귀에 내공을 집중해 청력을 그 둘에게 집중해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단목운뢰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의 상당 부분을 주우명이 하지 않았던가.

"기이하고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한들, 거기에 의지하는 순간, 오히려 능력에 먹히고 말죠. 그러면 그게 곧 심마가 됩니다."

하무백이 그답지 않게 길게 말했다.

"헌데, 운뢰는 이제 그 심마를 넘어섰군요."

그 말 속에는 단목운뢰를 기특하게 여기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태극혜검과 삼재검법.

감히 비교가 되지 않는 검법이다.

헌데 지금 그 둘이 어우러져 막상막하의 공방을 펼치고 있었다.

교룡관주를 비롯해 대주들과 교관들이 모여 있는 단상.

그곳의 인물들은 연이어 벌어지는 이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직 팽도율만이 흐뭇한 미소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는 부관주 연백진은 정신이 딴 곳으로 가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시선은 비무대로 향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곳만 연신 힐끔거렸다.

팽도율이 그 모습을 알아차렸다.

'조카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로군.'

이 자리에, 그의 조카가 연하민임을 아는 이는 팽도율이 유일했다.

"부관주. 격무에 피곤해 보이는데, 잠시 쉬었다 오심이 어떻겠는가?"

"어찌 자리를 비우겠습니까? 교룡관의 일 년을 마무리하는 동투제인데."

팽도율의 제안에 시선을 돌린 연백진이 그 제안을 거절했다.

기유찬이 넘겨준 어마어마한 업무의 산.

그것을 모두 처리한 덕에 이제 연백진은 교룡관의 대부분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모르겠네만, 이제 관주가 왔으니 부관주는 좀 쉬어야지. 그간 격무에 시달렸을 텐데. 신경 쓰이는 일도 있어 보이고."

재차 이어진 팽도율의 제안.

거기에 더해진 '신경 쓰이는 일'이란 말에 연백진이 살짝 움찔했다.

관주의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관주님. 그럼 잠시 자리를 좀 비우겠습니다."

연백진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단상에서 내려갔다.

그의 부재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비무대 위의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정신을 뺏겨 있었으니.

무아지경.

자신을 잊은 채 빠져드는 초집중의 상태다.

그런 상태에 빠져들면 평소에 미처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달아 벽을 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잊는다는 것.

그것이 지닌 독도 있었으니.

주우명의 태극혜검이 점차 그 위력을 더했다. 하나의 단계를 넘어 다음 단계의 경지로 올라서는 과정.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그 과정을 진행 중이었기에 주우명은 검의 위력이나 상대를 고려할 수 없었다.

그저 상대의 대응에 맞춰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치를 펼칠 뿐.

그것은 단목운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방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와중에.

주우명의 태극혜검이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올라가려 하는 와중에 명확한 초식의 끊김이 나타났고.

무아지경에 빠진 단목운뢰는 그 틈을 향해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주우명의 검이 그런 단목운뢰를 막으려 움직였다.

그저 검로에만 집중한 두 사람.

그들에게 지금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무공에만 매몰되어 있는 현재.

그 결과가 서로를 향해 가장 효율적이고 치명적인 검격을 펼친 것이다.

새애애액!

샤아아악!

섬뜩하면서도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리며 서로를 노리고 날아가는 검.

범일소와의 비무에서 단목운뢰는 완전한 무아지경이 아닌, 반쯤 걸친 상태였기에 살수를 배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빈틈을 파고든 단목운뢰의 검이 더 빠른 듯했다.

그러나 검 자체의 움직임은 주우명의 태극혜검이 더 빨랐다.

후발선제(後發先制)의 묘리.

그것이 주우명의 검에서 펼쳐졌다.

채앵!

요란하게 울리는 검명.

빈틈을 훌륭히 파고들었지만, 한 단계 높은 경지를 향하고 있던 주우명의 태극혜검은 그 빈틈을 노린 공격을 훌륭히 막아냈다.

그리고 주우명의 검이 다시금 움직이며 단목운뢰를 향해 날아갔다.

그 끝에 있는 것은 단목운뢰의 목.

단목운뢰가 빠르게 검을 움직였지만, 그 현묘한 움직임과 빠르기는 도무지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저, 저··· 저!!!"

공손무외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손가락은 자기도 모르게 비무대를 가리켰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의 곁에 앉아 있던 하무백이 어느새 사라졌음을.

"어?"

그 순간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단목운뢰.

조금 전의 강렬한 부딪힘에 의해 막 무아지경이 깨진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살벌한 기세의 검.

단목운뢰는 자신의 검 또한 움직이고 있음을 알았으나, 이내 깨달았다.

도저히 막을 수 없음을.

그렇게 검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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