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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39화 (139/312)

139화. 부럽네

텁.

'텁?'

우뚝 멈춰선 검과 함께 단목운뢰의 귀에 들린 소리.

비무 중에 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검은 눈앞에 멈춰 있는데.

단목운뢰의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보이는 손 하나.

엄지와 검지, 중지.

단 세 손가락이 검날을 잡고 있었다.

검은 그렇게 멈춰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단목운뢰의 눈동자가 다시 움직였다.

눈앞의 주우명.

자신을 막은 존재를 이기고자 검에 더욱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미동도 않는다.

'뭐, 뭐지?'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분명 비무대 위의 비무인데.

정체불명의 손이 주우명의 검을 멈춰 세웠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이던가?

그런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재빨리 뒤로 물러나 심호흡했다.

"후아. 후아. 후아아아아."

그리고 나서야 눈에 들어온 정경.

"교, 교관님."

하무백이 주우명의 검을 잡고 있었다.

아주 가볍게.

주우명은 여전히 용을 쓰고 있었고. 그의 몸에서 넘실넘실 피어오르는 기세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쯧. 이런 투쟁심을 숨기고 있었더냐? 하긴, 그러니 굳이 맹룡대로 찾아왔겠지."

하무백이 검을 잡지 않은 왼손을 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구부렸다.

'저, 저건.'

단목운뢰는 하무백이 무얼 하려는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간격 밖인데?'

검을 잡고 있었기에, 하무백의 손끝이 주우명의 이마에 닿을 리가 없었다.

하무백은 상관없다는 듯, 허공을 격하고 손가락을 튕겼고.

"악!"

주우명은 비명을 지르며, 이마를 감싸 쥐고는 주저앉았다.

검을 놓았음은 물론이다.

주우명이 놓아버린 검은 여전히 하무백의 손에 들려 있었다.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

세 손가락에.

주우명의 눈에도 서서히 초점이 돌아왔다.

그 역시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것이다.

"너, 이번에 조금 위험했다."

하무백이 그리 말하고는 주우명을 향해 검을 휙 던졌다.

영문을 몰라 얼떨떨해하던 주우명은 날아오는 자신의 검을 황급히 잡았다.

하무백의 시선이 판정관에게로 향했다.

"봐서 알겠지만, 그래도 승자는 주우명이다. 내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단목운뢰는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니."

하무백은 그 말을 남기고는 훌쩍 몸을 날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파악도 못 한 채 멍한 모습으로 있던 판정관.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백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승자는 주우명!"

판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함성은 없었다.

워낙에 황당하게 끝이 났기에.

훌륭한 비무였으나, 또 저 자의 난입으로 끝이 났다.

앞선 비무에서도 난입하여 연하민을 받아 들더니.

저놈은 대체 뭐지?

하무백을 모르는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

단상 위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저 자가 또!"

몇몇 교관이 분통을 터뜨렸다.

관주인 팽도율이 가만히 있기에 대놓고 나서지는 못하지만.

"관주님. 저렇게 자꾸 교관이 난입해도 되겠습니까?"

잠룡대주 능우담이 이번에는 참지 않고 말했다.

팽도율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난입하지 않으면? 판정관도 방금 상황에서 대응을 제대로 못 했는데, 그럼 그대로 애꿎은 생도 하나가 크게 죽거나 다쳤어야 했다는 건가?"

분노가 서린 음성으로 팽도율이 되물었다.

방금 상황에서 하무백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지는 이 자리의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정도 경지에는 오른 이들이었으니.

"그, 그건······."

능우담이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상황에 대응을 못 한 저 판정관과 부판정관을 질책해야 할 거야."

여전히 성이 난 목소리.

능우담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저 비무의 판정관은 잠룡대의 교관이었다. 즉 자신의 부하 중 하나인 것이다.

결국 잠룡대의 잘못으로 귀결되어 갔기에 능우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팽도율의 말에 틀린 곳이 없기도 했고.

상경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분위기만 지켜보았다. 부판정관 두 사람은 와룡대의 교관.

그들 역시 방금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에 괜히 끼어들어 자신까지 관주의 분노를 뒤집어 쓸 이유가 없었다.

주우명과 단목운뢰.

단목운뢰와 주우명.

두 사람은 얼빠진 얼굴로 비무대를 내려왔다.

방금 전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란 말인가.

"그, 미안하다."

주우명이 우선 사과했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으니.

"비무 중이었는데, 뭘."

단목운뢰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음에도.

산월마림을 다녀오면서, 무림은 이런 곳이라는 걸 인식하고 각오를 단단히 다졌기 때문이다.

"그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단목운뢰가 물었다.

"글쎄······."

주우명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비무대 아래 마련된 자리에 돌아올 때쯤.

두 사람은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아의 상태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아······."

작은 탄성을 흘린 주우명은 단목운뢰를 힐끗 보고는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곧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단목운뢰는 주우명의 그 모습과 손짓을 보고 곧바로 명상에 들었다.

백리평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곁을 지켰다.

"부럽네."

백리평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역시 무아지경에 빠졌었다. 하지만 지금 이 두 사람처럼 그 직후 바로 명상에 빠져야 할 정도의 무언가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마지막 비무인 결승까지는 앞으로 한 시진.

그때까지는 부디 명상이 끝나기를 바라며 백리평도 가부좌를 틀고는 운기조식에 빠져들었다.

"호오. 기연이로구만."

명상에 빠져드는 두 사람을 보며 공손무외가 중얼거렸다.

"헌데 한 시진 가지고 될지 모르겠군."

그가 하늘을 올려 다보며 말했다.

"자기 인연인 거죠."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에잉. 사람하고는. 두 시진 정도 여유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랬다가는 해가 질 테니······."

그러면 결승전을 치를 수가 없다.

내일로 다시 미룰 수도 없었기에.

그저 주우명의 명상이 한 시진 안에 끝나기를 바랄 뿐.

"곁을 지켜주지 않아도 되겠는가?"

두 사람은 명상을, 한 사람은 운기조식을 시작한 터.

"이미 지키고 있습니다."

하무백이 짧게 답했다.

그 말에 공손무외는 고개를 그저 주억거릴 뿐이었다.

조금 전의 그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을 보았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우명 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인가?"

공손무외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투쟁심이 강하다는 정도의 말이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되는 건가?"

"그 투쟁심 때문에 심마에 들 뻔했으니까요."

하무백의 말에 공손무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런. 어째 검격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그대로 다섯 초식? 여섯 초식 정도 더 진행이 되었다면 분명 심마에 들었을 겁니다."

"허, 무아지경에서 심마라니. 그런 경우도 있구만. 그래도 자네가 잘 막아주어서 다행일세, 그려."

그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저었다.

"비무가 결판이 났기에 끼어든 겁니다. 결판이 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두었을 겁니다."

공손무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마에 들었는데?"

"비무니까요. 승부에 끼어들 수는 없지요. 실전이라면 다른 문제입니다만."

하무백의 말에 공손무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면, 심마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겠군."

그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코 투쟁심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그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군요."

명상에 잠긴 두 사람을 보며 하무백이 말하자 공손무외는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백진이 연룡숙 앞에 도착했다.

경계를 알리는 울타리.

연백진은 그 앞에 서서 연룡숙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곳부터는 금남의 구역이다.

그가 아무리 부관주라 해도 그냥은 들어갈 수 없었다.

허드렛일을 하는 늙은 일꾼들만이 평소처럼 안쪽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연백진은 조카의 방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방향의 창을, 그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

연룡숙을 걸어 나오는 한설빙과 마주쳤다.

"아, 부관주님."

한설빙이 포권을 취하며 머리를 숙였다.

"여긴 어쩐 일로··· 아!"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의문을 보이던 한설빙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탄성을 흘렸다.

"하민이라면 괜찮아요. 그저 무리해서 탈진한 것뿐이니. 하루 정도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한설빙의 말에 연백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자신과 하민의 관계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

교룡관에서 그녀가 자신의 양조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팽도율 말고는 없었다.

아, 하무백도 알고 있었다.

"설마하 교관님이?"

연백진의 물음에 한설빙이 빙긋 웃었다.

"지난번 맹룡대 칠 조의 현장실습. 제가 담당하는 조도 함께 했답니다. 물론 저도요."

"아······."

그 말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거기서 많은 일이 있었기에 알게 되었습니다만. 아이들은 모릅니다."

한설빙의 말에 연백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설빙은 인사를 남기고는 다시 비무대로 향했다.

비무대에 도착하니 조용했다.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비무가 펼쳐지고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한설빙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주우명의 검을 잡고 있는 하무백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잠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본 한설빙은 세 사람이 가부좌를 트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곳으로 움직였다.

하무백.

저 망할 인간이 살피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바로 곁에서 지켜주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하무백이 있는 지붕 위를 한번 흘겨본 한설빙이 비무대 아래 세 사람의 곁에 도착한 것은 잠시 후였다.

한 시진은 길었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중들에게는 그랬다.

이 추운 날.

그저 앉아서 멍하니 한 시진을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몇은 찬 바람에 몸을 떨었다.

충분히 두껍게 옷을 입고 왔음에도 추웠다.

서서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공기도 차가워지고 바람도 불기 시작한 탓이다.

궁소유와 단목운혜는 천천히 먹던 주먹밥을 어느새 다 먹었다.

단목운뢰의 비무 동안에는 먹는 것을 잊고 있었지만, 비무가 끝나고 허기를 느끼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따뜻해서 좋네요. 어제는 많이 추웠던 것 같은데."

궁소유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해서 단목운혜에게도 따뜻하게 준비하고 나와야 한다고 얼마나 당부했던가.

실제로 단목운혜의 집을 찾아갈 때도 추웠다.

자신을 기다리던 그녀의 귀도 새빨갛게 물들어 있지 않았나.

그런데 막상 이곳에서 비무를 보고 있자니 추운 줄을 몰랐다.

바람도 없었고, 심지어 훈훈하기도 했다.

단목운혜를 슬쩍 보니 그녀 역시 추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궁소유가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뭐, 할아버지 정도의 고수라면 추위를 별로 느끼지 않으실 테니, 이런 날씨는 상관없나 생각하며 다시 비무대로 시선을 돌리는데.

"응? 이 추운 날씨에?"

공손비연의 물음이 궁소유의 귀에 들렸다.

실제로 그녀는 양팔을 감싸 쥐고 있었다.

비무가 진행되는 동안은 집중하고 있어서 못 느꼈던 추위가, 휴식 시간이 되니 곱절로 몰려온 느낌이었다.

"어?"

면사 뒤로 살짝 붉게 상기된 공손비연의 얼굴을 확인한 궁소유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교관님이 신경 써주시는 모양이구나. 허허."

공손무외가 어찌 된 일인지 알고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실제로 하무백은 내공으로 단목운혜와 궁소유 주변의 공기를 따뜻하게 해주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바람도 막아주고.

"아!"

어찌된 연유인지 깨달은 궁소유가 하무백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영특한 단목운혜도 자신이 따뜻하게 있었던 이유를 깨닫고는 하무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치사하게······."

공손비연이 나직이, 아주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저 아이들은 회복된 지 이제 사흘째다."

한 점의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뚝뚝한 하무백의 말에 공손비연은 그저 내공을 끌어올려 추위에 저항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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