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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40화 (140/312)

140화. 더 강한 놈

"무당과 종남의 결승이로구만. 어찌 될지 기대가 되는군."

공손무외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과 운기조식에 빠져 있는 주우명과 백리평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어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내 비무 대회를 여럿 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네. 비무를 치르면서 계속해서 성장하는 참가자라니. 사실 결승도 도무지 모르겠어. 앞선 4강전에서 백리평과 주우명, 두 아이 모두 또 한 단계 성취를 이룬 것 같으니 말일세. 자네 대체 어떻게 가르친 것인가?"

그의 눈빛에는 경탄이 담겨 있었다.

하무백은 물끄러미 세 아이를 바라보았다.

"뭐, 저 아이들 능력인 거죠."

담담한 그 대답에 공손무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무백이 어떻게 가르쳤는지 몰랐기에.

반시진이 흘렀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다시 반 시진.

해가 서쪽으로 기울수록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리를 뜨는 관중은 거의 없었다.

다가올 결승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의견을 나누는 웅성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무당과 종남의 대결이었기에.

구파일방 중 소림과 개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검을 주력으로 하는 문파다.

무당, 화산, 곤륜, 청성, 아미, 점창, 종남, 공동.

여덟 곳의 문파 모두 검법이 대표적인 절기지만.

그중 최고로 꼽히는 곳이 무당과 화산이었다.

주우명과 영호준의 8강이 그래서 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종남은 구파일방 중 한 곳이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는 문파였다.

그런데 오늘 결승에 올랐다.

그것도 맹룡대 생도가.

과연 무당의 제자에 맞서 종남의 제자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그것이 관중들을 흥분케 하는 부분이었다.

"백리평이 이길 수 있을까?"

"무리겠지? 상대가 무당의 주우명인데?"

"에이, 그래도 4강에서 그 엄청난 모습을 봤잖아."

"조금 전 주우명의 그 무시무시한 모습은?"

갑론을박.

관중들은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면, 단상 위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주우명과 단목운뢰의 시합 직후 팽도율이 터뜨린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김빠진 대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상 위는 조용했다.

팽도율도 그저 침묵을 지키며 비무대 곁의 세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 이번에 조금 위험했다.'

'투쟁심.'

주우명은 명상 속에서 비무 마지막에 하무백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위험하다는 말은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뒤에, 투쟁심은 무아지경의 끝자락에서 들은 말이다.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기억이 돌아오면서 함께 찾아온 깨달음의 한자락.

그 한 자락을 붙잡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화두는 투쟁심.

주우명은 무아지경 속에서 펼쳤던 자신의 검을 복기하면서, 계속해서 투쟁심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위험했던 것인지.

사부는 자신의 맹룡대 행을 왜 반대하셨던 것인지.

'아, 아아······.'

조금씩 알게 되는 그 이유.

투쟁심은 타인과 다투려는 마음이다.

스스로의 성장을 바라는 향상심과는 다른 마음.

다투려는 마음, 이기려는 욕망.

그것이 곧 심마로 찾아온 것이다.

정도를 넘어선 투쟁심은 곧 심마.

자신은 그 직전에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것이다.

하무백에 의해.

태극혜검은 투쟁심으로 펼치는 검이 아닐진데.

투쟁심에 먹혀서 자신을 잃으려 했다. 그렇게 심마의 길에 들 뻔했고.

'그럼 투쟁심을 버려야 하는가?'

화두는 그렇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이제는 명상에서 깨어야 할 때임을 자각했다.

아직 동투제는 끝나지 않았다.

주우명이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즈음, 단목운뢰도 눈을 뜨고 있었다.

백리평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주우명의 시선에 한설빙이 닿았다.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는 그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주우명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들의 호법을 서고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교관님."

한설빙이 빙긋 웃었다.

"그래서 성과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우명의 대답에 한설빙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됐어. 그러면 마지막 비무 잘 치르고."

세 사람이 모두 일어난 것을 확인한 한설빙은 몸을 훌쩍 날렸다.

하무백이 자리한 지붕 위로.

"어머? 이런 명당이 있었네요?"

한설빙의 너스레에 하무백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허허, 어서오게, 한 교관."

공손무외가 웃으며 한설빙을 반겼다.

이제 곧 결승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주우명과 단목운뢰의 명상이 거의 한 시진 걸린 것이다.

단목운혜가 제 오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미 동생이 있는 곳을 확인했던 단목운뢰의 시선도 지붕 위로 향했다.

단목운뢰는 곧장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하무백 일행이 있는 건물 쪽으로 다가왔다.

"데려오지 않아도 돼요?"

한설빙이 하무백을 향해 물었다.

"알아서 오겠지. 뭐, 네가 데리고 오든지."

하무백의 대답에 한설빙이 고개를 저었다. 이 인간한테 자신이 뭘 기대한 것인지.

그럼에도 한설빙도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제 단목운뢰의 수준 정도면 이곳에 오는 것은 어렵지 않음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누가 이길 것 같아요?"

한설빙이 물었다.

"더 강한 놈."

돌아온 짧은 대답.

"당연한 말 말고요."

"정확히는 이긴 놈이 강한 거야. 강하다는 것은 그저 무공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무공이 상대보다 약해도 이길 수 있다. 그러면 그놈이 더 강한 거야. 너도 알 텐데?"

한설빙은 입을 다물었다.

저 말의 의미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 전쟁에서 겪기도 많이 겪었고.

수많은 전투에서 강한 자가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아 승리한 이가 강한 것이었지.

당장 한설빙 자신도 더 강한 상대와 맞닥뜨렸을 때 결국은 살아남아 이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건 전투가 아니라 비무예요."

"규칙이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결국 기본은 같아."

작은 항변에 돌아온 대답.

한설빙은 입술을 삐죽였다.

"허허. 한 교관은 누가 이길 것 같은가?"

"우명이요."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 겐가?"

"아니요. 명상에서 무언가 얻긴 한 것 같아서요. 기세가 좀 달라졌어요."

한설빙의 말에 공손무외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비무라 아무런 조언도 안 할 거라 하더니만. 헐헐헐."

"실수였습니다."

하무백이 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한설빙이 물었다.

"검을 막으러 비무대에 올라갔을 때 한마디 해준 모양이더구만."

"아!"

한설빙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하무백의 한 마디라.

지금의 주우명에게는 충분히 깨달음의 단초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

동지.

그날이 어제였다.

오늘은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두 번째로 짧은 날인 것이다.

서쪽 하늘에는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시각.

동투제의 마지막 비무, 결승을 치르기 위해 백리평과 주우명이 비무대로 올랐다.

"우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아무나 이겨라!!"

"주우명이 우승이다!!"

"백리평 이겨라!!"

두 사람이 비무대에 오르자 사방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귀가 아플 정도의 함성.

판정관은 두 사람의 모습을 잠시 살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

판정관의 외침과 함께 백리평과 주우명은 검을 뽑았다.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검신.

먼저 움직인 것은 백리평이었다.

그는 종남의 태을보로 비무대 곳곳을 누비며 서서히 주우명을 향해 접근해 갔다.

주우명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발이 천천히 움직이는가 싶더니.

무당의 칠성보의 방위를 밟으며 대응했다.

태을보와 칠성보.

종남과 무당의 보법이 비무대 위에서 어지러이 펼쳐졌다.

물론 보법만을 펼친 것이 아니다.

검광이 번득이며 서로를 향해 날아드는 검.

종남의 사상검법과 무당의 태청검법이 부딪혔다.

챙! 챙!

본격적인 공방이라기보다는 탐색전이라는 느낌.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둘의 비무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먼저 공세를 취한 것은 백리평이었다.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천성검법.

무수한 검의 별이 주우명을 향해 날아갔다.

노을 진 하늘과 어울려 백리평이 만들어낸 별이 더욱 반짝였다.

주우명의 검법이 태극혜검으로 바뀌었다.

지금 백리평이 펼치는 천성검법은 태청검법으로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당연했다.

일반적인 천성검법에 비해 속도가 두 배나 빠른 천성검법이다.

4강을 마친 후 운기조식 과정에서 백리평도 무언가를 느낀 것이 있음인지, 두 배 빠른 검법의 속도에 맞추어 변화 또한 두 배가 되었다.

8강과 4강과는다른 모습이었다.

매 시합을 치르며 눈부시게 강해진 백리평이다.

일신우일신이라 했던가.

날로 새로워지는 정도가 아니다.

한 번의 비무마다 새로워지고 있으니.

그러나 그것은 주우명 역시 마찬가지.

주우명의 태극혜검이 무수한 별을 모조리 부수고 있었다.

"저 정도면, 천성검법이 아닌데요?"

한설빙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어설픈 천성은하검법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군."

종남파 최고의 검법 천성은하검법.

하무백은 지금 백리평이 펼치는 천성검법이 그것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검법이 중요한 게 아니다. 펼치는 사람이 중요한 거지. 알 텐데?"

하무백의 물음에 한설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기억에 있는 천성은하검법은 너무도 훌륭하고 황홀한 검법이었기에 쉬이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천성은하검법을 본 것은 그때 단 한 번이었으니.

"설마 그때의 천성은하검법이랑 비교하는 거냐?"

하무백의 물음에 한설빙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검협 백리단. 그분의 천성은하검법은 극성에 이른 그야말로 절기 중의 절기였어. 종남에서 그런 검을 펼칠 수 있는 이는 이제 없을 거다."

지난 전쟁에서 그 명을 달리한 종남의 전대 장문인 백리단.

하무백과 한설빙은 전장에서 그와 함께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었다.

"네가 한평의 단천참마도를 봤어야 하는 건데."

"네?"

"정말 끔찍한 단천참마도였다."

하무백은 지난봄에 보았던 끔찍한 도법을 떠올리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잘 듣고 있느냐?]

공손무외가 전음으로 공손비연에게 물었다.

[네?]

공손비연의 반문.

[저 대화 속에도 무공의 이치가 담겨 있으니, 흘려듣지 말거라. 네가 뜻을 둔 곳이 무공이 아니라 할지라도 너 또한 무림인이요, 강호인이니.]

할아버지의 당부에 공손비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챙! 채채챙!

천 개의 별을 만드는 검.

천성검법의 이름에 담긴 의미다.

지금 백리평은 천 개가 아닌, 이천 개의 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주우명은 그 이천 개의 별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백리평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열 개의 별이 사라지면, 다시 열 개의 별을 만들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검.

주우명도 백리평도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공세가 치열해질수록 주우명은 자신의 몸에 차오르는 고양감을 느꼈다.

영호준과의 비무에서 살짝 느끼다 말았던, 단목운뢰와의 비무에서 제대로 느끼며 무아지경에까지 들었던 그 감각.

주우명은 다시 한번 자신의 갈증이 채워짐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갈증의 해갈만 탐하지 않았다.

고양감을 받아들이는 한편,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관조하면서 검을 움직였다.

서로를 향한 치열한 공방으로 점점 달아오르는 몸.

4강에서는 머리까지 달아올랐지만, 지금 주우명의 머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명상에서 얻은 것이다.

그랬기에, 주우명의 태극혜검은 뜨거웠으나 차분했다.

흥에 취하지도 않았다.

그저 태극혜검 그 자체의 모습으로 천성검법을 맞상대할 뿐.

챙!

채챙! 챙챙챙!

요란한 검명이 울리며, 두 사람의 공방은 점점 더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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