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질 수 없다
두 사람의 비무는 그 화려함이 가히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멍하니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노을 진 하늘빛을 수 놓는, 천성검법의 무수한 별.
그 별들을 쓸어버리는 태극혜검의 파도.
두 사람의 어울림은 그야말로 화려했으며 아름다웠다.
"우와······."
곳곳에서 그런 탄성이 흘러나왔다.
백리평과 주우명.
주우명과 백리평.
두 사람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지금까지 있어 왔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무아지경에 들지 않은 것이다.
그럴 수밖에.
두 사람의 검에는 동투제를 치른 이틀간의 경험이 녹아들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
두 사람이 얻은 깨달음이 무수했으니.
이제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때였다.
일 초 일 초 진행될수록 더욱 그 수준을 높여가는 검법.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저 아이들에게는 동투제가 기연이로구만. 깨달음에 이은 체화라. 보통의 무인이 저런 경험을 할 일이 평생에 몇 번이나 있을꼬."
공손무외가 감탄하며 말했다.
하무백은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우와!!"
단목운혜와 궁소유는 탄성을 흘리며 바라보았다.
단목운혜는 어느새 오빠가 졌다는 충격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그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광경에 빠져 있을 뿐.
'역시 내가 실수한 건가.'
하무백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백리평과 주우명의 실력은 백중세였다.
그 사실에 가장 놀란 것은 단상 위의 이들이었다.
이들은 백리평의 실력을 나름대로 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반기 맹룡대 칠 조와 잠룡대 일 조의 다툼은 알음알음 소문이 나 있었다.
당추 한 명 감당하지 못했던 맹룡대 칠 조 아니던가.
그런 그들이 하투제에서 남궁지후를 꺾고 잠룡대 일 조를 무너뜨렸을 때도 경악했건만.
동투제에서 백리평이 홀로 남궁지후를 꺾고, 주우명과 백중세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과연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이들이 입관한 것은 삼 월. 그리고 지금은 십이 월이다.
고작 아홉 달, 최대로 쳐도 열 달만에 저런 변모라니.
몇몇 교관과 대주가 지붕 위의 하무백을 힐끔거렸다.
어떻게 했기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이를, 다른 이도 아니고 전대 무당제일검의 유일한 제자와 호각을 이루도록 키웠을까.
고작 열 달 만에.
의문이 가득한 시선이다.
몇몇은 질시에 가득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모용진호는 그저 초탈한 듯 하무백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관주님의 말씀이 모두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사실 모용진호는 하무백이 오기 전날 팽도율이 은밀히 해줬던 말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그의 말에 중대한 허점이 있었으니까.
전 무림에서 그 사실을 아는 이가 채 스물이 안 될 거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관주님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냐는 거지.'
교룡관주가 교룡관에서나 그 위세가 대단한 것이지, 전 무림으로 범위를 확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장 정천맹 본맹에만 가더라도, 교룡관주보다 대단한 이들의 숫자가 오십을 넘어간다.
헌데 그런 이들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을 교룡관주가 알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랬기에 관주의 말을 반만 믿었다.
전부 믿기에는 의심쩍은 구석이 많았지만, 그래도 아예 거짓으로 치부하기에도 찜찜했으니까.
저 팽도율이 그렇게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자신도 하무백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지금까지 하무백이 교룡관에서 일으킨 일들을 보면.
그런데 동투제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관주의 말이 전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결과를······.'
모용진호는 맹룡대의 대주다.
그러한 만큼 맹룡대 칠 조의 생도들이 교룡관 입관 당시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이들보다 그가 받은 충격이 컸다.
충격을 넘어서 초탈해진 것이고.
오직 팽도율만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비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미소.
사실 이 아름다운 비무를 두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도무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공방을 보여주었으니.
수준이 낮은 교관의 경우에는 그 변화를 모두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비무에서 눈을 떼고 하무백을 바라본 이들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방증이었다.
***
슈우우욱!
쎄에에엑!
검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챙!
채채채챙!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도무지 눈으로 좇을 수 없는 공방.
그랬기에 누가 더 우세한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맞부딪히고 있는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백리평이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주우명의 태극혜검이 비무대 위를 점유한 공간을 점점 늘려갔고.
백리평이 만들어내는 별이 떨어져 내릴 공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백리평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앞으로 나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는 듯.
태을보를 밟은 그의 발은 거침이 없었고, 천성검법을 떨치는 그의 손은 더 빨리 움직였다.
그에 대응하는 주우명은 흔들림이 없었다.
'호승심에 먹히지 않고, 검 본질에 집중한다.'
조금 전 얻은 아주 작은 깨달음이었다.
주우명은 그것에 집중했다.
태극혜검이 점점 더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무대 위의 공간을 장악해 나갔다.
어느새 주우명은 보법도 멈췄다. 오직 검의 변화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다.
'질 수 없다.'
백리평은 이를 악물고 내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단전에서 온몸으로 뻗어나가는 내공.
태을심법에 따라 내공이 사지백해로 흘러들어 백리평의 검에 기운을 실었다.
검에 어리기 시작하는 검기.
그와 함께 더욱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검.
더 밝고 더 빠른 별이 주우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주우명의 검에도 검기가 어렸다.
사방에서 번쩍이는 검광.
어둑해지고 있는 사위가 번쩍이며 빛났다.
주우명의 검에 어린 검기가 점점 진해졌다.
백리평 역시 더욱 내공을 끌어올렸으나, 그 한계는 분명했다.
무당에서 전대 무당제일검의 관리를 받으며 체계적으로 무공을 수련한 주우명.
할아버지가 유명을 달리 한 후, 본파인 종남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다 맹룡대로 보내진 백리평.
두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
그것이 승부를 가르고 있었다.
둘의 재능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노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치열하게 수련하고 수련했으니.
깨달음 역시 다르지 않았다.
둘 모두 동투제에서 연이은 기연을 만났기에.
차이는 오직 하나.
본파에서 어찌 대우했느냐.
그것이었다.
그 차이는 이 순간 두 사람의 간극을 조금씩 넓혔다.
탄탄하고 웅혼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주우명의 태극혜검이 점점 별을 파괴해 갔다.
백리평도 전력을 다했지만.
산산이 부서지는 검의 별.
비무의 향방은 점차 주우명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우명의 검에 변화는 없었다.
그저 태극혜검.
그 자체를 펼치고 있을 뿐이다.
4강에서 단목운뢰와의 비무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흥에 취해, 투쟁심에 취해 그저 검을 휘두르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랬기에 빈틈이 없었다.
철저히 태극혜검 그 본연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점점 더 치밀해지는 검의 움직임.
백리평은 무수히 많은 별을 던졌지만, 부수지 못할 단단한 벽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이전이었다면, 여기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무백 덕이다.
그와의 경험이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게 하였다.
첫 만남부터.
하투제.
산월마림.
그리고 동투제를 대비한 수련과 대련까지.
그 모든 것이 백리평에게는 깨달음이요, 성장이었다.
백리평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검에 담아서 주우명의 검에 부딪혔다.
챙!
챙!
챙!
커다랗게 울리는 검과 검의 부딪힘 소리!
백리평은 쉼 없이 벽을 두드렸다.
오직 한 곳만을 노리며.
단 한 번의 검격을 성공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천 개, 아니 이천 개의 별을 오직 한 곳으로 집중했다.
그리고.
벽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비무대 공간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태극혜검이었건만.
오직 한 곳만을 노리는 천성검법을 막아야 했기에, 결국 주우명의 검도 한 곳으로 움직였다.
백리평 앞을 막아선 거대한 검의 벽.
태극혜검이 만들어 낸 검벽.
그것은 백리평의 검격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이천 개의 별이 한곳으로 몰려들자.
굳건한 벽에도 균열이 일었다.
오직 한 점에 집중된 공격.
주우명이 검에 변화를 주었다.
단 한 점에 집중된 공격을 막기 위해, 검벽의 크기를 점점 줄였다.
대신 두께가 점점 늘었다.
그렇게 단 한 점에 집중한 두 사람.
종국에는 오직 한 점을 두고 두 사람의 검이 거친 공방을 주고받았다.
검기를 잔뜩 머금은 검은 점점 더 빛을 발했다.
마침내.
단 한 점.
전광석화 같이 움직이던 두 검이 그 한 점에서 검첨을 맞부딪혔다.
째앵~!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
그대로 멈춘 두 사람.
미동도 없었다.
그저 그대로 있었다.
검이 멈췄고, 두 사람이 멈췄다.
그리고 관중들의 눈동자도 멈췄다.
시간마저 멈춘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고.
그것이 신호였던가.
"크헉."
백리평이 피를 토하며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쿨럭."
주우명 역시 피를 토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시 검을 드는 주우명.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졌다."
백리평이 검을 내리며 패배를 인정했다.
정말로 마지막 일 검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으니까.
단전이 비명을 질렀다.
피를 괜히 토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거기에서 한 번 더 쥐어 짜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이건 비무니까.
전투였다면, 쥐어짰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패한다고 해서 죽는 전투가 아니다.
패배해도 다음이 있는 비무였다.
지금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날 때였다.
주우명은 백리평의 패배 선언에 검을 내렸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주우명에게 남은 힘은 딱 검 한 번 휘두를 정도.
그 이상은 주우명으로도 감당할 수 없었다.
생명을 건 전투가 아닌 다음에야.
그 한 번의 여력.
그것이 결국 승리로 이어졌다.
"승자주우명!"
판정관의 판정이 떨어졌다.
주우명과 백리평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동시에 서리는 미소.
"크윽."
그리고 백리평이 휘청거렸다.
주우명이 곁으로 가 그를 부축했다.
그러나 곧 주우명도 휘청거렸다.
"우와아아아!!!! 멋지다!!!"
"최고다!!!"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
그치지 않고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그때, 팽도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공을 실어 사자후를 내질렀다.
"올해 동투제의 우승자는 주우명임을 알린다!"
팽도율의 우승 선언이 떨어지자, 함성은 더욱 커졌다.
"우와아아아!!! 주우명!!"
"주우명!!"
"주우명! 주우명! 주우명!!"
"백리평도 멋졌다! 잘했어!"
관중들이 터뜨리는 함성에 귀가 얼얼했다.
두 사람은 비무대 위에 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비틀거리며 아래로 내려오니 단목운뢰가 웃으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잘했어. 멋졌다, 둘 다."
단목운뢰의 칭찬에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동시에 웃었다.
"웃을 시간에 운공요상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등 뒤에서 갑자기 들린 목소리.
언제 나타난 것일까.
하무백이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동시에 대답한 두 사람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즉각 운공에 들어갔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져,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훌륭했다. 둘 다. 내 예상을 뛰어넘어서."
어둠에 묻히듯 작은 목소리로 하무백이 속삭이듯 말했다.
하무백은 그 자리에 서서 팔짱을 끼고는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