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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42화 (142/312)

142화. 칫. 음흉한 인간

팽도율의 선언과 함께 동투제가 끝났다.

우승자에게 시상 같은 걸 하는 거창한 행사 따위는 없었다.

교룡관의 일 년을 정리하는 비무대회였기에, 그저 우승자를 알리는 것으로 끝.

이제 교룡관은 후반기가 끝났고, 다음 전반기 전까지는 휴관기에 들어간다.

대략 두 달의 휴관기.

모여 있던 관중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비무 대회의 흥분을 간직한 채, 친한 이들과 동투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몇몇은 휴관기에 그대로 교룡관에 남아 수련을 하겠다 하기도 했다.

비무대 위에서 8강 진출자들이 보여준 모습에, 자신도 저리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과연 저 마음이 며칠을 갈까 싶지만.

단상 위의 대주와 교관들도 자리를 떴다.

팽도율이 여전히 앉아 있었지만, 그가 해산을 명했기에 먼저 떠난 것이다.

사실상 맹룡대 칠 조와 이십 조의 집안 잔치나 다름없던 동투제 4강이다.

다른 이들이 남아 있고 싶을 리 없었다.

그렇게 단상에 남아 있는 이는 팽도율과 연룡숙에 다녀온 연백진, 두 사람이었다.

"어땠는가? 부관주."

"역시 대단한 사람이로군요."

"주우명 말인가?"

"아닙니다. 하무백 교관 말입니다."

그 대답에 팽도율의 시선이 연백진에게로 돌아갔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가?"

팽도율이 놀랍다는 얼굴로 물었다.

연백진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관주님은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오히려 되묻는 연백진.

"나는 지난 전쟁 때 전장에서······."

"그와 함께 싸운 전우들은 많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우연히 마지막 전투까지 보았네."

그 말에는 연백진이 놀란 얼굴을 했다.

"대단하시군요. 마지막 전투라면··· 사실 저도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창피한 일일 뿐일세. 최후의 전투. 그 공격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나 중간에 낙오했네. 적에게 당해서 기절을 했지. 뭐, 동료들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눈앞에서 마지막 전투가 치러지고 있었어. 어느새 내가 기절했던 곳이 전장이 되어 있더구만."

마지막 전투라 함은 마교 교주와의 대전일 터.

연백진은 호기심이 동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연백진의 물음에 팽도율은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입에 올릴 전투가 아니었네."

팽도율의 대답에 연백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주께서는 하 교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 것 같습니까?"

"많아야 스물. 그 정도일 테지. 나도 본래는 알 만한 사람이 아닌데, 전장에서의 우연한 생존 때문에 알게 된 것이고."

연백진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세상 사람들은 관주님 같지 않습니다."

"응?"

팽도율의 얼굴에 궁금증이 어렸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주님이 제게 비밀을 지키신 것처럼, 하 교관의 전우들이 모두 그 비밀을 지킨 것이 아니란 겁니다. 당연하죠. 자신과 함께 싸운 영웅이, 세상에 그 흔적이 없다는 게 안타깝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연백진의 말에 팽도율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미처 생각 못한 일이다.

자신이 전투에 관해 말을 아꼈기에, 당연히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거 내가 너무 멍청했구만. 나이를 헛먹었어."

연백진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팽도율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관주님만큼 알고 있는 이는 스물이 채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후의 전투를 보셨다고 하 니. 저 또한 최후의 전투에서 하 교관이 어땠는지는 모르니까요. 제게 하 교관에 대해 알려준 분은 그 전에 전사하셨으니."

연백진의 얼굴이 슬픔과 그리움으로 채워졌다.

팽도율은 그의 말과 표정에서 그에게 하무백에 대해 알려준 이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백운 형님이로구만."

연백진이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둘째 형님을 아십니까?"

"나 또한 전우였네. 존경하는 형님이었고. 하민이 어떻게 그간 연가의 눈에 띄지 않고 교룡관에 있을 수 있었겠는가?"

"아!"

연백진이 작은 탄성을 흘렸다.

이제야 의문 하나가 풀렸다.

연가가 아무리 교룡관에는 아무런 신경을 안 쓴다고 했지만, 어찌 본명으로 입관한 그 아이의 존재를 찾지 못했을까.

그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그러면 하 교관에게 하민이를 보냈던 것도?"

연백진의 물음에 팽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저 인간이 본가를 풍비박산 내서 내가 교룡관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네만."

결국 그 때문에 연하민의 존재가 연가에 알려졌었다.

연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자신의 큰형님은 산월마림에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기에 연백진은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관주님의 생각보다는 훨씬 많은 이들이 하 교관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겁니다."

연백진은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팽도율.

그가 물끄러미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곳.

팽도율은 이 정도 어둠은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두 생도의 곁에서 가만히 서 있는 하무백.

팽도율의 시선이 복잡해졌다.

***

"그럼 우리도 이제 내려가 보자꾸나."

사위에 어둠이 내려앉고, 관중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비무대.

그곳에 남은 이는 운공요상에 빠져 있는 주우명과 백리평.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단목운뢰와 하무백이 전부였다.

"운혜는 오라비에게 가봐야 할 테니."

공손무외가 궁소유를, 한설빙이 단목운혜를 안고서는 훌쩍 뛰어내렸다.

뒤이어 공손비연도 바닥에 사분히 내려섰다.

"오빠!"

단목운혜가 큰 소리로 단목운뢰를 부르며 힘차게 뛰어갔다.

"쉿."

단목운뢰가 그런 동생을 향해 검지를 입술에 대며 말했다.

그 모습에 단목운혜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늦추고 얌전히 다가왔다.

"여기까지는 뭐 하러 왔어."

단목운뢰가 단목운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 떨어지자. 아직 저 친구들 운공 중이라."

단목운혜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중요한 것이란 눈치는 챘는지 조용히 오빠를 따라 움직였다.

단목운뢰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단목운혜에게 이야기했고, 그에 따라 단목운혜의 목소리도 작아졌다.

두 남매가 그렇게 회포를 푸는 사이.

공손무외가 하무백의 곁에 섰다.

"엄청난 비무였네. 도저히 제 나이가 믿기지 않는 아이들이야."

"백리평, 주우명 둘 다 열아홉이죠?"

한설빙이 물었다.

"평이는 열아홉이 맞지. 이제 곧 한 해가 가겠지만."

하무백의 대답에 한설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면 저 정도는 할 수도 있죠. 곡주님."

공손무외가 놀랐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어도 공손무외 평생 저런 젊은 재능은 처음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열아홉의 나이에 저 정도 성취를 이룬 이를 본 적도 없었고.

그 반응에 한설빙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이 인간이 스무 살일 적을 곁에서 봤거든요."

"아······."

그 말에 공손무외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무백이라면 인정해야 했다.

"물론, 십 년 사이 괴물같이 강해졌지만, 스무 살 때도 이미 무섭도록 강했어요."

한설빙의 너스레.

하무백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적당히 해라. 애들 집중해야 한다."

무아의 명상에 잠긴 것이 아니다.

운공요상 중 감각은 열려 있었다.

내부를 관조하고, 내상의 치료에 열중해야 할 상황에서, 밖에서 쓸데없는 잡음으로 집중력을 흩트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머? 기막을 안 친 거예요? 보통 이럴 때면 기막으로 소리 차단해주시지 않나요?"

한설빙이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하무백의 인상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한설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기분 나쁠 정도로 날 잘 알아. 그러니까 적당히 해라."

하무백의 말에 한설빙이 피식 웃었다.

역시.

하무백은 이미 백리평과 주우명 두 아이의 주변을 기막으로 둘러쳐서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있는 중이었다.

운공요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장에서도 운공요상이 필요한 수하들에게 늘 해주던 행동이었다.

다만 조금 전 집중을 들먹인 것은 한설빙을 조용히 하게 하기 위한 핑계였을 뿐이다.

물론 통하지 않았지만.

"호오. 한 교관은 하 교관에 대해 아주 잘 아는 모양이구만."

"십 년을 함께 한 전우니까요. 뭐, 그런 전우 내팽개치고 튀었지만."

"난 발령받은 대로 이동한 것뿐이다."

하무백의 작은 항변.

"칫. 음흉한 인간."

그러나 한설빙은 그 항변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소소한 대화와 투닥거림 가운데.

백리평과 주우명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운공에 빠져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상처 입은 혈맥과 기맥, 그리고 단전을 천천히 치유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다.

그저 치료에 집중할 뿐.

진탕되어 들끓는 내부를 진정시키고, 피를 토하게 할 정도로 상처 입은 단전과 혈맥을 다스리고, 과도한 내공의 운용으로 엉망진창이 된 기맥을 정돈했다.

주우명이 먼저 눈을 떴다.

내공의 깊이도 달랐거니와, 익히고 있는 요상결 역시 달랐기에.

우습게도 백리평은 태을심법의 요상결을 전수받지 못했다.

그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본파에서 방치한 탓이다.

그랬기에 백리평이 운용하는 요상결은 삼재심법의 요상결이었다.

안정적인 대신 느린 심법.

요상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무백이 도와줄 수도 있을 법했지만, 그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어느새 자정.

모두 돌아갔다.

남아 있는 이는 하무백과 백리평 뿐.

주우명과 단목운뢰가 함께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단목운뢰에게는 운혜를 돌보라 하며 돌려보냈고.

주우명은 아직 부상을 입은 상태니 들어가서 좀 더 요양하라며 돌려보냈다.

한설빙에게는 주우명을 제대로 돌보라 했다.

공손무외는 하무백이 왜 저러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

공손비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손무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도 거기에 계셨고, 하 교관님도 의술에 조예가 깊으신데. 왜 운공요상을 하던 걸까요? 그 정도 내상이면 할아버지께서 조금만 손을 쓰셔도 금세 치유가 될 텐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끝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은 것이다.

손녀의 물음에 공손무외는 빙그레 웃었다.

"하 교관. 그가 소유의 구음절맥을 치료해 주었다만, 그는 의원이 아닌 무인인 게야. 그러니 그리 하는 것이지. 반면 연아 너는 무인보다는 의원이로구나. 왜 치료해주지 않냐고 답답해하는 것을 보니. 허허허."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유곡주인 할아버지가 저 정도 내상에 나선다는 것은 과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나서도 내상을 다스리는 시간을 십분지 일로 줄일 수 있었다.

공손비연은 자신의 의술에 그 정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하 교관님도 참 답답한 인간이야.'

속으로 투덜거리는 공손비연.

여전히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운공요상도 무인에게는 수련이 된다는 건가요?"

그때 끼어든 궁소유.

그 말에 공손비연은 멍한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떴다.

···맞다.

그렇구나.

이 간단한 이치를 난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원으로서 실격이다.

그런 오만 생각이 머리를 떠돌고 얼굴에까지 드러났다.

공손무외가 궁소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유의 생각이 맞다. 그리고 연아는 자책할 거 없다. 네가 천생 의원이라 그런 게지. 치료마저 수련으로 여기는 무인이란 족속들을 이해하려면, 그런 무인 놈들 수백은 치료해봐야 한다."

***

백리평이 천천히 눈을 떴다.

축정을 지난 시간.

하무백은 그런 백리평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백리평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자신과 교관님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얻은 것은 있고?"

하무백의 물음에 백리평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삼재심법의 요상결은 있으나 마나한 거라 여기는 이들이 전부다. 사실 삼재심법은 요상결을 사용 할 일이 없다시피 하니까."

삼재심법으로 내공을 쌓기란 요원한 일로, 삼재심법을 익힌 이들 대부분은 내상을 입을 만큼의 내공도 없었다.

그랬기에 요상결이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하지만 삼재심법에 필요 없는 건 없다."

하무백은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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