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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43화 (143/312)

143화. 난들 알까

날이 밝았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해가 동쪽 하늘에서 떠올랐다.

무수한 일이 있었던 그제와 어제.

그랬기에 무언가 특별히 다른 날이지 않을까 했던 오늘.

그러나 평소와 다름없는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분명 그랬다.

늘 그랬듯이 그러한 날.

하지만 오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달랐다.

이른 아침부터 연무장에 나와 있는 당진산.

그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땀으로 흥건한 오른손에 쥐어진 것은 검이 아닌 편이었다.

검정색 가죽 채찍.

처음 교룡관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항시 허리에 감고 다니던 병기였다.

손잡이에 음각된 사천당가의 문양이 잘 보이게 하고서는.

그렇게 허리에 감는 것은 성도에서 지내던 시절부터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본인 스스로보다는 가문의 위세를 빌어야 할 때가 많았던 당진산의 사정상 자연스레 생긴 습관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채찍을 놓았다.

맹룡숙 자신의 방 한구석에 처박아둔 지 오래.

그런 채찍을 정말 오랜만에 꺼냈다.

백리평의 비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젯밤 방을 뒤져 채찍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 새벽같이 연무장에 나와서 마음껏 휘둘렀다.

호연십팔편(浩告然十八戰).

사천당가 편법의 입문공이다.

당진산이 당가에서 익힌 유일한 편법이기도 했다.

영사구편을 전수받기는 했다. 다만 익히지 못했을 뿐.

맹룡대에 처음 왔을 때 홀로 영사구편을 흉내라도 내볼 요량으로 편을 휘둘렀지만, 역시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서 오늘은 호연십팔편만을 펼쳤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숨을 쉬는 당진산의 입가에 연신 김이 뿜어져 나온다.

"다르지?"

그때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

언제 온 것인지 그곳에는 백리평이 있었다.

"내상은 괜찮은 거야?"

당진산의 물음에 백리평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그래도 몸은 좀 풀어둬야 할 것 같아서."

연무장에 나왔으나 선객이 있었기에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백리평은 처음 맹룡대에 왔을 때 당진산이 편을 휘두른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당진산과 지금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당진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동안 오로지 삼재검법과 권법, 심법만을 수련했다.

그런데, 편법의 경지가 말도 못 할 정도로 올랐다.

쉬이 믿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말에 백리평은 그저 웃었다.

그것을 가장 처음 느낀 것은 자신이었기에. 지금 당진산의 저 황당한 심정을 절절히 이해하는 탓이었다.

"난들 알까. 그저 그렇게 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뭐, 만류귀종? 그런 거 아닐까?"

백리평의 말에 당진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허탈하네. 당가에서 그렇게 수련해도 안 되던 것들이… 삼재검법을 수련했다고 이렇게 달라 지다니……. 어쩌면 영사구편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

"음. 당가에서 내공심법도 익혔었지?"

백리평의 물음.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표정이 변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한 것이다.

"설마?"

백리평이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4강 중간부터 비무 중에 나도 모르게 본파의 내공심법을 운용했는데··· 다르더라고."

"그럼 그게······."

당진산은 어제의 비무를 떠올렸다.

주우명을 상대로 보여주었던 그 어마어마했던 모습.

무당의 태극혜검과 내공에 조금도 밀리지 않아 보이던 백리평의 모습.

천성검법은 그렇다 쳐도, 삼재심법이 저 정도였던가 하는 생각마저 했었는데.

아니었단다.

종남의 심법을 운용한 것이란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랐다고 한다.

당진산이 다시 편을 들었다. 그리고 호연십팔편을 펼쳤다. 처음에는 삼재심법을 기반으로, 차차 심법을 삼양귀원공으로 바꾸어 갔다.

그러자 다시 한번 편법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열여덟 초식을 모두 펼친 후.

당진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드는 생각.

"이건 '삼재신공'이라 해야 하는 거 아냐?"

생각이 입 밖으로 그대로 흘러나왔다.

"풋."

백리평은 웃음을 흘렸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간밤 하무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삼재심법에 필요 없는 건 없다던.

당진산은 다시 편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였다.

느낌이 왔다.

분명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움직였다. 몸이 생각대로 움직였다.

"그건······."

백리평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본 적이 있는 편법이다.

자신들을 참 무참히 박살을 냈던 편법.

당추가 펼쳤던 그 편법이다.

아마 연무장에서 당진산이 펼쳐 보려고 애를 썼으나 하지 못했던 그 편법.

그것이 지금 영활한 뱀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당추가 펼쳤던 그것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였다.

"진짜 삼재신공인가······."

백리평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당진산이 오늘 편을 잡은 것이 삼재검법을 익힌 이후 처음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자신은 심상으로나마 천성검법을 수련했다지만, 당진산은 완전히 편법을 놓고 지냈었건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들의 교관은.

대체 그 능력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왜 맹룡대 교관 따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잠시 당진산을 지켜보던 백리평은 연무장 구석으로 가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계속 당진산의 수련을 지켜보기만 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몸이 굳을 것만 같았다.

여전히 추운 날씨였으니.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낙우진과 단목운뢰였다.

그들도 자연스레 연무장으로 모여든 것이다.

휴관기의 첫날.

하무백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걱정할 건 없겠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걸음을 돌렸다.

향한 곳은 이십 조의 연무장.

이곳에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동생인 하설란.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틀간의 동투제를 겪고, 보면서 느낀 것이 많았던 것인지.

교룡관 생도를 통틀어 오늘 연무장에 가장 먼저 나온 이는 그녀였다.

하무백은 그런 동생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해주고 있지만, 아직도 확신할 수 없었다.

설란이 무공을 익혀 강호에 발을 딛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하는 의문.

그에 대한 답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그렇게 반 시진 정도 동생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자니, 하무백의 기감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하무백은 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기감으로 하설란을 지켜보고 있겠지만.

"오라버니! 고마워요!"

그때 뒤에서 들리는 동생의 목소리.

하무백은 멈칫했다.

그럴 수밖에.

자신의 기척을 느꼈다는 것이니까.

기감에 특출난 재능을 각성한 것은 알았지만, 설마 수련하면서 자신의 기척을 느끼고 있을 줄이야.

'예상을 뛰어넘어도 너무 뛰어넘었어.'

복일지, 화일지.

그저 복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연하민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자신은 분명.

"비무에서 백리평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주저앉았던 것 같은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 떠오르는 목소리.

"교관님이?"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은 연룡숙 자신의 방 안이었다.

하무백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

그의 능력이라면 손쉽게 들어올 수는 있을 테지만, 그렇게 할 사람은 아니니.

"어떻게 된 건지······."

일단 침상에서 내려오려고 땅에 발을 디뎠는데.

휘청.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온몸의 기력이 쫙 빠져나간 상황.

"내공은?"

내부를 관조하니 다행히 내공은 어느 정도 있었다.

재빨리 내공을 전신으로 퍼뜨리니 조금은 기력이 돌아왔다.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었다.

전날 입었던 무복이 아닌 침의 차림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비무로 더럽혀진 무복은 한쪽 대나무 바구니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깨끗한 무복을 꺼내 막 단장을 마친 찰나.

[일어났으면 나와라.]

하무백의 전음이 귀에 울렸다.

연룡숙의 입구를 나서니 바깥쪽에 하무백이 있었다.

"한 교관이 챙겨준 거다."

짤막한 말.

그러나 그 한마디로 저간의 사정을 이해했다.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의 해답을 얻은 것이다.

"'일단 좀자라'였나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떠올려낸 마지막 기억.

"그래. 내가 수혈을 짚어서 재웠다. 한교관이 그런 너를 이곳에 데려다주었고."

"대체 왜 그러신 거죠?"

"일단 연무장으로 가자. 다들 있으니."

하무백이 앞장섰고, 연하민이 곁에서 따랐다.

"너는 어제 너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인지 파악은 한 거냐?"

"조금은요."

연하민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지금 네 몸의 상태는 그 능력의 반동이라 보면 된다."

"아······."

작은 탄성.

"솔직히 네가 그런 잠재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무척이나 특이하고 귀한 능력이니까. 나도 그 능력을 가진 이를 딱 한 명 보았을 정도니."

하무백의 설명에 연하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하무백 자신이 굉장히 많은 경험이 있는 듯 말하지 않는가.

하설란에게 듣기로 하무백의 나이는 고작 서른.

그 나이로는 쌓을 수 있는 경험에 한계가 있을 터인데.

산월마림에서 보여준 하무백의 능력은 놀랍기 그지없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노회한 노무림인처럼 말하는 모습에 적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네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아마 무림에서 나 하나일 거다."

"다른사람을 보셨다고?"

의문 섞인 연하민의 물음.

"죽었다, 내 손에. 적이었거든."

우뚝.

순간적으로 연하민은 멈춰 섰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잠깐이지만 자신이 겪었던 그 능력.

자신이 생각한 종류의 것이 맞다면, 사기나 다름없는 엄청난 능력이다.

그런데 그런 상대를 죽였다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굉장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네 능력에 대해서는 그에게서 들은 것이 전부지만,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말이 많은 놈이었거든."

자박자박.

얼었다가 채 녹지 않은 땅에 연하민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네가 어제 백리평과의 비무에서 각성한 능력은 어떤 능력이지?"

하무백의 물음.

"잠시 후의 일을 미리 볼 수 있었어요."

연하민은 비무 중에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랬으니, 백리평과 백중세의 비무를 펼칠 수 있었다.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놈은 그걸 미래시라 이름 붙였다더군."

"미래시······."

연하민은 작게 읊조렸다. 자신의 능력에 썩 잘 어울리는 명칭이라 생각했다.

"짧으면 한 호흡, 길면 세 호흡까지의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연하민이 본 것은 한 호흡 후의 일.

그것만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대가는 크지. 심력과 체력의 소모가 극심하다. 더욱이 너는 각성하자마자 그런 치열한 비무를 펼쳤으니."

이제야 자신의 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비무를 마친 후 바로 쓰러진 연유도.

"어제도 아슬아슬했어. 비무가 조금 더 진행됐으면, 심력과 기력이 바닥나서 위험할 뻔했다."

"그 전에 막아주셨을 거예요."

흠칫.

이번에는 하무백이 잠깐 멈췄다.

연하민의 저 믿음.

대체 자신을 어떻게 여기기에 저런 믿음을 가지는 것일까.

자신은 맹룡대 생도들에게 딱히 해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래서 바로 재웠다. 그 덕에 지금 이 정도로 움직이는 거고, 내공도 남아 있는 거다."

"감사합니다."

"네 능력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굉장히 위험한 능력이니."

"네."

연하민이 짧게 답했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연무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네 명의 생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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