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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44화 (144/312)

144화. 언제 떠나나요?

장원은 조용한 가운데 바빴다.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보낸 곳이었기에, 정리할 것들이 많은 탓이다.

이제는 무창을 떠나야 했다.

선유곡이 있는 형산으로 돌아가야 할 때.

공손무외와 공손비연이 방을 정리하고 짐을 챙겼다.

공손화경과 궁소유 역시 방을 정리하고 짐을 챙겼다.

형산의 선유곡에서 무창으로 함께 왔지만, 되돌아가는 길은 달랐다.

하남성 천중산.

만물련이 있는 곳이다.

궁소유의 천형이 완치가 되었으니, 본디 있어야 할 곳으로 갈 때였다.

궁무혁은 공손화경과 궁소유와 함께 만물련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선유곡으로 가는 이도 공손무외와 공손비연 둘.

이렇게 다섯 명이 전부였다.

올 때와 달리 일행은 단출했다.

장원의 일꾼들은 모두 이곳 무창에서 잠시간 고용한 이들.

장원을 떠나면 이들은 다른 일터를 찾아갈 것이다.

지난 마교의 습격에서 궁무혁의 호위단은 모두 죽었다.

그 소식을 련에 전했건만, 추가적인 호위단의 파견은 없었다.

궁무혁은 이미 그러리라 예상했었다.

마교의 습격 자체가 부련주인 동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궁무혁.

호위단주의 마지막 전음 덕이었다.

하지만 막상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니 입맛이 썼다.

"언제 떠나나요?"

궁소유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태어나서 처음 가진 친구가 이곳에 있었으니.

자신보다 어린 동생이었지만, 친구나 다름없었다.

단목운혜.

불과 어제까지 함께 동투제를 보지 않았던가.

"하 교관님이 오시면 그때 갈 거다. 이제 교룡관도 휴관기에 들었으니 곧 떠나겠지.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하는 거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궁무혁의 말에 궁소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헐헐. 오늘 당장 떠나지는 않을 것이니 운혜에게 다녀오거라."

궁소유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공손무외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야 뭐, 챙길 짐이 얼마나 있겠느냐. 연아가 함께 갈 터이니 운혜에게 다녀와도 된다."

자신을 바라보는 궁소유의 시선에 공손무외가 다시 한번 말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궁소유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공손비연이 정리가 끝났는지 웃으며 궁소유에게 다가왔다.

슬슬 점심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운혜와 객잔에서 점심이나 먹자. 마침 가보고 싶었던 객잔이 있었으니까."

하무백과 위지군이 궁소유의 치료를 전담하면서 상대적으로 공손비연의 시간이 많이 생겼다.

두 사람이 올 때가 아니면 딱히 할 일이 많지 않은 탓이다.

탕약을 달여 먹이는 정도가 그녀의 일.

그마저도 할아버지와 함께했고.

그게 아니면 하무백과 위지군의 침술을 연구하는 정도가 전부였으니, 남는 시간이 많았다.

공손비연은 그 시간을 무창 내 객잔을 돌아다니는 데 썼다.

괜한 시선이 귀찮았지만, 그것은 두꺼운 면사 두 겹으로 해결하고.

최대한 조용한 시간에,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정도로 타협했다.

깊은 산속의 선유곡에서만 주로 지내다가, 이런 번화한 성내에 오니 객잔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나름의 취미가 된 것이다.

사실 그녀도 돌아가는 것이 아쉬웠기에, 궁소유와 단목운혜를 데리고 객잔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간 다녔던 곳들 중 가장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은 곳으로.

"그런데 언니, 점심때에 맞춰 가면 사람이 많을 텐데?"

궁소유의 지적.

"뭐, 운혜네 집에 좀 있다가 적당한 시간에 나서야지. 늦은 점심이 되겠지만."

공손비연의 말에 궁소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장원을 나설 채비를 했다.

궁소유와 공손비연이 나선 후.

"계십니까?"

기다렸다는 듯 하무백이 찾아왔다.

"하 교관. 어서 오게나."

공손무외가 하무백을 맞았다.

어제도 함께 동투제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덕분에 공손무외는 하무백과 상당히 친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하 교관님. 벌써 준비가 다 되신 겁니까?"

궁무혁이 놀란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사흘 정도는 필요할 듯합니다."

그 말뜻은 나흘 뒤에는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출발일이 확정되었다.

"알겠습니다. 나흘 뒤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 용건 때문에 오신 겁니까?"

하무백이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네. 경청하겠습니다."

"아직 어찌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은 딱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동생에 대한 것이리라.

어디까지 대가를 치르게 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궁무혁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니, 사실은 엄단해야 했다.

자신 역시 죽을 뻔했으니, 하무백 전에 자신이 먼저 동생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다만, 순순히 무릎을 꿇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궁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자신을 제거하려 하지도 않았을 터.

호위단이 전멸했음을 알렸을 때도 추가 인원을 보냈을 것이다.

"제법 큰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궁무혁이 각오하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소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지금 자신은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싸우러 가는 것이다.

련주를 해하려 반란을 일으킨 자를 처단하기 위해서.

"저와 련주님. 둘만 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은 순순히 긍정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귀환에는 딸을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 부분을 생각지 못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무엇이 만물련 최고의 천재란 말인가.

사람은 배려할 줄 모르고, 그저 병기와 화기에만 미친놈일 뿐인데.

하무백이 떠나고 궁무혁이 그런 자책에 빠져 있을 때, 공손화경이 그를 뒤에서 안아 주었다.

"많이 아팠잖아요. 당신도, 소유도. 그래서 그런 거예요. 이제 건강하게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앞서서."

공손화경의 위로.

"저도 그저 이제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요."

이어진 그녀의 말.

그럼에도 궁무혁은 자신의 경솔한 생각을 자책했다.

그때 공손무외가 나타났다.

"짐을 풀어야겠구나."

그 말에 궁무혁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인어른."

"소유를 곡으로 데려갔다가, 다시 만물련으로 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창이 선유곡과 만물련의 중간 정도이니. 그냥 이곳에 계속 머무르다가 정리가 되는 대로 만물련으로 가는 게 낫지 싶네."

맞는 말이다.

호남성의 선유곡과 하남성의 만물련.

무창이 자리한 호북성은 하남성과 호남성 사이에 위치하지 않던가.

"감사합니다."

궁무혁이 허리를 숙였다.

선유곡의 곡주인 공손무외가 자리를 비우고서도 제법 시일이 흘렀다.

어서 곡으로 돌아가 봐야 할 텐데, 소유를 위해 무창에 더 머무르겠다 하니 그저 송구할 따름이었다.

***

집무실의 서탁에 앉은 궁도혁.

그는 연신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리고 쓰고 구겨버리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같은 행동을 하다가 피곤한 얼굴로 머리를 뒤로 젖혔다.

"후우. 이 정도면 용도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허나 상대는 이미 한번 살아남았다.

더욱 철저히 해야 했다.

그러자면, 만천금쇄폭뢰의 숫자가 많을수록 좋은데.

남아 있는 것은 첫 생산에서 만든 것이 전부다.

그 뒤로는 생산을 하지 않았으니.

철두철미한 궁무혁이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재료, 장비들까지 모두 폐기했다.

추가 생산을 하려면 필히 설계도를 입수해 그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설계도의 일부는 구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족자.

그리고 비고에서 찾은 한 조각.

모두 다섯 조각 중 두 개가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궁도혁은 설계도를 파고들었다.

분석도 해보고 몇 번을 반복해 필사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무언가 떠오르거나 알아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나 모든 방법에도 소용없었다.

설계도는 그저 알 수 없는 문양과 기호, 그림의 집합체일 뿐.

궁도혁의 얼굴에 짙은 피로가 내려앉았다.

"부련주. 계시는가?"

그때 집무실 밖에서 그를 찾는 음성이 들렸다.

원로원주 등군현이었다.

"들어오시지요."

궁도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등군현을 맞았다.

"바쁜가 보구만."

궁도혁의 얼굴을 살핀 등군현이 말했다.

"무언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말입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정천맹의 의뢰에 대한 진척 사항을 알리러 왔다네."

소휘웅의 환갑선물로 진상될 도(刀)의 제작은 등군현이 책임지고 있었다.

본래 부련주인 궁도혁의 일이었지만, 만년묵금철을 실제로 본 등군현이 욕심을 냈다.

궁도혁은 기꺼이 그 일의 전권을 등군현에게 넘겼다.

만년묵금철.

만물련의 원로원주인 등군현도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는 기물이었다.

젊은 시절 그것을 모으기 위해 애를 썼을 뿐.

그것을 무려 한 냥이나 사용하는 일.

천생 장인인 등군현으로서는 눈이 돌아갈 만한 일이었다.

그 때문일까.

며칠에 한 번씩 이렇게 진척 상황을 알리러 왔다.

어쨌든 최종 책임자는 궁도혁이었으니.

"만년묵금철을 제련해서 만년한철에 섞어 넣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야. 좀처럼 섞이지를 않아. 과연 만년묵금철일세."

"시일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궁도혁의 물음.

"한 냥이기에 어찌어찌 가능할 걸세. 두 근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어."

등군현의 말에 궁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보다 훨씬 까다로운 녀석이로군요. 기록을 바탕으로 그 정도면 납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원로원주님 덕에 제 실수를 막을 수 있었네요."

궁도혁의 말에 등군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어찌 부련주의 실수인가. 나 또한 두 근을 써도 충분히 납기일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니. 헌데 직접 다뤄보니 여간 만만치 않더군."

"계속 수고해 주십시오."

"그래. 그래도 섣달그믐쯤에는 만년묵금철과 만년한철을 합치는 작업이 끝날 게야. 그러면 정월부터는 도신의 제작에 들어갈 걸세."

"원로원주님만 믿겠습니다."

진행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등군현이 집무실을 벗어났다.

그 즉시 궁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참으로 귀찮은 늙은이다.

만년묵금철을 던져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귀찮게 굴었을까.

섣달그믐.

며칠 남지 않았다.

어제가 동지였으니.

여드레 정도 남은 셈이다.

궁도혁의 시선이 서탁으로 향했다.

복잡하게 그리던 도면.

용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만천금쇄폭뢰의 배치도였다.

그것을 설치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만물련의 대전.

이제 도면대로 대전의 태사의 주변에 설치할 일만 남았다.

하무백.

그가 찾아왔을 때 그를 맞이할 곳이 대전의 태사의 위였으니.

자신이 만물련의 련주가 될 것이기에 그곳이 곧 자신의 자리였다.

손에 쥐고 있을 한 기와, 주변에서 하무백을 향해 집중될 네 기의 배치.

모든 계산은 끝났으니, 어서 설치하고 그를 기다리면 될 뿐이었다.

"련주는 나다."

집착이 가득한 목소리로 궁도혁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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