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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45화 (145/312)

145화. 거기, 이방인 둘

노인은 늘 같은 곳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가 담당하는 곳은 늘 깨끗했다.

지난 동투제 때도 노인은 빗자루질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임에도.

그저 빙그레 웃으며 빗자루질을 했다.

새하얀 머리칼과 수염이 그가 노인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기골이 장대했고 몇 군데 진 잔주름을 제외하고는 피부도 팽팽했다.

그것이 그가 예사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런 노인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왔느냐?"

노인 위지군의 물음에 하무백이 답했다.

"네. 사부님."

"란아는 여전히 수련 삼매경이다. 동투제가 큰 자극이 되었나 보더구나."

이제 오후로 접어든 시간.

하설란은 여전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란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무백의 말에 위지군은 빗자루질을 멈췄다. 그리고 제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언제 가려는 게냐?"

"나흘 뒤에 궁 련주와 함께 갈 생각입니다."

담담히 대답하는 하무백. 그런 제자를 바라보는 위지군의 눈빛이 복잡했다.

"네 은원이니,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만."

거기까지였다.

위지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하무백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떠나기 전에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맹룡대 칠 조의 연무장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막 걸음을 떼려는 찰나.

"항상 란이를 생각하거라."

나직한 사부의 한마디.

하무백은 그 말을 가슴에 담고 걸음을 옮겼다.

***

연무장 구석.

연하민은 운기조식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까지 함께 왔던 하무백의 조언 때문이다.

당분간은 내공과 체력 회복에만 집중하라고.

그때의 감각을 다시 느끼겠다고 괜히 검을 들었다가, 오히려 감각에 먹힐 수 있음이니.

그 감각을 견딜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게 먼저라 하였다.

해서 연하민은 운기조식과 간단한 체술 훈련만 진행했다.

아직 몸의 기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

조금씩 기반을 다져야 했다.

반면, 기력이 남아도는 당진산과 낙우진은 정신없이 편과 검을 휘둘렀다.

'다음 동투제에서는 기필코'라는 각오와 집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백리평과 단목운뢰.

두 사람 역시 어제 무리를 한 상황이었다.

둘 모두 주우명의 태극혜검에 패했기에.

일단은 전날의 복기가 먼저였다.

서로가 서로의 비무를 보면서 느꼈던 바를 교환했다.

멀리서 보면 더 잘보이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

그렇게 맹룡대 칠 조의 연무장은 뜨거웠다.

서서히 그림자가 길어지는 오후.

하무백이 연무장에 나타났다.

다섯 생도는 그저 자신들의 일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하무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게 키운 보람이 있는 모습이었다.

"교관님!"

하무백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이는 낙우진이었다.

그의 외침에 다른 이들의 시선도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하던 거 계속해라."

그리 말하고는 자신의 지정석으로 향하는 하무백.

바위에 비스듬히 누우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동투제가 어제 끝났지?"

하무백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제 휴관기로군."

다시 고개를 주억거리는 생도들.

"그렇다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고."

하무백은 바위에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내년 전반기가 시작될 때 보자."

하무백의 말에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거면 지금 왜 나타났단 말인가.

아침에 연하민을 이곳에 데려다준 인간도 교관, 저 인간이지 않은가.

"백리평.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다. 그러니 믿고 곧장 가면 된다."

막 무어라 하려 할 때, 하무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단목운뢰. 아직 넌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갑자기 얻게 된 능력에만 의존하려 하지 마라."

단목운뢰가 고개를 숙였다.

이미 누군가에게 한 번 들었던 말이었으니.

"당진산. 새벽에 편을 잡아 봤으니 알겠지? 너, 둔재 아니다."

당진산이 코를 찡긋했다.

"낙우진. 너 역시 무공에 입문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지. 남궁지후는 얼마나 되었을 것 같나? 너는 남궁지후와 백 초를 겨뤘다."

낙우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너희 모두 지난 일 년간 몰라보게 성장했다. 그리고 동투제에서 다시 한번 성장했지. 이제 겪어서 알겠지? 옳은 길로 가고 있으니 앞만 보고 가면 될 일이다."

맹룡대에 들어온 후, 자신들의 교관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전부 긍정적인 칭찬이다.

늘 틱틱거리고, 자율학습이란 소리만 하던 교관이.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무백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너희들은 여기 무슨 일이냐?"

남궁지후와 주우명이었다.

그들이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하무백이 맹룡대 생도들에게 무어라 하는 것 같았는데,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마도 조언이었겠지.

그랬기에 남궁지후가 입을 뗐다.

"저, 저희에게도 무언가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

주우명 역시 같은 눈빛을 하무백에게 보내고 있었다.

이들이 맹룡대 칠 조의 연무장을 찾은 이유 중 하나가 하무백이었다.

칠 조 생도들은 모르고 있었다.

하무백이 무심히, 귀찮은 듯 툭 던지는 한마디에 얼마나 깊은 의미가 있는지.

사실 남궁지후와 주우명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의 조언에서 얻은 것이 많았기에, 오늘도 염치불구하고 이곳을 찾은 것이다.

하무백은 그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너희 둘도 삼재검법을 한번 익혀보는 건 어때?"

그 말을 끝으로 하무백은 연무장을 떠났다.

정말로 하반기가 끝나서, 휴가를 즐기겠다는 듯한 걸음이었다.

남궁지후는 그런 하무백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삼재검법······."

이미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동투제 중 백리평이 그에게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헌데 하무백도 같은 말이라니.

주우명 역시 삼재검법을 중얼거렸다.

이미 사부에게서도 삼재검법에 대해 들은 터였다.

'본질은 무.'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일까.

두 사람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당진산이 다가왔다.

"거기, 이방인 둘."

잠룡대 일 조와 맹룡대 이십 조.

맹룡대 칠 조의 연무장 안에서는, 이방인이라면 이방인이었다.

장난스러움이 가득한 당진산의 표정.

"고민할 시간에 직접 움직여 보는 게 좋을걸. 그게 우리 교관님 방침이거든. 내가 잘 가르쳐 줄 테니까 말이야."

어느새 편을 허리에 감고 가검을 들고 온 당진산이 두 사람의 손에 검을 쥐여 주었다.

***

예초아의 눈에 푸른 빛이 은은하게 어렸다.

새로운 신공을 수련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문주님. 괜찮으십니까?"

이호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제 겨우 일 성을 익혔을 뿐이에요. 그런 걱정은 마세요."

예초아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미완성의 무공입니다. 너무 성급하신 듯합니다."

"완성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어요."

예초아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그 괴물이 언제 이곳으로 쳐들어올지 모르니까요."

그 말에 이호법은 입을 닫았다.

산월마림의 일까지 있고 나서 하오문은 무창에서 눈과 귀를 거뒀다.

그놈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만물련의 의뢰로 다시 조심스레 정보를 모으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놈이 괴물인 줄은 알았다. 하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만천금쇄폭뢰에서 살아남은 인간이에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괴물이죠. 그 괴물이 언제까지고 필사본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까요?"

예초아가 불안한 듯 물었다.

"······."

이호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숨기기는 했지만, 그 정도 되는 이가 필사본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의외였으니까.

너무도 강했기에, 자신의 기준에서만 생각을 해서가 아닐까 홀로 예측만 해보는 이호법이다.

만천금쇄폭뢰의 흔적.

그것이 하무백을 향해 발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하오문의 수뇌부는 경악했다.

만천금쇄폭뢰가 어떤 물건이던가.

그 존재를 아는 이 자체가 극소수였다.

하오문이었기에 알고 있는 정보.

그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예초아의 상태가 나빠졌다.

지레 겁을 먹고 공포에 떨기 시작한 것이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행동은, 아직 연구 중인 신공을 익히는 것이었다.

팽가의 가주 팽무량이 소유하고 있던 혼원류하의 비급.

실체는 혼돈혈하멸공이라는 혈교의 마공.

아니, 저주받은 멸공이었다.

하무백 때문에 그 안배는 박살이 났다.

건진 것은 팽군호가 그것을 익히는 과정에서 보였던 모습을 기록한 것과 비급의 필사본.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에 들어있는 저주를 완전히 제거하는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었지만.

예초아는 완전히 검증된 일부분을 익혔고, 그렇게 얻은 성취가 일 성.

고작 입문 정도일 진데, 그녀의 눈빛에 푸른 기운이 서렸다.

***

교룡관에서 전해진 전서.

전서응을 통해서 보냈기에 불과 이틀 만에 도착했다.

노인은 전서를 보는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의 소식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사형. 정녕 사형의 재능은 이 사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오이까? 역시 사형의 피라 이겁니까? 내 피를 이은 아이는 그저 답답하기만 한데······."

노인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문파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아이라 밖으로 내쳤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곳, 그리고 이 년 뒤 죽으러 갈 곳.

교룡관 맹룡대.

문파 내에서 반발과 잡음이 있었지만, 장문인인 자신의 힘으로 누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때를 놓쳤다면 반대세력은 더욱 결집했을 것이고,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리라.

그렇게 녀석을 맹룡대에 보내놓고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자신의 수족도 교룡관의 교관으로 보냈고.

이미 교룡관에 파견된 제자들에게도 따로 명을 내렸고.

그렇게 그 아이를 철두철미하게 감시했다.

아니 감시하려 했다.

이상한 놈이 맹룡대 교관으로 붙어서 제대로 감시를 못 했을 뿐.

하무백.

모를 인간이다.

호천단주까지 한 인간이 어째서 맹룡대 교관으로의 좌천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그래봐야, 끈 떨어진 연 같은 신세니.

종남의 장문인인 주재승 자신의 힘이라면 그런 놈 치우는 게 일도 아니라 여겼건만.

치우지 못했다.

물 밑에서 수많은 작업을 펼쳤지만, 놈의 이름만 나오면 고개를 젓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 덕에 느슨한 감시망을 펼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들려오는 소식은, 처음을 제외하고는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당가의 방계 아이에게 개망신을 당했다고 했을 때는 통쾌했건만.

그 뒤로는.

하투제서의 승리부터 해서, 자신의 기대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백미는 오늘 전해진 이 소식이었다.

"준우승이라······."

동투제에서의 준우승.

게다가 결승의 상대가 무당의 주우명이란다.

무려 전대무당제일검 무연진인의 제자.

현 구파일방 최고의 후기지수로 평가받는 인물.

대체 교룡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

계속 교룡관에 두기에는 위험했다.

놈을 교룡관에 보낸 후, 문파 내의 반대세력들은 얼추 정리가 된 상태.

이제 놈이 있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자신이 생겼다.

이대로 맹룡대에 두더라도, 산월마림에 가서 죽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 실력이 벌써 주우명과 호각을 이룰 정도라면 말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오히려 더 성장하면 곤란했다.

"역시 내 눈 아래 두는 것이 가장 안심이 되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마음을 정한 주재승이 붓을 들었다.

백리평에게 종남으로의 귀환을 명할 서신을 적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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