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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46화 (146/312)

146화. 여유롭군

사흘은 짧은 시간이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고.

하무백은 궁무혁이 머물고 있는 장원을 찾았다.

이른 새벽.

사위가 고요한 시간.

궁무혁은 모든 채비를 마치고 하무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시죠."

두 사람은 말에 올랐다.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두 필의 말.

공손무외와 공손화경 두 사람만이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배웅했다.

궁소유는 아직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부디 큰 혼란 없이 잘 정리하기를……

공손무외가 작게 중얼거렸고, 공손화경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 손을 꽉 모아쥔 채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정은 평화로웠다.

겨울이었기에 산적들이 들끓을 만도 했건만,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무백이 기감으로 감지해 귀찮은 일을 피한 탓이다.

괜히 부딪혀 봐야, 그놈들 처리하는 일이 성가시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 앞에 제법 험준해 보이는 산이 자리했다.

"산세가 상당히 훌륭하군요."

하무백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말했다.

"산세보다 좋은 광맥이 상당히 많은 산입니다. 해서 만물련이 자리를 잡았지요. 대장장이들에게는 훌륭한 광물만 한 보물도 없으니까요."

궁무혁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는 말했다.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일을 생각한다면 미소를 지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 산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천생이 대장장이였다.

궁무혁도.

하남성 천중산.

만물련이 자리한 그 산의 초입이었다.

"무엇보다 천중산에는 만년묵금철의 광맥도 있습니다. 극히 희귀하긴 하지만요."

궁무혁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만년묵금철이요?"

하무백도 처음 듣는 금속이었다.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다 생각했는데.

"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존재를 아는 이들이 드문 극히 희귀한 금속이니까요."

"대단한 금속인가보군요."

천중산 중턱을 향하는 길.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궁무혁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가히 최고의 금속입니다. 아주 소량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명검이 탄생 되니까요. 물론 그만큼 다루기가 힘든 금속입니다만."

"저는 만년한철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이 보통입니다."

그리 답하는 궁무혁의 눈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모습이다.

"그렇군요. 그보다, 아마도 쉽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하무백이 멀리 산 중턱에 아스라이 보이는 만물련을 바라보며 말했다.

***

하무백과 궁무혁의 도착 소식은 궁도혁에게 바로 전해졌다.

천중산은 만물련의 영역.

두 사람이 산을 오르기 시작한 순간, 이미 만물련에서는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련주의 귀환이었기에 그저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원로원은?"

"모두 만년묵금철에 매달려 있습니다."

수하의 말에 궁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으로 가는 연락선은 모두 막았겠지?"

"사흘 전부터 모두 막아둔 상태입니다."

사흘 전.

궁무혁과 하무백이 만물련으로 오고 있음을 처음 알았던 시기이다.

하오문이 떨어져 나가면서, 알게 된 시점이 늦었다.

하오문이 계속 의뢰를 수행하는 상태였다면 무창을 떠났을 때 알았을 텐데.

"반역자들은?"

궁도혁의 물음.

"모두 뇌옥에 가뒀습니다."

수하는 섬뜩한 눈빛으로 답했다.

원로원의 눈과 귀는 막았고, 궁무혁을 지지하는 이들은 모두 가뒀다.

불과 사흘 만에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만천금쇄폭뢰의 설계도를 분석하는 것마저 중단하지 않았던가.

"위상형."

"네. 련주님."

궁도혁이 자신을 련주라 칭한 심복을 바라보았다.

"오늘이 지나면 만물련의 부련주는 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련주님."

둘만 있는 대전.

위상형이 궁도혁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였다.

만물련.

련이라는 명칭대로 만물련은 본디 수많은 대장장이 가문의 연합이 그 시작이었다.

좋은 광맥을 찾아 천중산으로 모여든 이들이 자신들의 안위와 이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연합.

그것이 어느새 신진팔문 중 하나가 될 정도로 거대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련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하나의 문파처럼 굳어져 버렸다.

련주는 대대로 궁가였고, 원로원 역시 다른 특정 가문들이 대를 이어 차지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도태되었으나, 여전히 야심을 가진 가문들.

그중 하나가 위가였다.

위가의 가주, 위상형.

그가 궁도혁을 만나 그의 심복이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동생이 형을 쳐내고 련주가 되는 것.

그것만으로 만물련의 기득권은 무너지고 새로운 세력이 자리를 잡으리라.

위가는 그중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부련주라는 자리에.

위상형은 궁도혁보다 먼저 그의 욕망을 알아차렸다.

궁도혁의 야심을 눈치챈 순간, 그의 심복이 되면서 일생일대의 도박에 판돈을 건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도박판에 올려놓은 일결승부.

그날이 오늘이었다.

"준비는?"

"원로원의 작업장만 폐쇄하면 끝입니다."

원로원.

만물련의 전통을 숭배하는 노괴들.

그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련주의 편이다.

궁도혁이 련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적일 뿐인 자들.

자신이 련주인 형에게서 많은 부분을 위임받은 부련주였기에 원로원에서 존중하는 것뿐.

형이 돌아와 자신의 소행을 밝히기만 해도 원로원은 형의 편에 붙어 자신을 반역자라 할 것이다.

그러면 애써 회유한 이들도 형의 편에 설 것이 명약관화했다.

자신에게 확실한 충성을 맹세한 이는 만물련 전체 전력의 3할에 불과했으니.

'반역자가 맞기는 하군. 그것도 천륜을 어기려는.'

궁도혁은 피식 웃었다.

"놈들은 어디까지 왔지?"

"지금 속도대로라면 반 시진 후 정문에 도착할 듯합니다."

"여유롭군. 크크."

웃음이 흘러나왔다.

형은 분명 자신을 처단하러 오는 길일 터다.

그런데, 마치 천중산을 유람하는 듯한 속도로 오고 있다니.

괴물과 함께 있기에 여유가 넘치는 것인가.

"호위단은?"

련주의 호위단.

실상은 궁도혁의 호위단이었다.

약 백여 명으로 구성된 호위단을 완전히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었다.

제일 걸림돌이던 단주가 형과 함께 무창으로 떠난 덕에, 남아 있는 이들을 회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실, 만물련의 제법 많은 이들의 가슴에 한이 응어리져 있었다.

흐르지 않은 고인물이 되어버린 만물련.

그 자체만으로 좌절을 겪은 이들에게 한을 심어준 것이다.

궁도혁은 그저 허약한 형의 모습에 련주의 자리를 향한 욕망을 키웠지만.

만물련의 현실이 그를 돕고 있었다.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많았다.

만물련 구성원의 3할에 이르는 이들이 변화를 원했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나머지 사람들이 만물련의 현실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불만을 가진 이들의 또한 많다는 것이었으니.

그 사실에 가장 놀란 이는 궁도혁이었다.

삼령주와 만나고.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하고.

움직이려 할때.

자신에게 먼저 속내를 털어놓았던 수하, 위상형.

그날 위상형은 궁도혁의 심복이 되었다.

이미 궁도혁의 뒤에 줄을 선 이들을 모두 제치고서.

그리고 보여준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마치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변화를 원하는 이들을 회유하여 그들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궁도혁은 자신의 세를 불려갔다.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은 설득하여 흡수하거나, 흡수가 불가능하면··· 제거했다.

그렇게 만물련의 7할을 자신의 아래에 두었다. 2할은 반역으로 몰아 가두었고, 1할에 해당하는 원로원의 눈과 귀는 막았다.

형이 돌아오더라도 어찌할 수 없도록.

그 마지막 단추가 바로 비고의 만천금쇄폭뢰였다.

그 무시무시한 병기의 폭발에도 살아남은 괴물.

그 괴물이 형의 곁에 있었으니.

세를 얻었으나, 명분과 힘이 저쪽에 있다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괴물을 없애버릴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원로원의 작업장을 폐쇄해라."

궁도혁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 시작이다.

만물련의 련주 자리를 건 건곤일척의 승부다.

***

백리평은 자신의 앞에 놓인 서신을 바라보았다.

이미 한 번 읽은 서신.

다시 한번 읽었다.

그런다고 달라질 내용이 아니었다.

복잡한 눈빛.

아니, 분노한 눈빛이다.

서신의 내용이 백리평을 그렇게 만들었다.

구구절절 많은 말이 쓰여 있는 서신이다.

하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만 돌아와라.'

였다.

맹룡대의 중도 퇴관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퇴관을 희망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조건.

그동안 받은 월봉을 그대로 반납하기만 하면 된다.

월봉을 반납할 수 없다면 퇴관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매년 월봉 반납 없이 퇴관하는 이들이 제법 됐다.

무단 퇴관이다.

본디 그러면 끝까지 추적해서 잡아야 하건만, 교룡관은 그러지 않았다.

팽도율이 그러지 않은 탓이다.

이 사실이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맹룡대의 짭짤한 월봉을 노리고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들 테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무단으로 퇴관한 이들이 조용히 지냈기 때문이다.

교룡관 맹룡대에서 도망쳐서 제법 짭짤한 월봉을 모았다는 것.

어디 가서 떠벌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괜히 소문이라도 나서 교룡관에서 사람이라도 찾아오면 어찌하나.

무단 퇴관자들은 그런 생각으로 조용히 지낸 것이다.

서신과 함께 동봉된 전표.

지금까지 백리평이 받은 월봉의 총액과 정확히 일치하는 금액의 전표였다.

서신에는 전표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차후 갚으라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장문인답다고 해야 할까.

장문인의 명이다.

종남으로의 복귀.

긍지 높은 종남의 제자로, 장문인의 명이니 당연히 따라야 한다.

이건 맹룡대에 들어올 당시의 백리평이 할 법한 생각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가야 하는가?'

갈등.

현 맹룡대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기에 백리평은 고민했다.

서신을 챙겨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교룡관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없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교관이라는 작자가 생도가 찾을 때, 그 흔적조차 없다니.

상담할 이가 없었다.

결국 백리평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종남의 긍지란 종남이라는 이름 앞에서 당당한 것.'

중도 퇴관이 오히려 종남의 긍지에 반하는 일이다. 약속한 일을 행하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었으니.

그럼에도 백리평은 마음먹은 대로 행하지 못했다.

서신이라지만, 명령이었다.

장문인의 명에 반하는 것.

그것은 파문의 빌미를 줄 수 있는 것이었으니.

백리평은 수련도 빼먹고 하루 동안 고민했다.

결론은.

'돌아갈 수밖에 없나······.'

파문을 당할 수는 없으니.

종남으로 돌아가면 어떤 고초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가야 했다.

종남이라는 이름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이 백리평의 뿌리였기에.

***

"지금부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무백이 눈앞의 거대한 정문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말했다.

"각오하고 온 일입니다."

궁무혁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동생이 제법 수완이 좋은 것 같습니다. 만물련 전체가 적대적인 기운으로 가득하군요."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은 고소를 머금었다.

"약한 몸으로 연구에 파묻히다 보니, 련을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련의 대소사 전부를 동생이 처리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책 어린 말.

"그것이 반역의 명분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은 하무백의 목소리.

정문은 열려 있었다.

그러나 지키는 이가 없었다.

대신 정문 주변에서 넘실거리는 적대적인 기운.

살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련주를 대하는 수하들이 뿜어내는 살기라니.

하무백의 목소리가 차가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 뒤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놀라지 마시고요. 털끝 하나 다치는 일 없을 테니."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서 내렸다.

말에서 훌쩍 몸을 날린 하무백이 궁무혁의 앞에 섰다.

곧장 만물련의 정문을 향하는 하무백.

현판의 '만물련'이라는 글자를 잠시 일별하고는 그대로 정문 너머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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