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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48화 (148/312)

148화. 다들 몰라?

"나를 죽이려 습격한 이들이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궁무혁이 오 장로 중 한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면목 없어 하는 표정으로 좀처럼 궁무혁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이였다.

"성 장로는 나와 함께 만천금쇄폭뢰의 연구를 진행했으니 이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겠지요?"

궁무혁의 물음.

성 장로라 불린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천금쇄폭뢰라는 말에 오 장로 중 다른 네 사람의 표정도 급변했다.

몇몇은 경악한 얼굴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만천금쇄폭뢰를 사용한 후 남은 발사통입니다. 그리고 발사통을 만들 때, 내가 은밀히 각인을 남겼지요."

성 장로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천금쇄폭뢰를 제작할 때, 궁무혁이 모종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것이 발사통에 각인을 남기는 것인 줄은 몰랐지만.

"보시죠."

궁무혁이 발사통을 던졌다.

빙그르 돌며 날아간 발사통은 성 장로의 손에 잡혔다.

"흐음······."

나지막한 신음.

다른 장로들이 발사통을 기웃거리며 바라보았다.

각인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내 그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어디에도 각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궁도혁이 피식 웃었다.

"어디서 같잖은 수작을······."

"내공을 흘려 넣어보시죠. 만천금쇄폭뢰의 발사에도 역시 내공이 필요하니."

성 장로가 반사적으로 내공을 흘려 넣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두 글자.

도혁.

오 장로 모두 두 눈을 크게 떴다.

"련주를 죽이기 위해 외부인에게 련의 최대 기밀인 만천금쇄폭뢰를 반출한 자가 도혁이오. 헌데 그런 그를 따르겠다는 겁니까?"

성 장로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가뜩이나 깊은 갈등 끝에 궁도혁의 뒤에 섰던 그였던지라, 궁무혁이 밝힌 사실에 거세게 흔들렸다.

"련주. 련주께서는 련을 위해 무엇을 하셨소이까?"

그때.

가만히 서 있던 한 사내가 궁무혁에게 물었다.

"그대는?"

"위가의 위상형이외다. 련주는 새로운 병기를 만든다는 핑계로 늘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계셨소. 실제 련을 운영한 것은 여기 궁도혁 련주시지."

자신도 련주라 칭하고 궁도혁도 련주라 칭하는 그의 행동에 궁무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련주는 그저 궁가의 장남으로 태어났기에 허약한 몸임에도 련주가 되었소. 원로원 가문의 자제들은 자연스레 원로원으로 들어가고, 장로의 가문들 마찬가지고. 그렇게 늘 같은 가문, 같은 이들이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만물련이요. 고일 대로 고여서 썩어가는 연못. 대체 련주는 무엇을 하시었소?"

위상형의 물음.

그 물음에 궁무혁은 피식 웃었다.

모순에 빠진 물음이다.

"내가 한 게 없어 도혁이 련주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 하면, 되묻지. 내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련을 운영한 것은 네 말대로 도혁이다. 그때 도혁은 무엇을 하였는가? 고일 대로 고인 그 상태에 변화가 있었는가?"

"적어도 저 한 사람은 발탁하였지요. 변화는 그렇게 시작하는 거외다."

위상형은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이런 물음쯤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좋지. 작은 변화. 그렇게 시작하는 변화. 그런데, 도혁이 만천금쇄폭뢰를 건넨 외부인이 누구인지 아는가?"

궁무혁의 물음.

알 리가 없었다.

궁도혁은 마교와의 접촉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니까.

오직 자신만 알고 있는 일이었다.

여섯 사람의 시선이 궁무혁의 입으로 향했다.

대체 외부인이 누구길래.

그런 의문이 담긴 시선.

"마교. 마교다. 마교가 그걸 가지고 나를 죽이러 왔다."

쿵!

오 장로의 머릿속에 둔중한 충격음이 울렸다.

궁무혁이 세 번이나 강조한 그 이름.

마교.

궁도혁이 마교와 통하고 있었다니, 전혀 모르던 일이다.

신진팔문 중 한 곳인 만물련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전쟁의 원흉.

정파의 원수.

그게 마교요, 혈교였으니.

오 장로가 궁도혁을 돌아봤다. 지금 궁무혁이 하는 말이 맞는 말인지, 진실을 묻는 눈빛.

궁도혁은 침착했다.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이미 예상한 일.

머리 좋은 형이 저 무서운 화기, 아니 병기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리 없었으니.

"증거는요? 련주께서 마교와 손을 잡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위상형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물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마교가 어떤 놈들인데 증거를 남길까.

그날 습격자들에게서는 신분을 알릴 만한 어떠한 단서도 없었다.

"선유곡의 곡주께서 함께 있었네."

"당신의 장인이지요."

위상형은 이제 궁무혁을 련주라 칭하지도 않았다.

"선유곡의 곡주시다. 사사로운 정에 끌려 마교의 존재에 대해 거짓을 말할 분이 아니야! 지금 네놈이 선유곡주를 모욕하는 건가!"

궁무혁이 분노를 터뜨렸다.

신진팔문 중 한 곳이자, 지난 전쟁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살렸던 문파 선유곡.

그곳의 곡주가 고작 사위를 위해 마교라는 존재를 거짓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주장에 순수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만물련의 련주시외다. 만물련의 련주가 마교와 내통했다는 사실은 련주에 대한 모욕이 아닙니까!"

"련주는 나다!"

위상형과 궁무혁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가만히 있는데. 뭣 같지도 않은 놈이. 어이. 궁도혁. 네놈이 말해봐라."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하무백이 살기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기세에 순간 위상형과 오 장로 모두 오금이 저리는 감각을 맛보았다.

절로 온몸을 위축시키는 기세였다.

하무백의 살기가 이번에는 궁도혁에게로 향했다.

이를 악무는 궁도혁.

허나 그런 저항 따위 소용없다는 듯, 궁도혁의 온몸이 금세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다.

고요해졌다.

하무백이 살기를 푸는 순간.

"크헉. 헉헉헉."

"학학."

"으허···헉헉."

거친 숨을 토해내는 이들.

위상형과 오 장로의 얼굴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궁도혁은 일그러진 얼굴로 하무백을 노려보았다.

'과연 괴물은 괴물이구나······ 삼령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된다.'

그럼에도 궁도혁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삼령주에게 한번 당한 후, 련주가 되고자 마음먹으면서 한 단계 성장하기도 했고.

그리고 이곳에 펼쳐놓은 안배를 믿는 마음도 있었다.

"위 부련주가 한 말이 곧 내 뜻이다. 부련주인 그라면 궁무혁과도 대등히 이야기할 자격도 충분하고."

궁도혁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궁무혁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부련주라니.

그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궁도혁 아니던가.

언제 련주도 모르게 련주와 부련주가 바뀐 것일까.

궁무혁의 시선이 오 장로에게로 향했다. 그들도 이미 언질을 받은 것인지 별다른 놀람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무백에게 두려움에 찬 시선을 던질 뿐.

"증거라고 했던가?"

하무백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궁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백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휙 던졌다.

궁도혁의 발 앞에 떨어진 작은 주머니.

그가 그것을 주워들었다.

"봐라."

하무백의 말에 주머니를 열자, 그곳에는 검은 기운이 스며든 이빨이 있었다.

"이게······."

궁도혁은 알 수 없다는 눈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

궁무혁까지도 영문을 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다들 몰라? 그러면서 증거를 운운하나. 웃기는군. 눈앞에 증거를 줬는데."

하무백이 같잖다는 표정으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놈들. 마공을 사용하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고 있나?"

마공에 대해서 듣기만 했을 뿐, 아무도 그건 몰랐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지난 전쟁에서 최일선에서 싸우지 않았으니까.

만물련은 후방에서 병기와 화기의 보급을 주로 담당했었다.

그러니 마공을 사용하는 마인들을 본 적이 있을 리가.

"마기는 어두운 기운이야. 검은 기운이 단전에서 일어나 전신으로 번진다. 그게 몸 곳곳에 스며들어. 피부도, 눈도, 심지어 네놈이 들고 있는 그 이빨에도. 죽은 놈들을 보면 뼈까지도 검은 기운이 스며들어 있더군."

궁도혁이 손에 들고 있던 이빨을 꽉 쥐었다.

이도 악물었다.

오 장로는 주춤거렸다.

"이것도 못 믿겠다고? 당장 정천맹에 물어봐라. 뭐라 하는지. 그리고 그 이빨은 궁 련주가 습격당한 객잔 터에 묻혀 있던 놈들의 시체 중 한 구에서 뽑아온 거다. 지금도 그 곳에 시체가 가득이야."

출발 전 사흘의 시간.

그 사이 하무백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준비한 것이다.

"이익."

궁도혁이 표정이 사나워졌다.

"객잔주가 아주 착실한 사람이더군."

하무백의 말에 궁무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자신 역시 발사통을 찾으러 가서 한번 겪었으니까.

"덕분에 증거로 할 만한 게 가득해. 시체를 가져올 수 없어 이빨을 뽑아온 것뿐이다."

서늘한 눈빛.

오 장로 중 두 사람이 궁도혁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세 사람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었다.

갈등하는 듯했으나,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위상형이다.

"정체되고 고여있기만 한 만물련을 환골탈태시키려면, 그 정도 위험도 감수해야지!"

악을 쓰는 듯한 위상형.

"너 이 새끼가 돌았구나. 마교와 손을 잡은 걸 그따위로 말하고."

하무백이 으르렁거렸다.

위상형이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럼에도 하무백을 노려보았다.

그때 궁무혁이 끼어들었다.

"정체되고 고여있기만 한 곳이 아니다. 만물련은."

위상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언성을 높였다.

"그게 무슨! 원로원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원로원이었고, 오 장로 역시 마찬가지. 그 누구도 위로 오르지 못하는 곳이 만물련이건만!"

"바보 같은 소리 집어치워! 오 장로가 아니라 사 장로였다! 성 장로가 장로가 된 건 고작 오 년 전 이야! 만천금쇄폭뢰를 개발하면서! 네 놈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지 마!"

궁무혁이 거칠게 외쳤다.

그 말에 위상형이 움찔했다.

궁무혁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오 장로라 뭉뚱그려 말했지만, 성 장로가 장로가 되기 전에는 분명 사 장로였다.

애써 외면한 사실.

"정체되고 고여있다 생각한 건 네 놈이 위로 올라가려 하지 않고, 그저 환경만 탓했기 때문이다."

냉정한 말이다.

궁무혁의 두 눈도 차가웠다.

"성 장로 말고 누가 있지?"

궁도혁이 끼어들었다.

이번에는 궁무혁이 입을 닫았다.

최근 십 년간은 성 장로 한 명이었으니까.

"겨우 한 명의 장로가 탄생한 걸로 정체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야."

"도혁 네 이놈! 그동안 련을 운영한 것은 네 놈이다! 성 장로를 장로로 올리자 한 것은 나였고! 오히려 련을 정체시킨 것은 네 놈이야!"

"난 부련주였으니까."

두 사람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성 장로와 다른 장로 한 사람이 궁무혁 쪽으로 움직였다.

회유와 협박 때문에 궁도혁의 뒤에 섰던 자들.

"네놈이 련주가 되면 다를 것 같으냐!"

"형을 죽이고 련주에 오르는 거다. 그러자면 련을 모두 갈아엎어야겠지. 그러면 정체는 끝나고 새로이 약동하는 거야."

궁도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이런 입씨름은 그만하지. 어차피 결론은 간단하잖아. 강한 놈이 다 먹는다. 그러니 너도 저 인간이랑 함께 온 것일 테고."

궁도혁이 하무백을 일별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지금도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인간이었다.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빚을 얼마나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이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쳐라!"

궁도혁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남은 장로 세 명이 하무백과 궁무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느새 꺼내든 기형 병기.

두려움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결판을 내야 했기에 달려드는 것이다.

성 장로와 다른 장로가 각자의 병기를 꺼내 들었다.

그때.

궁도혁이 빙그레 웃으며, 실 하나를 들어 올렸다.

"뭐, 새로운 만물련에는 장로도 모두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야겠지."

나직한 중얼거림.

그리고 궁도혁은 실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내공을 먹고 팽팽해지는 실.

가볍게 실을 당기자.

정교한 장치가 작동하며, 네 곳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궁무혁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천잠사?"

내공을 전달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실.

그것으로 대체 무슨 수작을?

실을 따라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격발 단추가 눌린 만천금쇄폭뢰 네 기가 눈에 들어왔다.

"무, 무, 무슨! 피, 피해!!!"

궁무혁이 사력을 다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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