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으어어어
정확히 조준되어 있었다.
현재 하무백과 궁무혁이 서 있는 곳을 향해서.
언제 저런 준비를 해둔 것일까.
한 기도 아니고 무려 네 기.
동시에 발사했다.
격발에 내공이 필요했지만, 천잠사를 사용한 기관장치로 해결했다.
손에 쥐고 내공을 흘려 넣으면, 내공이 천잠사를 타고 격발 단추에까지 닿도록 한 것이다.
궁무혁의 외침에 하무백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했던 병기 네 기를 보았다.
막 공방을 펼치기 시작한 오 장로의 시선 역시 그곳에 닿았고.
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궁도혁의 명령에 기형 병기를 쥐고 몸을 날렸던 세 장로는 배신감에 물든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으나 이미 늦은 상황.
오 장로는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날렸다.
최대한 목표 지점에서 멀어져야 했으니.
사력을 다한 외침을 터뜨린 궁무혁의 얼굴도 새하얗게 질렸다.
하무백이 만천금쇄폭뢰의 폭발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직접 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한 기.
지금은 무려 네 기가 한 점을 향해 지옥 같은 불꽃을 뿜어내려 하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저렇게 네 기가 한 점을 향해 중첩되어 격발되었을 때 그 위력이 얼마나 될지 가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궁도혁은 여유만만한 얼굴로 그런 궁무혁과 하무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무백이 검을 뽑았다.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 것과 만천금쇄폭뢰 네 기가 불을 뿜는 것은 동시였다.
쿠아아앙!
새하얀 강기를 잔뜩 머금은 검이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다.
단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거대한 막을 이루는 검강의 막.
검막(劍幕).
그것도 검강의 검막이다.
처음에는 평면으로 형성되는 것 같던 검막이 반구의 형태로 하무백과 궁무혁의 머리 위를 덮었다.
쿠아아앙! 쿠앙! 콰아아앙!
대전을 떨어 울리는 폭음과 함께 시뻘건 화염이 하무백과 궁무혁을 덮쳤다.
사라지지 않고 더욱 거세게 타오르며 작열하는 폭발의 화염.
당장 기둥이 무너지기라도 할 듯, 대전이 거칠게 흔들렸다.
기둥이 흔들리며 곳곳에서 부스러진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궁도혁은 그 시뻘건 불꽃을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무감정한 것이 아니었다.
기쁨의 감정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이었다.
위상형은 놀란 얼굴로 눈앞의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몰랐다.
궁도혁이 자신에게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저런 장치가 대전에 있을 줄이야.
대체 언제 한 것이란 말인가.
궁도혁 혼자서 설치한 것이 틀림없는데.
오 장로 모두 적을 상대하고 버리는 패로 사용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적의 손을 빌린 차도살인지계라 여겼건만.
설마 그냥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이었다니.
네 기의 만천금쇄폭뢰가 어우러지며 일으키는 폭발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대전의 떨림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 폭발이 끝나고 나면 조금씩 잦아들 것인가.
"대전이 튼튼하군. 대전까지 새로 지으려 했는데."
만물련의 중심답게 튼튼하게 지은 건물이다.
흔들릴지언정 어디도 부서지지 않았다.
한 곳으로 집중 시킨 탓일까.
일점에서는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범위는 그렇게 넓지 않았다.
하무백을 보다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궁도혁이 그렇게 계산하여 장치한 것이다.
그 덕일까.
오 장로는 일단 모두 살아남았다.
두 다리가 사라졌거나, 한쪽 팔이 사라졌지만.
그중 두 사람은 기식이 엄엄한 것이, 당장 치료하지 않는다면 생명이 위태로워 보였다.
궁도혁은 그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저 새빨간 불꽃이 넘실거리는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
저 폭염이 사라졌을 때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살아남은 오 장로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폭염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곳에서 벗어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네 기의 중첩된 폭발.
자신들이 예전에 보았던 한 기의 시험 발사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옥의 겁화도 우스울 것만 같은 폭염.
저 폭염이 잦아들면,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았다.
"으어어어."
궁무혁은 너무도 놀라서 제대로 된 말소리도 내지 못 했다.
서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서는 주변의 모습에 압도당했다.
시뻘건 폭염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소멸시키겠다는 듯 넘실거리며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놈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자신에게 닿지 못했다.
무심한 얼굴로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하무백.
백색 검강이 만들어 낸 검막.
폭염은 실낱같이 얇은 한 올조차도 검막의 틈을 넘어서지 못했다.
모조리 막혔다.
심지어 단 한 줌의 열기조차도 검막을 넘어서지 못했다.
초열지옥의 열기도 우스울 정도로 엄청난 열기를 지니고 있는 폭염이었건만.
만천금쇄폭뢰를 만든 것이 궁무혁 자신이다.
그런 만큼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잘 알았다.
중첩된 만천금쇄폭뢰의 엄청난 위력에, 그리고 그 엄청난 것이 지금 자신의 터럭 하나 태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두 번이나 놀랐기에 궁무혁은 넋이 나가 제대로 말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무백은 담담한 눈으로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폭염을 바라보았다.
'제법. 강하군.'
하나와 넷은 다르기는 했다.
예상을 넘어서는 위력.
중첩된 것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감당 가능한 정도다.'
그랬다.
지난번.
만천금쇄폭뢰로 인해 죽을 뻔했을 때의 깨달음.
그 깨달음으로 넘어선 벽.
그것이 아니었다면 힘겨울 뻔했다.
예전의 하무백이었다면, 이 절반 정도의 위력을 막아내는 것이 한계였다.
어떻게든 막아내기는 했겠지만, 아마 전신의 모든 힘을 소모하고 죽기 직전까지 몰렸을 터.
지금은 달랐다.
네 기가 중첩되어 사납고 치명적인 이빨을 들이밀었지만.
하무백에게는 조금 힘을 내면 감당 가능한 정도였다.
처음 예상한 것보다는 강했지만, 내공을 좀 더 소모하면 될 일이다.
백색 검강이 더욱 빛을 발했다.
하무백이 펼치는 백색 반구형의 검막이 더 단단해졌다.
쉼 없이 검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려울 것은 없었다.
일 각의 오분지 일에 이르는 시간(약 3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시간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일까?
탈 것이 없는 허공에서 그 시간 동안 폭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폭염의 지속을 생각한다면, 놀랍도록 긴 시간이었다.
쉬지 않고 검을 움직이기에도 긴 시간이다.
어지간한 사람은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시간만 검을 휘둘러도 거친 숨을 내뱉으며 주저앉을 테니.
하무백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무심하게 검을 휘두를 뿐.
호흡도 고요했다.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하무백 본인도 살짝 놀라고 있었다.
사부와의 대련으로 자신의 수준을 제대로 가늠했다고 여겼건만.
이렇게 실전을 치르니 그것과는 또 달랐다.
'덕분에 이렇게 강해졌다고 해야 하나.'
하무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강해졌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아무리 강해져도 부족했다.
마교와 혈교.
이 버러지들을 말끔히 박멸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강해져야 했으니.
이번에는 마교의 그 버러지 덕에 죽을 위기를 넘어서며 강해졌다는 것이 재미난 일이었지만.
사실 지난 두 번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혈교와 마교.
이놈들과 싸우면서 갖가지 위기를 넘기며 하무백은 강해져 왔으니까.
***
"타핫! 탓!"
"좀 더 열을 맞춰! 거기 위치가 흐트러졌다!"
사력을 다한 기합성과 그런 이들을 지적하는 외침.
관주각을 나와 맹룡숙으로 향하던 백리평의 귓가에 아스라이 들리는 소리였다.
'휴관기인데?'
백리평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었다.
후반기가 끝나고 동계 휴관기에 들어선 지금.
저렇게 단체로 훈련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리평의 발길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대연무장이었다.
백리평도 훈련을 받았던 곳.
제갈명의 방패술 훈련을 받던 곳이었다.
역시나 단상에는 제갈명이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하는 이들은.
'맹룡대 이 년 차.'
이제 교룡관에서의 훈련 과정을 마치고 산월마림으로 가야 하는 이들이었다.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의 그 명절을 보내고 나흘 뒤면 산월마림으로 떠난다 했다.
자신 역시 일 년 뒤에 겪을 과정이기에 알고 있었다.
산월마림으로의 배치를 기다리며 쉬고 있을 줄 알았다.
일부는 기대를 가지고, 일부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러나 백리평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수련하고 있었다.
자신이 일 년 차 때 배운 방패술이었지만, 달랐다.
진형이 추가되어 있었다.
혼자서 강시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 둘, 셋, 넷, 다섯.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의 방패로 협력하여 강시를 막을 수 있는 진형.
저들과 달리 이미 산월마림을 겪고 온 백리평이었다.
그랬기에, 저 방패술과 진형의 움직임이 효과적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철저히 방어와 생존에 치중한 움직임이다.'
그럴 수밖에.
맹룡대의 역할은 강시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
강시를 공격하는 것은 봉마단의 역할이다.
백리평은 그렇게 들었다.
목숨 걸고 막는 것은 맹룡대.
죽여서 공적을 세우는 것은 봉마단.
'부조리하군.'
문득 든 생각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배치를 눈앞에 두고 필사적으로 훈련을 하는 맹룡대 선배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봉마단은 과연 저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을까?
백리평의 시선이 잠룡대와 와룡대의 연무장 쪽을 향했다.
그리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수련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룡대와 와룡대를 수료한 이들 중 일부가 봉마단으로 배치될 텐데.
그 날짜는 맹룡대와 같은 날이다.
잠룡대, 와룡대의 사 년 차 생도들은 그저 그날을 기다리고만 있는 듯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대연무장의 공기와는 다르게, 잠룡대와 와룡대의 공기는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는 듯했으니.
백리평의 시선이 단상 위의 제갈명에게로 향했다.
잠룡대의 교관.
그런데 열과 성을 다해 맹룡대를 가르치고 있었다.
휴관기였기에, 그의 공식적인 업무는 끝이 났음에도.
게다가 저 방패술과 진형.
처음 방패술을 익혔을 때는 몰랐다.
그러나 산월마림에 다녀온 후인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철저히 강시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만들어 낸 방패술이요, 진형이었다.
백리평은 확신했다.
'제갈명 교관님은 산월마림에 다녀온 적이 있다.'
자신 역시 다녀왔기에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곧 교룡관을 떠날 맹룡대 이 년차 생도들.
그런 그들의 필사적인 수련을 지켜보고 있자니 가슴 깊숙한 곳이 꿈틀했다.
'돌아가기 싫다.'
가슴에서 울리는 솔직한 심정.
백리평은 저 훈련 덕에 자신의 진심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잠룡대 교관 제갈명과 맹룡대 이 년차 생도들.
저들의 치열함이 백리평의 가슴을 울렸다.
잠시 더 훈련을 지켜본 백리평이 걸음을 옮겼다.
향하는 곳이 달라졌다.
맹룡숙이 아닌 맹룡대 칠 조의 연무장.
어차피 퇴관하려면 하 교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가 자리를 비운 지금.
맹룡숙에 틀어박혀 헛된 시간을 보내느니, 검 한 번 더 휘두르는 것이 훨씬 나았다.
저 절박하고 치열한 맹룡대 선배들의 모습처럼.
"어? 오늘은 왔네?"
당진산이 그런 백리평을 반겼다.
이미 칠 조의 연무장은 가득 차 있었다.
당진산, 단목운뢰, 낙우진, 연하민 그리고 주우명까지.
백리평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이거야.'
***
겁화와도 같은 폭염이 서서히 그 기세를 줄여갔다.
지금까지 타오른 시간만 해도 대단했다.
화기와 화약을 아는 이라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시간동안 타올랐으니.
그렇게 만천금쇄폭뢰의 폭염이 가라앉고 드러난 광경.
그 모습에 궁도혁이 벌떡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저, 저, 저, 저게······."
떨리는 목소리.
궁도혁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 펼쳐진 정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