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50화 (150/312)

150화. 아직 안 끝났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하얀 반구체.

작열하는 화염이 사라진 자리에 드러난 것이다.

새하얀 빛이 반사되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본디 저 자리에 있었던 존재.

궁무혁과 하무백.

그들이 사라지고 대신 나타난 반구였으니.

두 눈을 부릅뜬 궁도혁, 위상형.

둘의 몸이 잘게 떨렸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기에.

백광을 발하던 반구체의 빛이 점점 옅어졌다.

그러면서 내부가 조금씩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한 얼굴로 팔을 휘두르고 있는 하무백과 그 뒤에 멍한 얼굴로 서 있는 궁무혁.

역시나, 두 사람은 살아 있었다.

아니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도 멀쩡했다.

어찌 털끝 하나 상하지 않았단 말인가.

하무백이 궁도혁과 두 눈을 마주쳤다.

싱긋.

하무백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

그 미소를 보는 순간 궁도혁은 아득한 공포를 느꼈다.

그렇게 섬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능이었다.

하무백의 미소를 보는 순간 궁도혁은 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무백을 향해 쭉 뻗은 팔.

내공을 불어넣은 손으로 단추를 눌렀다.

딸칵.

소리와 함께 만천금쇄폭뢰의 발사통이 다시 한번 철환을 토해냈다.

만일을 대비해 자신이 소지한 마지막 한 기.

그것이었다.

철환이 곧장 폭발해 화염 폭풍을 일으키려는 찰나.

하무백은 백색 강기가 선명히 맺힌 왼손을 뻗었다.

그의 왼손이 그대로 화염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손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온 강기가 화염을 모두 먹어 치웠다.

"몰랐을 때 당한 한 번이면 충분해."

그때도 충분한 준비를 하고 방어했다면, 그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졸지간에 만천금쇄폭뢰와 만천혈뢰의 화염 폭풍에 휩쓸렸기에 죽음의 위기까지 간 것이다.

위력도 모르는 상태에서 급하게 끌어올린 강기로 막았헜으니.

이제는 다르다.

충분히 그 위력을 알고 준비할 시간도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수강을 넓게 펼쳐, 화염을 완벽히 가뒀다.

그 속에서 불꽃이 아무리 거세게 타오른다 한들, 그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어, 어찌······."

궁도혁이 덜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이 지근거리에서, 만천금쇄폭뢰를 아무것도 아닌 듯 막아내는 모습이라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신위였다.

오 장로 중 살아남은 세 사람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기식이 엄엄하던 두 사람은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결국은 그대로 명을 다했다.

위상형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저 괴물은 대체 뭐란 말인가.

만천금쇄폭뢰 네 기의 중첩된 폭발에서도 멀쩡하고, 한 손으로 만천금쇄폭뢰를 무력화 시키다니.

사실은 만천금쇄폭뢰가 별것 아닌 병기였던가.

그런 착각마저 머릿속에서 일어났다.

하무백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만큼 더 섬뜩해졌다.

공포스러운 미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간지옥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지옥의 야차가 자신들을 보고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듯했다.

"내가 받을 빚이 좀 있지. 궁도혁. 네놈에게."

하무백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급할 것은 없었다.

조금 전 다급하게 품에서 꺼낸 만천금쇄폭뢰를 격발한 것으로 보아, 놈이 준비한 수는 이제 바닥이 난 듯했으니.

저벅. 저벅.

대전에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태사의가 놓인 높은 단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하무백은 서두르지 않고 계단 하나하나를 밟고 올라갔다.

그동안 궁도혁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조금 전의 당당하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상식을 넘어선 괴물이 자신을 죽이러 오고 있다는 공포에 점차 잠식되고 있는 궁도혁.

"네 이놈!"

공포에서 먼저 벗어난 것은 위상형이었다.

그는 검을 뽑아 들고 하무백을 향해 몸을 날렸다.

부질없는 반항이었다.

"크악."

하무백이 가볍게 휘두른 주먹에 맞고 형편없이 날아가 비명을 질렀다.

단 한 방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래턱은 거의 박살이 났는지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수하 하나는 잘 뽑은 모양이군."

위상형을 잠깐 힐끗한 하무백이 그리 말하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한자.(약 30cm)

그 거리를 두고 하무백이 궁도혁을 마주 보았다.

궁도혁은 감히 하무백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눈 돌리지 말고 똑바로 보는 게 어떨까?"

하무백의 말에도 궁도혁은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눈 깔고 있는 거 보니, 이제는 제 주제를 똑똑히 아는 모양이군."

피식 웃으며 말하는 하무백.

"난 네 덕에 죽을 뻔했었다. '이제 정말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지. 그래, 만천금쇄폭뢰를 나한테 쏜 놈은 삼령주 그 빌어먹을 새끼야."

그때를 떠올리는 하무백의 음성에 분노가 서서히 차올랐다.

다시 떠올려도 화가 나는 그때 그 순간.

"헌데, 네놈이 그 만천금쇄폭뢰를 삼령주 새끼한테 주지 않았으면, 그럴 일도 없었지."

분노가 극에 달해 음산하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해서 고민이 많았다. 네놈을 어찌해야 하나. 궁 련주가 만물련으로 함께 가줄 수 있냐고 부탁했을 때부터였지, 아마. 그때 난 네놈을 단번에 죽여버리겠다고 거의 마음을 먹었었어."

하무백의 살기 가득한 말에 궁도혁의 몸이 덜덜 떨렸다.

"헌데 여기 와서 마음을 바꿨어."

마음을 바꿨다는 말에 궁도혁의 두 눈에 실낱같은 희망이 떠올랐다.

자신이 궁무혁과 하무백에게 행한 일은 까맣게 잊고는, 죽을 위기에 처하자 어떻게든 살아남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하무백이 고개를 돌려 궁무혁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궁무혁.

"마음 가는 대로 하십시오."

동생의 처분을 온전히 하무백에게 맡겼다.

고개를 끄덕인 하무백.

"그냥 죽이는 건, 네놈에게는 너무 자비로운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어. 제 형을 죽이겠다고, 저 악마 같은 병기를 네 기나 중첩시키는 놈인데 말이야."

어느새 검을 검집에 납검한 하무백의 오른손이 붉게 물들었다.

삼매진화에 집중해서 생긴 현상이다.

붉게 물든 손의 빛깔이 노랗게 변하는가 싶더니, 하얗게 물들었다가 이윽고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엄청난 열기에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궁도혁은 만물련의 부련주다.

대장장이 일의 기본은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랬기에 저 푸른빛으로 발하는 삼매진화를 보며 온몸을 떨었다.

저것이 얼마나 뜨거운 열기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 그것으로 대체 무얼···."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푸욱.

하무백은 그 오른손을 그대로 궁도혁의 단전에 찔러 넣었다.

"끄어어어억."

어마어마한 열기가 주는 고통에 궁도혁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눈이 까뒤집히며 그대로 혼절하려는 순간.

하무백이 오른손을 빼며 왼손으로 그의 혈을 짚었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는 궁도혁.

"그리 쉽게 기절하면 재미없잖아. 아직 많이 남았는데."

궁도혁은 하무백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크아아악. 아아악. 악. 아악. 아악. 아아악."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고통에 찬 비명.

그럴 수밖에.

하무백은 그의 단전을 그냥 파괴한 것이 아니다.

삼매진화를 극도로 응축시켜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열기로, 궁도혁의 단전을 그대로 태워 없애 버렸다.

그 열기로 인한 고통과 단전이 파괴된 고통,

거기에 더해 하무백의 손이 파고들었던 복부의 타버린 살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화상의 고통까지.

매캐하게 살이 탄 냄새가 자신의 코까지 들어왔으니.

궁도혁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아악."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로, 그냥 죽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죽, 죽는 게, 나아. 그래. 죽는 게······."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궁도혁은 자신의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내공을 집중해 스스로의 머리를 내리쳐 죽을 생각이었다.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내공도 없는 놈이 그런다고 죽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단전이 파괴되었다.

전신의 내공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하무백의 말에 그 사실을 깨달은 궁도혁은 여전히 비명을 지르면서 황급히 자신의 품을 뒤졌다.

만천금쇄폭뢰는 사용했지만, 아직 만천혈뢰가 남았다.

그것도 몇 개 챙겨둔 터다.

그걸 입에 물고 발사하면 순식간에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으리라.

그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무백이 그리 두지 않았다.

하무백의 오른손은 여전히 새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샤악.

가볍게 움직인 손끝.

"끄아아아악!"

다시 한번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양쪽 어깨와 손목의 근맥을 불태워 잘라 버렸다.

흉측한 화상이 순식간에 생겼다.

"카아아아악."

온몸을 흔들며 비명을 지르는 궁도혁.

근맥이 잘리며 팔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몸부림치는 수밖에 없었다.

위상형은 궁도혁의 그런 모습에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사지 중 한 곳을 잃고 살아남은 세 장로도 마찬가지였다.

궁무혁 역시 차마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오로지 하무백만이 차가운 눈으로 그런 궁도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직 안 끝났다."

그 말에 궁도혁의 두 눈은 광기로 가득 찼다. 극심한 공포에 미쳐 버린 것이다.

"히이이익. 크아아악."

놀람과 비명이 뒤섞인 기이한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궁도혁.

그러나 얼마 가지도 못하고 철푸덕 쓰러졌다.

양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서 균형을 잃은 것이다.

하무백은 천천히 다가가 궁도혁의 양 발목의 근맥마저 불태워 버렸다.

"끄으으으윽. 끄윽. 끄윽."

눈이 새하얗게 까뒤집어졌고,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다.

궁도혁은 그대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했다.

하무백은 이번에는 그를 깨우지 않았다.

몸을 돌려 단상을 내려왔다.

"히, 히끅. 히끅."

그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위상형은 연신 딸꾹질을 해댔다.

대체 자신은 무슨 정신으로 저런 괴물과 싸우려 한 것인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턱이었음에도, 딸꾹질을 멈출 수 없었다.

하무백은 공포에 질린 위상형은 일별도 하지 않은 채 궁무혁에게 다가갔다.

"제 빚은 다 받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궁무혁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무백이 이제야 위상형을 향해 다가갔다.

"으? 으어어어. 으어지마(오지마)··· 으어지마······."

턱이 부서진 탓에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충분히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무백이 그런 위상형의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양손을 뻗었다.

우드득.

부서진 턱뼈는 그대로였지만, 턱관절은 대강 제자리에 맞췄다.

"아아악."

부서진 턱뼈를 우악스럽게 잡고 맞췄으니, 그 고통에 위상형이 비명을 질렀다.

"네놈들이 한 짓을 전부 말해 봐라. 여기 련주께."

궁도혁의 최측근이었으니, 궁도혁이 만물련을 장악하기 위해 행한 수작을 모두 알고 있을 터.

그것을 바탕으로 이제 만물련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릴 차례였다.

위상형은 벌벌 떨면서, 통증이 가득한 턱을 부여잡고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말했다.

궁무혁은 가만히 그 내용을 모두 들었다.

"하아. 도혁아, 도혁아······."

한탄 가득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궁무혁.

설마 비고마저 뚫었을 줄은 몰랐다.

하긴 그랬으니 다섯 기의 만천금쇄폭뢰를 구한 것일 터.

선유곡의 술법으로 비고를 잠가놨다고 너무 방심했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던 것을.

"일단 도혁이 놈 방에 가봐야겠습니다."

궁무혁이 앞장섰고, 하무백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들어선 궁도혁의 집무실.

온갖 도면들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도면을 살피던 궁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저희에게 발사한 만천금쇄폭뢰의 중첩기관 설계도로군요."

궁도혁도 만물련의 부련주.

그 역시 뛰어난 대장장이였다. 궁무혁이 워낙에 천재적이라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해 보였을 뿐.

"응? 이건?"

그때 하무백의 눈에 띈 무언가.

그의 두 눈이 세차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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