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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52화 (152/312)

152화. 그는 정파입니다

공야장천이 비딱한 표정으로 문인백송을 바라보았다.

살랑살랑 흔들던 전서는 내려놓았다.

"왜 그러십니까?"

갑작스러운 시선의 변화에 문인백송이 공야장천을 보며 물었다.

"내가 전서의 내용을 전부 이야기했던가?"

"필사본을 만들었다고 하셨지요."

"그렇지. 고작 그 한마디 했지. 그런데 자네는 내용을 전부 알고 있구만. 이런 데에 통찰력을 사용하는 건 낭비라 하지 않았던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음성으로 묻는 공야장천.

그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문인백송.

"무슨 말씀이신지. 이 정도 일은 그냥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릅니다. 굳이 어찌 된 영문인지 통찰하려 하지 않아도요."

공야장천이 가만히 그런 문인백송을 응시했다.

"문인 군사."

"네."

"자네가 이토록 뛰어나니, 사해련을 이끌어 가는 련주의 입장에서 정말 기껍기 짝이 없는 일이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공야장천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네 참 재수 없구만."

"감사합니다."

이어진 말에도 연신 감사하다는 문인백송.

공야장천은 더욱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다 알고 있으니, 대책도 이미 자네 머릿속에 있는 거 아닌가?"

공야장천의 물음에 문인백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시고, 새로이 하오문주로 밀 이를 물색하셔야지요. 이번에는 욕심이 좀 덜한 자로 하시고, 지난 전쟁에서 멸문한 문파의 절기 중 제법 쓸 만한 걸로 하나 보내주시고요."

"뭘 거절하란 건가?"

"멸공을 바칠 테니, 그 괴물을 막아달라고 했을 거 아닙니까?"

문인백송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랬지."

전서의 내용을 떠올리며 공야장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멸공을 바친다는 것부터가 예초아 그 요망한 계집의 술수입니다."

문인백송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공야장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문인백송의 조언을 바탕으로 생각하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혈교와 마교를 대하는 그 빌어먹을 괴물 놈의 태도.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는 흉신악살 같은 모습이었다.

사해련이 멸공을 가지고 있다?

사해련이고 뭐고 없다.

그 사실을 알면 당장에 달려와 자신과 사달을 내려 할 것이다.

"그 괴물이라면 시일이 얼마가 걸리든 본련과의 전쟁도 불사할 겁니다."

문인백송의 말에 공야장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의 생각 역시 같았으니. 그놈을 겪어봤기에 안다.

"하아. 하무백 그 골치 아픈 새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게 만드는 놈이었다.

"우리가 멸공의 필사본을 받는 순간, 하오문을 위한 것이든 아니든 결국 그 괴물과 싸우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하오문을 무시한다 해도, 예초아 그 교활한 계집이 죽기 전에 그놈에게 말하겠지. 필사본은 사해련에 넘겼다고."

공야장천의 말에 문인백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런 간사한 계집이지요."

"우리가 먼저 제거할까? 이 음흉한 년이 감히 사해련에 수작을 부려?"

공야장천의 말에 문인백송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냥 가장 빠른 전서응을 통해서 거절만 하시면 됩니다. 이미 보낼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냥 거절하지 마시고, 혹여라도 멸공의 필사본을 본련에 보내면 하오문을 멸문시켜 버리겠다는 협박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단 보내고 보겠군. 우리를 차도살인지계의 칼로 이용하려고."

"워낙 사특한 년이니까요."

"하지만 멍청하군. 어느 쪽이 칼이 되고, 어느 쪽이 죽어 나갈지 판단을 못 하니."

"그 괴물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니까요. 하오문에서야 자신들의 정보력으로 모두 파악하고 있겠다 생각하겠지만······."

거기까지 말한 문인백송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자신도 그 괴물의 진정한 실력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

그저 련주가 말하는 정도를 그대로 적용할 뿐.

하지만 사람인 이상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무위였다.

그 괴물이 홀로 사해련과 전쟁을 벌일 거라는 예상은 그의 성정과 련주가 상정한 무공의 경지를 토대로 예측한 결론이었다.

자신의 이성이 도출한 결론이지만, 자신의 감성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아, 그리고 하무백 그 괴물에게 단서를 살짝 흘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필사본이 있다고 다 알릴 것도 없이, 필사본의 가능성만 흘려도 그라면 알아차릴 겁니다. 아니, 어쩌면 어떤 계기로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지요."

문인백송의 말에 공야장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필사본의 존재를 모르고 넘어갔다고? 믿기지가 않는데."

지난 전쟁에서 공야장천이 겪은 하무백은 치밀하고도 똑똑한 무인이었다.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무서운 놈이었고.

"그 인간은 자네처럼 자만해서 보통 사람을 눈 아래로 깔보고 그러지 않아. 그래서 더 치가 떨리는 놈이고."

"흐음."

아주 잠시 생각에 잠기는 문인백송.

그가 곧 입을 열었다.

"어쩌면 알고도 넘어간 걸지도 모르겠군요."

"왜?"

"자비를 베풀어 준 거라 생각하면 되지요."

"그러니까 왜?"

공야장천이 아는 하무백은 절대 그럴 인간이 아니다. 특히나 혈교와 마교에 대해서는.

"지난번 하오문과 사달이 났을 때의 보고서를 보아하니, 하무백이 예초아의 딸을 죽인 모양입니다."

"그게 어쨌다고?"

사파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다. 하무백은 그런 사파인 자신들이 봤을 때도 치가 떨리는 놈이고.

"동생 때문이 아닐까요? 예초아의 딸보다 조금 어린 여동생이 있다고 했는데. 아마 여동생과 함께 지내면서 심경이나 내면의 변화가 좀 생긴 것일지 모르겠지요."

"사파보다 더 지독한 그 녀석이?"

공야장천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는 정파입니다."

할 말 없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공야장천이 태사의에 몸을 묻었다.

하오문의 전서는 이미 삼매진화에 의해 한 줌 재로 화한 상태였다.

"내 도장 가지고 있지? 그럼 말한 대로 진행해. 그 괴물에게 정보를 흘리는 건 관두고. 그놈이랑은 털끝 하나도 엮이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험준한 형산의 산세를 향해.

"알겠습니다."

짧게 대단한 문인백송은 자신이 나왔던 문으로 다시 들어갔다.

***

"과연 어쩌고 있을까?"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차는 하무백이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궁금했다.

일말의 인정에 이끌려 자신답지 않게 준 기회였다.

딸을 잃은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서.

예초아는 과연 그것이 기회인 것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복수에 눈이 돌아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땅을 치달렸다.

능광만리행(淡光萬里行).

사문의 가장 빠른 신법이다.

이것을 이렇게 전력을 다해 진심으로 펼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야말로 빛살이 되어 달려 나가는 모습.

하무백은 장안을 향해 똑바로 달렸다.

산이 나오면 산을 넘고, 강이 나오면 강물 위를 달렸다.

그 어떤 장애도 용납하지 않고 그대로 주파했다.

하남 천중산에서 섬서 장안까지.

직선으로 곧장 달렸을 때 대략 천삼백 리에 이르는 거리였다.

잘 훈련된 준마가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대략 삼백 리.

말이 도착하여 탈진해 죽을 정도로까지 몰아붙인다면 사흘에서 나흘 정도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무백은 그것을 온전히 경공으로 달렸다.

수면을 취하는 한 시진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렇게 사흘 후.

하무백은 장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

장안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적당한 객잔을 찾아 수면을 취하는 것이었다.

빨리 해치우고 빨리 돌아가려는 생각에 제법 무리를 했다.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이었지만, 지난번 벽을 넘은 덕일까. 그렇게 부담이 되진 않았다.

지난 전쟁에서는 분명 제법 무리가 되었었는데.

그렇게 꼬박 하루를 잠만 잔 후,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다스렸다.

하무백의 경지가 있었기에 그렇게 몰아붙였음에도 단전은 멀쩡했다.

소모된 내공이 좀 있었을 뿐.

"그놈이 장안에 왔다고?"

예초아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장안은 그야말로 하오문의 영역이다.

장안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에 대한 정보가 쉼 없이 하오문의 총타로 전해졌다.

하무백 같은 특급 경계 대상의 진입이야.

그가 객잔에 나타나는 순간 바로 전해졌다.

너무도 빠른 움직임에 그가 장안의 담장을 넘는 것을 파악한 이는 없었다.

하무백이 묵고 있는 객잔도 하오문이 관리하는 곳이다.

그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실 장안의 객잔과 기루 절반에 하오문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다.

장안 안에서라면 하오문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익."

불안한 얼굴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무는 예초아.

최근 생긴 버릇이었다.

정확히는 사해련의 답신이 도착했을 때.

전서응 중에서도 가장 빠른 해동청을 이용해 보내온 답신.

그 내용에 예초아는 이를 악물었었다.

'도움을 줄 생각은 없으니, 알아서 해결하라니. 필사본을 보내는 순간 사해련에서 본문을 멸문시키겠다고? 빌어먹을 새끼들. 그간 우리에게서 가져간 정보가 얼마며, 상납금이 얼마였는데······.'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사파의 바다와 같은 연합이라는 의미의 사해련이다.

휘하에 들어온 사파들을 모두 보호해주겠다는 거창한 의미.

그런데 자신들을 버렸다.

물론 정사가 합의한 금기인 혼돈혈하멸공에 손을 댄 자신들의 잘못도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버림받을 줄이야.

사해련주 공야장천도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다.

그랬기에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

하무백 그 괴물은 그래도 개인이지만, 사해련은 집단이었다.

그것도 강호 사파들이 모두 모여 만든 집단.

정천맹과 함께 당금 무림을 양분한 거대 집단.

예초아가 거기에 반항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원한은 절대 잊지 않겠다.'

이를 악무는 예초아.

그렇게 마음먹은 것이 불과 이틀 전이다.

그런데 오늘 그 괴물이 장안에 들어왔다.

마치 전부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놈의 동태는?"

"계속 자고 있다고 합니다."

"왜 왔을까?"

예초아의 물음.

수하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은 이호법에게서 나왔다.

"우리가 예상했던 일 때문이겠지요."

그 말에 예초아의 두 눈이 세차게 떨렸다.

그녀에게 불안증세까지 만들어 준 일.

"저희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겁니다."

이호법이 자포자기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왜! 하오문도 좀 강해지겠다는데! 그게 뭐라고!"

예초아가 악을 쓰듯 외쳤다.

이호법은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다.

'방법이 틀렸으니까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를 쏟아낸 예초아는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이호법에게 물었다.

이호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사해련에서 도와주었다면 모를까. 사실 그를 막으려면 사해련주가 직접 와야 할 정도이니······."

그 말에 예초아의 두 눈에 서서히 절망이 자리했다.

"하···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으면서. 이제 와 대체 무얼······. "

원망 섞인 예초아의 중얼거림.

산월마림으로 향할 때, 자신들이 끼어들어 연가에 도움을 주고 훼방을 놓았는데도 하무백은 딱히 하오문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놈의 성정이라면 그 전에 이미 장안을 뒤집어엎었어야 했다.

몇 개월이나 조용히 있을 리가 없었다.

해서 잘 넘어갈 줄 알았다. 아니 사실은 그게 폭풍전야의 고요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그랬으니 불안증까지 생긴 것이고.

"모르겠습니다."

이호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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