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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53화 (153/312)

153화. 인사나 해야겠군

섬서성 장안.

옛 왕조의 왕도를 몇 번이나 했던 도시로, 그 번화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곳이다.

항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인데, 어제 오늘 장안 사람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장안 곳곳에 긴장이 감도는 것이다.

분명 어제 아침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찼던 곳인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외출을 줄였다.

특히나 객잔과 기루가 그러했다.

자연히 손님이 줄었지만, 주인들은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현재 장안에서 제일 긴장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었으니.

특히.

풍화객잔(風花客機)의 객잔주인 황찬의 긴장과 불안은 극도로 치솟아 있었다.

다른 게 아니다.

문에서 특급 경계 대상으로 삼은 이가 자신의 객잔에서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음이니.

지금 본문의 눈과 귀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해야 하니.

하오문도 경력 이십 년이 넘은 그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이 어찌 하루 열두 시진을 잘 수가 있지?

그놈이 도착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난 때였다.

그때 객잔이 소란스러워짐이 느껴졌다.

점소이나 숙수, 손님들의 움직임에 변화는 없었다.

평소와 같았다.

그럼에도 황찬은 묘한 분란을 느꼈다.

하오문 정보원들의 움직임을 느낀 것이다.

그가 직접 그 기척을 느낀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일반 문도로 무공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니.

다만 이십 년 세월의 경력이 준 육감이 그리 알려 온 것이다.

'일어났나 보군. 제발 빨리 나가라. 제발.'

혹시라도 자신의 객잔에서 싸움이 벌어질까 걱정이었다.

물론 본문에서 다 보상해주지만, 그럼에도 객잔이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을 보는 심정은 편치가 않았으니.

황찬은 일 층 자리를 채우고 있는 손님들을 슬쩍 훑어보았다.

'젠장. 많이도 몰려들었군.'

절반 정도가 무림인이다.

하오문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온 이들.

특급 경계 명령이 떨어지면 이렇게 힘들었다.

황찬의 풍화객잔을 채운 무림인들 대다수가 사파의 인물들이었다.

문인백송은 하오문에만 전서를 보낸 게 아니었다. 장안 주변의 사해련 지부와 소속 사파, 그리고 직접 운용하는 정보 조직에게도 보냈다.

장안을 주시하고 있으라고.

문인백송의 생각에 하무백이 하오문을 뒤집어엎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니.

하지만 문인백송의 예상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전서를 받고 이틀도 되지 않아 하무백이 장안에 나타날 줄이야.

그래서 화급히 이들이 풍화객잔에 모여든 것이다.

하오문과 사해련의 눈과 귀가 집중된 곳.

하무백은 너무도 평온했다.

운기조식까지 마치니 온몸이 개운했다.

"역시 사람은 잠을 자야 해."

넘치는 내공 덕에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며칠은 버틸 수 있는 몸이었다.

그래도 충분한 수면을 취했을 때와 그러지 않았을 때의 몸의 상태를 보면 차이가 상당했다.

"흠. 많이도 몰려왔군."

장안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화들짝 놀란 뱀이 머리를 쳐들고는 자신을 노려 보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응? 사해련은 왜?"

하무백의 기감에 걸린 사해련의 무인들.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무백.

자신과 하오문의 일에 사해련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해련주 공야장천과 군사 문인백송이라면.

"아, 예초아가 도움을 청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하무백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맺혔다.

"아무래도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 같군."

살렸다면 그녀가 사해련에 도움을 청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

하오문에서 파악하고 있는 하무백의 경지가 딱 거기까지였다.

사해련에서 나서만 주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해련주 공야장천만 하더라도, 정천맹주 소휘웅과 자웅을 결할 수 있다고 알려진 절대고수이자, 지난 전쟁의 영웅이지 않던가.

"인사나 해야겠군."

하무백은 객실에서 나와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다.

허기가 느껴지니 식사도 해야 했고, 사해련에서 온 친구들에게 인사도 해야 했으니.

하무백이 움직이자 객잔에 은밀히 숨어있던 이들이 바빠졌다.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기척에 하무백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일 층.

계단 앞에서 주욱 둘러보았다.

그중 한 놈.

'저놈이군.'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인사를 전할 자는 딱 한 놈이었다.

살펴본바, 사해련의 정보조직인 흑무단(黑襄團).

그곳 특유의 내공을 익힌 이가 딱 하나 있었다.

하무백은 그가 앉은 식탁으로 다가가 맞은편에 풀썩 앉았다.

"무, 무슨?"

오리구이 하나에 술을 홀짝이고 있던 그는 깜짝 놀랐다.

감시 대상이 자신 앞에 앉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문인백송이 아무 말도 안 했어?"

하무백의 물음에 눈앞의 남자는 그대로 뻣뻣하게 굳었다.

설마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이의 이름이 곧바로 튀어나올 줄은.

하무백은 그 반응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해줬나 보군. 그럼 명령이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거라는 뜻이고. 내가 장안에 도착했다는 보고서가 한창 형산을 향해 날아가고 있겠네."

상대의 혼잣말을 들은 남자는 입을 쩍 벌리고는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씹고 있던 오리고기가 흘러 나와 떨어졌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 남자는 송호신이라는 자로.

사해련 흑무단 소속 장안지부 정보원이며, 엊그제 급하게 도착한 명령에 따라 하무백을 쫓는 중이었다.

장안지부 정보원들 모두가 장안을 샅샅이 살펴 어제 이 목표가 풍화객잔에 투숙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이곳에 죽치고 있던 것이다.

풍화객잔이 송호신의 담당 영역에 있었기에.

그런데 이렇게 한 번에 발각되었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명령에도, 절대 들키지 않도록 조심에 또 조심을 기하라 되어 있었건만.

하무백은 상대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입 안에 있는 것은 좀 제대로 씹어서 삼키고. 점소이. 여기!"

하무백은 그러면서 점소이를 불렀다.

"넵. 손님!"

후다닥 달려온 점소이가 재빨리 하무백이 앉은 자리 앞의 식탁을 닦았다.

"닭튀김 하나랑 소면 하나."

하무백이 동전 두 냥을 튕기자 점소이가 잽싸게 낚아챘다.

"남는 건 가지고."

"감사합니다!"

점소이는 큰 소리로 외치며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하무백의 시선이 눈앞의 사내에게로 향했다.

"이름은?"

"으, 그······."

"피차 다 아는 사이에 굳이 숨길 이유가 있나?"

"송, 송호신이요."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무백.

"너무 그렇게 주변 눈치는 보지 말고. 기막을 쳐 놓았으니 우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하무백의 말에 송호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하다니. 역시 특급 경계 대상이다.

기실 그는 하무백의 이름과 그가 특급 경계 대상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현장의 정보원이 그렇듯 목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전달되지 않았다.

"문인백송이 뭐래?"

대사해련 군사의 이름을 동네 한량 부르듯이 부르는 저 모습.

당장 분노해야 했지만, 송호신은 나름 눈치가 빨랐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그저 순순히 묻는 말에만 답했다.

"그, 대협을 조심해서 살피라 했습니다."

"그다음은?"

"보고만 하고 절대 관여하지 말라고."

하무백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음식은 순식간에 나왔다.

점소이가 올려 둔 소면과 닭튀김을 잠시 먹던 하무백이 다시 물었다.

"정말 그게 전부야?"

"네. 장안의 모든 사파들에게 절대 부딪히지도 말고 관여하지도 말라 했습니다. 혹여라도 목표, 아니 대협과 특정 사파 간에 분쟁이 생기더라도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으음."

닭고기를 막 씹어 삼키던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염려했던 것 때문에 사해련에서 나온 것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사해련과 엮이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단순히 거대 단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사파의 연합이었기에, 정천맹과도 복잡한 관계로 엮인 탓이었다.

"역시 공야장천이나 문인백송은 똑똑하군. 누구와는 다르게."

하무백의 중얼거림에 송호신은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사해련주마저 저리 취급할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 사이 하무백은 소면과 닭튀김을 모두 먹어 치웠다.

차 한 잔으로 입을 씻어낸 뒤.

"가자."

"네?"

하무백의 말에 송호신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가자니.

"내가 뭐 하는지 지켜보다가 보고해야 한다며? 힘들게 뭘 숨어서 보고 있어. 그냥 같이 다니면 되지. 그러니까 따라와라."

하무백의 말에 송호신은 엉거주춤 일어났다.

대체 이 인간은 뭐란 말인가?

련에서는 무엇 때문에 이 인간을 감시하라 했단 말인가?

군사님은 이 인간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계신단 말인가?

온갖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송호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무백을 따라 걷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움직이자 풍화객잔은 조용히 소란스러워졌다.

하무백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객잔주 황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변고 없이 저 특급 경계 대상이 자신의 객잔을 떠났으므로.

객잔을 나선 하무백은 기감을 넓게 퍼뜨렸다.

예초아의 기척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있는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하무백은 장안의 길목 곳곳을 누볐다.

대로를 걷기도 하고 빈민가의 뒷골목을 걷기도 했다.

도무지 그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경로.

하무백과 함께 걸어도 이 정도인데, 만약 은밀히 뒤를 따라야 했다면 분명 큰 곤혹이었을 터다.

"저, 미행하는 감시자들을 따돌리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것일까?

송호신이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귀찮기는 한데, 따돌리는 게 더 귀찮지. 쓸어버리는 것도 귀찮아서 놔두고 있는 판국에."

섬뜩한 기운에 송호신은 마른침을 삼켰다.

쓸어버린다는 말에 목이 서늘해졌던 것이다.

"허면 어디로 가시는 건지······."

다시 이어진 물음.

일단 한번 대화의 물꼬가 트이니 두려움도 많이 사라진 덕이었다.

"몰라."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자신이 앞장서 걷고 있으면서 목적지를 모른다니.

송호신의 표정에 하무백이 빙긋 웃었다.

"그게 계속 요리조리 옮겨 다니고 있거든.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려고, 천천히 따라가는 중이다."

하무백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이 특급 경계 대상이 쫓고 있는 목표가 있는 듯했다.

그야말로 쫓고 쫓기고, 쫓고 쫓기고.

대체 얼마나 많은 무림인들이 이곳 장안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송호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유독 장안의 공기가 무거운 듯했다.

***

"빈민가로 방향을 틀었다 합니다."

그 말에 예초아가 인상을 구겼다.

하오문의 총타에서, 장안 뒷골목 빈민가에 마련해 둔 안가로 옮긴 지 얼마나 됐다고 이곳으로 방향을 튼단 말인가.

"다시 옮기죠."

예초아는 안가를 떠났다. 이호법이 그 뒤를 따랐다.

움직이는 이는 이들 둘이 전부였다.

많은 이가 움직이면 그만큼 하무백의 시선만 끌 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장안 전체에 촘촘히 깔린 하오문도들이 시시각각 하무백의 움직임을 암어로 알려 오고 있었다.

이호법이 그 암어에 따라 하무백의 움직임을 예초아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장안 안에서는 어디로 숨더라도 귀신같이 그쪽을 향해 걸음을 돌리는 하무백.

지독한 놈이다.

자정.

거리에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예초아는 빠르게 움직였다.

또 한 번 전해지는 문도들의 암어.

하무백이 다시 방향을 바꿨다.

"이이, 빌어먹게도 지독한놈이······."

***

꼬르륵.

송호신은 뱃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가만히 배를 쓸었다.

저녁 식사를 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야식 좀 먹고 움직이도록 하지. 어디 아는 곳 있나?"

저녁때도 그랬다.

배가 고프다고 먹고 움직이자며 식당을 물었었다.

덕분에 잠시 쉴 수 있었다.

"네. 마침 근처에 있습니다."

송호신이 앞장서 안내했다.

하무백이 그를 따르며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제법. 아직도 포기를 안 했나? 그럼 슬슬 이 재미없는 숨바꼭질도 끝내야겠네. 잠깐 기다려라. 일단 배 좀 채우고 갈 테니."

하무백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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