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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58화 (158/312)

158화. 저년이 지껄인 말 때문이었군

하무백이 십호법을 노려보았다. 그도 하무백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 내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말이야."

살기가 가득한 하무백의 목소리다.

"무슨 생각 말이냐?"

십호법이 물음을 던지는 순간.

타핫.

순식간에 그의 앞에 나타난 하무백이 팔을 휘둘러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크윽."

오른손으로 틀어진 멱살에 힘이 들어가니 십호법이 신음을 흘리며 버둥거렸다.

하무백이 그의 귀에 대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물은 푸르고 하늘도 푸르다. 물은 깊고 하늘은 높다. 푸르름은 같으나 방향이 반대이니."

여전히 살기가 가득한 음성이었다.

그 말소리는 속삭이듯 작았지만, 내공을 실었기에 영소향도 들을 수가 있었다.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하무백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영소향.

그러나 십호법은 달랐다.

"으윽··· 내력 역시 이와 같으니, 크윽. 방향이 반대가 되면··· 본질도 달라질 수 있음이다."

괴로워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다음 구결을 읊어 내는 십호법.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대로 익혔군. 멸공을 제대로 알고 있어."

"십호법!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연구만 하셨던 게 아닌가요!"

십호법의 대꾸에서 그것이 멸공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영소향이 큰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하무백에게 멱살이 잡힌 십호법이 그 말에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무백이 무표정한 얼굴로 십호법을 집어 던졌다.

콰앙!

바닥에 나동그라진 십호법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영소향으로서는 지금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다.

하무백의 등장으로 자신이 이렇게 화급히 도주를 하는 이유는 명확히 알게 되었지만.

다른 것은 여전히 혼돈 속이었다.

하오문의 대공녀로서 현재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하무백 앞임에도 그녀는 십호법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멸공을 연구하는 일을 했나 보군. 십호법."

하무백은 영소향의 외침에서 눈앞의 노인에 대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십호법이었던 거지? 내 기억에는 없는 얼굴인데?"

하무백은 지난 전쟁에서 하오문의 호법 열둘을 모두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이 각각 몇 호법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열두 호법의 얼굴을 모두 봤었다.

헌데 그때 눈앞의 이 노인은 없었다.

"클클클. 전쟁으로 명을 다한 이가 한둘이었을까?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자리를 채우는 거지."

그 사이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십호법의 태도가 바뀌어 있었다.

그때 십호법의 얼굴에 묘한 부조화가 생겼다.

조금 전 바닥에 나동그라진 충격에 얼굴에 쓰고 있던 인피면구가 움직인 것이다.

그 모습은 하무백의 심증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맞아. 그렇지. 헌데 묘하단 말이야. 좀 전에도 말했지만 네놈이 예초아보다 경지가 높아. 거기까지 연구하고서, 어째서 예초아에게 알리지 않은 거지?"

하무백의 물음에 형편없는 몰골의 십호법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미 알고 있는 듯한데?"

십호법의 대답.

하무백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맞아, 이 혈교 새끼야."

하무백이 십호법을 향해 일 장(掌)을 날렸다.

무시무시한 장력이 십호법을 덮치는 순간.

펑!

일 장을 마주 날린 십호법.

주르륵.

하무백이 내지른 장력의 위력에 뒤로 삼 장(약 9m) 정도 밀려 나갔으나, 십호법의 신색은 담담했다.

빙그레 웃으며 하무백을 바라보는 십호법.

그의 얼굴에 변화가 있었다.

한쪽 눈은 푸르게, 다른 한쪽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 어떻게······."

영소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혈교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어떻게 알았지?"

"네가 연구했다며? 멸공. 내가 판단하기로 예초아가 새로이 익힌 멸공의 상태만 해도 하오문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었다. 뭐, 멸문할 각오로 매달린 절박함을 생각한다면 아슬아슬하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줄 수 있어. 하지만 네놈은 아냐. 네놈의 수준은 절대 하오문의 수준에서 개량해낼 수가 없어."

하무백의 말에 십호법의 시선이 영소향에게로 향했다.

"저년이 지껄인 말 때문이었군."

십호법의 음산한 목소리. 그 음성에 영소향은 흠칫 몸을 떨었다.

"네놈 말대로다, 하무백. 그보다 뛰어난 수준의 신멸공은 하오문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지. 그래서 예초아에게 아직 알려주지 못한 거야."

십호법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천하에 멸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족속은 혈교밖에 없지. 네놈이 익힌 수준은 혈교 새끼가 아니고는 불가능해."

하무백은 문득 그 가능성을 떠올렸었다. 그 의심에 확신을 더해준 것이 영소향의 외침이었고.

"클클클. 젠장. 멍청한 예초아 년 때문에 네놈을 끌어들이게 될 줄은 몰랐다."

그의 음성에는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예초아를 향한 분노.

"멸공을 분석하도록 예초아를 꼬드긴 것은 네놈인 거고······. 팽가의 사달은 예초아의 폭주였던 모양이군."

"역시. 네놈은 똑똑해. 그 병신 같은 년이랑 다르게. 근데 왜 그때 하오문을 치지 않았지? 네놈이라면 필사본의 존재를 짐작했을 텐데? 그때 네놈이 왔었더라면 차라리 만회할 기회가 됐을 거야."

십호법의 물음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사실 그때 십호법은 이미 손을 써서 영소향을 사천 끝자락에 보내 놓았었다.

사천의 하오문 지부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예초아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영소향의 간섭으로 연구가 지지부진하니 잠시 사천 쪽으로 멀리 내보내면 어떻겠냐는 말이면 되었으니.

그 뒤로 하무백이 하오문을 치면 자신 혼자 몸을 빼면 될 일이었다.

영소향에게 찾아가 하오문의 멸문을 알리고 그녀를 데리고 새외로 몸을 빼서 훗날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하무백은 오지 않았고, 영소향은 사천의 시찰을 마치고 하오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갑자기 치고 들어온 하무백 때문에 그녀와 함께 움직이느라 이렇게 뒤를 잡히고 말았다.

모든 것이 꼬여버린 것이다.

"나야말로 묻고 싶군. 왜 혼자서 도주하지 않았지? 혼자서 도주했다면 나에게 잡히지 않았을 텐데?"

하무백의 물음.

자신이 알고 있는 혈교 놈들의 행태와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틀림없이 어떠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 던진 물음이었다.

그러나 십호법은 그 물음에 답하는 대신 은몸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 모습에 하무백이 인상을 찡그렸다.

멸공과 함께 혈교의 혈공이 운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눈이 붉게 물들 때 이미 짐작했다.

붉은 눈은 멸공만이 아닌 혈공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었으니.

다만, 무극명륜안으로 혈공을 놓쳤다는 사실이 걸렸다.

'아마 신멸공이라는 것 때문에 가려진 듯하군.'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무공이다. 신멸공은.

무극명륜안을 가리는 무공이라니.

"크크큭. 어디 한번 내 입에서 대답을 들어보거라! 죽어맛!"

십호법이 양손을 뻗었다.

각기 다른 빛깔의 장력이 서로 나선 형태로 꼬여서는 하무백을 향해 날아갔다.

붉고 푸른 장력.

하무백은 급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날아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콰콰콰쾅!

요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뿐.

하무백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십호법의 장력을 막은 손에 살짝 얼얼한 감이 남아있는 것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진 실력이었다.

심상치 않았던 기세대로의 위력이었다.

처음 보는 기이한 형태의 장력.

'멸공과 혈공을 동시에 운용한 것으로 이런 위력이라······.'

그리고 십호법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하무백에게 날린 장력의 반발력까지 이용해서 가진바 경공을 최대한으로 펼쳤다.

하무백이 그 모습을 보고는.

"저 새끼는."

와락 표정을 구겼다.

영소향을 힐끗 보고는.

"여기서 기다리던가, 하오문으로 돌아가던가."

짤막한 말을 남기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정말로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능광만리행.

하무백이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경공을 이를 악물고 펼쳤다.

그야말로 단전의 모든 기운을 다리로 쏟아 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빌어먹을 새끼가 도망치는 모습, 정확히는 경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정체를 알아차렸으니까.

정교한 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음은 알았지만, 설마 정체가 그 새끼였을 줄이야.

혈비영(血飛影) 도문위.

혈교에서 가장 빠른 새끼였다.

지난 전쟁에서 하무백이 세 번이나 놓쳤을 정도로.

혈교의 지낭 중 하나이자 동시에 극한에 이른 경공을 펼치는 이.

혈교십로(血敎十老) 중의 십로(十老).

혈교에서 교주를 제외하고 가장 강했던 열 놈 중의 하나였다.

설마 무극명륜안이 저 새끼의 무공을 놓칠 줄이야.

'신멸공이라고 했나. 골치 아픈 것을 만들어 냈어.'

다른 것이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무극명륜안이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혈교의 혈공을 덮어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운용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방금 자신과의 만남에서 저 빌어먹을 새끼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꽁지 빠져라 도망치는 것이다.

"너 이 새끼."

하무백이 분노가 가득 담긴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혈비영 도문위는 전력으로 달렸다.

자신의 독문경공 월야혈영신법(月夜血影身法)을 극성으로 펼쳤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아주 잠시 붉은 기운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극성으로 펼쳤을 때는 흔적을 남긴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지만, 상대가 그 흔적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멀리 떠난 후인 극신속의 경공이다.

붉은 기운은 극성일 때만 발현되었기에, 상대를 따돌린 후 흔적 없이 계속 경공을 펼칠 수도 있었다.

하무백의 능광만리행으로도 따라잡지 못했던 적.

"빌어먹을 하무백 놈이 판을 다 깨버렸구나. 아쉽지만 일단은 살아야 한다. 당장 저놈이 영소향을 어찌할 것 같지는 않으니."

분노하기는 도문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그리던 그림이 완벽히 망가졌으니.

"그보다 놈은 나를 못 알아봤다. 아마도 신멸공 때문인 듯한데······.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어."

하무백과 세 번이나 부딪혀 보았기에, 나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도문위다.

방법은 알 수 없지만, 상대의 정체를 귀신같이 맞추던 놈.

아마 상대의 무공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던 차였다.

헌데 오늘의 만남으로 신멸공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보았다.

오직 하무백에게만 해당하는 부분이겠지만.

"흐흐흐. 다음에는 오늘 같지 않을 것이다. 하무백."

쿠아아콰콰콰콰콰!

땅을 미친 듯이 박차며 달리는 도문위.

그 방향은 서쪽이었다.

이대로 감숙을 추파해 청해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하루를 쉬지 않고 경공을 펼칠 수 있는 도문위다.

빠른데, 오래 달릴 수 있기까지만 사기적인 경공.

그것이 도문위의 생명줄이었다.

하무백은 전력으로 달렸다.

저놈이 얼마나 오랫동안,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 알고 있기에.

다만, 흔적도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놓쳤을 때도, 그 붉은 기운이 사라진 후에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네놈이 지난 전쟁 때와 같은 수준이라면 이번에는 내 손에 잡힌다.'

하무백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단시간에 끝날 추격전이 아님을 알기에.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그리고 전력으로 능광만리행을 펼쳤다.

벽을 넘어서 강해진 것은 경공 역시 마찬가지.

예전보다 더 빨리, 더 오래 달릴 수 있었다.

계속해서 최고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도문위의 흔적을 놓치지 않았다.

전력으로 달리다 보니, 아스라이 흩어지려 하는 붉은 기운이 계속해서 눈에 보였다.

하무백은 그 기운을 계속 따라갈 뿐이었다.

"이대로면 먼저 지치는 쪽이 지는 거다. 도문위. 지금까지는 그게 나였을지 몰라도, 이번에는 너다."

확신에 찬 중얼거림이다.

단전에서 넘쳐나는 기운을 느끼고 있노라면, 이번에는 도저히 놓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혈비영 도문위와 하무백의 추격전은 하루 동안 계속되었다.

***

십호법과 하무백이 사라진 자리.

영소향은 멍하니 서쪽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혈교······."

분노가 가득한 중얼거림이다.

원독에 차 있었다.

결국은 그들의 손에 하오문, 그녀의 가족들이 놀아난 것이다.

심지어 동생은 죽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독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반드시 복수한다."

그렇게 중얼거린 영소향은 몸을 돌렸다.

자신이 떠나왔던 곳.

하오문이 있는 장안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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