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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64화 (164/312)

164화. 시간이 되었군

피곤에 찌든 얼굴의 세 사람이 대연무장에 나타났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의 얼굴에는 노곤함이 가득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기색.

하무백이 힐끔 그들을 보았다.

'한 명은 봉마단의 무사다. 그렇다면······.'

나머지 둘은 이미 산월마림으로 간 맹룡대와 관련된 이들일 터.

팽도율도 그들의 등장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굳이 그쪽으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저 복잡한 눈빛으로 맹룡대 생도 백 명을 바라보고 있을 뿐.

맹룡대 이십일 조에서 사십 조의 생도들.

이들이 떠나면 새로이 이십일 조에서 사십 조의 생도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제갈명 역시 맹룡대 생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저 방패들은 뭐지?"

하나같이 등에 메고 있는 방패.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이 누가 봐도 막 대장간에서 나온 신품이었다.

"제갈명 교관님이 사비로 선물한 거라고 합니다."

맹룡대의 마당발답게 당진산이 답했다.

그 말에 하무백이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잠시 제갈명을 바라보았다.

방패술을 창안해 가르칠 뿐 아니라 직접 방패까지.

맹룡대 교관도 아닌 그가.

참 대단한 사람이다.

반면 모용진호는 덤덤한 얼굴이었다.

자신이 대주를 맡고 있는 맹룡대이건만.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는 듯한 인물.

지난 기간 동안 하무백과도 딱히 접점이 없었다.

"시간이 되었군."

팽도율이 하늘을 올려다본 후 단상에 올랐다.

"맹룡대 이 년차 백 명의 생도 제군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 시간부로 그대들의 교룡관에서의 수련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한다. 교룡관주로서, 그대들의 출관을 허한다!"

힘 있고 명확한 목소리가 대연무장에 있는 이들의 귀에 박혔다.

그런 팽도율을 바라보는 맹룡대 이 년차 생도들.

그들의 얼굴에 자리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맹룡대에 자원한 이들이지만.

막상 닥치니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관주로서 그대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은,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부디 모두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하겠네······."

마지막 한마디는 차마 제대로 맺지를 못했다.

그렇게 팽도율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한쪽에서 맹룡대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교룡관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절대 외면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제갈명이 단상에 올라갔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간 익힌 방패술을 꾸준히 수련해라. 등에 멘 방패를 또 하나의 목숨이라 생각하고, 부디 살아 돌아와 웃으며 만나자."

제갈명이 마지막 당부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제야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이 단상에 올라갔다.

"나는 봉마단에서 제군들을 인솔하기 위해 온 조장이다. 지금부터 그대들은 봉마단 산하 맹룡대에 편입되었음을 알린다. 그럼 여기 부장들의 명을 따르도록."

짧은 말을 마친 그는 단상을 내려가 팽도율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 역시 이곳 교룡관 출신이었으니.

두 부장은 바쁘게 맹룡대 무사들을 정리하고 이끌었다. 각기 오십 명씩.

그렇게 맹룡대 백 명의 무사가 교룡관을 떠났다.

"저게 일 년 뒤 우리의 모습이네."

당진산이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네."

대꾸하는 단목운뢰의 목소리에도 두려움이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다른 맹룡대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설란은 양손을 꽉 쥐었다.

선배들의 출정식을 직접 보면서 비로소 맹룡대가 어떤 곳인지 실감한 것이다.

저들은 죽으러 가는 자의 얼굴로 교룡관을 떠났다.

"생환율 오 푼."

하무백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 년간의 복무 기간을 마치면 저들 중 살아 돌아오는 이가 고작 다섯이란 소리다."

일곱 생도의 얼굴엔 긴장이 어렸다.

그저 말로만 들었을 때와 눈으로 현장을 마주한 때는 달랐다.

"지금까지 대로라면 너희 중에도 둘은 산월마림에 뼈를 묻어야 한다. 백 중 다섯이 살아 돌아오니까."

생도들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럴 수밖에.

그들은 산월마림을 직접 보고 왔으니.

"말도 안 되는 빌어먹을 일이지."

분노가 극에 달한 듯한 목소리.

여과 없는 표현에 당진산이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듣고 있는 이가 있지 않나 살폈다.

교룡관의 일개 교관의 발언이라기에는 선을 너무 과하게 넘었기에.

하무백의 시선이 백리평에게로 향했다. 백리평은 그 의미를 알았다.

그랬기에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자신은 맹룡대에 남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 표시였다.

"내가 집에 가라고 했었지? 헌데 너희는 남았고. 너희 일곱은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다."

하무백은 그 말을 남기고 대연무장을 떠났다.

***

다시 이틀이 흘렀다.

구양명원은 천목각에서 온 전서 덕에 기유찬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슨 식재료에 원수를 졌나······."

자신이 검토했던 서류를 떠올리며 중얼거리는 구양명원.

그가 처리한 서류 대부분이 식재료의 양과 질, 가격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런 것은 산학의 지식이 중요할 뿐, 교룡관의 사정과는 무관했음이니.

서로 맞춰서 누락 되거나 속인 것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작업.

과거 무슨 문제라도 있었는지, 집착이라 할 만큼 과하게 살폈다.

구양명원은 홀로 있게 된 후에야 전서를 펼쳐 들었다.

"내가 저 인간을 어떻게 쫓아다니라고······."

모든 내용을 읽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무백이 종남과 문제가 생기면 그건 둘 사이의 문제니 정천맹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하무백의 행보를 놓치지 말고 지켜보아라.'

명령서의 내용이었다.

구양명원은 명령서를 구긴 후 천천히 씹어서 삼켰다.

난감했다.

차라리 기유찬이 맡겼던 서류가 그리워졌다.

***

"뭐라?"

주재승이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제자의 보고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리평에 대한 교룡관의 답변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탓이다.

"담당 교관이 승인을 거부해서 백리평은 퇴관이 불가하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냐! 대종남의 장문인인 내가! 내가 백리평에게 오라고 했는데!"

시뻘게진 얼굴이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안 되겠다. 안 되겠어. 고작 교룡관의 관칙 때문에 종남의 행사가 방해를 받다니. 그딴 게 무슨 상관이냐! 사람을 보내서 백리평을 데리고 와라!"

주재승의 명령.

그의 손에는 종남의 장문영부가 들려있었다.

장문영부로 내린 명은 문파의 모든 규칙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명령이다.

그 명령에 집법원주 소중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그 명이 하필이면 정천맹의 맹칙을 무시하는 것이었으니.

어쨌든 명령은 내려졌고.

종남이 분주해졌다.

그러든 말든 주재승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화를 삭이고 있었다.

아무도 그곳에 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당당히 주재승을 찾은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문사형 계십니까?"

그 목소리를 들은 주재승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막내 사제인가? 언제 도착한 거냐? 어서 들어오거라."

주재승에게는 수많은 사형제가 있었다.

그중 오늘까지 살아남아 종남을 이끄는 이는 그를 포함해 모두 아홉.

지난 전쟁의 여파였다.

그중 외유를 나갔던 막내사제가 돌아온 것이다.

"장문사형을 뵙습니다.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 헌데,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중년의 사내 곽사후가 주재승에게 포권한 후 허리를 들며 물었다.

"아, 이제 막 돌아왔으면 그간의 일을 모르겠군."

주재승은 그간 있었던 일을 울분을 쏟아내듯 이야기했다.

곽사후는 그 말을 경청했다. 때로는 맞장구를, 때로는 탄식하면서 말이다.

주재승은 막내사제의 공감에 더욱 신이 나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흐음. 장문사형. 평이 그놈을 맹룡대에 보낸 이유는 하나 아닙니까?"

그리 말하는 곽사후의 음성이 음산했다.

"하나지."

주재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두 사람은 그 이유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애초에 백리평을 맹룡대로 보내자고 제안한 사람이 곽사후였으니까.

이 년 뒤에 산월마림에 가서 죽으라고 보낸 것이다.

"놈이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맹룡대로서 산월마림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굳이 장문영부까지 발동해서 다시 본파로 불러들일 이유가 있습니까?"

곽사후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동투제 소식에 자신이 너무 흥분했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승부 상대를 생각하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주우명이었다. 무당의 주우명. 그런 이가 맹룡대에 있다. 맹룡대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움직일 수도 있음이야."

전대 무당제일검의 제자인 주우명.

그가 맹룡대에 들어갔으니, 교룡관과 정천맹에서는 쉽사리 맹룡대를 산월마림으로 보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무당 장문인의 사제를 사지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에 내년에 놈이 더 강해진 상태에서 맹룡대가 산월마림으로 가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아직도 대사형을 그리워하는 놈들이 많아."

주재승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곽사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시운이의 앞길을 막을지도 모르겠군요."

주시운.

종남의 일대제자로, 주재승의 아들이었다.

주재승의 목적은 뻔했다.

자신의 아들을 차기 장문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종남의 장문인 자리를 자신의 주씨 가문이 독점하게끔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곽사후는 그런 주재승에게 붙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노리고 있는 것이고.

"그래. 그래서 불러들이는 것이다. 허튼짓 못하게 징벌동에 가둬서 평생 면벽이나 하게 해야지."

"마침 명분도 있군요. 장문인의 명을 거역했으니."

곽사후의 말에 주재승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네 생각이 내 생각과 같구나. 헌데 중산이 놈이 반대를 하니."

집법원주 소중산을 떠올리자 절로 기분이 나빠졌다.

사형제 중 전대 장문인 백리단을 가장 따랐던 이가 소중산이다.

성정 역시 백리단을 닮아 어찌나 명분과 정의를 따지는지.

자신이 장문인이 된 후 소중산부터 집법원주에서 끌어내리려 했으나, 문파 내에서의 인망이 높은 터라 그러지 못했었다.

이제 나름 입지를 다졌으니 하나둘 쳐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백리평이다.

아직도 백리단을 그리워하는 소수 제자들의 관심이 백리평에게 쏠려 있었기에.

대사형의 그림자를 종남에서 지워야 했다.

그래서 죽으라고 맹룡대에 보냈는데, 그곳에서 더 강해져 버렸으니.

결국 자신의 눈이 닿는 곳에 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묶어놔야 했다.

***

소중산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답답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날.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구나."

대사형 백리단이 죽고, 아홉이 남은 사형제들.

그들 중 한 명이 장문인이 되어야 했다.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 이는 이사형이었던 주재승 하나.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네 명의 사형제들.

아홉 중 다섯이 힘을 합쳤었다.

남은 네 사람이 힘을 합쳐 반대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넷은 다시 둘과 둘로 생각이 나뉘었으니.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이사형이 점점 더 폭급해져 가고 있어."

이유는 알고 있었다.

장문인으로서의 힘이 강해지는 만큼 제멋대로 굴고 있었으니.

소중산은 몸을 일으켰다.

그때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던 사제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소중산이 움직이려 할 때.

종남에서 교룡관을 향해 사람이 떠났다.

주재승의 명대로 백리평을 데려오기 위해서.

***

"대사형. 이제 곧 무창입니다."

사제의 말에 종남의 일대제자 중 가장 항렬이 높은 대제자인 주시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제야 도착이냐? 쥐새끼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사숙께서는 그놈 하나 잡아 오는 데 뭐 이리 사람을 많이 보내는 것인지. 쯧."

짜증 가득한 목소리.

불만의 대상에는 심지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사숙 곽사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했다.

문파에서 편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원행을 나서게 되었으니 어찌 기분이 좋을까.

그의 성정은 아버지인 주재승과 판박이였다.

함께 무창까지 온 일대제자 세 명은 그 모습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았다.

일대제자들 중 종남의 미래라 불리는 종남팔검.

그중 무려 셋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주시운은 종남팔검에 꼽히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공공연히 '종남구검'이라 말하고 다녔다. 자신을 포함해서.

"아니, 애초에 이대제자 쥐새끼 하나 잡아 오는데, 일대제자를 넷이나 보내는 게 말이 되냐, 이 말이야. 이대제자 애들 두셋 보내면 될 일을."

끝없는 투덜거림.

무창에 들어선 이후에도 그의 불평은 계속됐다.

종남팔검 중 일검 남화룡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가장 뒤에서 걷고 있었기에 그의 변화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이따위 명령에, 이따위 대사형이라니.'

짜증이 나 있는 것은 주시운만이 아니었다.

다른 두 사람은 어떻게든 주시운의 기분을 달래주려 그의 곁에서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남화룡은 그 모습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대종남의 모습이 아니다.'

가슴에 가득하던 종남에 대한 자긍심.

전대 장문인이 돌아가신 이후부터 그 자긍심은 조금씩 깨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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