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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66화 (166/312)

166화. 명분이요?

"그러면 이리하는 건 어떻소?"

"넌 또 뭐냐?"

갑자기 나선 삼검을 바라보며 하무백이 물었다.

"크흠. 종남팔검 중 삼검 반적풍이라 하오이다. 교관이 비무에 패하면 백리 사질의 퇴관을 승인하는 것으로 하는 건 어떻소이까?"

하무백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놈은 대체 뭐냐는 반응이다.

한설빙을 비롯한 맹룡대 생도들 역시 같은 반응.

그들은 하무백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강한 인간인지 알고 있었으니.

"내가 이기면?"

"백리 사질의 거취에 대해 종남에서는 아무런 강제를 하지 않겠소이다."

"네놈에게 그걸 정할 권한은 있고?"

하무백이 같잖다는 듯 말했다.

"그까짓 거, 내가 보증하지."

갑자기 분위기가 일변한 주시운이 대답했다.

그의 두 눈이 요사스레 빛났다.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남화룡은 그들이 하는 꼴을 보고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끼어들 틈을 보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부분까지 이야기가 일사천리로 흘러가 버렸다.

"단, 네놈이 쓸데없이 혓바닥을 놀렸으니 그 대가가 있어야겠지?"

"대가?"

"한쪽 팔과 한쪽 눈. 그 정도면 적당하겠군."

잔인한 성정다운 말이다.

"눈과 팔이라······. 누구의?"

하무백이 물었다.

"당연히 네놈이지. 눈앞의 귀한 분도 못 알아보는 눈깔이라면 하나 정도 없어도 상관없잖아?"

주시운은 간악무도한 기운이 가득한 눈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무게추가 안 맞는데······. 흠. 내가 이기면, 네놈도 한 팔과 한쪽 눈을 내놓을 생각인 거지?"

"킥. 자신만만하구나. 좋다."

주시운이 하무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는데. 관주님께서 이런 조건의 비무에 대한 증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하무백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그곳에는 교룡관주 팽도율이 있었다.

남화룡은 대경했다.

아무리 정신없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누군가의 접근을 놓치다니.

그리고 하무백은 그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도 느꼈지만, 저 인간은 강했다.

"못 할 것도 없지. 내 증인이 되어 주겠네. 다만··· 눈과 팔을 갖겠다는 건 빼는 게 어떤가?"

팽도율은 흔쾌히 답했다. 그러면서도 과한 부분에 대한 조율을 시도했다.

"큭. 뺄 필요 없소이다! 말도 안 되는 일. 근본도 없는 교관 나부랭이가 대종남을 모욕했는데. 관주면 팽가가 모욕을 당했을 때 참을 수 있겠소?"

"······."

"나는 그런 호인이 아니외다. 저놈의 눈알을 파내고, 한 팔을 받아내야만 내 화가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소이다."

그는 어림도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쯧. 그리 물렁하니 고작 이런 곳의 관주나 하고 있는 것 아니오."

주시운이 덧붙인 말은 선을 넘었다. 그럼에도 팽도율은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죽으러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굳이 자신이 화를 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

하무백과 저런 시비라니, 오히려 불쌍할 지경이었다.

"흠. 뭐, 정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알겠네."

그 모습을 지켜본 남화룡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팽가주의 형제다.

지난번의 큰일로 팽가의 세가 많이 쇠락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오대세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가문의, 가주의 형제를 무시하는 언사라니.

게다가 관주가 비무의 증인으로 나선다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대사형은 절대 저 교관을 이길 수 없다. 즉, 한쪽 팔과 눈을 무조건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 교관의 수에 완벽히 말려들고 있었다.

어쩌면 사형을 향한 도발이 모두 이런 계산 하에 이루어진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러면 나도 제안 하나 추가하지. 그쪽에 유리한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네놈이 우리 백리평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거든. 그러니 종남에서 지정하는 한 사람, 그리고 내가 지정하는 한 사람. 그렇게 두 사람을 모두 꺾으면 백리평의 거취에 대해서 종남은 관여하지 않는 걸로. 어때? 아, 물론 네놈도 눈, 팔 한 쪽씩 내놔야 하고."

점점 일이 커지고 있었다.

"자, 잠깐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일을 막기 위해 끼어들려 했지만.

주시운의 두 눈에 분노가 자리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개무시하는 놈이라니. 열기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호랑이 무서운 줄 무르고 짖기만 하는 개새끼로다. 크크크. 그 오만함이 네놈에게 어떻게 돌아갈까? 그래. 받아들이지."

종남에서 감히 자신에게 이런 도발을 일삼는 사람은 없었다. 있어서도 안 될 일이고.

그로서는 종남을 나서고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온몸에서 살기를 뿜으며 덧붙였다.

"다만, 비무를 하는 동안 그 목을 조심해야 할 거다. 가장 먼저 떨어지는 게 목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거든. 내 자비로운 사람이니 혹시라도 목이 먼저 떨어진다면, 네놈의 가족에게 고이 보내주마."

그 살기 어린 말에 하설란이 몸을 흠칫 떨었다. 오라비의 목을 잘라 자신에게 보내겠다니.

아직 심성이 여린 그녀로서는 놀랄 만한 말이었다.

"거기 뚫려 있는 건 입이 아니고, 시궁창이로군. 온갖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하무백이 주시운을 노려보았다. 이를 빠드득 물었다.

하설란의 모습에 당장 전신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직은 살기를 뿜어 낼 때가 아니었으니.

남화룡은 자신의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문서부터 남기도록 하지."

하무백이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오로지 하설란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시운은 그의 반응을 오해했다.

하무백이 겁을 먹었다 생각한 것이다. 겁 많은 개가 크게 짖듯이.

그렇게 그들은 교룡관의 관주실로 향했다.

하무백과 종남파의 일행이 사라진 연무장.

남겨진 생도들.

그들은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폭풍이 휘몰아쳐서 교관과 백리평을 데려간 느낌이었다.

"한 교관님. 괜찮을까요?"

몸을 떨고 있는 하설란의 손을 잡아주며 연하민이 물었다.

말없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한설빙.

"응? 뭐가?"

"하 교관님과 평이요."

돌아온 대답에 한설빙은 잠시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종남파, 좆됐는데?"

***

관주실.

팽도율의 지시를 받은 기유찬이 문서 초안을 작성해 왔다.

"깔끔하군."

내용을 확인한 주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하무백은 고개를 저었다.

"틀렸는데?"

"어디 말씀입니까?"

문서를 작성한 기유찬이 물었다.

"주시운. 저 친구랑 백리평의 비무 내용이 빠졌잖아. 나랑 붙으려면 먼저 백리평을 이겨야지."

"그럼 여기 승패의 조건은······."

"백리평을 이기면 이긴 것으로 해서, 내 팔과 눈을 내놓지."

하무백의 말에 백리평이 화들짝 놀랐다.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설마 자신의 비무에 교관님의 눈과 팔을 걸다니.

백리평의 몸이 잘게 떨렸다.

"교, 교관님······."

"큭, 큭큭큭. 미친놈이군. 미친놈이야. 그냥 눈을 뽑고 팔을 잘라달라는 건 어떠냐?"

주시운의 비웃음.

그러나 하무백은 담담했다.

"그리하게나."

팽도율의 말에 기유찬은 하무백의 말대로 문서를 새로 작성했다.

다시 한번 확인을 거친 문서 두 장에, 팽도율의 수결까지 선명히 들어갔다.

물론 주시운과 하무백의 수결도 역시.

문서를 나눠 가진 그들은 각자의 길로 그렇게 헤어졌다.

***

"대사형. 대체 어쩌시려고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객잔 별채에 들어선 남화룡이 주시운에게 말했다.

"난 종남의 대제자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종남이야. 근본도 없는 개잡놈에게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바보처럼 가만히 있으란 말이더냐? 네놈이 정녕 종남의 제자냐?"

남화룡은 자신을 향해 돌아온 물음에 묵묵히 있었다.

"내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낼 것이다. 아주 처참하게 짓이겨서."

주시운은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렸다.

남화룡은 대체 이 대사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늘 화가 가득했으니.

"그래도 백리 사질의 거취는 장문인께서 직접 내리신 명 아닙니까. 장문영부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장문인의 명이 탐탁지 않았던 남화룡이지만, 장문영부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아버님께는 내가 말씀드리면 될 일이다."

당당한 주시운의 모습.

나이가 마흔 중반을 넘었건만 어찌 저런단 말인가.

속이 무언가로 꽉 막힌 듯 답답해지는 남화룡이었다.

주시운은 포악하고 잔인하기만 할 뿐, 상대의 실력 파악은 물론 자신의 실력에 대한 파악도 전혀 못하고 있었다.

***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관주각을 나와 숙소로 향하는 하무백에게 따라붙은 백리평이 물었다. 당최 그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 교관님의 눈과 팔을 걸다니.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따로 좀 알아봤는데."

하무백이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네."

"너네 장문인, 질이 별로 안 좋아."

그 말에 잠시 멈칫하는 백리평.

하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자신을 이곳에 보낸 것이나, 다시 부르는 것이나 그 행동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하무백도 종남 장문인의 성정이 개차반일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든 확실한 것이 나았기에.

요 며칠 사이 개방을 통해 정보를 좀 받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다.

자신이 승인을 안 해준다고 포기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질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속이 좁고 쪼잔한 소인배더군. 거기에 포악하고 잔인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 아들놈도 똑같고."

하무백은 주시운에 대한 정보 역시 파악하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장문인에 대한 흉.

"그······."

무어라 말하려던 백리평이 입을 닫았다.

종남의 제자로서 반박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

그래서일까? 듣고 있는 동안 가슴 속 한구석이 시원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그런 놈들은 제대로 깨부수지 않으면 계속 귀찮게 굴지."

하무백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서 깨부술 명분이 필요했다."

"명분이요?"

백리평의 물음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명분 없이 깨부숴도 되긴 하는데. 그러면 좀 귀찮거든."

무엇이 귀찮다는 것일까.

백리평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종남 절반 정도는 날려버려야 할 수도 있어서. 그러면 정천맹에서 또 귀찮게 굴 거고."

하무백이 그 의문에 답을 해주자, 백리평이 우뚝 멈춰섰다.

종남의 절반을 날려버리겠다니.

한 개인이?

그게 가능한 일인가?

물론 산월마림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교관님이 무척이나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구파일방 중 한 곳인 종남파를 상대로.

광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리평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하무백은 그 모습이 재미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무튼, 명분을 어찌 쌓나 했는데 저쪽에서 만들어 주니 고마울 뿐이지."

백리평은 반 사숙의 제안을 떠올렸다.

자신의 거취를 조건으로 건 내기.

"그런데 왜 굳이 종남에서······."

법도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남화룡이었다. 그것을 옳다구나 이용한 것은 하무백이고.

"가기 싫은 거냐?"

하무백의 물음.

백리평은 입을 꾹 닫았다.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운 거로군."

백리평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남파는 거대한 문파다.

그곳에 자신과 교관님 둘이서만 갔다가, 자신이 종남에 잡혀 다시 교룡관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

"그럴 일 없다. 반드시 돌아온다. 내가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올 테니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하무백.

"그리고 거기서 해야 네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종남에 보여줄 거 아니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백리평이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종남은 하나같지만, 아직 하나가 아니더군. 시일이 더 흐르면 하나가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야."

백리평은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서 하나로 만들어 주려고."

"네? 어떻게?"

깜짝 놀라는 백리평. 눈앞의 교관은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었다.

"자격이 없는 놈을 쳐내야지."

하무백의 입가에 살소(殺笑)가 떠올랐다. 그 웃음을 본 백리평이 몸을 흠칫 떨었다.

"장문인과 대제자라는 놈을 찍어내야지."

도대체 어떻게 그리하겠단 말인가.

교룡관, 그것도 맹룡대의 일개 교관이 구파일방 중 한 곳인 종남파의 장문인을 찍어내겠다니.

"내가 괜히 비무 상대를 지정하겠다고 한 게 아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백리평은 하무백이 지정할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비무 중에 목이 잘릴 놈이 나일지 내 상대일지는 그날 봐야 아는 것이지."

은은하게 몸에서 피어오르는 살기.

"아, 아무리 그래도······."

백리평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풋. 뭐, 정말로 목을 자르지는 않을 거니 그런 얼굴은 안 해도 된다."

하무백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다만 입을 함부로 놀린 대가는 분명히 치러야 할 거야."

하설란이 몸을 떨던 모습을 떠올린 하무백의 몸에서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런 교관님의 모습이라니.

하무백이 종남에서 비무를 벌인다면, 분명 무언가 큰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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